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98
97화 천마군림
선화문도로 위장하고 있던 천마신교 마인 구지황은 당황했다.
‘이 새끼들 뭐야?’
처음에는 뜬금없이 나타나 천마신교의 마인임을 자처하는 얼간이들의 행동에 실소를 머금었다.
마인 입장에서 평가를 하자면 싸구려 경극에나 어울릴 법했다.
멋모르는 일반인들에게야 먹힐지도 모르겠지만, 진짜가 보기에는 너무도 어설펐다.
진짜 천마신교는 저따위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라고?’
한 놈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놈의 검은 진짜였다.
옛 세대의 무공이 품고 있는 패도적인 기세!
어설프지만 만마 위에 군림하려는 기세는 분명 위대한 마의 본질을 담고 있었다. 틀림없이 오래된 정통 마공의 흔적이다.
그 공격을 받아내는 동료들 역시 혼란스러운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몸을 지키기 급급했다.
‘뭐지? 이게 대체!’
위에서 내려온 사천 내 정사지란(正邪之亂)을 일으키는 계책에서 두뇌 역할을 맡고 있는 구지황은 현재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모조리 뒤틀렸다. 중간까지는 별 탈 없이 진행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제가 생겼다.
오랜 세월 사천을 지배해 온 정파와 사파의 저력은 만만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탐식마군! 입만 산 늙은이!’
가장 큰 문제는 마군급 고수인 탐식마군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만 아니었어도 구지황이 이렇게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거다.
공보다 과가 큰 상황인데 피해마저 심각하다.
이대로는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선화문을 점거하는 책략도 마지막 동아줄을 잡아 보고자 하는 발악이었다. 과를 상쇄할 만한 공이 필요했기에 독단전행(獨斷專行)으로 저지른 일이다. 당연히 위에서는 모른다.
어째서 뜬금없이 선화문 같은 곳을 공격해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이 정말 천마신교 마인이라면 자신들의 정체를 모를 수도 있다.
‘정체를 드러내야 하나.’
상황을 알리면 싸움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싸울 것 없이 같은 마인이라고 알리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저 흉악한 놈들 보소!”
“협사님들 힘내세요!”
보는 눈이 엄청나게 많다.
요란하게 문을 부수고 쳐들어와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몰려 있다.
‘이런 씨발!’
정체를 드러냈다간 마을 전체를 소각시켜야 한다.
그럼 계획이고 나발이고 다 날아간다.
사파 놈들이 더러운 일에 손을 댄다고 하지만, 마을 전체를 소각시키는 학살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런 짓을 하면 관이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린 거대 사파들도 심기가 불편해진다.
민간에 대한 대량 학살은 뒷일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정파 놈들이 할 일이 아니고, 사파에서도 꺼리는 일이다.
그럼 어디로 시선이 몰릴까?
‘본교겠지, 씨발!’
구지황의 마지막 동아줄, 정사 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계획을 실현하려면 선화문은 세간에 알려진 그대로의 모습이어야 한다.
실패하면?
정사지란 계책의 실패와 탐식마군이 뒈진 것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목이 잘릴 것이다.
‘어느 쪽이든 뒈지긴 매한가지군.’
이 병신들이 선화문으로 쳐들어온 순간 계획은 박살 난 거나 다름없었다.
이 병신들이 이기면?
구지황을 비롯한 모두가 뒈지고 마교가 선화문을 밟아 버렸다고 소문이 난다.
이 병신들을 이기면?
마교가 정파를 공격했다는 소문이 난다. 그리고 자신들은 정파의 자랑스러운 신성으로 추앙받겠지. 겸사겸사 근사한 별호도 부여받을 거다. 너무 근사해서 주화입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으로다가.
‘이판사판이다!’
펼치는 무공의 기질을 보아하니 오래된 옛 무공의 맥을 잇는 것들이다. 어차피 파벌도 다른 새끼들이다.
“저 새끼들 다 죽여!”
