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83
제183화 –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원포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양 관주가 새로 영입한 이들과 상견례를 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있는데 문상이 보낸 서신이 왔다. 나는 근래 빈번하게 발생하는 정의단과의 마찰 건에 관해 의논하고 싶으니 십자무련으로 와 달라는 그녀의 청을 묵살하고 천마고원으로 향했다.
내가 일 년 근신을 명했던 도마류의 마인들은 오체투지의 예로써 나를 맞이했다. 반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몰살시키지 않았던 관용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천마고원에 묶여있으나 그들은 고립된 것은 아니었다. 다른 마류의 마인들이 수시로 마도의 성지를 드나들었기 때문이었다.
원포에서 만난 기마와 장마의 보고에 따르면 도마는 내 무림 평정과 근래 자유로워진 마인들의 강호 출입을 전해 듣고는 크게 고무되었단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그 복운을 누릴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고 했단다.
도마는 지난 일백일 간 내가 명한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며 다시는 허튼 생각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면서 절대복종과 절대충성을 맹세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도마는 현재 나나 개세팔천, 그리고 재수 없는 늙은이를 제외하면 천하 최강자라 할만했다.
건곤장이 측정기였다. 한 달 보름 전 족쇄가 풀려 마원으로 떠났던 건곤장은 요마를 뺀 육마류의 수장들과 돌아가며 손을 섞었다. 그의 공개 비무행은 마원은 물론이고 중원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건곤장의 입장에서 일승사무일패였다. 그는 아직 덜 여문 현마에겐 수월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기마, 장마, 검마, 독마와는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에게 유일한 패점을 안긴 이는 도마였다.
신창문, 도산, 그리고 검림에는 건곤장에 필적하는 고수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그를 능가하지는 못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따라서 도마는 자연스럽게 그들 가운데 일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각설하고 내가 천마고원에 간 건 도마류 마인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과의 면담은 들른 김에 치른 행사일 뿐이었다.
내 목적은 비처(秘處)의 방문에 있었다. 혹은 꿈에 그리던 이와의 만남이거나.
나는 참회동을 찾을 작정이었다.
***
나는 적벽에 올라섰다. 높이가 이삼 장에 불과한 둔덕이었으나 광활한 벌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지를 내려다보며 선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잠시 후 멀리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수백 장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서기(瑞氣)를 응시하다 심호흡을 하고는 그리로 날아갔다. 이제 어머니를 만나야 할 시간이었다.
참회동의 위치를 자각한 건 벌써 스무날 전이었다.
내 선력이 노인네를 넘은 순간 선령의 금제를 해제한 나는 내가 이미 두 번이나 참회동 근처에 갔었음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어머니가 갇힌 곳은 적벽 건너 연이어 펼쳐진 야트막한 구릉(丘陵)지대 어딘가에 있었다.
푸석푸석한 땅에 착지한 나는 사방을 살폈다. 입구는 없었다. 하지만 발밑에 은은하면서도 장엄한 도기(道氣)가 고여 있었다. 여기가 확실했다.
참회동으로 들어갈 방법을 궁리하던 나는 원시적인 수단을 쓰기로 했다. 손으로 흙을 파내며 내려가기로 한 것이었다. 지공을 쏘면 어렵지 않게 내 한 몸 빠져나갈 만한 구멍을 뚫을 수 있을 터이지만 선사들의 영이 깃든 신성한 장소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두더지 흉내를 낸 지 일각 후 나는 동굴에 떨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지만 근래 천안통을 취득한 덕분에 주위의 지형지물을 분간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통로는 양방향이었다. 나는 한쪽을 택해 걸음을 옮겼다. 그 방면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갔을까.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형체가 꿈틀거렸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으리만치 심하게 펄떡거렸다. 나는 선정에 들었다. 그럼에도 두근거림은 진정되지 않았다.
나는 한 발 한 발 그림자에게 다가섰다.
예기치 못한 변고가 생긴 것은 어머니임에 분명한 인영의 지척에 이르렀을 때였다. 일순지간 그녀에게서 기묘한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내 안의 마력이 요동쳤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렸다. 천마의 마정이 어머니가 발하는 사이(邪異)한 요기(妖氣)에 반응한 것이었다.
나는 제멋대로 날뛰는 마기를 제어하려 애썼다. 하지만 마기는 통제 불능으로 치달았다.
어머니의 신음성은 어느새 괴성으로 바뀌어있었다. 일순 그녀가 나에게 사냥감을 덮치는 표범처럼 달려들었다. 차마 내칠 수 없었기에 나는 그녀의 습격을 허용했다. 나를 껴안고 나뒹군 그녀가 두 다리로 내 허리를 감싸고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나는 소스라쳤다. 어머니의 혀가 내 콧구멍으로 들어와서만이 아니라 미증유의 힘이 나를 압박해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들어온 요기가 내 안의 마기와 결합했다.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전날 서역에서 구 단계의 최종지점에 도달한 후 나는 천마의 마정을 완전히 봉인 해제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마력은 선력에 미치지 못했다. 아직 천지조화지경에 들기 전임에도. 이는 천마가 신선보다 아래에 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마정은 완전체가 아니었다. 중요한 구성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전날 마정을 전할 때 요력(妖力)을 뺀 것이었다. 내가 사내아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잃었던 부분을 되찾은 마정은 내 선력을 미세하나마 상회하는 마력을 과시하며 나를 장악하려 들었다.
내부보다 외부의 상황이 더 문제였다.
나를 휘감은 것은 수천 년간 누적된 선사들의 선기와 도기일 터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요력과의 결합을 성공한 마정을 제압하려 들었다. 나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왜냐하면 마정이 내게서 나가는 순간 내 선기도 날아갈 터이기 때문이었다.
