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872
마탄의 사수 외전 (521)
신나라가 호텔로 들어온 것은 11시 20분경이었다.
본격적으로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던 시점.
이하는 아직 자청이 일러 주는 사람들의 이름 외우기에 급급했고, 기정이나 보배, 혜인 등은 핑거 푸드를 먹기 위해 시시덕거리며 다른 곳에 있던 시간.
그사이 신나라는 이미 예식장 층에 도착하여, 보안 검사대를 통과한 상태였다.
다만 자신이 어디에 있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뿐이다.
‘보배는 기정 씨랑 잘 놀고 있을 테고……. 후우. 하이하 씨한테 인사를 바로 하기에는―.’
나이가 지긋한, 척 봐도 홍콩의 정, 재계 인물이나 그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들과 인사를 나누기 바쁘니 굳이 자신이 먼저 다가가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은 게 신나라의 생각이었다.
‘우선 람화연 씨한테 먼저 인사를 하고―. 그 이후에 보배를 불러서 하이하 씨 얼굴을 보는 게 맞겠지.’
자신이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이야기를 보배에게 전한 후 그들이 어떻게 답변했는지까지 이미 모두 들었다.
이하와 람화연 모두 그녀 자신의 참석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환영한다는 식으로 답했다고 했으니 마음 놓고 인사하면 되지만 막상 그 장소에 도착한 신나라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이런저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실제로 내가 위축될 이유가 없잖아. 이유가 없어!’
신부 대기실에서 람화연을 먼저 보면 된다.
그녀와 나누는 대화를 굳이 기정이나 보배에게 들려 줄 필요는 없으까.
웃으며 그녀와 인사한 다음 보배, 기정 등과 함께 하이하를 보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신나라는 화장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별것도 아닌 일을 하기까지가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걸까.
‘너무 빨리 왔나? 보통 30분 전쯤에는 도착하니까……. 이 정도면 이른 건 아닌데. 아니, 그래도 시간이 좀 그런가? 괜히 이야기를 더 길게 하는 것도 좀 이상할 수 있으려나?’
각오를 마쳤다는 것은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일 뿐이다.
마음이 다져지지 않은 이상 온갖 잡념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미 결혼식장 내부까지, 신원 검사를 모두 마치고 들어와 놓고 이제야 이런 식의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이라니!
‘그래, 차라리 늦게 인사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하이하 씨 성격에 괜히 말실수라도 하지 않으려면―. 그냥 55분 즈음에 인사만 하고, 결혼식 보고…… 보배랑 밥이나 먹고 한국으로 가자. 피로연 때야 어차피 대화도 길게 못 할 테니까.’
결국 신나라는 결정을 했다.
일찌감치 입장했지만 당분간 그 몸을 숨기고 있자고.
당연히 그런 곳으로 제격인 것은 화장실밖에 없는 것이다.
‘아, 너무 꾸몄나? 그냥 편하게 입을 걸 그랬나?! 보배도 그냥 슬랙스 입고 갔다고 했는데 왜 내가 타이트 스커트를 입었지? 보통 결혼식에―. 아니, 일반적인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할 때도 타이트 스커트 정도는 입……기는 한데. 아아아, 이게 애초에 고민할 거리도 아니잖아, 사실!’
도대체 여기까지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분명 비행기에서 내리고, 홍콩의 다소 끈적한 습기가 찬 아침 햇살을 받을 때만 해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시크’하고 ‘쿨’한 사람이 되리라 생각해 놓고!
‘그래. 긴장하지 마. 왜 긴장하는 거야, 신나라. 그냥 라르크 씨 선물도 살 겸! 홍콩에 온 김에 들를 겸― 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 자신을 속이는 거겠지.’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분명 자기 자신을 속였겠지만 역시 신나라는 신나라였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힘든 건 지금뿐이니까. 그것을 받아 내고 정면에서부터 이겨 내는 게 내 스타일이니까.’
라르크에 대한 자신의 마음.
하이하를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
어쩌면 같았고 어쩌면 또 달랐던 두 개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다스릴 힘을 얻어야 한다. 다스릴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온 거잖아. 라르크 씨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멍청한 모습 보이지 마.’
그 시점에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라르크였다.
거기까지 사고가 진행되고 나서야 신나라는 진정할 수 있었다.
“좋아, 그럼―.”
따라서 화장실을 나가려던 그녀였으나,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진 바깥 상황에 그녀의 행동은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행정장관님이 곧 온다는데!?”
“어머, 어머, 어머, 화장 고칠 때가 아냐. 빨리 나가야―.”
옆 칸이나 세면대 근처에서 제각각의 몸단장을 하던 여성들의 다급한 목소리.
