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7
마탄의 사수 (17)
“꺄아아아악!”
람화연은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폭음에 귀를 틀어막았다.
가까이에 보이는 것은 바위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 뒤를 돌아보고 싶지만 돌아볼 수 없었다.
하얀 연기 저 너머에, 또 다른 블랙 앵거의 발차기에 맞아 쓰러진 힐러가 보였으니까.
블랙 앵거는 쓰러진 힐러에게 천천히 다가가 팔을 뜯어 먹고 있었다.
피가 쏟아지는 모습과 힐러가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 불행 중 다행일까? 폭음에 멍해진 귀에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아, 하아…….”
인간이 짐승에게 먹히는 끔찍한 모습을 보며 화연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힐러는 곧바로 잿빛으로 변한 걸 보니 사망 판정을 받아 아픔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적어도 쳐다보는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끔찍한 광경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연락 해 놓는 건데.’
이제 와서 누굴 탓하리. 레벨 9에 파이어 애로우 스킬 레벨이 3으로 올라 자만하고 있었다. 검은 토끼라고 해 봐야 자신의 마법 한 방에 태워 죽일 자신이 있었으니까.
홈페이지를 통틀어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어차피 토끼 아닐까, 라는 생각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설마 두 마리가 튀어나올 줄이야. 애초에 아처가 죽었을 때 공격이고 뭐고 모조리 도망갔어야 했는데.
레벨 8로 떨어지고 다시 9로 올리려면 또 얼마나 고생해야 할까. 이번엔 48시간 접속 불가까지 있는 걸 떠올린다면…….
‘응? 근데 왜 아무런 소식이 없지?’
무릎에 힘이 풀려 후들거리는 다리.
바위 뒤에서 흰 연기를 뿜어냈던 남자는 뭘 하는 건지 꿈지럭꿈지럭거리고 있었다.
“그거 끝났으니 빨리 이쪽으로 와서 좀 도와요! 저놈이 식사 끝내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당신 마법사 아냐?”
덜컥, 덜컥 혼자서 뭘 쏟아붓고 입으로 후, 후 거리고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화연 자신에게 언성을 높인다. 평소 같으면 어디서 반말이냐고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궁금함이 더 크다.
끝났다니?
“설마……?”
화연은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뿜어지던 콧김이 목덜미에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던 블랙 앵거가 쓰러져 있었다.
미간에 난 구멍에서는 검은 털을 불그스레하게 적시며 피가 새어 나오고 있다.
“죽었어?”
“이런,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힐러부터 살리는 건데. 빨리 캐스팅하라고, 시간 없다고! 아까 그 불화살인지 뭔지 빨리 좀 갈겨 봐요!”
화연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바위 뒤에 숨은 남자가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블랙 앵거를 한 방에 잡은 것만은 확실하다.
‘고렙? 한 방에 잡았어? 레벨이 몇이길래?’
그런데 이 다급함은 뭐지? 한 방에 처리한 것처럼 저쪽도 한 방에 죽이면 될 것 같은데, 땀을 뻘뻘 흘리며 화연 자신을 재촉하는 모습이라니.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규어어어어――――!
블랙 앵거의 낮고 긴 외침이 울렸다.
* * *
‘뀨에서 규가 된 것뿐인데 이렇게나 무섭게 들리는구나. 하핫.’
그리고 동시에 이하는 깨달았다. 역시 관여하는 게 아니었어.
화염 마법을 쓰는 마법사를 구한 후, 둘이 힘을 합쳐 힐러를 향하는 블랙 앵거를 잡는다!
이게 애초 이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처음부터 파국이다. 힐러란 녀석은 스태미너의 한계에 달했는지 제대로 도망도 못 간 채 발에 치이고, 자빠지고, 몇 번 구르더니 토끼에게 뜯어 먹히며 비참하게 사망.
아니면 저 욕쟁이 여자 마법사의 담력을 너무 과대평가했을까. 구해 내면 욕을 고래고래 내지르며 불덩이 같은 걸 확 소환하며 담대하게 나설 줄 알았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서는 얼어붙어 버렸다.