구지황의 외침에 머뭇거리던 동료들이, 곧 같은 판단에 이르렀는지 이전에 없던 살기를 일으켰다.
그것을 보며 구지황은 썩은 미소를 띠었다.
곧 주제넘게 나선 검을 쓰는 애송이가 뭉개질 것이라 여겼다.
‘저 새낀 또 뭔데!’
하지만 다른 한 명이 나서자 생각한 것과 크게 달라졌다.
***
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해 검을 휘두르는 백무호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랐다.
백무호에게 있어 천마 사부의 검은 오랜 세월을 거쳐 남아 있던 검흔을 본 것이 전부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는 검을 저 녀석은 제 스스로 터득해 휘두르고 있다.
문제는 그 검이 정말 천마 사부가 휘두르는 검으로 보인다는 거다.
저게 아니면 달리 무엇이 천마 사부의 무공일까 싶을 정도다.
[허허허! 요놈 봐라?]머릿속에 들리는 천마 사부의 기꺼운 목소리가 그를 증명한다.
‘하라니까 또 하네.’
화산파 검에 익숙한 백무호에게 천마 사부의 검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일 거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천마 사부의 검을 휘둘렀다.
검에 대한 재능만큼은 확실히 타고 난 녀석이다.
‘자연스럽게.’
오히려 내가 더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청명심법과 중토신공을 배제한 채 천마 사부의 천마무겁수만을 운용해 펼친다고 생각하니 뭔가 걸리적거렸다. 물 만난 고기처럼 검을 휘두르는 백무호와 달리 나는 날뛰던 야성에 목줄이 걸린 느낌이다.
목줄이 채워진 야성은 날뛰는 법을 잊어버렸다.
천마무겁수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공이었다. 강한 만큼 반발도 심했다.
천마무겁수를 펼칠 때는 총력을 다해 튀어 오르는 반발을 감당하는 것에 모든 집중을 기울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어하자.
억누르자.
그런 생각만으로 천마무겁수에 접근하고 있다.
든든하게 받쳐 주던 중토신공과 청명심법마저 배제한 지금은 아무것도 없이 첫걸음을 떼는 기분이다.
어색하고 미숙하게.
[불에 데여 본 아이가 불을 다루는 꼴을 보는 것 같구나.]스스로도 엉망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천마 사부의 질책이 무겁고 무겁게 들려왔다.
적절한 비유다.
불에 데여 본 아이는 필요 이상으로 불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그럴수록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무겁은 나(我)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나를 알아라.
‘위축되어 있다. 겁먹은 얼간이처럼.’
가슴에서 뭔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이 있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야!’
두 번째 걸음을 걷는다.
첫 번째 걸음과 달리 약간의 충동을 담아서.
두려움을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나의 충동에 화답하는 물건이 있다.
천마 사부가 썼다는 권갑.
그것이 나의 충동 섞인 천마무겁수에 반응하며 울음을 토한다.
아주 오래된 벗을 반기며 나와 짐을 나누었다.
내가 멀리 갈 수 있도록, 오래 갈 수 있도록 나의 짐을 떠안는다.
한낱 기물에 불과할 뿐일진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반응하며 나를 돕는다.
나를 돕고 내 등을 떠민다.
그렇게 세 번째 걸음에서 불에 데여 봤던 아이는 불구덩이로 다가갔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즐겁게 울부짖는 권갑과 함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간다.
목줄이 풀리며 야성이 날뛴다.
배제되었던 중토신공이, 삼재일기공이, 땅의 신력과 쇠의 신력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를 돕는 가운데, 새롭게 추가된 힘이 부족한 부분을 지탱한다.
불의 신력과 천마 사부의 권갑.
‘할 수 있다.’
새에게 하늘을 나는 것은 숙명이다.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새는 언젠가 하늘을 난다.
이제 나는 내게 날개가 있음을 알았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플지언정.
‘간다!’
숙명은 피할 수 없다.
화학!
