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990
마탄의 사수 외전 (639)
키드는 손에 쥔 탐지기를 보며 특정 방향을 계속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중이었다.
“방향은 이쪽입니다. 혹시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접촉을 하는 게―.”
“아니지, 아니지. 큭큭, 키드, 이런 건 잘 못하나 보군. 저쪽에서 우리한테 흥미를 갖고 있는 거다. 이럴 때는 쫓아가는 게 아니야. 어이, 양잿물 드래곤! 차라리 뒤로 빠지는 건 어떤가? 놈에게 더 흥미를 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피로도 조금 회복할 수 있을 텐데?”
[시끄럽다, 루거. 네 녀석의 상태가 정상이기만 했어도 지금까지보다 더 한 전류를 흘려 보냈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겠군.]블라우그룬은 이 상황을 가볍게 치부하는 루거에게 여전히 못마땅했지만 지금까지처럼 ‘전류의 감옥’에 그를 가두지는 못했다.
비록 분위기의 가벼움은 무시하더라도 루거가 마지막에 말한 것처럼 ‘피로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블라우그룬 또한 나름대로 동의하는 바가 있었으니까.
슈우우우우우…….
블라우그룬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자 루거는 씨익, 웃으며 키드를 향해 말했다.
“봤냐? 이 양잿물 드래곤도 알고 있을 정돈데 키드 네 녀석이 모르니…… 알 만하군. 연애는 ‘밀당’이라고, ‘밀당’. 우리는 지금 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다.”
미들 어스는 무언가가 묻었다는 측면에서는 티가 날지언정,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피로감 같은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루거의 얼굴은 키드에게 있어서도 초췌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밀당’을 그렇게 잘해서 루비니를 먼저 로그아웃시킨 겁니까.”
지금 그들이 로그인을 유지하고 있는 건 몇 시간째인가.
“그, 그건―.”
“알고 있습니다. 나조차도 현실의 시간으로 벌써…… 33시간 이상 로그아웃 않고 강행군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루비니의 체력으로는 견디기 힘들었을 테고, 차마 먼저 로그아웃한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를 챙겨 주는 행동은 잘 봤습니다. 의외로 자상한 면―.”
“다, 닥쳐! 그게 아니라! 어차피 탐지기의 범위가 더 넓고 정확한 데다! 루, 루비니가 있어 봐야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그냥―. 그리고, 저기, 뭐냐! 탐지기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루비니 스스로가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킬의 발전도 이뤘고―.”
“알았으니 변명은 그만해도 됩니다.”
루거는 중언부언, 루비니의 건강이 걱정되어 일부러 로그아웃시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떠들어 댔지만 키드는 단칼에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조차도 이러한 강행군을 한 적은 미들 어스를 통틀어 몇 번 되지 않을 정도.
불과 얼마 전 ‘오염체’와 ‘변형 오염체’ 그리고 ‘감염체’들을 비롯한 ‘위대한 옛 존재’들을 미들 어스에서 막아 낼 때를 제외한다면 에서는 이 정도로 오랜 시간 접속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과연 하이하의 파트너 드래곤이라 칭할 수 있을 겁니다, 원시룡 블라우그룬.”
따라서 키드는 블라우그룬을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시간으로 33시간이 넘어갈 정도라면 미들 어스 내의 기간으로는 거의 열흘이 다 되어 간다는 뜻이니까.
바꿔 말하면 미들 어스 내의 생명체인 원시룡 블라우그룬은, 거의 선잠 수준의 휴식 외에는 취하지도 않은 채 미들 어스 전역에 자신의 존재감을 떨치기 위한 비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감히 나를 평가하려는 건방진 태도는 벌해 마땅하나, 지금은 참도록 하지.]키드 자신이 보기에도 블라우그룬이 미들 어스 시간으로 5시간 연속의 수면조차 취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토록 노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실질적인 위협을 눈앞에 마주했을 때, 긴장감과 아드레날린, 엔돌핀 등으로 도취된 것보다 훨씬 더 피곤할 법한 행위를 지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크크, 당연히 참아야지. 이라고? 그딴 애송이들한테 혹시라도 졌다간 나는 미들 어스 때려치울 테니까. 물론 양잿물 드래곤 네놈도 하이하한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쪽팔린 일이겠지.”
“그들이 성장을 이룬 이상 우연의 요소는 얼마든 가미될 수 있으므로 그렇게까지 생각할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 참아야 하는 건 맞을 겁니다. 이제부터 상대해야 할 건 나도, 루거도 아닌…….”
뚯─뚯─뚯─뚯─뚯─뚯……!