귀에도 ‘번역기’를 장착 중인 신나라 또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홍콩의 대통령 같은 사람……이지? 그럼 괜히 지금 나갔다가 애매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군.’
행정장관을 비롯한 주요 VIP 인물들과 람롱이 함께 람화연을 찾아갈지도 모른다.
그들과 신나라 자신이 람화연에게 인사를 건네는 타이밍이 겹치기라도 한다면, 그 민망하면서도 어쩐지 쫓기는 마음이 될 상황을 견뎌 내기는 어려울 터, 따라서 그녀는 조금 더 화장실에 앉아 있기로 한 것이었다.
뚜껑까지 모두 내린 변기에서, 문을 닫았지만, 굳이 잠그기까지는 하지 않은 채.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가장 놀란 것은 신나라였다.
잠시 후 들어온 것은 람화연과 람화정이었으니까.
“으음, 그래도 혼자서는 좀 어렵겠는데……. 화정아, 뒤에 지퍼 좀 내려 줄래? 그리고 기왕이면 안까지 같이 들어가 줘야겠어.”
“응. 괜찮아.”
람화연과 람화정이 화장실에 들어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 그녀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람화연……. 람화정…….”
“당신이 어떻게―. 치요는―.”
“사스케.”
‘사스―……. 사스케? 그 사스케!?’
신나라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들어 올렸다.
이제 와서 화장실 문을 잠그기에는 늦었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 * *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야 할까?
아니면 소리를 지른다?
“움직이지 마. 소리도 지르지 마. 당신들보다 ‘내 손’이 더 빠르게 반응할 거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러나 곧장 운을 뗀 사스케의 발언 앞에서 신나라도 소리를 높일 순 없었다.
자신이 소리를 질렀다가 사스케가 ‘무언가’라도 해 버린다면, 람화연이 그로 인하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게 된다면 신나라 자신에게도 책임이 생기는 셈이니까.
‘당황하지 마. 혼란스러워하지 마. 생각해라, 생각해, 신나라.’
이 특이한 상황을 마주하는 대다수의 인원은 패닉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곳, 여자 화장실 안에 있는 ‘여성’ 모두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것!
‘그러고 보니 치요나 사스케가 야쿠자와 관련된, 어떤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말을 했었지. 설마 현실에서 갚아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그렇다면 위험하다.
신나라 자신이 개입하든 말든 당연히 사스케는 람화연을 공격할 것이다.
람화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게 그 방증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약 공격하려 한다면 곧장 뛰쳐나간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화를 들어야 한다.
람화연도 그냥 당할 사람이 아니다.
반드시,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서 대화를 시도할 사람이다.
그 안에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 힌트가 있기를 기대하며, 우선은 기다려야 한다.
신나라는 목표를 세우자마자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그녀는 호흡조차 느리게, 숨소리도 나지 않게 기척을 없애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맞아. 그냥 총알을 쏘는 게 아니지. 기껏해야 종이 스프링으로 쏘아 내는 거니까……. 하지만 그 끝에 ‘무엇’이 묻어 있는지도 알고 있겠지. 홍콩의 높으신 분들 때문에 바깥의 교통 혼잡은 더할 나위 없어. 이게 네년들의 피부를 파고들면 절대 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곧장 자신이 원하는 정보 몇 개를 얻을 수 있었다.
1. 적의 공격은 연사가 불가능하다.
2. 그리고 탄환 그 자체가 강력하다기보다는 독성 물질을 활용한 해코지를 하려 한다.
즉, 첫 번째 공격만 어떻게든 막아 낸다면 그다음의 대처는 가능하다는 뜻!
‘그다음의 문제는 타이밍인가. 어느 시점에…… 어떻게 해야 하지?’
무한정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사스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밖의 인원들이 람화연의 실종을 눈치챌 때까지 시간 지연을 할 리가 없으니까.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칸막이 내부의 신나라가 강하게 화장실 문을 밀칠 경우, 해당 문짝이 오른쪽으로 벌컥 열리며 사스케의 시야를 가려 주게 될 것이다.
‘그사이에 소리를 지르면서 람화연, 람화정 씨를 화장실 안으로 데려오고…… 문을 잠가 버리면 돼.’
위험을 부담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단 한 번, 고작해야 1초 남짓한 혼동.
‘사스케는 내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니까. 아무리 힘이 강해도 이런 화장실 문짝을, 잠금장치를 부수고 들어올 수는 없어. 결국 바깥의 문이 먼저 열쇠나 다른 것으로 열리면서 사스케가 제압당하겠지.’
람롱 그룹의 경호원들이라면 대부분 방탄/방검복을 착용하고 있을 테니, 사스케의 조잡한 총기로는 뚫을 수는 없을 터.
그게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구출 방법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타이밍이었다.
