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4
63화 전설의 신의
흑마검이 극독이라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이라 내공이 얕다고 해도 구파 제자라면 내가공부의 기초는 충분히 다져졌을 터인데 청성파 제자들이 맥을 못 추고 꼬꾸라졌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일단 재수탱이를 백무호에게 넘기고, 다른 둘을 둘러업고는 빠르게 산에서 내려갔다.
‘마을을 찾아야 해.’
내공을 밀어 넣어 독기를 몰아내는 것도 잠시 생각해 보긴 했지만 바로 자체 기각시켰다.
이종진기를 타인의 몸에 넣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아차 했다가는 차가운 물에 끓는 기름을 부었을 때의 반응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 몸이 터져나가는 꼴을 볼 수 있을 거란 이야기다.
[잘 생각했다. 청성파 제자에게 함부로 손대면 사천에서의 네 행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달마 사부도 같은 의견이셨다.
설령 기운의 성질이 비슷하다고 해도, 타인의 몸에서 내공을 움직이는 것은 무척이나 섬세한 제어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했다간 기혈이 망가지게 된다.
타인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어 독기를 몰아내는 것은 정말 다른 방도가 없을 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하는 상황이 아니면 피해야 한다는 것이 달마 사부의 설명이셨다.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너는 우선 약방을 찾도록 하거라.]달마 사부가 지시를 내리시고는 자리를 비우셨다.
천상에서 도울 방법을 찾아보실 생각이신 것 같다.
문제는 그동안 이들이 버텨낼 수 있느냐는 것인데, 다행히 급속도로 악화되지는 않는 것이 시간적 여유는 있어 보였다.
“이 자식, 토하려는 것 같은데?”
그런 가운데 재수탱이를 업고 달리던 백무호가 불안을 호소했다.
아무래도 감정이 남아 있던 터라, 저놈을 떠넘기는 대신 내가 두 명을 업고 달리는 것으로 합의를 봤는데 잘 피해서 고른 것 같다.
“속에 있는 걸 게워내면 좀 편해질 테니 좋은 거 아냐?”
“대신 내 후각이랑 정신도 비워지겠지……. 니미럴 염병.”
“어우…….”
슬쩍 돌아봤더니 괜한 불평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피워 올릴 크고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보는 것 같았다.
좋게 표현하자면 그랬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그건 좀 더럽잖아.’
의식을 잃은 사람을 등에 업고 달리면 필연적으로 얼굴이 목이든 귓가 부근이든 닿게 된다.
저런 게 얼굴 근처에서 아른거리고 있다니.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친다.
“……뭔데? 뭐야? 말해 이놈아!”
“아니, 잘하고 있다고.”
“구라 치지 마! 이거 지금 상태 개판이지? 맞지? 터지는 거지?”
등에 업고 있다 보니 재수탱이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는 백무호가 소리를 질렀다.
사실 살짝 무리를 하면 확인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공포가 호기심을 능가한 것 같다.
솔직히 나라도 그러겠다.
무섭잖아. 억지로 고개를 돌려서 표정 확인 들어갔는데 저 ‘크고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활짝 만개라도 하면.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안 터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
“……이상한데. 왜 갑자기 오한이 돋지? 너 뭐 했냐?”
금단 증상이라도 생긴 사람마냥 불안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백무호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긴 했지만.
“속으로 기도했지. 제발 별문제 없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마! 그런 건 입 밖에 내놓으면 꼭 안 좋은 쪽으로 터진다고!”
“…….”
‘말을 꺼낸 건 너잖아.’라는 말이 잠시 뇌리를 감돌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래, 여기선 내가 참는 게 맞는 거겠지.
***
그리고.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에엑!”
“…….”
“우웁! 우에에웨에웨웨에에에엑!”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터지지 않았기에 희망에 가득 찼던 백무호의 표정이 절망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보았다.
“이 새끼! 누가 남의 얼굴에 빈대떡 부치랬어! 어! 청성파에서 그리 가르치든!”
마을 한가운데, 사방팔방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듯 백무호가 재수탱이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소리 질렀다.
어째 둘 다 안 좋은 별호가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든다.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최악은 피한 것 같네.”
청성파 제자들은 잘 버텨 주었다. 최대한 서둘렀다고 해도 시간이 제법 걸렸는데, 의식을 잃을 만큼 강한 독에 중독된 상태임에도 목숨줄을 잘 움켜쥐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이번에 사천 오면 맛있는 거 많이 사 주겠다고 했는데 백무호 이 녀석이 잘 먹을지 모르겠다.
