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464
마탄의 사수 외전 (113)
“하아…… 하아…….”
엔정은 팔다리를 베듯 튀어나온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모의전 사흘째의 정오가 막 지나는 시점이었다.
‘빌어먹을, 처음부터― 처음부터 이렇게 다녔어야 했던 거군.’
격동적인 첫째 날을 보낸 후에도 엔정은 미친 듯이 우측으로만 나아갔다.
거의 하루를 꼬박 투자하여 걸었던 만큼, 해당 섹터의 우측 경계까지 도달하는 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엔정이 이동했던 섹터는 모의전 전장의 ‘가장 우측 열’에 위치한 곳이었다는 점이다.
―엔정, 전장 범위 이탈이다. 10분 내로 복귀하도록.
―빌어먹을! 또!
이하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받은 다음에야 엔정은 자신의 지도를 펼쳐 현재 위치를 대강 그려 보았고, 그 상태로 ‘남측’을 향해 방향을 잡은 셈이었다.
―합류하는 게 나을 텐데.
―시끄러. 망할 자식, 그러다 위기에 처하면 나보고 희생하라고 할 거 아니냐.
―그럴 일을 앞으로 없게 만드는 게 목표지만…… 만약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내가 너보다 잘 쏘잖아.
―다, 닥쳐! 그런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하여튼 네 녀석이랑 합류하느니 나는 혼자 움직이겠어.
북측으로 올라가면 〈총사대〉의 지도를 기준으로 엑스레이노벰버XN로 갈 수 있었다.
그곳은 〈제2 합특〉이 가장 먼저 전장에 옮겨졌던, 스타트 지점이 위치한 섹터이기도 했다.
둘째 날부터 카르카노와 찰스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으므로 엔정은 부득이 남쪽으로 진로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길.’
그러나 남측으로 한 섹터 이동하는 것도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총사대〉의 찰리 팀, 아파치와 조로는 둘째 날 오전 이미 합류를 마친 상황이었고, 오후에 들어설 무렵 엔정의 추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해가 질 때까지 엔정은 엑스레이마이크XM 섹터를 도망 다녀야 했다.
해가 진 이후에도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로빈의 희생 당시 〈총사대〉 측의 색적 능력으로는 엔정의 〈모기의 날갯짓〉 은신이 발각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느린 포복이라면 〈모기의 날갯짓〉은 해제되지 않으므로, 엔정은 해가 진 이후부터 해가 뜰 때까지, 장장 10시간이 넘도록 포복으로 이동하여 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누적된 피로에 잠시 휴식을 취했으나 아파치와 조로의 수색 범위와 속도를 한 번 겪어 본 이상 늘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사흘째의 정오가 지난 현시점에서 엔정은 곧장 움직여야만 했던 것이다.
파사삭―! 파삭―!
‘어제 살아남은 걸 기적으로 생각해야겠군.’
그리고 위기는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지쳐 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엔정의 도주로는 기존과 판이하게 달라진 상태였다.
생채기로 인한 일부 HP 감소를 굳이 받아 가며 이동하는 것도 성장의 일환이었다.
‘능선을 타는 멍청한 짓을 해 놓고 지금까지 사망 판정이 나지 않았다니…….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렇게 도망간다면 쫓아올 순 없겠지.’
엔정은 지금 완벽하고 정석적인 [잠입/침투]의 행로대로 이동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것에 비한다면 현재 엔정의 행동을 무조건 좋게만 해석할 순 없었다.
그가 둘째 날, 아파치와 조로의 수색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 덕분이었으니까.
* * *
―당소 찰리, 엑스레이마이크XM 6325 4280 인근에서 도주 경로로 추정되는 흔적 발견. 엑스레이마이크XM 6340 4500 지점보다 더욱 최근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소 알파, 몬스터 기타 짐승의 이동 길과 비교 확인 바란다.
김 반장의 말에 아파치와 조로는 잠시 머리를 모았다.
분명 이곳에 오기까지 몬스터 몇몇을 마주친 적은 있다.
그러나 덩치가 제법 큰 들짐승형 몬스터였으므로, 이곳을 통해 움직일 리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제의 도주 방식이 모두 기만이었다는 건가.”