네 번째 걸음이 시야에 보이는 풍경을 바꾸었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세상이라는 구속에서 혼자 자유롭게 된 것처럼.
세상과 나 사이에 괴리감이 생긴 느낌이다.
[세상이 네 것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너의 주인은 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나의 주인은 나.’
세상은 나의 주인이 아니다.
내 안을 오롯이 천마무겁수로 채운 순간, 이 힘과 함께하는 나는 세상의 위에 있다.
그렇게 뻗어낸 일 권.
콰직!
“크아아악!”
손을 뻗어 내 공격을 막으려던 상대의 팔이 뭉개졌다.
팔뚝에 붙어 있던 근육이 터져 흩어지고, 뼈는 잔불만 남은 숯처럼 으스러졌다.
어깻바람을 휘날리며 당당함을 자랑했을 인물이 아이처럼 소리를 지른다.
마교 마인으로 나름 이름이 있는 강자인 것이 분명할진대 무릎을 꿇고 굴복한다.
[네 세계 안의 모든 것을 굴복시켜라.]천마무겁수는 나의 영역 안의 주인이 되는 무공.
경악한 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마땅히 내게 바쳐야 할 것들을 뒤늦게 내보인다.
시건방지게.
[마는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다.]당연하다.
[군림하라.]경배하라.
‘내가 주인이다.’
짓눌러 버려라.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들은 모조리 짓밟아 버린다!’
군림하는 자의 의지가 내 영역의 세상에 내려앉는다.
머리 한가운데의 구멍이 그를 이루기 위한 힘을 무한정으로 집어삼켰다.
독존(獨尊).
오로지 독존.
홀로 높으며 홀로 존귀하다.
그 의지가 분기를 담아 땅을 내려찍었다.
콰앙! 콰르르르! 쿠콰쾅!
“커헉!”
“이, 이게 무슨!”
건물이 내려앉고, 벽이 무너진다.
다리가 부러지며 감히 뻣뻣하게 서 있을 수 없다.
비명과 함께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머리를 땅에 박는다.
내 영역 안에서 나와 같은 눈높이를 공유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방금 펼친 무공은 그런 무공이었다.
[훗! 하찮고 그리운 무공이로다.]“씨발, 깜짝이야!”
그 가운데 백무호만이 기겁을 하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천마 사부의 검을 휘두르며 어떻게든 내 힘을 해소시킨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아놔…….’
정신이 좀 들었다.
“하아…….”
천마무겁수의 기운이 방금 펼친 무공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조금 전까지 내가 떠올렸던 생각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경배하라느니, 짓밟아 버린다느니.
“……자괴감 오지네.”
매우 부끄러웠다.
***
선화문이 한눈에 보이는 둔덕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화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천마군림보…….”
일찍이 지상에 천마께서 계셨을 때 단 한 걸음으로 일만의 군세를 무릎 꿇렸다는 전설의 무공.
현 천마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무공이다.
진정한 천마의 위엄을 본 이화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보았습니까, 호위장.”
“예!”
돌연 이화의 옆에 범상치 않은 사람의 형상 하나가 뚝 떨어져 무릎을 꿇었다.
놀랍고 기쁘기는 이화 못지않은지 부복한 그 역시 바르르 떨고 있었다.
“신교로 가세요. 중도파와 접촉하여 지존의 존재를 알리십시오. 그리고 따라나선다는 이들을 모아 삼양현이란 곳으로 오세요. 지존과 지존의 혈족께서 거기 계실 겁니다.”
“신교로 모시는 게 아닙니까?”
“밖에서 나신 천마십니다. 아직 신교가 익숙하지 않으신 분을 억지로 모실 순 없습니다.”
“하오나…….”
“종은 종답게.”
호위장의 말을 끊는 이화의 목소리가 서늘했다.
“……복명.”
이화의 의지를 받든 호위장이 처음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렇게 호위장이 사라진 장소에서.
“기대되네요. 삼양현이란 곳이.”
이화는 새로운 만남을 고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