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68
67화 어쩌다 보니 신의 노릇
뜬금없는 상황에서 중독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몸이 아파 의원을 찾아갔다 들은 말이라면 그나마 마음의 준비라도 하겠지만, 시비를 걸었다가 역으로 털린 상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황당할 법도 하다.
[꼴을 보니 옆에 놈도 그런데?]“얘도 그러네.”
화타 선생은 얼굴의 실핏줄과 기미를 보고 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집어내셨다. 그리고 촉진을 통한 반응을 살펴 확신을 얻으셨다.
그 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있는 것 같지만 거기까진 그냥 귀찮아서 넘어가신 것 같고.
실력 있는 의원들은 촉진도 없이 사람의 병을 꿰뚫어 본다더니 딱 그런 모습을 보여 주셨다.
“악!”
확인차 옆에 있던 놈도 꾸욱 눌러보니 동일한 반응이 나온다.
‘개인에게 쓴 독이 아닌가?’
누군가 독에 중독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료로 보이는 자 역시 같은 독에 중독되었다.
이들이 속한 집단이나 세력을 노리고 독을 쓴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게 뭔 지랄이야, 쓰벌.”
녀석들이 잔뜩 얼굴을 구겼다.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수긍한 모습이다.
“내 친구는 왜 공격했어?”
“……그야 우리 구역 안에서 처음 보는 놈이 검을 들고 있으니까 한번 건드려 보자는 생각이었다고나 할까……요.”
정파의 영역과 다른 느낌의 세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덤비다니, 확실히 사파의 영역답게 거친 녀석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몸이 아프니까 신경질도 좀 났고……요. 대충 뭐…… 으음…… 화풀이도 조금……요?”
예상대로 나나 백무호가 정파인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공격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저렇게 말을 머뭇거리면서 하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어투도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두 놈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억!”
“윽!”
“환자들이니까 그 정도로 봐준다.”
의원 행세를 하려고 결심한 이상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다. 그렇다고 무골호인처럼 대충 넘어가면 우습게 볼 테니 가볍게나마 징치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과하지는 않게, 말썽꾸러기 아이를 혼내듯 꿀밤을 먹였다. 저들이 지금 느끼는 건 아마도 웃어른에게 꾸중 들은 느낌과 비슷할 거다.
기분이 꽤나 묘한지 머리를 움켜쥐는 두 놈이 멍한 얼굴을 했다.
[환자 다룰 줄 아는데?]그 모습이 꽤나 재미있는지 화타 선생이 즐거워하셨다. 이어 저들이 중독된 독에 관해서 설명해주셨다.
“운 좋은 줄 알아. 이런 만성 독은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쉬워서 장기적으로 보면 효과가 빠른 독보다 더 위험하니까.”
이렇게 된 이상 확실하게 의원 행세를 해야 한다. 그리고 공치사 받을 부분은 확실하게 언급하며 주목을 받을 필요도 있다.
내 의도가 적당히 통했는지 두 놈이 홀린 사람마냥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뭔가 조교 하는 느낌인데.’
[약은 이렇게 쓰면 될 거다. 어디 보자, 이런 상태로 만드는 독이면 사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가…….]“처방전 불러 줄 테니까 빨리 가서 약이나 지어 먹어. 약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냐면…….”
화타 선생이 불러 주는 약재들을 읊었다.
목숨이 걸린 문제라 그런지 두 놈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처방전을 다 불러 주고 나니 두 놈이 머뭇거리며 머리를 굽신거렸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려는 건가?
“저기…… 적어 주시면 안 될까……요.”
“…….”
이런 백무호 같은 놈들을 봤나.
“억!”
“윽!”
결국, 한 번씩 더 머리를 쥐어박고 종이와 붓을 빌려 직접 처방전을 적어 주었다.
한 대씩 더 처맞았음에도 처방전을 손에 쥔 녀석들은 거듭 고개를 숙이며 약방으로 뛰었다.
‘앞으로의 행보에 도움이 좀 되겠지.’
입소문이나 잘 퍼트려 줬으면 좋겠다.
정파에도 위선자가 있듯이, 흑도사파라고 해도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받은 은(恩)을 허무하게 내팽개치진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내 정체가 밝혀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무의미한 싸움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말일 것이다.
“혹시…… 의원이십니까?”
그렇게 두 놈을 보내고 나니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저기…… 가능하시다면 저희도 좀…….”
