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74
제74화 – 이건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니라.
악전고투의 개시에 앞서 내가 새로이 안게 된 고충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리고 싶다.
그래야 엄살이 아님을 이해할 터이니.
고루시마의 열양장은 내 동체를 강타하지는 않았으나 등줄기를 훑고 지나감으로써 내부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필히 십이 성의 공력을 담았을 경력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거기에 내재된 마기의 여파가 더 컸다. 내 척수에 봉인된 마정(魔精)에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마인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강한 고루시마의 총력이 실린 마기에 침습 당하자 내 속에서 이십 년 동안 죽은 쥐처럼 얌전히 웅크리고 있던 마정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봉인이 풀리지는 않았으나 나는 마정에 미세한 금이 갔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기가 연기처럼 새어 나오고 있음도.
한순간만 삐끗해도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질 아찔한 국면에서 이 기변은 느닷없는 강풍이 닥친 것과 진배없는 악재였다. 그러니 어찌 암담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말이 나온 김에 마정에 관해 간략히 밝혀두고자 한다.
마정은 한마디로 천마 재림을 꿈꾸던 내 부모가 구축했던 마기의 총화였다.
재수 없는 늙은이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부친은 불귀의 객이 되기 전에 본인이 지녔던 마기를 쌍둥이 누이이자 짝이었던 모친에게 이전했다. 노인네의 은덕으로 목숨을 부지한 모친은 다시 그것을 자신의 마기와 결합한 후 그녀의 배 속에 있던 나에게 옮겼다.
재수 없는 늙은이는 모친과 함께 나를 참회동에 가두고자 했으나 노인네는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거기서 꺼냈다. 내게 마정이 깃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만약 알았다면 재수 없는 늙은이처럼 나를 멸살하려 들지는 않았을 테지만 노인네도 내게 온정을 베푸는 걸 망설였을 터였다. 나는 그 경우 그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여하간 나는 노인네 덕분에 참회동을 벗어났고 그의 손에 의해 자랐다. 노인네가 내 척수에 배인 마정을 인지한 건 내가 세 살 때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망연자실해하던 노인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사실 그것은 내 심혼에 각인되어 있던 모친의 목소리를 빼면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마정의 존재를 알게 되었음에도 노인네는 나를 다시 참회동에 처넣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내 태생의 비밀을 솔직히 털어놓은 후 온 정성을 다해 나를 선인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나는 노인네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안다. 그가 나에게 쏟은 애정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의 헌신은 내게 빛이자 빚이었다.
그러나 노인네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가 자신이 바라는 길을 선택하리라 확신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내 치명적인 금제를 가하지 않고 떠난 건 나를 전적으로 믿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노인네는 설사 내가 마정을 깨뜨려 악마로 화한다고 해도 먼 옛날 천마가 그랬던 것처럼 천하를 피로 물들이지는 못할 거라 보았을 터였다. 당금 세상에 천마 못지않게 강한 괴물들이 열 명 가까이 버티고 있어서였다. 다름 아닌 개세팔천과 재수 없는 늙은이였다.
그들의 일부를 겪어본 나는 노인네의 판단이 옳았음을 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정이 품은 마력의 크기를 정확히 가늠할 순 없지만 내 본능은 그 전부를 체화한다고 해도 무후나 도제를 능가하지 못할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욕이 절로 나오는 깨달음이었다.
***
이제 다시 전투상황으로 돌아가자.
마정의 이상을 감지하기도 전에 나는 선정을 시도했다.
내게 공격을 날린 자가 고루시마임을 안 순간 형세가 불리함을 직감하고 취한 특단의 조치였다. 내상을 입은 상태로 나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강자와 초절정의 무위를 지닌 마인들 여럿을 한꺼번에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에겐 강력한 원군이 필요했다.
찰나를 수십 조각으로 나눈 극히 짧은 시간, 나는 기적적으로 선정에 들었다. 돌이켜보건대 실패했더라면 그날 나는 한 줌의 혈수로 화했을 터였다.
