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22
마탄의 사수 외전 (571)
신나라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이 와중에도 티격태격하는 키드와 루거, 두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둘의 기묘한 관계를 떠올리면서도 신나라가 푸근한 미소를 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두 사람이―. 사실 그 누구보다도 피곤할 법한 이 두 사람이 끝끝내 로그아웃 없이 미들 어스를 지키게끔 만든 사람이라는 게…….’
하이하의 존재다.
키드와 루거가 오염체들이 날뛰던 때부터 미들 어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해결사’ 역할을 자청했던 이유가 바로 ‘하이하의 부탁’을 지키기 때문이었다니.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셋의 관계는 단순한 라이벌, 그 이상이라는 것.
신나라 또한 그 점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분명한 ‘룰’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었지. 줄곧. 적어도 입 밖으로 인정한다는 말은 내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하는 키드와 루거, 두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미들 어스를 잠시 떠났으며, 부탁을 받은 키드와 루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하가 조기 복귀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세 사람의 유대紐帶를 라이벌이나 전우 또는 친구 정도의 단어로 가볍게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걸, 이제는 신나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울었네, 안 울었네 따위의 쓸데없는 대화나 하는 두 사람의 존재감이, 지금 그 어떤 유저보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자가 없으리라.
“키드 님이다.”
“루, 루거 님이다. 키드 님이랑 루거 님이야. 거기에 블라우그룬 님까지 여기에 있다면―.”
“하이하 님도 오는 거 아냐!? 진짜로? 크툴루 여기서 잡는 거 아니냐고?!”
무기를 지팡이 삼은 자도 있었고, 벽에 기대어 겨우 선 자도 있었다.
이 없는 유저들이 바닥에 쓰러져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들의 목덜미를 잡아끌어서라도 마스터케이, 기정의 뒤편까지 데리고 가 그를 돕는 자들도 있었다.
“……알량한 그 이름이 도움이 되나 보군. 키드, 루거, 하이하 님께서 들으신다면 기뻐하실 거다.”
블라우그룬은 지상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당연히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아 할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 인간한테 그런 소리를 전할 예정이라면 당신의 입부터 막아 주겠습니다.”
“퉤, 그니까. 그리고 말이야! 하이하 그 자식이었다면! ‘내가 있었으면 캐슬 데일 전체에 배리어 생성시키고 싸웠을 텐데, 당신들은 그런 생각 못 했어? 에즈웬 교국 가서 라파엘라 데려오면 되잖아?’ 따위의! 있을 수도 없는 가정을 지껄이면서 우리를 무시했을 거라고!”
“……루거, 당신이 그―. 그렇게나 디테일하게 집착할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조금 전 그건 성대모사―.”
“다, 닥쳐! 하여튼!”
투콱―!
루거는 을 들어 올렸다.
허벅지에 받치고 허리의 힘을 지렛대로 이용해 양팔로 들어 올린 거대한 포신.
짙은 푸른빛을 스스로 발하는 것 같은 우람한 포신은 마치 깃발처럼 우뚝 섰다.
“하이하 그 망할 놈이 오기 전에 조져 버리는 게 목표지. 당신들도 한 입 거들 거면 당장 일어나서 싸울 준비들 해! 퀘스트 형태로 뜨진 않았지만 이미 [절망의 미래]라는 게 알려졌을 때부터, 퀘스트 창에 숨겨진 ‘히든 퀘스트’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기회에 보상 얻을 게 아니라면 미들 어스 당장 때려치워!”
고래고래 소리치는 공격적인 말투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자신을 무시한다며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법도 했으나 지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기운을 불어 넣고자 호통을 치는 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확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한 말투.
특별히 분석한 적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루거의 ‘보상 관념’에 자극을 받은 유저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점이라면 키드도 마찬가지였다.
모양이 다소 바뀐 들. 특히나 리볼버치고도 총신이 다소 길어져 이제는 정말 ‘서부 개척 시대’의 리볼버와 같은 외형을 가진, 강렬한 진홍빛이 인상 깊은 총기를 꼬나 쥐며 말했다.