“사정 좀 봐주십시오, 의원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잘됐네. 실…… 아니, 교본이 한가득이야!]화타 선생이 즐겁게 반기셨다. 저 ‘실’이란 글자 뒤에 따라올 단어가 무엇이었을지 무척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으로는 가지 않겠……지?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잠시 대기하는 동안 신분을 숨길 수도 있고, 신세를 진 화타 선생에게 보답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고생해야겠지만.
‘그냥 좋은 거 배운다고 생각하자.’
눈앞에서 백무호가 짓고 있는 ‘어떤 표정’에 복장 터지지 않으려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속을 다스려야겠다.
***
어쩌다 보니 의술도 배우게 되었다.
그저 화타 선생의 지시대로 움직일 뿐이지만, 자연스럽게 얻어 배우는 것들이 많았다.
화타 선생도 사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서 그리 부르려 했지만, 어느 연유에서인지 반려당했다.
그런 관계가 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나?
‘사람 몸이 얼마나 약한지, 강한지. 어떻게 하면 무너지는지. 의술을 익혔을 뿐인데, 묘한 게 딸려오네. 내가 무인의 관점으로 화타 선생의 의술을 접해서 그런가?’
이전에 들었던 점혈법 강의를 통해 기본적인 인체 구조에 대해 배웠는데, 화타 선생의 의술을 엿보며 그 구조들이 어떤 역할과 파생을 일으키는지를 알게 되었다.
다만 침술은 배우지 못했다.
내공도 있는 녀석이 함부로 다룰 영역이 아니란다.
내가 침술을 쓰면 자연스럽게 그 침에 기가 실릴 것인데, 효과도 좋겠지만 실수했을 때의 여파도 클 것이라 하셨다.
사람 여럿 잡고 나서야 쓸 만해질 것이라나.
원래 그런 경험들 속에서 의술을 쌓아 가는 것이라고 화타 선생은 말씀하셨지만, 그저 신분을 숨기기 위한 가짜 의원인 내 입장에서는 당장의 평판이 중요했기에 수긍했다.
대신 추나법, 일종의 안마 하는 법으로 몸을 풀고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아이고! 진짜 신의시네!”
방금 적당히 만져 준 환자 어르신이 한 말이다.
개운한 표정으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신기해하셨다.
허리에 문제가 있었던 환자로, 근육과 골격의 비틀린 부분을 잡아 주니 지팡이를 짚고 왔던 환자가 두 발로 거뜬히 일어섰다.
“우와아.”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관청 담벼락에 천막 하나 쳐 놓고 하는 것이라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병신 된 거 아닌가 싶을 만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뚝딱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으려나?’
“당장 비틀린 부분을 잡기는 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에요. 잘못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금방 안 좋은 상태로 돌아갈 겁니다. 간단한 동작을 알려드릴 테니 시간 날 때마다 반복하도록 하세요.”
환자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다섯 동물의 움직임을 본 따 만들었다는 오금희(五禽戱)였다.
일각에서는 기공의 원류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였기에 꾸준히 한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게는 해당 없다. 원류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기초적인 수련법이기 때문이다.
[흠! 이 사람도 독기에 좀 노출된 것 같은데.]“그리고 처방 하나 드릴 테니 약을 지어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신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완전히 나를 신의라 믿는 모습이다.
순수한 내 능력이 아니었기에 양심이 살짝 쑤셨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기 쳐서 재산 뜯어내는 것도 아닌데 뭐.’
환자들을 치료하고 받는 대가는 말 그대로 소소했다. 주는 대로 받았다.
덕분에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치료를 받았다. 수익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만 해도 가장 큰 수익이 하반신 마비 환자 가족이 들고 온 닭이었다. 그 외에도 달걀이나 콩, 산나물 같은 먹을 것들을 주로 들고 왔다. 덕분에 여기 있는 동안 굶을 걱정은 없을 정도로 먹을 것이 쌓였다.
“그건 그렇고. 큰일이네…….”
요 며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은연중에 느꼈지만, 이쯤 되면 확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생각보다 독에 침습 당한 사람이 많아.]“예.”
처음 손을 봤던 사파 무인들이야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중독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민간에도 독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쓰는 우물에 독이라도 풀었나…….”
화타 선생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물을 통한 하독이면 범위가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었을 거다. 그보다는 국소적인 방법이겠지.]“하긴 그렇겠네요.”
