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73
제73화 – 고루시마!
봉두난발은 내 명에 복종했다.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쏘아낸 네 줄기 지공이 그의 사지에 골고루 꽂혔기 때문이었다. 하잘것없는 자였다. 장공을 발할 수 있다는 건 무조건 절정 중(中) 이상의 고수라는 뜻이었지만 내겐 일초지적에 불과했다.
일수에 봉두난발을 운신 불능으로 만들어놓은 나는 그에게 날아가 발로 그의 복부를 밟아 단전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멍하니 내 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자를 당신들에게 양보하겠소.”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봉두난발을 찍을 수 있는 뾰족한 돌들을 움켜쥐고 그에게 달려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별안간 새된 비명을 내지르더니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이자는 여러분을 해칠 수 없소. 숨만 붙어있을 뿐, 팔다리도 움직일 수 없소. 그러니…….”
나는 말을 멈췄다. 아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들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길 잃은 염소 떼처럼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불길했다. 매우 불길했다.
만약 계속 이런 식이면 마원행을 지속할 까닭이 없었다. 살육을 저지른 마인을 제압해서 던져준들 사람들이 원을 풀려고 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불꽃을 피워 올리지 못할 터인데.
불길한 예감을 달래며 나는 봉두난발을 내버려 두고 산을 내려갔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적어도 세 번은 더 확인해 보아야 했다.
양 관주가 전한 정보에 따르면 마원의 노예들은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고 했다. 마원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최소한의 행정과 상행위, 그리고 식량 생산은 이루어졌다. 그런 일들을 담당하는 노예들은 말이 통할 터였다. 그래서 대처를 찾은 게 아니었던가.
방금 조우한 이들은 말조차 배우지 못했다는 최하등급의 난민들일 공산이 컸다. 도시의 노예들은 다를 것이었다. 그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오천 리를 달려온 보람이 없지 않겠는가.
***
도시 어귀에서 또 다른 마을을 만났다.
마을이라고는 하나 변변한 가옥은 서너 채에 불과했다. 그저 삐쩍 곯은 수백 명의 남녀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산에서 보았던 이들의 행태를 재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무작정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백주대낮부터 한데 뒤엉켜 열락의 신음성을 쏟아내는 이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서로 치고받고 있던 무리는 싸움질을 멈추고 이방인을 주시했다. 그들의 동공에 떠오른 감정은 경계심이나 적의가 아니라 공포였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아까 봉두난발의 괴인을 본 산중의 난민들처럼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들이 조용해지자 난음(亂淫)에 젖어있던 이들도 원초적인 행위를 중단하고 내게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고는 그들처럼 얼어붙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던 차에 입김만 세게 불어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모옥에서 험악한 인상의 삼십 대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으나 머리에 문사건으로 보이는 두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 든 것은 붓이 아니라 철퇴였다.
나를 본 두건 사내가 부리부리한 눈을 찡그리더니 대뜸 고함을 질렀다.
“처음 보는 종자로구나. 어디서 굴러온 뼈다귀냐?”
내 정체를 묻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동료들을 불러내기 위한 소리였다. 사내가 나온 모옥보다 훨씬 상태가 나은 집들에서 세 명의 마인들이 달려 나왔다. 다들 칼을 쥐고 있었다. 그들 중 수염이 하관을 덮은 사십 대 흉한이 말했다.
“이게 웬 떡이냐? 저런 반반한 물건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 죽이지 마라. 산 채로 맛을 보게.”
털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칼잡이와 두건 사내가 내게로 달려왔다. 나는 지풍을 발하지 않고 그들을 일일이 상대하며 차례차례 혈도를 짚었다. 그들의 무력은 형편없었다. 산에서 처리한 봉두난발만도 못했다.
두목임에 분명한 털보는 내가 수하들을 손쉽게 제압했음에도 도주하지 않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무모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의 몸놀림만으로도 그가 기껏해야 봉두난발과 비슷한 수준임을 알아보았다. 기세는 흉포했으나 일초지적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약체였다.
검지 하나로 털보의 마혈과 아혈을 연달아 찍은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들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자들은 틀림없이 그간 당신들에게 패악을 부렸을 거요.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할 테니 다들 와서 이자들에게 죽어간 친인들의 원수를 갚으시구려.”
산중의 사람들과 달리 이곳의 민초들은 달아나지는 않았다. 대신 바닥에 엎드렸다. 나를 새로운 지배자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그건 상관없었다. 문제는 아무도 청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재삼재사 마인들에 대한 처벌을 권유하고 종용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고 내 상단전엔 공허한 바람만이 휘돌았다.
불안했다.
이러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되는 건 아닐까. 그냥 헛걸음이었을까.
한참을 기다렸지만 변화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마을을 떠났다.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 내부로 진입하며 결심했다.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러고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면 미련 없이 물러가자.
심상을 잠식하는 절망감을 떨쳐내기 위해 기합성을 내지른 나는 멀리 보이는 시가지를 향해 경신을 전개했다.
***
반각쯤 나아가자 제법 그럴듯한 건축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후 나는 처음으로 긴장감을 느꼈다. 무언가 내게 달라붙었는데 거미줄 같았던 게 차츰 진득한 꿀처럼 변했다.
난생처음 접하지만 마기(魔氣)임에 분명했다. 이는 근처에 강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경공 속도를 늦춘 나는 기감을 끌어올려 마기의 발신지를 찾았다. 하나가 아니었다. 처처에 사이한 기운들이 잡혔다. 그러는 가운데 참혹한 광경이 나를 맞았다.
시체들의 산과 피의 바다!