허공에 멈춘 블라우그룬의 위에서, 키드의 손가락은 차츰 그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전방에서부터 점차 왼쪽으로, 왼쪽으로, 왼쪽으로.
이미 을 들어 올린 루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장전 및 격발 준비까지 끝낸 채 그들은 보았다.
왼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던 키드의 손가락이 다시금 급격히 오른쪽으로 꺾일 때.
“오리엔탈 드래곤이니 말입니다.”
뚜두두두두두두우우우──!
그들의 눈앞에 오색영롱한 색의 알갱이들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키드의 으로도, 루거의 으로도 심지어 블라우그룬의 그 어떤 탐지로도 확인하지 못한 채.
[때 묻지 않은 원시룡…… 그렇군. ‘그때’에는 몰랐건만 아직 이 세계에 남아 있다는 원시룡이 바로 그대였던가…….]그들은 어느새 눈앞에 있는 기다란 외형의 동양식 용龍, 짙은 보랏빛의 비늘을 자랑하는 오리엔탈 드래곤을 마주했다.
* * *
이 오리엔탈 드래곤과 막 조우한 시점에서 또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스,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이 만든 함정입니다만―.”
“그래요, 하이하 씨. 만약 유인책―. 혹시 강제 텔레포트 함정이라도 하나 걸린다면 지금까지의 추적이 완전 무효화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카르카노와 페르낭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도 이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괜찮아요, 괜찮아. 아, 설마 지쳐서 그런 건 아니지? 다들 괜찮죠? 지친 사람은 좀 쉬다 와도 되는데.”
쉬다 가자거나, 그들을 배려하는 태도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언행이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이하가 노리고 한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나는 괜찮은데.”
“나도 당연히 괜찮지. 카르카노, 네 녀석은 힘들면 저~ 뒤에서 쉬다가―.”
“무슨 소리야, 엔정. 지금까지 앞장섰던 건 페르낭 님과 나인데. 문제없습니다, 스승님!”
구 삼인방 사이에서는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세 사람이 전혀 지치지 않은 티를 낸다면, 그들이 미들 어스에 캐릭터를 만들기도 전 이미 명성을 쌓았던 ‘개척왕’으로서도 발걸음을 멈추자는 말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크, 크흠…… 저도 전~혀 상관없으니 쭉쭉 가시죠, 하이하 씨.”
그렇다고 은근슬쩍 불만을 표출하는 것도 기존 인원들에게는 불가능한 점이었다.
이하와 로그인―로그아웃 시점이 달라 이하보다 어쩌면 피로가 조금 더 쌓였을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지금 이하가 보여 주는 능력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완전한 컨디션’이라 해도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
“흐흐, 좋아요. 다들 피곤하지 않으면 쉴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파훼한 함정들이 다 엇비슷했다면서요? 해체 시간도 그렇고. 그럼 ‘달라졌다’라는 걸 보여 줘야 하는 거거든. 이렇게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오리엔탈 드래곤과의 거리가 크게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저쪽도 은근히 즐기는 중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이하는 네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앞장서 달리며 의 탄환을 장전, 전방의 몇몇 군데에 발포를 하는 중이었다.
────, ────, ────!
어떤 의미로는 ‘마구잡이식’이라 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 탄환 한 발, 한 발이 적중하는 장소마다 피어오르는 마나의 알갱이 폭풍이 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페르낭이나 카르카노조차 자세히 봐야 하거나,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한 함정을 이하는 한눈에 발견하여 제거 중이라는 뜻이다.
“……봤냐?”
엔정의 물음에 데베베치는 어물거렸다.
“뭐, 자세히 보려면 발견했을 수도 있지만―.”
“못 봤다는 말을 잘도 둘러 대는군.”
겨우 답변을 꺼내 보지만, 이하가 등장한 이후로는 데베베치도 엔정에게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저런 것도 발견 못 하냐’라는 핀잔은 데베베치가 엔정에게 슬쩍슬쩍 건네는 농담 섞인 진심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데베베치 또한 어디가 함정이고,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데베베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일까.
‘우리 루트에서 떨어진 함정도 저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미친, 저게 인간이야? 눈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게다가 우리는…… 말 그대로 우리가 진행하는 루트의 함정만 해제했어. 그래서 사실상 몇 개 해제 않고도 여기까지 온 거였는데―.’
‘……몇몇 함정은 고대 유적지 중에서도 상급 이상의 유적에서나 나오는 패턴이다. 일반적인 함정 파훼, 트랩 제거 방식으로는 웬만한 모험가들도 안 되는 건데 역시 하이하 씨는…….’