“맞습니다. 알렉산더와 이지원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뺏기고 멍청이처럼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설령 히든 퀘스트로 숨어 있지 않아도…… 지금의 전투 한 번, 한 번이. 당신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앞으로 미들 어스 내에서 당신들의 ‘포트폴리오’가 될 겁니다. 어떤 길드를 들어가든, 어떤 기사단에 입단하려 하든, 어떤 NPC를 설득하려 하든……. 그 증거 자료가 되어 줄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거처럼 본능적으로 느끼진 않지만 그에겐 그 나름대로의 확실한 분석이 있다.
이번 전투가 향후 미들 어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무형의 자산’이 되어 줄 것인가.
루거의 말은 미심쩍어도 키드의 말이 확실하다는 건 이곳의 모두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맞아요. 당장―. 저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안 봐도 뻔한 거 아니겠어요?”
신나라는 조용히 키드의 말에 힘을 보태며 을 가리켰다.
‘위대한 옛 존재’ 중 하나, 과타노차를 상대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알렉산더와 이지원이 현재 미들 어스 전역은 물론, 미들 어스 바깥의 현실 세상까지 얼마나 큰 임팩트를 주었는지는 이루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캐슬 데일에서 마지막 고무鼓舞를 담당한 건 블라우그룬이었다.
“그렇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인간들이여, 너희들은 운이 좋은 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
[삐끼! 삐끼삐끼!]원시룡 블라우그룬과 자수정 드래곤 ‘뽀뽀’.
“그, 그래…… 사실 아까부터 크툴루니 뭐니 보다, 나는 저게 더 궁금했어.”
“블라우그룬 님 옆에 있는 저 드래곤은 뭐야? 저런 색깔은 처음 보는데.”
이하와 웬만큼 친밀도가 있는 유저들이라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일반 유저들에게 있어선 말 그대로 전설적인 존재와 같은, 그 정체도 의문인 드래곤이 있지 않은가.
유저 한 명이 용기를 내어 블라우그룬에게 물었다.
“근데 운이 좋다는 건―. 그, 무슨 말씀이신가요, 블라우그룬 님? 하이하 님이 오셔서 그런 것인지―.”
“아니. 그것이 아니다. 하이하 님께서는 반드시 오시겠지만 그 때문에 운이 좋다는 게 아니다.”
“그럼…….”
원시룡은 웃으며 답했다.
“언젠가 하이하 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 ‘나 혼자’서도…….”
그리고 웃으며 보여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신체로 몰려들고 있던 짙은 회색의 기운을.
“놈들 중 한 개체와 싸운다면, ‘나 혼자’서도 1시간은 족히 버틸 수 있다는 것!”
───────────……!!!!
블라우그룬의 몸에 회색빛 기氣의 막이 씌워졌다.
“하물며 지금 여기 있는 인간들과 함께한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
람화정과 아르젠마트도 어느덧 새파란 마나의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의 머리 위에 돋아난 작은 뿔 두 개가 쫑긋거렸다.
“지지. 않아. 나도―.”
“크하하핫, 맞는 말이야! 잘난 척은 저 망할 드래곤이 다 해 먹었지만, 첫 번째 축포마저 빼앗길 수는 없지. 미니스의 머저리가 낄 데, 안 낄 데 구분하지 못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했지만! 퓌비엘에서는 내가 첫 번째― 으읍, 으읍!”
겨우 분위기를 타 한마디 하려던 람화정의 말을 빼앗은 대가로, 루거는 자신의 입 주변이 삽시간에 얼어붙어 버리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으으응븝―. 브브브븝!”
루거의 은 이미 빛나고 있었다.
람화정 ‘덕분에’ 그가 그토록 자랑하고 싶어 했던 스킬 명칭조차 제대로 외치지 못한 일격!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퓌비엘답고, 가장 미들 어스 다운 시작이었다.
마침내 크툴루의 앞에서 터를 잡은 희망의 기운이 쏘아진 셈이었다.
투────────────
──────콰아아앙──!
**
여섯 개의 달처럼 보였던, 구름 뒤에 가려진 여섯 개 눈동자의 ‘위치’가 흔들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행군의 평원에서 활약하고 있는 알렉산더―이지원―베일리푸스가 있었다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건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을 정도의 촉수, 결국 ‘실체가 보이지 않는 적’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크툴루, ‘위대한 옛 존재’의 실체에 데미지가 닿았다.
그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만으로도 을 보고 있던 미들 어스 전원에게는 커다란 힘이 된 셈이었다.