코가 막히지 않았다면 진즉 공기 중에 떠도는 혈향을 맡았을 터였다.
대로 양편에 가로수처럼 늘어선 시신들의 더미는 못 해도 수천 구는 되어 보였다. 목불인견의 참상에 눈살을 찌푸릴 겨를도 없이 나는 암습을 받았다. 내가 막 지나친 길모퉁이에서 우박 같은 게 쏟아졌다.
투두두둑.
내가 반사적으로 펼친 기방에 맞고 떨어진 건 표창들이었다. 암기를 날린 것으로 보이는 대머리 사내가 장창(長槍)을 꼬나 쥐고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그를 처리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큼직한 반월도가 내 정수리를 겨냥해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반월도의 주인은 칠 척에 가까운 장신의 거한이었다.
기방을 두른 팔로 칼을 막아낸 나는 이 대처를 후회했다. 강기가 보이지 않아 방심했지만 거한의 칼은 무지막지한 거력을 담고 있었다. 일순지간 팔뚝만이 아니라 전신의 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은 나는 황급히 거한의 명치에 발뒤꿈치를 찍어 넣었다. 거한이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그에게 일격을 가하기 직전 나는 상체를 비틀었다. 그 순간 대머리의 창이 내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심장이 뚫렸을 터였다. 나는 왼손의 손가락들을 구부려 대머리에게 세 줄기의 지공을 선사했다. 지척이었기에 대머리는 내 반격을 피해내지 못했다. 사타구니와 옆구리, 그리고 허벅지에 지풍을 얻어맞은 대머리가 땅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만만치 않은 적수 둘을 처치했지만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담장과 전각 그리고 골목들에서 튀어나온 수십 개의 그림자들이 그물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지체 없이 선령을 동원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나에게 쏟아지는 이십여 줄기의 강선들이 잡혔다. 그중 서너 개는 기방에 균열을 일으킬 강도를 지녔음을 직감한 나는 선령이 일러준 경로로 몸을 날렸다. 그러면서 십지 전체에서 지공을 발출했다.
난사가 아니었다. 난전 중에 살인이라도 하면 모두 헛수고였다. 하여 나는 적들을 무력화시키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부위만 노렸다. 어깨와 무릎이 주된 겨냥점이었다.
선령의 효능에 힘입어 나는 단번에 일곱 명의 적을 전투 불능에 빠뜨렸다. 하지만 과히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니었다. 중요한 목표물이었던 셋은 전부 내 지풍들을 쳐내거나 빗겨냈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형세를 낙관했다. 내 기방은 철옹성처럼 단단했고 나에겐 지공을 연사할 능력이 있었다.
반면 적들은 수는 많으나 딱히 위협이 될 만한 자는 셋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 초절정의 무위로 보였지만 광마도나 창천검 수준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석진과 비등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신속하게 떨거지들을 정리하고 난 후 하나씩 손봐 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일방적인 수읽기였음을 깨닫는 데는 촌각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독공만 신경 썼다. 행여나 전날 귀면수라를 잡을 때처럼 무색무취의 비독에라도 당하는 날엔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열 줄기의 지공으로써 다시 아홉 명의 마인을 쓰러뜨리고 본격적으로 성가신 삼인조를 처리하려는 찰나 본능이 경고성을 울렸다. 간발의 차이로 선령도 흉험한 기운이 엄습했음을 알려주었다.
앞뒤를 재고 있을 경황이 없었기에 나는 선령이 제시한 유일한 활로로 몸을 낮췄다. 바닥에 웅크리자마자 가공할 기운이 내 등짝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골이 오싹했다. 직격을 허용했다면 기방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척추가 으스러졌을 터였다.
나는 비로소 적들 가운데 진신실력을 숨기고 나를 일수에 끝장낼 기회를 노리고 있던 자가 있음을 알았다. 그자의 기형적으로 긴 손가락들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고루시마(骷髏屍魔)!”
***
고루시마 명진(明進).
상식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치를 떠는 악귀였다. 그는 그저 재미 삼아 화염장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살을 태운 후 해골로 만들었던 희대의 살인마였다. 그에게 희생당한 이들은 알려진 숫자만 일만이 넘었다.
고루시마는 천하십대악인의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마두이기도 했다. 그의 무위는 초절정 극상으로 알려져 있었다. 구룡장에서 나한테 깨진 낙일쾌검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무력이었다. 내가 전력을 다할 시 박빙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대라는 뜻이었다.
갈고리 같은 손을 가진 노물의 정체를 인지한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고루시마는 상운이 총력을 기울이고도 행적을 찾지 못한 자였다. 양 관주는 그가 십중팔구 마원에 들어있으리라고 했다. 사실 그것은 내 마원행의 주된 동기 중의 하나였다.
고루시마는 그야말로 월척 중의 월척이었다. 그를 잡을 수 있다면 단박에 고민이 해소될 터였다. 일천 건의 원사 해결에 준하는 후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
횡재수가 생겼다고 희희낙락할 상황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횡액을 당할 공산이 백배는 컸다.
단순히 내가 그젯밤에 도제와 재수 없는 늙은이에게 잇달아 당한 내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데다 고루시마가 포함된 탓에 적들이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겐 그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심각한 악재가 있었다.
이 삼중고를 견디고 고루시마를 포획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다. 난국을 타개할 방도도 사실상 전무했다. 설령 천운이 따라주더라도 생존이 최대치의 성과일 터였다. 그러려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데 전념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천장단애 끝에서 물러서는 대신 한 걸음 내딛고자 작심했다. 그러면 둘 중 하나의 결과를 얻을 것이었다.
추락하거나, 아니면 비상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