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97
96화 너네 어디 놈들이야?
사천당가에서 횡재를 한 나는 백무호, 이화와 함께 선화문으로 향했다.
걱정과 달리 당사연은 합류하지 않았다.
만독신군은 내게 신병이기와 미인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당사연은 충분한 미인이다. 당가 직계이기까지 하니 가문 차원에서 움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당사연의 반응은 담백했다.
“이번에는 따라가지 않아요.”
만독신군을 치료할 약재를 구하러 몰래 빠져나가는데 다짜고짜 따라붙었던 행동력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해질 일이다.
게다가 하는 말 또한 의미심장했다.
‘이번에는.’
조만간 다시 볼 것이라는 발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쨌거나 지금은 아니니 다행이긴 하다. 아무래도 당사연이 따라붙었으면 성가신 설명이라든가, 거짓말이라든가 자잘하게 귀찮아질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처 살피지 못한 점을 사부님께서 지적해 주셨다.
[한데, 습격자들이 선화문 사람들 얼굴 가죽을 뜯었다는 건 선화문 사람들로 위장하기 위해서란 소린데.]“예, 그렇겠죠.”
[그럼 대놓고 치긴 힘들지 않을까?]“이야기가 그렇게 되네요.”
선화문은 올곧고 선량한 곳이다. 당연히 지역에서의 평가도 높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로 위장하고 있는 곳을 대놓고 칠 수는 없다.
‘안 좋은데…….’
나야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근거를 댈 수가 없다.
천상을 통해 입수한 정보는 무척이나 순도가 높지만, 다수와 공유할 때는 확실히 문제가 된다.
게다가 설령 사실로 밝혀져도 일이 귀찮아질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성향이 있다. 설령 눈앞에 사실이 놓여 있어도 의심을 품고 뒷말을 하는 작자들은 분명히 나온다.
예를 들면 사공패라던가 하는 놈.
백무호의 조언도 조언이지만, 청성파로 떠날 때의 기색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배 속에 칼을 숨긴 것처럼 느껴졌달까.
[머리 좀 굴려 보자.]다행히 사부님들이 대책을 고민해 주신단다.
[그러니까, 이놈들은 선화문이란 곳이 가진 평판을 이용해서 뭔가 일을 벌일 생각이란 말이지.]“그렇겠죠.”
신분을 위장한 채 정사 간의 분쟁을 일으킬 목적이라면 공격적인 형태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정사 간 분위기가 험악하니 적당히 시빗거리를 만들어 조지려나?] [글쎄. 그건 좀 미묘하지 싶은데. 싸우다 뜯어지면 망할 테니까. 인피면구란 게 생각보다 들킬 위험이 큰 물건이다. 게다가 은근히 불편한 데다 관리하기도 어려워서 오래 착용하긴 쉽지 않다.] [음! 그럼 시간을 오래 끌려고 하지 않겠는데. 들통이 나는 순간 망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제대로 사고치고 분신한 척하는 쪽으로 흘러가겠지. 이미 죽어 있는 선화문 문도 시체를 불태워 분신(焚身)한 척하면 될 테니까. 불에 태우면 얼굴 가죽 뜯어낸 흔적도 사라질 테니 깔끔하게 정리될 테고.] [가능성이 크네. 이러저러한 이유로 간악한 사파를 쳤다, 죽일 놈들 죽였을 뿐이다. 그리고 적당히 사파 놈들은 상종 못 할 쳐죽일 놈들이라 말할 증거 없는 이야기들 좀 유서에 남겨 놓고 죽음으로 이를 증명하겠다며 분신으로 자살. 깔끔하겠네. 사파에 죄란 죄는 다 덮어씌우고, 분신자살한 척하면 인피면구 같은 흔적은 안 남을 테니 걸리는 것도 없고. 일 저지른 놈들은 깔끔하게 빠지고.] [분신자살이라는 점도 주목받겠지. 얼마나 자신들의 주장을 세상에 관철하고 싶었으면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자살을 했겠냐고.] [평소 쌓아 두었던 선화문의 평판이 주목받으면, 뭐 이건 그냥 끝났네.]장삼풍 사부와 천마 사부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순식간에 이야기를 하나 뚝딱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듣고 있자니 그럴싸했다.
