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99
98화 지옥에 가 보면 알 거다
[멋을 모르는 제자로구나.] [멋은 얼어 죽을. 듣기만 해도 오글거려 죽겠고만.]자괴감 운운하며 부끄러워하는 내 모습에 천마 사부가 투덜대신다.
장삼풍 사부가 그런 천마 사부를 까며 내 편을 들어주시지만, 떨떠름해 하시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보다는 방금 펼친 무공이 신경 쓰였다.
‘엄청나게 나아진 거지?’
얼마 전 고현에 있을 때만 해도 천마무겁수를 쓰면서 죽음을 각오했다. 극히 일부의 힘을 뽑아 쓰는데도 그랬다.
물론 지금도 천마무겁수의 힘을 온전하게 끌어낸 수준은 아니다.
다만 간신히, 라고는 해도 제대로 제어해서 펼쳤다.
불의 신력과 천마 사부가 쓰셨다는 권갑의 도움이 컸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절정 고수가 와도 상대할 만하겠어.’
경악할 만한 발전 속도다.
“괴물이다!”
“악마야!”
내가 잠시 스스로의 성장을 가늠하는 사이, 멀리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선화문(?) 무인들이 피를 토하며 꼬꾸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봤으니 기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저 사람들에게는 내가 옛 신화의 마왕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상한 별호 같은 게 생기거나 하진 않겠지?”
[떠오르는 마교의 신성 소마제(小魔帝)! 같은 거 말이냐?]“…….”
장삼풍 사부?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이십니다만?
[쳇!]혀를 차는 장삼풍 사부의 반응을 보니 크게 틀리진 않은 것 같다.
“그건 무슨 무공이냐?”
놀란 것은 매한가지였는지 백무호가 빤히 쳐다보며 물어 왔다.
이건 이것대로 대답하기 곤란하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적어도 ‘천마’라는 두 글자는 떼어야 한다.
“무겁.”
“‘무겁’이라…… 확실히 ‘가볍’지는 않더라.”
“……싸우다 머리라도 맞았냐?”
이 정도로 입담이 썩은 놈은 아니었는데.
“시끄러.”
백무호의 반응은 퉁명스러웠다. 입술이 비쭉 튀어나온 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장삼풍 사부가 지금 눈앞에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죄다 불편한 사람들밖에 없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상대해 봐야 피곤하기만 하다.
나는 눈길을 돌렸다.
땅을 기는 벌레들이 보인다.
하찮은 악의 찌꺼기들이다.
해석하자면, 곧 숨넘어갈 것 같은 마교의 잡것들이다.
‘……이거 오래 가겠네.’
아직도 천마무겁수를 펼칠 때의 감성이 남아 있는 느낌이다.
아무튼, 어떻게든 바닥을 기어서라도 도망치려는 자들이 아등바등 몸부림쳤다.
“쿠억! 쿨럭! 컥!”
가쁜 숨 사이로 꾸역꾸역 피를 쏟아냈다.
내부의 장기 어딘가가 갈가리 찢어졌다는 의미이다.
[폐가 짓눌려 망가지게 되면 저러더라. 천마무겁수를 방금 네가 펼친 대로 쓰면 종종 보게 될 광경이니 알아 두거라.]그저 힘의 흐름이 시키는 대로 펼쳤을 뿐인데 이런 결과다.
상상 이상의 위력을 지닌 무공이다.
‘짓눌러…… 버린다.’
당시 무공을 펼칠 때 마음속으로 구축했던 심상이 그것이었다.
그 의지에 따라 구현된 힘이 몸 안쪽 내부의 장기들까지도 뭉개 버렸다. 의지 자체가 내가중수법이나 다름없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들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땅을 기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잠깐, 그럼 이거…….’
천마 사부의 무공을 펼치던 중이었기에 백무호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 내 힘을 흘려낸 거다. 자칫 백무호도 같은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조심하자. 진짜로 조심하자.’