“흐음, 하이하 님한테 배웠다고 보기에는 조금 조잡하긴 하지만…….”
조로는 아파치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소 찰리, 도주의 형태가 극단적으로 변했으나, 엑스레이마이크XM 섹터에서 해당 적 외의 식별 가능한 적은 없습니다.
엔정의 극단적인 변화는 〈총사대〉의 인원들마저 당황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하루 전만 해도 능선을 따라 내달리거나, 엄폐물도 없는 지형을 후다닥 달려가는 모습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그것이 분신에 의한 속임수일 가능성을 고려하여 신중한 아파치는 방아쇠조차 당기지 않았건만.
“정석적인 도주로를 설정했다면 편하지. 남쪽으로 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음.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알아, 알아. 아직 포착되지 않은 적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대기 중이라면 2:2의 전투가 될 가능성도 있을 테니까.”
조로 또한 아파치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지의 적’이 있다.
그가 첫째 날 당시 엑스레이리마XL 또는 엑스레이킬로XK로 남하한 상태였다면?
현재 남하하는 적은 북상하는 ‘미지의 적’과 중간에 조우하기 위해 지금처럼 움직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니까.
김 반장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지도를 읽고 있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당소 알파가 전한다, 찰리 편제를 유지하고 현재 확인된 적을 쫓아 남하하도록.
―당소 찰리, 재확인하겠습니다. 현재 엑스레이마이크XM 섹터에서 엑스레이리마XL 섹터로 남하, 도주하는 적을 추격, 사살하는 게 맞습니까.
―그렇다. 엑스레이노벰버XN 쪽의 적은……. 브라보 하나에게 맡긴다.
김 반장은 결국 아파치와 조로로 하여금 엔정을 쫓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2 합특〉의 스타트 지점이 있는 섹터, 엑스레이노벰버XN로 이동한 카르카노와 찰스는 모두 샹하이에게만 맡긴다는 결정을 내린 것.
―당소 브라보 하나, 확인입니다. 찰리 둘이 당초 확인해 준 도주 속도로 고려하자면 아마 금일 오후쯤 확인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교전 허락이 필요한지 확인 바랍니다, 이상.
샹하이는 특별히 부담감을 느끼거나 긴장하지도 않은 말투로 물었다.
김 반장 또한 그의 실력을 믿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당소 알파, 교전 허락 필요치 않다. 브라보 하나의 판단에 맡긴다, 이상.
―브라보 하나, 확인.
김 반장과 샹하이의 통신을 듣던 아파치와 조로는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신뢰와 안도.
―찰리, 이동하겠습니다.
샹하이가 두 사람을 담당해 준다면 자신들이 더욱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모의전 사흘째, 정오를 지나가는 이 모든 움직임은 이하가 있는 ‘본부’에서도 관찰 가능한 일들이었다.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켰다.
전장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일촉즉발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 * *
샹하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곁에 앉은 새와 눈을 마주칠 수 있다는 게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녹아드는 건 오랜만인데.’
위장 크림을 얼굴에 바른 것은 물론, 몸 곳곳에 꺾은 나뭇가지들을 꽂아 두었다.
단순히 스킬을 사용해 버티는 건 현재 시점에서 할 일이 아님을 알았으므로, 그는 최대한 자연물을 이용해 자신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호흡마저 매우 느리게 유지하며 엎드려 있기를 벌써 다섯 시간이 넘었다.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조바심이 들거나 불안해할 법도 하건만 그에게 그런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샹하이는 〈제2 합특〉의 스타트 지점이 위치하고 있는 섹터, 엑스레이노벰버XN로 들어선 이후부터는 지도조차 꺼내 보지 않고 있었다.
모의전이 시작한 이래, 그는 이하의 수제 지도를 통해 현재 섹터만을 외우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알 수 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지점에서 스타트를 했다면, 분명 사방이 트인 곳이었겠지. 그곳에서부터 어떤 고지로 이동한 다음 움직였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곳이 되었어도 반드시 자신의 눈을 지나쳐야만 할 것이다.
지나칠 정도의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결코 자만해선 안 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샹하이는 〈총사대〉에서 김 반장에게 가장 인정받는 사수 중 하나였다.