그때 뭔가 대답하기 껄끄러운 물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저놈은 뭔데 얼굴에 빈대떡을 처발랐냐?]달마 사부 목소리는 아닌데?
새로운 분인가?
[부라고 한다. 의술을 잘 아는 친구지.]“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그런 내 반응에 달마 사부가 말을 이으셨다.
[세상에는 화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긴 하다만.]“……예에?”
화타라고요? 그 전설적인 신의?
이것도 천상답다면 천상답다고 해야 하나?
생각지도 못한 전설이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저기 남의 얼굴에 빈대떡 부친 새끼나, 니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맛 간 건어물 같은 새끼들이나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데, 일단 약재를 구할 수 있는 약방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살짝 놀라 당황하고 있자 날 선 목소리가 정신을 깨운다.
그 말대로 일단 사람 목숨 구하는 게 우선이다.
아직까지 잘 버텼다고 해도 계속 그럴 거란 법은 없으니까.
나와 백무호는 마을의 약방을 찾아 달렸다.
물어물어 열심히 발품을 판 덕에 약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예? 청성파 제자분들이시…… 흐헉! 이, 이분들 왜 이런데요?”
초주검 상태의 청성파 제자들을 본 의원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구파 대부분이 그 지역 연고지에 끼치는 영향력은 강대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천 사람 중 청성파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게 만수무강에 이롭기도 하고.
아무래도 저 의원은 청성파 제자들의 상태를 보자마자 본인의 만수무강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모양이다.
무리는 아니다. 무리는 아닌데…….
‘치료나 할 수 있겠나, 이거.’
진료도 하지 않고 벌벌 떠는 것이 영 믿음이 안 간다.
“무, 무슨…… 무슨 독에 당한 건지…… 아, 알고 계신지?”
“보랏빛을 띠는 독무(毒霧)였습니다. 흑백쌍마라는 작자들이 쓴 물건이었는데…….”
“흐헉! 흑백쌍마!”
의원이 기함을 하며 벌벌 떨었다. 그 반쪽짜리들이 사천에서 꽤나 악명을 떨치긴 했나 보다.
“무슨 독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그게…….”
흑백쌍마의 별호를 들먹인 것은 그들의 명성만큼이나 쓰는 독이 알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의원은 안 그래도 불안해진 만수무강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된 것으로 인식한 것 같다.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버벅거리는 의원의 행동이 짜증 났는지 백무호가 비아냥거렸다.
“뭘 그렇게 놀라셔. 댁 앞에 있는 양반에게 그 흑백쌍마가 십 초식도 못 버티고 대가리가 깨졌는데.”
“예……? 예?”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거듭된 탓에 의원의 정신줄이 가출한 듯, ‘헤~’ 하고 입을 벌렸다.
[어이구! 의원 망신 혼자 다 시키는 병신 새끼.]화타 선생의 말이 거칠긴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가능하면 지상에서 답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이 의원이 하는 꼴을 보니 맡겼다간 시체만 생길 것 같다.
“선생님, 도와주십쇼.”
[거기 사천이라고 했지? 보자. 독무에 섞어 쓸 수 있는 독이면 종류가 제한되는데…… 사천에서 구할 수 있는 만한 독으로 보랏빛에…… 애들 상태를 보아하니……. 아하, 그건가 보구먼.]빠르다. 벌써?
대충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화타의 의술은 약을 쓰는 재주보다는 사람을 째고 갈라서 수술을 하는 쪽으로 유명한 거로 알고 있는데…….
[석남엽 반 근, 천초근 두 뿌리, 황벽 한 줌. 그리고 사천이니까 삼지구엽초 약력이 좋을 테니 그것도 넣으라고 하고. 그리고 두충, 천충급이 있으면 그게 제일이지만…….]뭔가 알 수 없는 약재 이름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모른다고 얼 타고 있다간 나까지 덩달아 욕먹을까 싶어 얼른 화타 선생이 말한 것을 그대로 읊었다.
서두 없이 갑자기 약초 이름을 언급하자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더니 다시금 정신줄이 가출을 시도했다.
대충 내(화타)가 말한 약재들이 어떤 효능을 일으키는지 알아차린 눈치다. 실력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여기까지. 지금 말한 약초들 탕약으로 달여서 가져오세요! 빨리!”
“예! 옙!”