성공적으로 천마무겁수를 펼쳤을 때는 무척 뿌듯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한번 경각심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운이 좋을 수만은 없으니까.’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자 안 그래도 짜증 나는 망할 놈들이 더욱 불쾌해졌다.
다행히 머리도 차갑게 식어서인지 사고는 냉철하게 돌아갔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처음 계획은 마교 마인으로 위장해 선화문을 치고, 위장하고 있는 마인들을 몰살시킨 뒤 남은 시신을 태워 없애는 쪽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마교가 저지른 짓으로 남을 테니 정사 간의 합의를 방해할 일은 없어질 것이다.
다만,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자 더 좋은 방도가 떠오를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다양한 방도들을 연결해 보고 있는데,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던 마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소, 소마는 구지황이라는…… 졸자로 마각팔기단(魔各八旗團)…… 쿨럭…… 소속의 미천한 것입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중상임에도 어떻게든 예의를 갖추려 노력했다.
“미천하고 어리석…… 쿨럭…… 멍청한 것이라…… 쿨럭 쿨럭…… 잠시 못난 자들의 뒤를…… 따랐습니다만, 위대한 분의 힘을…… 보고 소마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쿨럭!”
피를 토하면서도 오체투지하는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비록 소마가 어리석고…… 쿨럭! 멍청한 것이라 하나…… 알고 있는 것은 많으니…… 분명 위대한 분들께 쓸모가 있을…… 컥! 컥! ……것입니다. 부디 소마를 거두어…… 쿨럭!…… 주신다면 반드시 만족할 만한 공로를 세우겠습니다.”
절절하게 말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투항할 테니 살려 달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나를 다른 파벌 마인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네.’
이때다 싶었는지 장삼풍 사부가 비웃었다.
천마 사부는 천마 사부대로 저 구지황이란 놈에게 이를 가셨다.
저놈 죽어서 지옥 가면 곱게 갈려 나갈 것 같다.
“필요 없다.”
“저는 쓸모가…… 쿨럭쿨럭…… 있습니다! 저는…… 쿠억!”
격양된 채 피를 사발로 토하는 꼴이 위태위태하다.
‘살리려면 살릴 수 있고, 쉽게 회유도 가능할 것 같지만…… 안 될 일이지. 쓸모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선화문 사람들에게도 면목 없는 일이고. 그리고 혈관성애자 아주머니가 부탁한 것도 있고.’
이놈을 살려서 활용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네가 뭘 알고 있든 조만간에 다 뽑아낼 수 있거든.”
“그게…… 무슨…….”
“지옥에 가 보면 알 거다.”
거기에서 널 갈아 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계신 분이 계신다.
내 뜻이 확고하단 걸 확인한 놈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여기에서…… 쿨럭!…… 끝날 자가 아니다! 컥! 커억!!”
참았던 고통과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이 몸의 통제를 무너트리는 듯 보인다.
재능이 있고, 나름 원대한 꿈도 있었을 거다.
그 모든 게 무너지는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았는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구지황이란 녀석의 입에선 내장의 일부로 보이는 것들이 흘러내렸다.
“그런 거창한 꿈 이야기는 맨얼굴로 하지 그러냐?”
나는 부들부들 떠는 구지황에게 다가가 얼굴을 긁어냈다.
“남의 얼굴일 때 하지 말고.”
인피면구가 떨어진, 본래 얼굴로 돌아온 구지황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렸다.
구지황의 몸에서 천천히 생기가 사라져 가는 사이, 나머지 마인들도 꿈틀거리던 발버둥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렇게 시체 다섯 구가 생겼다.
“흐음…….”
그렇게 인피면구와 시체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 나는 백무호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지옥까지 쫓아가서 조져 주겠다는 네 각오? 비장하긴 한데, 한 백 년쯤 뒤로 미루자. 일단 난 그쯤 뒈질 예정이라서. 저놈도 너한테 원한이 가득할 테니 그 정도는 기다려 줄 거야.”