‘그래도 하이하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게 어쩐지 열 받기는 한단 말이지.’
즉, 이하에 대해 가장 복잡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김 반장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다는 질투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욕심도 있었다.
‘게임을 조금만 일찍 시작했어도 〈삼총사〉 중 하나는 무조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자신도 하이하와 함께 미들 어스를 호령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하의 활약을 보며 미들 어스를 시작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으므로, 이하에 대한 동경심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 지난 일로 아쉬워해 봐야 바뀔 것도 없고. 아무래도 하이하가 만든 기사단이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으니……. 나도 이번 모의전에서 하이하의 눈에 들어 놓으면 분명 같이 일할 순간이 오겠지.’
이번 모의전의 공통적인 목표는 〈총사대〉의 완전한 승리다.
다만 샹하이의 개인적인 목표라면, 자신의 특출 난 활약으로 승리하여 하이하의 눈에 띄는 것!
〈총사대〉를 탈퇴하지 않더라도 김 반장과 하이하 그리고 자신이 함께 활약하는 순간을 상상할 수는 있지 않은가.
머릿속으로는 이미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샹하이의 안면 근육은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자신이 어떤 감정, 어떤 상태이더라도 [은신] 도중이라면 그 어떤 흔들림도 없어야 함을 알고 있으니까.
후웃― 후우우…….
그럼에도 샹하이의 호흡은 조금쯤 흔들렸다.
지금까지 유지했던 길고 느린 호흡은 아니었다.
심박의 상승으로 인하여 갑작스레 몸에 피가 도는 이 기분.
뜨끈한 열기의 이유를 샹하이는 보고 있었다.
그의 총구 너머로 두 개의 실루엣이 마침내 보였다.
‘저쪽 고지로 오르려 하는 거라면……. 스타트 지점은 아무래도 두 번째로 찍은 곳이었나 보군.’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인원이 한 명 있다고 들었건만, 그 외의 적들은 모두 제대로 배운 것일까.
‘혹시나 함정이 있을까 봐 나뭇가지가 얽힌 곳은 꼼꼼하게 살핀다. 좋은 움직임이야. 복귀할 때 방심하기 가장 쉽다는 걸 생각한다면, 안전지대가 가까워졌다고 여길수록 신중해야만 하지.’
그들의 움직임은 훌륭하다.
김 반장에게 받은 수준의 교육이 아니었다면, 일반적인 민첩 관련 직업군 유저들은 저들을 발견조차 못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보다 뛰어난 자신을 상대해야 한다는 게 저들의 불행일 뿐이다.
샹하이의 총구가 서서히 움직였다.
앞서고 있는 자를 쏴야 하는가.
지도를 고이 쥔 채 뒤따르는 자를 쏴야 하는가.
‘거리는…… 850m……. 아니다. 두 사람을 모두 쏘려면―.’
샹하이의 눈이 그들의 앞을 훑었다.
나무의 크기가 낮고 딱히 바위라고 부를 만한 게 없는 지점이 한 군데 있다.
그곳에 들어선 다음 사격한다면 다른 한 사람을 상대할 여유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까지는 약 930……. 아니, 926m로 잡는 게 낫겠군.’
거리를 재고 바람을 읽는다.
자신의 뒤에서부터 저들을 향해 부는 바람임을 인지해야 한다.
데미지로 죽이는 게 아니라 피격 부위로 사망 판정을 내게끔 만들려면, 정확하게 흉부 이상을 타격해야 한다.
즉, 평소보다도 더욱 섬세한 사격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하아아아아…….
샹하이는 기다렸다.
변수라면 첫 피격 이후 살아남은 자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 재장전 후 격발 간격이라면― 놈이 좌측으로 움직이는 순간 끝이다. 우측으로 움직여도 뭐, 몇 발쯤 주고받아야겠지만 1:1로 나를 맞출 수는 없을 테고.’
할 수 있다.
이제 목표 지점까지 약 10m.
―당소 브라보 하나, 대기 중 적 발견. 교전합니다.
“〈상처 난 바람〉.”
여유롭게 김 반장과 찰리 편제에 통신을 한 후 스킬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샹하이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