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306
마탄의 사수 (306)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이하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보틀넥이었다.
“또 뭐가 아쉬워서 온 거지?”
“어, 뭐. 그런 셈이죠. 탄도 더 채워야 하고.”
“그래? 그거 잘 됐군. 그럼 나 좀 도와주겠나? 지금 이곳에선 공작工作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나는 다시 헬앤빌로 돌아가고 싶네. 그러기 위해선…….”
슈아악!
기다렸다는 듯 이하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떴다.
[결자해지]설명: ‘기브리드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를 보여 주면 돼. 머리에 철광석만 찬 병신들도 설득할 수 있게끔 말이지. 자네 때문이니까 자네가 좀 도와주게. 물론 맨입으로 부탁하는 건 아니야. 뭘 해야 하냐고? 당연하지 않나! 키메라를 찾아서 조지는 거지!
단…… 내가 원하는 건 키메라야. 그 이상의 위험은 필요치 않네. 단순히 키메라라면 기브리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겠나. 지금으로선 부디 그러길 바라고 있을 뿐이네. 허나 정말로 기브리드라면……. 네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몰라.’
보틀넥은 자신이 기브리드의 수하가 아님을 드워프 족장 의회에 증명하려 한다. 키메라가 발견되었다는 붉은 산맥 너머에서 키메라를 찾고 사살하여 그 증거물을 가져오자.
내용: 키메라의 표피 3가지 이상 습득
보상: 보틀넥 대장간 3회 무료 이용권
실패조건: 기브리드의 소환 시, 사망 시
실패시: 업적―마왕의 앞잡이
대륙 공통 명성 –3,000
드워프 종족 NPC와의 친밀도 –60%
수락하시겠습니까?
“엉?”
이하는 빠르게 내역을 훑었다. 인공 생물체임이 확실한 키메라를 찾고, 그것을 죽이고, 그 표피를 구해 오라는 것.
“키메라 한 종으로는 믿어 주지도 않을 거야. 적어도 세 종은 있어야겠지.”
그것도 세 종의 키메라를 잡아 오라는 부탁이었다.
“키, 키메라가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확실치가―”
“있어. 기브리드의 키메라인지, 다른 놈이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키메라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족장들도 확신하고 있고. 그저 키메라들이 숨어서 못 찾은 것뿐이지.”
“그래도 세 종은― 게다가 맨입으로 부탁하는 게 아니라면서 이건 뭐예요?”
보상은 보틀넥 대장간 3회 무료 이용권.
맨입이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실패 페널티는 대체 뭔가.
‘멸망의 단초에 비하면 한결 가벼운 표현이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잖아? 마왕의 앞잡이라고?’
실패 조건도 사망 하나가 아니다. 기브리드의 소환?
‘내가 무슨 스킬이 있다고 기브리드를 소환해? 뭔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한데.’
당황스런 와중에도 이하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퀘스트 관련 정보,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이름과 위치가 순식간에 뇌리를 스쳤다.
“해 줄 거야, 안 해 줄―”
“이 무료 이용권 말이에요.”
“―응?”
“제가 원하는 거 다 만들 수 있는 거죠?”
“뭐, 뭘 만들려고? 내가 만들 수 있는 거라면…….”
이하에게 반 강제로 덮어씌우려던 보틀넥이었으나, 이하의 눈이 번쩍이자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이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흥정.’
흥정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상대가 설득될 확률이 43% 상승합니다.
보틀넥이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챙길 건 챙기는 거다.
* * *
“난리는 난리구나.”
정보 습득을 위한 잠시간의 로그아웃. 그사이 커뮤니티를 들어간 이하는 귀족鬼族들의 출몰에 대한 유저들의 온갖 불평들을 볼 수 있었다.
〈제목: 아니, 오우거가 날아다니는데 저걸 어떻게 잡냐고!!!!!〉
〈제목: [도움!] 제발 푸어 마을 몬스터 정리 점 제발 제발 제발〉
〈제목: 싸이클롭스가 마법 쓰는 거 보신 분? ㅁㅊㄷㅁㅊㅇ〉
〈제목: 근데 전쟁은 끝난겨? 만겨?〉
〈제목: 레벨 170 전후 2공대 연합 귀족군단 레이드 도전기.txt〉
‘공대 두 개면 60명인데……. 레벨 170이면 결코 낮은 것도 아니다. 일단 나보다 높은 사람들이잖아.’