각설하고 선정에 들며 고요한 관조가 가능해지자 나를 둘러싼 정황이 꿈속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땅바닥에 엎어져 있던 내게로 여덟 줄기의 강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중 앞선 세 개는 내 기방을 깨뜨릴 위력을 싣고 있었지만 정작 위험한 건 맨 끝에 있는 화염이었다. 첫 암습에 나를 태워버리지 못한 고루시마가 연이어 발출한 장공이었다.
선정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에도 통찰을 부여했다.
나는 마정에서 새어 나온 마기가 내 혈맥을 휘돌기 직전임을 알았다. 그것은 이제 곧 선기와 섞이고 충돌하며 나를 곤경에 빠뜨릴 터였다. 다행히 양이 많지 않아 집중만 하면 제어할 수 있을 듯싶었지만 지금의 내겐 그럴 여력이 없었다.
하여 나는 내 안의 마기를 방치하고 바깥의 위기를 타파하는 데 주력했다.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결정을 내린 순간 정지된 시간이 풀렸다.
나는 기방에 투여한 선력을 거둬 일지(一指)에 몰아넣었다. 그러고는 고루시마의 단전을 겨냥해 빛줄기를 쏘아냈다.
나에게 쏟아지는 우박들은 선령과 선정이 일러준 좁디좁은 활로로 몸을 욱여넣음으로써 대처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필사적으로 발한 지공은 고루시마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의 화염장을 뚫고 들어가기는 했으나 단전에 꽂히지 못하고 한 치 아래 하복부를 관통했을 뿐이었다. 중상을 입긴 했으나 단전이 무사하기에 고루시마는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을 터였다.
반면 나는 운신 불능에 처할 만큼 중대한 부상을 당했다. 선령의 공능 덕분에 즉사는 면했지만 오른팔은 간신히 어깨에 붙어있었고 옆구리도 뭉텅 뜯겨나갔다. 그 밖에도 네 군데나 가볍지 않은 외상을 입었다.
이래서야 도저히 생존을 바랄 수 없었다. 전생의 도모나 마정의 봉인 해제가 불가피해진 순간 나는 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았다.
***
마정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곧장 심장으로 치달았다.
심장은 내 선력의 원천이자 시발점이었다. 나는 마기가 심장에 도달하자마자 그것을 열 손가락에 몰아넣었다. 마기는 신이 나서 내가 열어준 길을 내달았다. 그러고는 내 지공에 실려 나를 포위한 마인들에게 날아갔다.
헉! 헉! 헉! 헉!
마인들로부터 경악성들이 터져 나왔다. 기괴한 자세로 땅을 구른 내가 신형을 추스를 새도 없이 반격해서 놀란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내 지공에 담긴 마기에 당황한 것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절멸까지 각오하고서 던진 승부수는 대성공이었다.
위력이 급증한 게 아니었음에도 마인들은 내 지공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나를 성가시게 했던 삼인조는 물론이고 세 번째 장공을 발출했던 고루시마까지 멍하니 있다가 지공을 얻어맞았다. 좀 전에 그에게 날린 지공의 십 분의 일에 불과한 선력을 담은 일수가 정확히 그의 단전 부위에 꽂히자 나는 쾌재를 부르기보다는 어리둥절했다. 이렇게나 수월하게 대어를 낚다니.
불살의 금제 때문에 적들을 몰살하지는 못했지만 일거에 전세를 뒤집은 나는 지체 없이 후속 조치를 취했다. 쓰러지는 마인들에게 가일수를 하지 않고 바로 고루시마에게 달려들어 그를 낚아채서는 도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걸로 충분했다. 기대 이상의 전리품을 획득했으니 더 욕심을 부릴 까닭이 없었다.
불과 한 호흡만의 결전으로 전신이 엉망이 되었으나 천만다행히도 다리에는 큰 부상이 없어 경신을 전개할 수 있었다. 전속력을 발하진 못해도 적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는 지장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세 명의 마인이 나를 쫓아왔다. 예의 삼인조였다. 셋 다 백발의 노인들이었고 다들 칼을 쓰는 자들이었다.
지금의 상태로 그들과 접전을 펼치는 건 자살행위였다. 하여 나는 다시금 마기를 동원했다.