이제는 과대평가의 대가를 치를 때가 되었다.
‘장전하다 도망가면 화약만 낭비하는 건데 제기랄!’
이하는 머스킷에서 화약을 털어 내고 꼬질대를 주워 들었다.
“그렇게 멍청하니 있을 거면 안 구했지! 망할 년아, 얼른 뛰어!”
이하는 바위 뒤에서 튀어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뭐? 망할 년?”
“욕을 들으니까 정신이 드냐! 젠장, 젠장! 너 때문에 나까지 죽게 생겼잖아!”
달리는 이하의 등 뒤로 탓, 탓 따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그 한참 뒤, 땅이 쿵쿵 울리는 게 느껴졌다는 것.
블랙 앵거스, 아니, 이제는 한 마리 남은 블랙 앵거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이젠 내리막도 없다.
올라가거나, 평지를 뛰거나. 어쨌든 토끼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지형에서 이하와 화연은 같이 달렸다.
“거기 안 서?”
“서면 뭐 어쩌려고? 그럴 힘 있으면 닥치고 달리기나 해!”
“이, 이 새끼가?”
“생명의 은인한테 막말해도 되는 거야?”
규어어어어―――!
“으아아아!”
“사람 살려! 토끼가 사람 씹는다!”
뒤에서 들려오는 진동의 크기가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첫 죽음? 이렇게 허무하게?
이럴 줄 알았으면 사냥에 성공한 블랙 앵거의 시체에서 가죽이나 고기 같은 거라도 건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이하의 머릿속에 스쳤다.
그리고 이하의 정면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또 한 명의 사람이 보였다.
푸른 생머리가 달빛에 찰랑거리고 있었다.
“고개 숙여.”
“뭐, 뭐라고요?”
푸른빛은 머리카락에서만 나는 게 아니었다. 앞에서 걸어오는 여성의 몸이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한다.
“화정아!”
‘화정?’
뒤에서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에 이하의 머리가 팽, 돌아간다. 아는 사람? 도와주러 온 건가? 그러나 생각을 2초 정도만 더 했어도 이하는 죽었으리라.
“아이스 스피어.”
“끄어어어어!”
눈앞으로 날아오는 고드름 덩어리들. 이하는 슬라이딩 하듯 바닥을 쓸며 넘어졌다.
“꺄아악!”
그러나 그건 뒤의 여자도 마찬가지.
화연 역시 옆으로 몸을 날리고, 인간들에게 가려져 있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얼음의 창 앞에서, 블랙 앵거는 반응하지 못했다.
쿠우웅, 황소만 한 토끼는 쓰러지는 소리 또한 컸다.
규욱, 규우욱!
“뭐야, 얼…… 었어?”
몸을 털며 일어난 이하는 바닥에 달라붙은 듯 움직임이 멈춘 블랙 앵거를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제아무리 잘 뛰는 놈이라도 다리가 얼어붙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
“얼른 처리해, 언니.”
“휴, 고마워. 근데 빨리 좀 오지 그랬어! 연락한 지가 언젠데―”
“빙결 풀려.”
“아, 알았어. 아! 그리고 당신! 딱 기다려!”
“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이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와중에도 한 소리 쏘아붙이고 싶을까?
아니, ‘새끼’라고 부르던 게 ‘당신’으로 격상된 것만 해도 다행인 건가?
놀랍고도 황당한 두 명의 여자를 보고 있을 때, 이하는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한 여자의 머리칼이 붉다는 걸 깨달았다.
또다시 웅얼거리기 시작하는 욕쟁이 마법사,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이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과 어울린다.
마법을 쓰려는 준비 과정임을 이하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이하의 마음이 급해졌다.
“잠깐!! 이봐요, 아까 한 마리 잡는 거 도와줬는데 나랑 파티 해야지! 이름 불러, 이름!”
저 웅얼거림이 끝나면 뭔가 튀어 나갈 것이고, 그럼 블랙 앵거스는 모두 죽으리라.