그러나 글의 내용은 처참한 실패의 기록이었다. 무엇보다 이것을 단순한 레이드로 생각한 게 패착이었다.
보스 몬스터 한 마리를 잡으러 가는 게 아니라, 필드 보스급의 몬스터 수십 마리와의 단체전을 생각하고 움직였어야 하는 법.
귀족 군단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유저들은 곳곳에서 죽어 나가고 있었다.
“정보도 없이 달려들면 저렇게 된다니까.”
아무런 정보 없이 달려들어 몬스터들을 산산조각 내 버리는 루거가 잠시 떠올랐지만 그건 아주 드문 경우의 예외일 뿐이었다.
일반 유저들은 필드 보스급 난이도를 갖고 대규모로 튀어나오는 귀족들을 감당하기 어려우리라.
이하는 고개를 저으며 필요한 정보를 찾았다.
붉은 산맥이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어 봤을까 싶었으나 도저히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건만.
“이럴 줄 알았다니까. 크크, 이럴 줄 알았어. 페르낭의 전도에서 본 곳이었어.”
인터넷에 밝혀진 대륙 전도에 떡하니 그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페르낭의 전도에 비하면 50%의 정밀도도 없는 것이었지만, 수많은 유저들이 힘을 합쳐 가며 만든 지도는 대충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잘만 하면 일타쌍피다.”
이하가 보는 곳은 미니스의 남서부 지역이었다.
브로우리스 퀘스트를 위해서 가야 하는 곳, 그 범위 내에 붉은 산맥이라는 이름이 자그맣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자고 내일 다시 접속해야겠다.’
이하는 지역 정보를 비롯해 필요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은 후, 컴퓨터를 끄고 침대로 휠체어를 밀었다.
잠자리에 누우면서까지 마왕의 조각과 관련한 정보,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한 최적의 동선과 자료들이 그의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근데 마왕의 앞잡이 업적 따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두 번 플레이할 수 있으면, 또는 미들 어스가 싱글 플레이 게임이었다면 이하는 호기심 때문에라도 한 번 도전해 보았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헛웃음을 쳤다.
‘하긴, 그런 머저리가 어디 있겠어. 잠이나 자자.’
누군가는 헛웃음을 치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닿지 않았다.
* * *
“마담 쥬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현지에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린데…….”
성스러운 그릴에 들러 푸른 수염 또는 기브리드의 키메라와 관련된 정보를 취하려 했으나 마땅한 소득은 없었다.
결국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는 뜻.
그러나 이하는 워프 게이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어차피 보틀넥의 퀘스트는 해결해야 한다. 헬앤빌에서 쫓겨나 재료 조달도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는 탄 말고 다른 아이템을 만들어 줄 수 없다고 했으니까.
‘즉, 내가 생각하는 보조 아이템들을 위해서라도 보틀넥 퀘스트를 깨야 해. 어차피 푸른 수염 퀘랑 동선이 겹치니까 잘 된 일이지. 잘 된 일이긴 한데……. 하아아……. 하필이면!’
그게 미니스에 있다는 게 걸렸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누구나 이하를 보며 ‘퓌비엘의 전쟁영웅’과 동일시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드레이크의 코트를 입은 것과 달리 전쟁 기간 내내 불곰 코트를 입고 다녔던데다, 전 세계 동시 송출되는 퓌비엘 논공행상 방송 당시에는 예복을 입었다.
즉, 외견으로 구별하는 사람은 드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얼굴을 기억할 테니까 그게 문제란 말이지. 제엔장.’
자신을 잡으라는 퀘스트가 미니스에서 생성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사소한(?) 걱정부터 삐뜨르나 기타 등등의 인물들에 대한 생각까지 이하의 머릿속에 떠돌았다.
“일단 가자, 가서 생각하자. 오면 다 죽이면 되지.”
철컥.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건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 한 것이었다. 퓌비엘 기여도 1위이자 알렉산더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소문이 미니스 국내에도 파다하게 퍼진 현재, 누가 감히 그에게 덤빈단 말인가.
치요 또한 푸른 수염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느라 이하에게서 잠시 관심을 거둔 상태였기에 특별히 위협이 될 대상은 없었다.