기실 나에겐 기회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마정이 요기를 흡수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였다. 그때 마정을 내보냈다면 무사했을 가능성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욕심이 결단을 가로막았다. 마정이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절대무적이 아니었다. 선력만으로는 무후나 창제 등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설사 신선이 되더라도 그들의 무력을 초과하는 권능을 획득할 성싶지 않았다. 기껏해야 평수가 최선일 터였다.
그래서 위험을 직감했음에도 망설였다. 그러다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마기가 악착같이 내 선기에 들러붙으며 혼연일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기도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은 것이었다.
실로 난감한 사태였다.
***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대로 마력이 뽑혀 나가면 내 선력도 딸려 나갈 터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범인으로 전락하느니 차라리 전생을 도모하는 게 나았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진 버텨야 했다.
하지만 나는 허망한 몸부림임을 알고 있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참회동을 떠돌다가 나를 둘러싸며 한 덩어리로 응축되기 시작한 선령의 힘에 비하면 내 선력과 마력의 합력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선령이 제압과 구금이 아니라 파괴를 목표로 했다면 내 육신은 진즉 깨지고 터졌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를 거부했다. 일말의 희망이 있어서였다.
어머니가 이십여 년간 요력을 간직한 채 육신을 보존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극렬히 저항하면 선령은 내게서 마력을 빼내는 대신 나를 참회동에 가두는 것으로 눈감아주지 않을까. 그리되면 수단을 강구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계였다. 더 버티다간 마력과 선력은 물론이고 생기까지 박탈당하게 될 것임이 확실시되자 전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이십이 년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현재의 나에게 작별을 고하며 나는 어머니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요기가 사라진 그녀의 얼굴은 마치 나이 든 안진 같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음성을 듣고 싶었지만 무망한 바람이었다.
내 혼을 육신에서 분리시키려는 찰나 뜻밖의 호통이 동굴을 울렸다.
“이 정신 나간 놈!”
경황 중에도 의아했다. 보름 전 도원으로 돌아갔던 재수 없는 늙은이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정신 차려라, 이놈. 그리고 어서 천마의 마령을 내게 건네라.”
내 등판에 늙은이의 장심이 닿았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도기가 내게로 밀려들었다.
“뭐 하는 게냐? 천추의 한을 남길 셈이냐?”
나는 늙은이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전율했다. 모든 게 내 망상이었단 말인가.
“서둘러라. 나도 더는 견디기 어렵다.”
늙은이, 아니 태청진인은 내 뒤에 있었지만 나는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 눈에 담긴 진정성에 가슴이 저몄다.
“다 같이 죽을 셈이냐?”
나는 태청진인의 음성에 서린 다급함과 간절함에 굴복했다. 고삐를 풀어주자 내가 보호막이 되지 못할 거라 판단한 마기가 태청진인에게 달라붙었다. 태청진인은 그의 도기에 융합되는 마기를 거두어서는 내 등에서 손을 뗐다. 그 직후 그의 입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
나는 망연자실했다.
원수로 여겼던 이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내 목숨을 구해주다니.
태청진인이 흘린 숨소리가 나를 깨웠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태청진인과 어머니를 들쳐멨다. 둘 다 명줄은 붙어있었으나 기식이 엄엄했다. 참회동은 범인이 된 그들에게 수중이나 다름없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통로로 달려간 나는 아까 파놓았던 구멍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러고는 지상으로 나와 두 사람을 조심스레 바닥에 눕힌 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태청진인이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왜 그러셨습니까?”
태청진인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제야 나를 존장 대접하는 게냐?”
“…….”
“일으켜 다오.”
나는 태청진인의 상반신을 세워주었다. 하지만 그는 가부좌를 틀려고 용을 쓰다 중심을 잃고 모로 기울어졌다. 나는 그가 땅에 부딪히기 전에 붙잡았다.
“그냥 누워계시지요.”
“아니다. 자세를 잡아주려무나.”
나는 더 만류하지 않고 태청진인의 청을 들어주었다. 내 도움을 빌어 좌정했지만 그는 다시 허물어졌다. 나는 그제야 고집을 꺾은 그를 반듯이 눕혔다.
“왜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나를 원망하는 게냐?”
“그게 아니라…….”
“내가 말했던들 나를 믿었겠느냐? 내게 천마의 마령을 넘겨줄 리도 만무할뿐더러 또 무슨 속셈이 있으리라 의심했을 터, 나로서는 네가 직접 겪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참회동을 찾을 시엔 반드시 나와 동행하자고 한 당부만은 따라야 했다. 자칫 일이 잘못되었으면 상선을 뵐 면목이 없을 뻔했잖으냐. 그리 울상 지을 것 없다. 결과적으로는 다 잘 풀렸으니. 너는 선력을 보존하고 나는 평생의 과업을 완수하지 않았더냐.”
가슴이 저몄다. 하지만 심사와 무관하게 내 입에서 호기심의 폭죽이 터졌다.
“제가 여기 든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곳에 당도하실 수 있었습니까? 도원으로 돌아간다고 하시고는 이 근처에 와 계셨습니까? 하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입동하기 전에 주위를 세세히 살폈지만 어르신의 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니까요. 대체 무슨 수로…….”
태청진인이 내 질문 공세를 중단시켰다.
“알고 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비결이 있구나. 말로는 백 번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터, 직접 체험해 보거라.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도원에 가야 한다. 바쁜 일이 없다면 나를, 그리고 이 아이를 그리로 데려다주겠느냐? 진아에게도 어미를 보여줘야지. 참, 그 전에 옷부터 입히는 게 좋겠구나.”
나는 비로소 어머니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고는 무복 상의를 벗어 알몸인 그녀를 감싸주었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태청진인과 어머니를 양 옆구리에 낀 나는 천공으로 비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