“람화정의 입에 손수건을 쑤셔 박고 테이프로 감아라. 손, 발도. 소리를 지를 수도, 밖으로 달려 나갈 수도 없게.”
‘거리는 어느 정도나 되지? 사스케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쳇, 기왕이면 그림자가 화장실 칸막이 아래에 비치면 좋았을 텐데.’
화장실 칸막이 문의 하단부에 미세한 틈이 있지만 기대할 게 없다.
그곳으로 손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얇은 틈새라 사스케가 총기를 든 손을 욱여넣어 방아쇠를 당길 일이 없다는 건 다행이지만, 신나라 본인도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는 없는 상태.
찌이이이익― 찌이이이익……!
람화연이 람화정에게 조치를 취하는 소리가 신나라에게도 들렸다.
그것은 그녀에게도 썩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거동이 자유로울 때 화장실 내부로 숨어드는 것과, 한 사람의 움직임이 제한될 때 숨어드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람화연 씨를―. 조금 거칠지만 밀어 넣고. 내가 람화정 씨를 들고 뛰어들면…… 아슬아슬하겠지만…….’
1초면 끝날 일이 2초, 3초까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스케가 ‘진짜 전문가’라면, 그 1초 남짓의 차이는 매우 클 것이다.
신나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그녀는 외부의 소리를 들었다.
“아니. 당신 같은 비겁한 사람 앞에서, 내가 무서워할 이유는 없지. 난 람화연이야. 람롱 그룹의 총수, 람롱의 장녀이자 하이하의 부인이다. 네놈 따위를 두려워하진 않아.”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람화연의 목소리를.
그 이야기를 듣자, 신나라는 어쩐지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이곳까지 와서 무엇을 고민했는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번뇌에 휩싸였는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든다.
“그래. 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미들 어스에서의 승자는 너희였으니까. 하지만 진짜 인생이란 미들 어스만이 아니라―.”
띠리리리리리리───────!
사스케가 말하는 도중 울린 것은 신나라 자신의 벨소리였다.
보배일까, 라르크일까. 그것도 아니면 스팸 전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허둥거리지도 않았다.
머릿속으로 한 번의 시뮬레이션을 끝낸 다음이기도 했지만, 조금 전 람화연의 발언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덜어 낸 상태가 되었으니까.
“흡!”
콰아아아앙────!
그녀는 있는 힘껏 화장실의 문을 박차며 뛰쳐나갔다.
“크악, 무슨― 누가!?”
사스케의 비명에도 상관없이 신나라는 람화연, 람화정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을 데리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 내가 먼저 기습했다면 괜찮겠지만 벨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늦었어. 이런 경우에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쉬이이이익────────!
‘선공필승.’
신나라는 움직였다.
“!”
화장실 문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타이트 스커트가 일부 찢어질 정도로 다리를 쭈욱 늘린 그녀의 몸은 거짓말처럼 늘어났다.
“빌어먹을 년이―.”
사스케는 황급히 신나라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미 총구는 대리석 바닥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푝,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대리석과 부딪치는 소리가 났을 때, 이미 신나라는 사스케에게 근접한 상태였다.
검은 없지만 펜서Fencer에게 손은 검과 마찬가지다.
쭉 뻗은 손 그대로 신나라의 손끝이 노린 곳은 사스케의 울대.
그녀의 검지와 중지가 사스케의 울대를 한 마디 이상 파고들었다.
인간의 약점 중 한 곳인 그곳을 그렇게 깊숙하게 찔린 상태에서 사스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케헷― 컷, 카하악!”
일그러진 얼굴로, 본능에 의해 사스케는 자신의 목을 양손으로 부여잡을 뿐.
그리고 켁켁거리며 고개를 숙인 그의 뒷덜미를 향해 신나라는 팔꿈치를 내리찍었다.
퍼어어억……!
사스케가 가져온 ‘유사 총기’보다 더욱 경쾌하고 묵직한 타격음이 울렸을 때, 그는 이미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하아…… 하아…… 괜찮아요?”
신나라는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놀라야 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아니, 화정아! 빨리!”
“응.”
신나라가 사스케를 상대하는 그 몇 초 남짓의 순간, 람화연은 자신이 칭칭 동여매었던 람화정의 ‘테이핑’을 다시 전부 뜯어낸 상태가 아닌가!
‘하여튼 대단한 사람―. 음?’
람화정은 쓰러진 사스케의 몸을 뛰어넘어 곧장 화장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몇몇의 인원들이 우뚝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화연아.”
그중 한 사람은 람롱 그룹의 총수, 람롱이었다.
사스케를 상대할 때조차 고민 없이 뛰어들었던 신나라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람롱의 얼굴이나 분위기에서 풍기는 압박감은 미들 어스 내에서 겪었던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더욱 강력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