“좋게 생각하면 잘 된 일이잖아? 내가 샤즈라시안 북부를 선택했으면 푸른 수염 찾으러 최북단, 키메라 찾으러 최남단, 아주 그냥 대륙을 종단할 뻔했으니까. 맞아, 맞아.”
이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퓌비엘 최남부의 니타이로 워프 후, 행군의 평원을 가로질러 미니스로 향했다.
파우스트와 크로울리 페어가 지배하다시피 했던 땅은 이제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위험했지. 그 녀석들의 진격 속도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퓌비엘 군은 완벽하게 뒤를 잡혔을 테니까.’
정확히는 에윈이 그들을 멈추게 한 것이었고, 알렉산더를 통해 퓌비엘 군을 몰아넣으려 한 작전이었지만 이하는 거기까지 알진 못했다. 바로 그 작전을 깨부순 장본인이면서 말이다.
행군의 평원을 가로지르고 미니스의 국경을 넘기까지 이하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몇 시간을 뛰고 또 뛰어서 도착한 첫 번째 성, 캐슬 반카울이 이하 앞에 자리하기 전까지는.
이하가 수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반카울의 입구에서도 검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라도 많으면 대충 끼어서 비벼 볼 텐데…….’
퓌비엘의 수도 아엘스톡과 달리 미니스의 캐슬 반카울은 그 정도의 인원이 없었다. 물론 드나드는 사람은 있었지만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정리되어 있어 혼잡하지 않았다.
“수정구에 손을 대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이하 앞의 인원들이 캐슬 반카울 안으로 입장했다. 다가갈수록 두근거리는 심장, 마침내 이하는 자신이 함락시킨 성의 문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우리 특임대 별초가 공성전 당시 선두였었지? 결국 이 문을 파괴한 것도 사실상 나라는 건데…….’
폭탄이 부착된 방패를 만들어 보급하고, 작전을 짠 것도 이하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한 걸음 다가서자, 이미 복구된 거대한 성문 앞의 병력들이 이하에게 눈을 부라렸다.
“소속과 성함을 대시고, 손을 올려 주십시오.”
손을 올리는 순간 전투가 시작될 것인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휴전 중이라지만 서로 간 전투가 아예 금지된 것도 아니니까.
‘6.25 전쟁만 해도 휴전 협정 후 38선을 완전히 정하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단 말이지. 그사이 전방에선 경계선 1m를 전진시키기 위해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데.’
그런 개념처럼 전투를 걸어오면? 텔레포트 스크롤을 써야 할까? 아니면 싸워?
미니스 도시 간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하나의 도시라도 들어가야만 하는데!
“현재 ‘휴전’ 중인 국가 퓌비엘 소속, 하이하입니다.”
휴전을 강조하며 이하가 손을 울렸다. 부우웅―! 수정구가 울부짖으며 붉은빛을 내뿜었다.
이전까지 옅은 푸른빛을 내뿜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에, 이하는 반사적으로 블랙 베스의 케이스를 열며 총기를 꺼내려 했다.
“하, 하이하!”
“여기― 여기엔― 여긴 어쩐 일로……?”
경비병들이 경악하며 두어 걸음 물러서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응?”
방금 전까지 눈을 부라리던 무서운 반카울의 수비 병력들은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 * *
저벅, 저벅. 적어도 이하는 NPC와 유저를 구분하는 확실한 방법을 알아냈다. 자신이 걸음을 걸을 때 그냥 물러서는 사람들은 유저.
“저 사람이 하이하래.”
“저거 때문에― 저놈 때문에 우리 성이 박살 났다면서!? 왜 저런 놈을 들인 거야?”
“쉿! 쉿! 죽고 싶어서 그래? 저 흉악한 눈 봐, 눈, 저게 살인자의 눈이라니까. 눈만 마주쳐도 사람 죽일 놈이 저런 놈이야!”
이런 소리를 하면서 얼굴을 흘긋대는 사람들은 NPC.
상점가의 미니스 소속 민간인 NPC들은 이하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경멸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워프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이하는 미니스의 NPC들에게 괴물 취급을 받았다.
‘명성은 올라갔는데 친밀도가 떨어지니 이런 꼴이 나는구만. 쩝. 워프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