이거 외에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렇다면.
“선화문에서 위장 중인 마교의 마인들이 어딘가를 공격하려는 순간 막아서면 되겠네요.”
그러면서 기회를 틈타 인피면구를 벗겨 버리면 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가장 정석적인 대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뭐 복잡하게 그럴 거 있나?]“예?”
[놈들이 노리는 게 정사 간의 합의를 막는 거라며?]“그렇죠?”
“……예?”
그건 무슨 소리십니까?
고현에서 ‘이건 다 마교 탓임. 아무튼, 마교 탓임.’ 하며 덮어씌우는 계책을 내기는 했지만, 이건 아예 마교로 위장해서 선제공격을 하라는 소리다.
[뭐가 문제인데? 구성도 딱 좋지 않으냐? 내 무공을 익힌 너. 본교의 신녀 그리고 내 검의 기질을 배운 네 친구 녀석.]“……이야기가 그렇게 되네요.”
듣고 보니 또 그럴싸하다.
생각해 보니 진짜 마교 마인으로 위장해서 날뛰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구성이다.
언제부터 우리 구성이 이렇게 마교스러워졌나.
‘정파 무인으로 위장한 마교 마인들 뚝배기를 깨기 위해 정파 무인들이 마교로 위장한다?’
뭐야, 이거?
혼란스럽다.
[그래서, 싫으냐?]싫냐고요?
“……아주 마음에 드네요.”
선화문 사람들 얼굴 가죽을 뜯어내 만든 인피면구를 착용한 마인 놈들이 마교 무공으로 뒈질 때 어떤 표정을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다만, 대가리를 부술 때는 인피면구는 뜯어내고 박살 내야 할 것 같다.
‘죽은 선화문 분들께도 조금은 위로가 되려나.’
그냥 죽이는 것보다는 위로가 될 것 같다.
확실히.
남은 문제는 사부님들과 쑥덕쑥덕하며 계획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한 점이다.
이화는 쉽게 넘어간다고 해도 무호가 문제다.
인피면구를 언급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 대답할 말이 궁해진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다간 진짜 선화문에 방문해서 얼굴을 맞대야 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그랬다간 제대로 꼬여 버린다.
이럴 때는 무호가 잘 모르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얼버무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행히 한 가지 방도가 있다.
“주술?”
“어.”
“뭐냐, 그거. 그러니까 그 모산파 같은 곳에서 쓴다는 그거?”
“그래, 그거.”
“그냥 눈속임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그런 게 있었다고?”
선화문이 자리를 잡고 있는 마을 외곽에 도착했을 무렵, 마을에서 선화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정보를 얻었을 즘 이야기를 풀었다.
당연하게도 백무호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다.
“나도 놀랐는데, 있긴 있더라.”
“흐음…….”
침음을 흘리며 슬쩍 이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나를 속여서 뭔가 꾸미려는 사기꾼을 보는 듯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이런 불신을 신뢰로 바꾸면 오히려 더 깊게 믿게 되지.’
사기꾼이 잘 써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친구분에게 설명을 들었던 적이 있다.
구 할의 명확한 진실에 일 할의 거짓을 섞으면 순도 십 할의 거짓이 만들어진다나?
이런 십 할.
하물며 이화의 경우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서 주술처럼 보이는 술수를 부릴 수 있다.
“이화야.”
“예.”
내가 보낸 신호에 이화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발(發).”
화악!
“우왓!”
순간 백무호의 코앞에 주먹만 한 크기의 불꽃이 한 번 격렬하게 타오른 뒤 사그라졌다.
백무호가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막대한 양강지력을 지닌 무인이라면 비슷한 술수를 부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런 내력의 흐름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주술처럼 보였다.
‘내가 봐도 신기하네.’
이화가 불의 신력을 다루는 재주는 내가 봐도 대단했다.
그저 말 한마디로 신력을 현실 세계에 끌어낼 수 있다니!
이런 게 가능하니 신녀라는 것이리라.