데베베치를 놀렸던 엔정이나 애당초 함정 파훼에 집중했던 카르카노와 페르낭마저도 이하의 압도적인 솜씨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까.
“자, 자! 다들 피곤하지 않다면서? 스태미너 무한 업적은 당연히 있을 테니 ‘스태 부족’으로 다리가 처질 리는 없고! 얼른 속도들 냅시다, 빨리, 빨리! 시간이 생명!”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함정을 발견/파훼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하가 노렸던 내부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것을 뛰어넘어 오히려 그들은 이하에 대한 경외심까지 생길 지경인 것이다.
그렇게 나아가길 불과 30여 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마침내 ‘탐지기’가 반응했다.
“스, 스승님! 이제―.”
뚯─뚯─뚯─뚯─뚯─뚯……!
짧은 간격의 알람에 카르카노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하는 진작부터 알고 있던 점이었다.
“응, 나는 버프가 있어서 이미 느끼고 있었어. 따라잡고 있어. 아니, 따라잡는 정도가 아냐. 이런 속도라면…….”
탐지기 자체가 자신이 만든 아이템이 아니던가.
탐지기보다 성능이 좋은 이하 자신의 버프를 통해, 이하는 느끼고 있었다.
놀라운 점이라면 이하뿐만이 아니라는 것일까.
“하이하 씨, 전방에서 느껴집니다. 오리엔탈 드래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의 원시룡 블라우그룬조차 오리엔탈 드래곤에 대한 그 어떤 단서도 잡아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개척왕’은 과연 명불허전의 능력을 보여 준 셈이리라.
이하는 씨익, 웃었다.
“오? 역시 개척왕은 다르네. 맞아요, 페르낭 씨. 이게 바로―.”
뚜두두두두두두우우우──!
“―오리엔탈 드래곤입니다.”
오밀조밀한 숲의 저편에서, 황토색의 비늘을 자랑하는 동양식 용龍이 나타났다.
[허어, 나를 따라오는 집단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 흥미가 돋아 찾아왔건만…… 하이하, 그대였던가!]원시룡 블라우그룬이 오리엔탈 드래곤의 관심을 끌었다.
4차 전직을 마친 이자, 폭포 등용문에서 비단 잉어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던 이하는, 적어도 현시점 미들 어스의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오리엔탈 드래곤과의 친밀도’와 해당 개체들을 탐색할 수 있는 버프를 지닌 자도 당연히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것!
자신을 알아봐 주는 오리엔탈 드래곤을 보며 이하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리엔탈 드래곤 님.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곧장 본론부터 꺼내어 들었다.
오리엔탈 드래곤은 이하와 페르낭 그리고 구 삼인방의 면면을 빠르게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가, 폭포 등용문의 은인이여. 진리를 찾고자 하는 나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주고 또 배우기 위해 왔는가.]비단잉어 시절에 ‘무홍, 무홍’ 하던 개체 중 누구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호의적으로 답하는 모습에, 이하는 안심하고 물었다.
“저희와 함께 티아마트에게 함께 가 주실 수 있을까요?”
[티아마트…….]황톳빛 비늘의 오리엔탈 드래곤은 슈루루루룩, 몸을 8자로 움직이며 이름을 되짚었다.
이하는 그제야 아차 싶어 황급히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컬러 드래곤의 여왕입니다. 아, 컬러 드래곤이라는 것은―.”
[알고 있네. 티아마트에 대해서도 이미 모든 조사를 끝냈지. 컬러 드래곤의 여왕이자 태초의 공허, 그 무無에서 자신의 존재를 피워 낸 드래곤……. 원시룡들을 포함한 멸절된 생명체들의 흐름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있던 여왕…….]아니, 덧붙이려 했다.
오히려 오리엔탈 드래곤이 이하 자신도 가까스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로 그녀를 설명하는 순간, 입을 다물어야 했을 뿐.
“……네?”
티아마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이하도 알고 있다.
이지원과 블라우그룬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불러왔으니까.
그런데 그게 어떻게 된 일이라고?
‘멸절된 생명체들의 흐름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이하가 생각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 오리엔탈 드래곤은 확실히 선언했다.
[허허, 하지만 기껏해야 몇 가지의 색채, 고작 그런 종류의 발아發芽밖에 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티아마트는 물론이고 메탈 드래곤의 수장, 백금의 드래곤 바하무트 또한 큰 흥미는 없으이. 미안하지만 함께할 수 없겠군.]자신은 티아마트에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당장 페르낭을 비롯한 의 인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