입담이 제대로 돌아온 것 같다.
다행이다. 저 안 좋은 머리가 나 때문에 더 안 좋아졌으면 죄책감이 심했을 건데.
어쨌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다 까발려 버리고 끝낼까?”
“까발려?”
“이거 말이야. 인피면구.”
“오? 흐음……. 아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무호가 이내 이해를 했는지 손뼉을 쳤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그렇지?”
정파와 사파 모두 이 분쟁에 마교의 수작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선화문의 일이 알려지면, 정파고 사파고 간자를 경계하며 내부 단속을 강화할 것이다. 특히나 정파는 이미 화산파라는 선례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외부와의 싸움이 부담스러워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사 간의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높인다.
게다가 다른 효과도 있다.
마교의 일을 마교의 마인들이 막았다!
방금 구지황이란 놈과 대화를 하며 알아차린 부분이다. 이러한 소문이 돌게 되면 마교에서는 마교대로 파벌 간 불화가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마교 놈들도 황당하긴 하겠다. 자기네 일을 망친 게 마교 마인이라는 소문을 들으면 말이야. 기왕 지들끼리 의심할 거, 내전 같은 건 안 일어나려나? 그러면 더 재밌을 텐데.”
‘이미 내분 중이란다.’
다시 곱씹어 봐도 그림이 좋다.
파벌 간 불화가 첨예해지는 것을 넘어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내전으로 발전될 가능성도 있다.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마교의 공격에 선화문이 무너졌다고 알려지는 것보다 낫다.
“그럼 잘 꾸며 보자고.”
마을 사람들 반응을 보니 시신들을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거다.
이 작자들이 선화문 문도들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쓴 흉악한 마인들로 보이게 만들면 된다.
“두어 놈 정도는 반쯤 얼굴 가죽을 찢어 놓는 거야.”
“벗겨진 저놈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살짝 찢어져 있는 걸로 하자.”
시신을 수습하다 얼굴 가죽이 찢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걸 확인하도록 자연스럽게.
그럼 마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들을 조사해 볼 거다.
결과적으로 알게 된 것과 자신들이 직접 조사한 상황에서 결과가 드러나는 건 받아들이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은 체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소문을 전달할 거다.
“마교에서 손 쓴 것 같은 흔적들도 남겨야지.”
시신들 주변에 패도적인 느낌의 흔적들을 몇 개 찍어 주면 될 거다.
기왕이면 저 폭삭 무너진 건물들에도 남겨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무너진 건물로 다가가는데 뭔가 눈에 밟혔다.
“신상(神像)?”
잔해 사이로 청동으로 만든 여신의 모습을 담은 신상이 있었다.
토속신앙처럼 집안에 모셔 둔 신상으로 보이는데, 근처에 있는 위패에서 열 글자의 글귀를 발견할 수 있었다.
神位 九靈太妙龜山金母
신위 구령태묘귀산금모
“잠깐, 이거…….”
천상의 사부님들과 소통하게 되면서 나름 선계의 신들에 관해 공부한 바가 있다. 이 별호는 무척이나 유명한 분을 칭하는 것이다.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의 이빨을 가졌으며, 거대한 청조(靑鳥)와 구미호들을 부리는 뭇 여신들의 우두머리.
선계 제일의 영약이자 장생의 권능을 담은 반도(蟠桃)를 관리하는 주인이기에 아침저녁으로 모든 신선들이 문안 인사를 올린다는 선계의 성스러운 어머니.
그 권세와 영향력이 옥황상제에 버금간다는 대신격(大神格).
“……그분이 서왕모(西王母)시라고?”
어…… 음…… 말실수한 거 없지?
무척이나 무례한 호칭을 떠올리긴 했지만,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없을 거다. 없는 거다.
다행히 무척 즐거워하며 나가셨던 기억을 상기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 근데, 이 일을 해결하면 좋은 거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나?’
대체 뭘 주시려나?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