‘무공을 기준으로 한다면 절정 고수 이상의 경지라고 해야 하나?’
한편으론 이화의 재주가 탐이 나기도 했다.
이화를 옆에 두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불의 신력이 조금씩 쌓이고 있는 중이다. 힘이 어느 정도 모이면 활용법을 배워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좋아. 주술이란 게 진짜 있다는 건 알겠어.”
반신반의하던 백무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서?”
“혈족끼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주술이 있습니다. 가문이 무너진 이후 제 남은 혈족은 선화문에 있으실 그분뿐인데,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요.”
백무호의 물음에 이화가 설명했다.
참으로 편리한 설정이다.
더 이상 혈족이 남아 있지 않아 주술의 존재 여부를 증명할 방도가 없지만, 있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현재 선화문의 상태를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다른 곳에 외유를 나선 것이라면…….”
“그럼 적어도 계신 방향에 대한 표식이라도 있어야 합니다만, 그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문제가 있는 거네.”
적당히 재료를 던져 주자 백무호는 알아서 그 재료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는 선화문에 별다른 일이 없어 보인다고 했지?”
“그랬지.”
“별다른 일이 없는데 거기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 이 꼬맹이네 혈족을 노리는 게 마교 녀석들이라면…….”
마교가 뭔가 수작질을 부리고 있다.
그 결론에 도달한 백무호가 혀를 차며 허리춤의 검을 쓰다듬었다.
“쯧!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냥 들어갔으면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랬겠지.”
‘내가 알고 있었으니 그런 일은 없었겠지만.’
말이랑 생각이랑 따로 논다.
어쨌거나 백무호의 생각을 내가 원하는 곳까지 끌어냈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해 봤거든.”
사부님들이랑 쑥덕거리며 정리했던 계책을 꺼내 봤다.
“마교로 위장을 해서 기습을 하자?”
“뒤통수치려는 것들 뒤통수를 치자는 거지. 싫어?”
“아니? 존나 마음에 든다. 흐하하하!”
속 시원하게 웃는 걸 보면 진짜 마음에 들긴 한 모양이다.
어째 내가 사부님에게 했던 말이랑 비슷한 감이 있지만.
유유상종이라는 건가?
“그런데 내가 잘못 칼질하면 화산파 무공의 흔적이 남을 텐데.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제일 끝내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적당히 숭산에서 얻었던 검의 기질을 담아 쓰면 되지 않겠냐? 그거 상당히 패도적인 기질의 검이었잖아.”
“아, 그거면 되려나?”
‘당연히 되지. 그게 누구 검인데.’
“어, 그거면 돼.”
그걸로 내가 생각했던 계획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채워 넣을 수 있었다.
***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각, 나와 백무호는 선화문을 향해 돌격했다.
콰앙!
단번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우리를 주민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았다.
반쯤 얼굴을 가린 기괴한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작하자.’
내 신호를 시작으로 우리 입에서는 정파 사람이라면 절대 내선 안 될 말이 흘러나왔다.
“천마강림!”
“만마앙복!”
“천마신교의 영웅들의 납셨으니 정파의 위선자들은 나와 목을 내밀어라!”
“그러면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연기다. 이건 연기다.
백무호는 연기에 심취했는지 아주 실감 나게 감정을 담아 외쳤지만 나는…… 별반 다를 거 없나?
장삼풍 사부의 떨떠름함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이거 사부님도 한 몫 거든 작전입니다만?’
뭔가 자괴감이 올라오지만 그런 건 눈앞의 반응들을 보면서 치유하자.
마침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나오는 선화문 무인들이 있다.
그들은 어이가 가출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뭐야? 뭔데 이거? 저 새끼들 뭐임?’이라며 물어보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
대충 정신줄을 정리했는지 한 명이 나서서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너네 어디 놈들이야?”
“천마신교라고 했잖아. 귓구멍 막혔냐, 병신아!”
백무호가 기세 좋게 검을 펼쳤다.
어설프고 모자라지만.
“허억!”
만마 위에 군림하는 천마 사부의 기질이 그 검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