목소리를 높인 내 호통에 의원이 정신을 차리고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백무호가 묘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의술도 알고 있었냐?”
“뭐, 조금.”
“그래? 뭐, 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그럼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이 녀석은 조금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알고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그럼 난 씻고 올 테니까 알아서 해. 으엑! 토할 것 같아…….”
대충 급한 일이 정리되자 백무호가 다음으로 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주변에 의식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게 돼서 좀 더 편하게 천상과 대화가 가능해졌다.
[아까 놀라더라? 왜? 대가리 쪼개는 거나 잘하는 의원인 줄 알았냐?]속마음을 엿보기라도 한 듯 화타 선생이 찔러 왔다.
“예, 뭐.”
[흥! 솔직한 건 좋네. 네가 몰라서 그러나 본데, 내가 째고 가르는 쪽으로 이름을 날려서 그렇지 약에도 꽤나 조예가 있어. 사람 째고 할 때 그냥 막 가르면 뒈지는 경우가 십상이라 독 다루는 법도 정통해야 했거든.]그런 거라면 좀 이해가 간다. 마취를 시키기 위해 마비산 같은 것도 다뤘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아무튼, 흠흠! 내 말투가 좀 거친 건 이해해라. 방금 환자 새끼 하나 보고 와서 그런 거니까. 독각룡(獨角龍) 이 미친 도롱뇽 새끼가 또 바람피우다 옆구리를 찔려가지고. 아오!]용도 바람을 피우나 보다.
새로운 지식을 하나 얻게 되긴 했는데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이라 그런지 떨떠름하다. 뭔가 격이 떨어지는 용이라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힘드셨나 봅니다.”
[환자 보는 게 다 그렇지. 일단 기본적으로 어딘가 아픈 새끼들이니까 성깔이 더러워. 나 현역 때도 아파서 기분 엿 같다고 칼 들고 지랄 발광하는 새끼들이 한두 놈이 아니었으니까. 여기야 이야기가 좀 다르긴 하지만, 사람 몸에 새겨진 근성이 어디 쉽게 없어지나. 의원질 때려치우면 또 모르겠지만.]그런 환경이었다고 하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화타 선생님도 신선이신 겁니까?”
[신선은 무슨. 난 의원이지, 도 닦는 놈이 아니야.]“어? 그런데 어떻게 천상에…….”
[나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뒷구멍 같은 거지. 나 정도로 유명하면 어느 정도 인과가 쌓이거든. 뭐라고 하면 되려나. 신선이 관리라면 나는 그 관리를 보조하는 담당? 실제 본적도 명계에 속해 있어. 지금도 달마가 불러줘서 잠깐 방문한 거야.]“아아, 예.”
비유를 들어보니 대충 어떤 자리에 있는지는 알겠다.
인과가 쌓이면 죽어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생긴다는 것도.
[그나저나, 너 거기 사천이라고 했지?]“예.”
[거기 있는 동안은 종종 봤으면 좋겠다. 사천이 이런저런 독물들을 구하기 쉬운 곳이라 독에 관해 공부할 때 좋거든. 여기 와서 남아도는 시간에 이래저래 구상하던 독이나 해독제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 좀 시험해 보게. 너도 이득이야. 무려 이 화타 님의 비전이라고. 곁다리로 들어만 놔도 꽤나 유용할 거야. 그러니까 달마 이 양반한테 좀 졸라 봐. 나도 이 양반 허락 없인 여기 못 올…… 아, 거 부탁도 못 하냐!]아무래도 화타 선생은 신선이 아니라서 혼자서는 천상에 오르지 못하시는 모양이다.
그리고 달마 사부는 괜한 청탁이라 여겨 저지하시는 것 같고.
‘응? 그런데 왜 달마 사부가 채근하는 소리는 안 들리지?’
바로 옆에 계신 거 아닌가?
작고 소소한 의문 하나가 들었지만, 그 의문이 뇌리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무서운 이야기 하나가 튀어나왔다.
[에이, 써그럴. 이렇게 된 거 나도 인과 좀 쓰더라도 천마 그 양반이 팔고 있다는 보패나 사야겠네. 이 자오경을 엿보게 해 준다던데.]“……예?”
저기요?
뭘 엿봐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요즘 천마 그 양반이 요상한 거 팔던데? 요즘 지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면 하나씩 사서 보라고. 자오경이란 기물이 엿보게 해 준다고 했으니 아마 이걸 말하는 거겠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두 개나 있을 리도 없고.]천마 사부우우우우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