“토, 통한다!?”
“통했어! 통했어! 드레이크 제독님, 루거의 공격이―.”
“우리도 총공격이다. 그러기 위한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
당장 크라벤 왕국의 포신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만이 아니다.
초거대 로봇을 제외하고도 크라벤 왕국이 준비한 것은 많았으며, 바로 그 일을 위한 ‘특별한 한 수’가 드레이크의 곁에서 웃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히히힛, 이런 일을 시도해 보는 건 처음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아버님께선 이미 네 힘을 인정하셨다. 아니, 구체적으론 너와 계약한 그 정령을……. 그 정령이 아버님께 ‘억눌러 왔던 진정한 힘’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고 계시니 말이다.”
드레이크가 말을 거는 자를 향해, 기함 ‘바다뱀’ 호의 승선원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험하디험한 전투선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옷차림.
갑판 난간에 걸터앉아, 배 밖으로 맨발의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는 새하얀 피부의 우드 엘프.
그러나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역시 드레이크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 와중에도 검은자위 하나 없는 그녀의 눈동자이리라.
“흐~응. 원래대로라면 저도 퓌비엘에서 혜인 씨랑 놀아야 하는데 말이죠. 이힛! 하지만 이것만큼은 궁금하니 도와드릴게요. 아 참! 다 되고 나면! 나도 스킬 알려 줄래요? 어차피 정령들의 도움이 있다면 호흡은 가능하지만…… 물고기로 변하는 경험은 특별한 거니까.”
하얀 눈의 정령사, 프레아는 드레이크를 보며 제안했다.
이 와중에도 챙길 것을 확실히 챙기는 그녀에게, 심지어 미들 어스 NPC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근엄하다 꼽을 수 있는 드레이크에게 서슴없이 말하는 그녀를 보며 선원들은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 그건―. 아버님께 말씀드려 보도록 하지.”
“응, 응, 그리고 용궁 출입 권한도! 인어와의 친밀도도!”
“그, 그것 또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예쓰! 좋았어! 그럼 힘 한번 내보겠습니다!”
이렇게나 당돌한 태도를 갖출 수 있는 건 물론 그녀의 출중한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라는 걸, 일반 선원 NPC나 유저가 이런 태도를 취했다간 이미 목이 날아갔을 거라는 걸 알기에, 크라벤의 수군들은 프레아의 가세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샤즈라시안 연방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았다.
“대통령님! 카렐린 대통령님!”
“반탈 님, 곧장 쏘세요. 본 연방이 보유한 모든 수의 자주포를 적에게 조준, 저 ‘거대한 도마뱀’의 움직임에 따라 이고르와 그리고 파이로를 곧장 투입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반탈은 야만 용사 영웅의 후예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그 어떤 국가의 단체보다 기계 장치를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편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알 수 있었다.
샤즈라시안 연방은 보유 랭커나 아웃사이더의 수가 타 국가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약점.
크라벤 왕국의 ‘대공포’와 같은, 샤즈라시안 연방의 ‘자주포’를 총동원해도 저 괴생명체는 죽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저 몬스터를 제압할 힘은 어디에 있는가.
“부족할지도 모르죠. 예. 부족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불안해하는 반탈을 보며 샤즈라시안 연방의 대통령은 웃었다.
그 힘은 어디에 있는가. 적어도 샤즈라시안 연방 소속의 유저와 NPC라면 한 사람을 가리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투둑, 투두두둑…….
옷감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우락부락하게 부풀기 시작한 카렐린의 육신.
“제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샤즈라시안 연방의 대통령이란 즉, [힘의 정점]과도 같은 것.
여타 국가와 달리, 손에 쥔 힘만으로 국가를 꾸려 왔던 카렐린은 결코 보신에만 집중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미니스를 포함한 로페 대륙의 주요 국가들이 모두 전투를 시작했다는 소식은 캐슬 데일의 전투에도 활기를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힘을 낸 계기, 그 자체인 ‘루거’가 바로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먹혔어! 루거의 공격 적중 확인!”
“곧장 대응합니다! 산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분들은 모든 화력을 크툴루에게 쏟아부으세요!”
신나라는 신이 나 외쳤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크툴루의 눈 인근에 꾸물거리던 촉수들이 구름을 뚫고 하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