확실히 우물을 통한 하독이었으면 이 근방에 환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대 당시 취죽 선생에겐 별문제가 없었다. 주변의 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고.
[내가 볼 땐 사파와 연관된 이들이 중점적으로 중독되어 있다는 느낌이구나.]“흐음…….”
민간인 중독도 많아 지역적인 중독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일대 사파 세력과 연관이 되어 있는 이들이 독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다.
“근본적으로는 퍼져 있는 독 자체는 사파 세력을 겨냥한 게 맞고, 다른 사람들은 곁다리다?”
‘이렇게 결론이 나 버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인데. 사파를 겨냥하고 독을 썼다는 것도 문제고.’
사파와 분쟁이 있다면 그 상대는 당연히 정파다. 그리고 사천에는 독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사천당가.
오대세가의 일좌이자, 독과 암기술로 천하에 명성을 떨친 굴지의 가문.
무림인들이 흔히 말하는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갚으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가문이다 보니 같은 정파 사람들마저도 경외 시 하는 곳이다.
“진짜 당가에서 손을 쓴 거면 수습 불가인데.”
사천 무림의 성향을 생각해 볼 때, 이 사실이 공론화되기 시작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천당가를 향해 칼을 겨눌 또라이(사파 무림인)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리고 가뜩이나 예민해진 정파 무림의 상황과 충돌하는 순간, 정사대전(正邪大戰)의 서막이 열리겠지.
“야, 백숙 다 됐다.”
그런 내 심정을 모르는 백무호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닭고기가 담긴 뚝배기를 들고 왔다.
오늘 치료비 대신 받은 닭을 잡아 만들었나 보다.
“넌 고민이 없어서 참 좋겠다.”
“헛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처먹어.”
그렇게 잘 익혀진 닭 반 마리가 내 앞으로 놓였다.
아니, 놓일 뻔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다. 넌 어차피 이거 못 먹겠구나?”
“응? 왜?”
줬다 뺏는 게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일이라는데!
내 항의에 백무호가 백숙을 회수하며 내 뒤편을 향해 턱짓했다.
“저기 니가 노력한 결실이 오고 있는 것 같아서?”
지 혼자 닭다리를 우적우적 씹으며 백무호가 얕게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거리를 벌리도록 만드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
환갑을 가볍게 넘어 보이는 노인임에도 이곳 고현에서 저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파 무인은 한 명뿐이다.
“귀수 백풍립.”
들끓어 오르는 사파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도해 볼 첫 수단. 그 첫 단추가 될 존재가 다가왔다.
“진짜 백숙은 물 건너갔네.”
***
한편 그 시각.
“고현에 대단한 신의가 나타났다고?”
“예. 손만 대면 반병신이던 사람도 뚝딱 나아 버리고, 듣도 보도 못한 처방을 하는데 만병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작 닭이나 계란 같은 거나 받는다네요.”
“너무 욕심이 없이 행동하는 게 오히려 눈에 밟히는데. 사람은 이유 없이 베풀지 않는 법이니까.”
손안에서 뭔가를 까락거리며 만지는 사내가 보고를 받으며 턱을 쓸었다.
“그 처방이라는 거, 퍼질 대로 퍼져 있으면 독점은 힘들겠지?”
“예, 아무래도.”
“그럼 그 안에 들어가는 약초들이라도 선점해 놔. 의원들은 보통 애용하는 약초들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니까.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약초들만 잘 챙겨 놔도 제법 쏠쏠할 거다. 효과가 그리 좋다면 다른 지역까지 털어먹을 수 있을 테고.”
“알겠습니다.”
사내의 지시를 받은 이가 급히 움직였다. 돈 냄새를 맡았는지 기분 좋은 얼굴이다.
그렇게 홀로 남은 사내가 아무도 없는 곳을 지그시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나저나 관심이 가는 놈인데, 한번 찾아가 볼까? 지금 같은 시기엔 써먹을 곳이 많을 건데.”
사내는 이내 손안에서 까락거리며 돌리던 것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툭! 소리와 함께 데구루루 구르는 두 개의 물건은 도박에서 흔히 사용되는 주사위였다.
주사위가 낸 결과의 숫자를 보며 사내가 웃었다.
“주사위도 그러라네.”
주사위를 마치 살아 있는 사람마냥, 친근한 친구인 것처럼 말하는 사내.
세간에서 악사도왕이라 불리는 인물이 이죽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