“람화연(林花緣)!”
“어, 어, 파티신청은 어떻게 하는 거더라…….”
해 본 적이 있어야지. 머스킷 개머리판으로 토끼나 패면서 레벨 업을 했기에, 사실 사냥에 대한 것은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이하다.
“에잇! 너 이름은 뭔데!”
“하, 하이하! 하이하!”
“파이어 애로우!”
슈왁, 허공에 불타는 화살이 생성된다. 다리가 꽁꽁 얼어 바닥에 붙어 있는 블랙 앵거는 연습용 표적도 되지 않으리라.
불화살은 앞다리 위의 심장부를 정확히 찌르고 들어가고, 기다란 울음소리를 내는 블랙 앵거의 몸이 점점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스 스피어를 맞고 피가 간당간당하던 블랙 앵거는, 그 한 방에 사망에 이르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하아, 아슬아슬했다…….”
이하의 몸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이 파앙―! 사라지자 몰려드는 상쾌함. 레벨 업 효과에 따라 HP와 MP, 스태미너, 활력이 풀로 회복된 것. 미들 어스에서 유저들에게 베푸는 몇 안 되는 친절함 중 하나다.
“후우. 어, 어. 잠깐만요! 아이템을 당신이 다 챙기는 겁니까?”
“내가 죽였잖아.”
“어라? 그러면 내 거는?”
황당한 표정의 이하를 보며 화연은 턱짓만 까딱인다.
저쪽 멀리 남아 있는 잿빛 사체, 이하가 한 방에 죽였던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안 공평한 것 같기도 하고.”
이하는 투덜거리면서도 루팅을 하러 발을 옮긴다.
퀘스트 아이템인 토끼 털, 고기, 눈알, 발톱을 모조리 획득했다.
* * *
“잠깐! 거기 멈춰 봐!”
“거, 따라오지 마시라니까 그러네.”
이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을 옮겼다. 그러나 따라오지 말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붉은 머리의 여자와 푸른 머리의 여자는 이하의 뒤를 쫓았다.
“왜? 왜, 숲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몰라도 됩니다. 그리고 말은 왜 놓는 겁니까? 아무리 같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지만…….”
“너, 너 지금 말 놓는 것 때문에 그런 거야? 내가 너보다 나이 많으니까! 그리고 너도 말 놨잖아!”
멈칫.
이하의 발걸음이 멈췄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같이 겪어 놓고 이렇게 유치한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아니, 나이 많은 게 자랑입니까? 그래, 나도 급한 김에 말 조금 놨다지만, 해도 너무 하네요. 나이도 별로 안 되어 보이는구만. 끽해야 스물 셋, 넷 같은데, 그러지 맙시다, 우리. 그리고 나이는 내가 훨씬 많을 거요.”
붉은 머리 여성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하 또한 말을 마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차, 나이가 어려 보인다는 건 여자들한텐 칭찬이구나?’
머리를 벅벅 긁는 이하. 여자랑 대화하는 건 역시 어렵다.
게다가 키 작은 푸른 머리의 여성. 이하가 보기엔 여기 세 사람 중 최강자 같은데 말도 없고, 심지어 웃지도 않고 있으니 분위기가 묘할 수밖에.
“흐, 흥. 그렇게 말해도 당신한테는 관심 없거든? 너, 우리 화정이 몰라? 람화정(林花晶)!”
붉은 머리의 여성이 자기 가슴께까지밖에 오지 않는 푸른 머리의 여성을 앞세웠다.
그러나 푸른 머리의 여성, 람화정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눈으로 이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람화정? 모릅니다. 몰라요.”
“홍콩의 람화정, 눈꽃술사 람화정을 모른다고? 미들 어스 유저 맞니?”
홍콩의 람화정? 눈꽃술사? 그럼 저 람 어쩌구가 닉네임이 아니고 이름이었나? 아니, 닉네임인데 저렇게 말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하는 모른다.
입고 있는 옷이 고급스럽고, 신발이 엄청나게 비싸 보인다는 건 알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