왼팔로는 고루시마를 끼고 있어야 했기에 상완이 거의 절단지경에 이른 오른손의 손가락들에 선력과 마기를 실어 지공을 쏘아냈다. 민망할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효과가 있었다. 맹렬하게 추격해오던 삼인조가 주춤했다.
나는 그들이 지체한 틈을 타 거리를 벌렸다. 내 겨드랑이에 끼워져서 흔들거리고 있던 고루시마가 목청이 찢어져라 부르짖었다.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나는 그의 질문에 답을 주지 않고 묵묵히 달렸다. 사지에서 탈출했을 뿐만 아니라 의외의 성과까지 얻었으니 대만족이라 할 만했으나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따라오는 삼인조는 이제 문젯거리가 될 수 없었다. 내가 분출한 마기로 인해 그들은 확연히 동요하고 있었다. 셋 모두 얼마 가지 않아 우두머리를 구하려는 시도를 단념하게 될 것이었다.
내 고민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한 마기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마정의 손상과 균열이었다. 서둘러 봉합하지 않으면 마정에서 폭사된 미증유의 마기가 나를 장악하게 될 터였다.
***
산에 들고 반각도 지나지 않아 나는 경신을 중단했다.
좀 더 거리를 벌리고 좀 더 안전한 장소를 찾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협곡 아래 수풀이 우거진 곳에 몸을 던진 나는 고루시마를 내팽개치고 운공에 들었다. 물론 그 전에 그의 마혈과 아혈을 점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가 마기를 다스리는 동안 그가 소리를 질러 마인들을 불러오면 낭패였다.
지형이 울퉁불퉁한데다 관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자세가 나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가부좌를 튼 나는 건곤기를 운용했다. 그러자 극심한 통증이 휘몰아쳤다. 치유를 선행하라는 육신의 아우성을 묵살하고 나는 상단전부터 꼬리뼈까지 이어진 척수에 내기를 몰아넣었다.
이미 밖으로 흘러나와 있던 마기가 내 봉쇄 조치를 방해하고 나섰다. 나는 그것이 마정의 동료들과 조응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다. 약세를 감지한 마기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른 길을 모색했다. 내가 펼친 방어막 공략을 포기하고 상단전으로 치달은 것이었다.
일순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무릎 높이의 잡목 더미에 파묻혀있는 고루시마를 노려보았다. 내 안에서 전에 없는 살심이 솟구쳤다.
‘죽여라! 죽여 버려라!’
내 눈의 실핏줄이 터져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린 나는 소스라쳤다. 황급히 선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나는 대신 선령을 끌어올렸다. 뇌를 잠식한 마기의 준동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나는 그것의 부추김을 물리치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닥쳐!”
마기는 쉬이 굴복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본성을 끌어들였다. 나는 뇌를 휘젓는 마기만이 아니라 심장에서 꿈틀거리는 파괴의 욕구와도 싸워야 했다.
투쟁은 나의 승리였다.
나는 선인도 아니고 마인도 아니었다. 나는 그것들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나는 어린 시절 이미 나를 ‘무엇’으로 규정하기를 거부했다. 나는 그저 나였다. 신이 되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덩어리, 그것이 나였다. 그 원(願)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조리 부숴버릴 것이었다. 그것이 설사 내 일부일지라도.
나의 핵심이라 할 원념으로써 격렬하게 저항하던 마기를 통제하는 데 성공한 나는 심상에 떠오른 노인네에게 으스댔다.
사실 노인네는 살아생전 천지조화지경에 이르기 전엔 절대로 마원에 들지 말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오늘과 같은 사태를 우려한 것이었다.
나는 노인네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 아니, 그의 명을 거슬러 조만간 마원을 다시 찾을 작심이었다. 이 인세의 지옥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더 솔직히는 나머지 십대악인들이 마원에 숨어있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고루시마가 선사할 선력부터 취할 참이었다. 그런 연후 건곤장과의 비무를 통해 또 한 번의 비약을 이룰 것이었다. 수십만의 군중이 불러일으킬 청화의 불길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의미로 진저리가 쳐졌다. 보름 후 나는 중원 무림 서열 오 위에 등극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내 구상은 마원의 영역을 벗어나자마자 예기치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