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647
마탄의 사수 (647)
“허, 참. 부담 가질 게 따로 있지. 무슨 부담?”
“그냥. 전ㅈ― 아니, ‘이 일’이 그렇잖아. 만약 퍼지게 되면 내가 미들 어스 사상 두 번째이지 않을까.”
“그럼 좋은 거 아냐? 그런 일에 부담을 갖는 것 자체가 너답지 않다.”
이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길드를 운영해 왔던 기정이지 않은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방향을 향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정의 장점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고민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뭐가 부담되는 건데? 알렉산더의 전례만 봐도 그렇지. 전직 퀘가 있다고 했었잖아. 그게 빡세서 부담되는 거야?”
이하는 자신의 말에도 기정이 한숨을 내쉬자 다시금 물었다.
기정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기브리드를 깨우는 걸 막으래. 적어도 완전체로 부활하지 못하게끔. 형이 추측했듯, 저놈들 지금 4차 웨이브를 가장해서 몬스터를 모으고 있잖아?”
“그렇지.”
“그걸 최대한 각개격파로 깨부숴서 모이지 못하게 만들래.”
“그게 전직 퀘야?”
“응.”
“과연…… 그럼 성공 조건은 ‘완전체 기브리드의 부활 저지’가 되겠구만. 실패 조건은 ‘기브리드의 완전체 부활’이 될 거고.”
이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2차 전직은 2차 전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난이도가 아니네. 기브리드의 부활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나 마찬가진데…… 〈성역화〉에 성공했다지만 그건 몬스터 웨이브를 늦추는 정도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말하자면 〈성역화〉는 준비 작업이었다.
본작업이 바로 기정이 부여받은 몬스터 무리들의 합류를 저지하는 것!
그것에 성공한다면, 웨이브 물량이 충분히 모이지 못한 마왕군 측은 유저들과 NPC들에게 괴멸적 타격을 입히기 어려워지며, 그만큼 영혼의 수급이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확실히 부담은 부담이겠다. 그걸 혼자서―”
“혼자가 아니야. 팔라딘 삼백을 지원해 준대.”
“―깨려면― 엉? 뭐?”
이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담된다고 하여 당연히 기정 혼자서 그 일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클리어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정은 처음부터 ‘너무 힘든 퀘스트’가 아니라 ‘너무 부담되는 퀘스트’라고 말했었다.
다른 건 한 단어뿐이지만 뉘앙스의 차이는 상당했다.
“홀리 나이트로 전직하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도, 팔라딘 삼백 명을 지원해 준다고. 최정예들로.”
“삼백 명? 야, 이번에 미니스에서 온 기사단 중에서도 제일 많은 게 한 삼백 정도 되지 않았어? 게다가 에즈웬의 최정예들을 골라 보내면…… 웬만한 국가에서 보낸 기사단보다 강할 텐데.”
“응. 한 명, 한 명이 거의 세이크리드 기사단급일걸?”
“근데 뭐가 부담이야? 아, 그것들을 통솔하는 게 부담이라고? 삼백까지는 안 되지만 너도 나름 별초 길마잖아. 아, 근데 팔라딘 삼백을 붙여 주면 그건 누구 소속이 되는 거지? 길드를 두 개 운영하게 되는 건가?”
이하는 갑자기 든 궁금증에 중얼거렸다.
기정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부담이 아니지. 형 말대로 별초가 조금 커진 상태라고 보면 되니까. 게다가 아까 그 팔라딘 나이츠들의 단장이라는 사람도 만났거든. 벌써 뻑 갔더라고.”
“뻑이 가?”
“〈이름 없는 팔라딘〉의 재림이니, 어쩌니…… 그거 있잖아.”
기정은 또 한 번 한숨을 휴우우우, 내쉬었다.
교황청의 입구에서 들어갈 때 받았던 깍듯한 도열. 적어도 그것에 준하는 취급을 다시 한 번 받았던 모양이다.
“그럼 통솔에 문제도 없겠구만. 아, 그냥 몬스터들 각개격파 하는 게 힘들까 봐 부담인 거야?”
“아니. 몬스터들한테 들이대는 거야 내가 제일 잘하는 건데. 엉아야, 나 이래 봬도 탱커잖아.”
“야 이― 장난하냐? 그럼 뭐가 부담이라는 건데!”
이하는 더 이상 밀려오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기정 자신이 별초를 이끌고 있다.
2차 전직과 관련되었다고 말한다면 별초의 모든 인원은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할 것이다.
하물며 에즈웬에서 돕기로 한 300명의 팔라딘은?
세이크리드 기사단원 수준으로 실력 높은 팔라딘 삼백이 별초의 힘과 결합된다면 웬만한 몬스터 무리 600기도 별문제 없을 것이다.
즉, 푸른 수염을 직접 만나거나 토온에게 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정의 퀘스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뜻이지 않은가.
이하가 말하자 기정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퀘스트 성공해서 홀리 나이트가 되면, 나는 추기경이 된대. 그중에서도 신성력과 퇴마(退魔) 전투 분야의 대가로.”
“잉? 헐, 뭐야. 대박 출세하는 거잖아?”
“응. 엉아, 얼마 전 로메로 추기경 기억나?”
“기억나지.”
“그 사람이 어떤 권한이 있었는지도 기억나?”
“음…… 무슨 권한이 있었더라?”
이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기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가 진짜 부담이 된다고 했던 것은 단순히 전투의 난이도나 퀘스트의 고충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퀘스트가 성공한 후, 〈홀리 나이트〉라는 직업이 갖고 올 부담에 대한 것이었다.
“신대륙에 파견되는 에즈웬 교국의 모든 인원에 대한 통솔 권한 그리고 교황의 요청으로 신대륙에 파견되는 각국 기사단의 ‘강력한’ 권고 협조 요청을 할 수 있어. 사실상의 통솔 권한이라고 봐도 좋지.”
“뭐, 뭐야? 너 그럼―”
“그걸로 끝이 아니야. 무엇보다 추기경은―”
꿀꺽.
“―교황 사후에 교황으로 선출될 자격을 얻는다고.”
홀리 나이트가 된 기정은, 더 이상 이하가 아는 ‘마스터케이’ 기정이 아니게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형, 내가 홀리 나이트가 되면 미들 어스 세계에서 나보다 권위 있는 유저는 없게 될 지경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말을 마친 기정은 컵을 들어 음료를 들이켰다.
벌컥, 벌컥, 벌컥.
이하는 더 이상 기정에게 할 말이 없었다.
벌써 퀘스트는 수락해 버린 상황에서 ‘일부러 실패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정도로 동생에게 별다른 힘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꽤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 * *
“역시 오염된 세계수의 숲에 정령이 있을 리는 없구나.”
안도의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하는 탄창을 끼웠다.
정령은 없지만 세계수가 오염된 이상, 근방에 몬스터가 있을 확률은 더욱 올라간 셈이었다.
시티 가즈아에서의 모든 볼일을 마친 후, 이하는 즉각 신대륙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당장 엘리자베스의 [나를 찾아 줘] 퀘스트에 집중해야 했으나, 기정이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힘들겠지. 힘들 수밖에.’
일정 수준까지의 권리는 즐겁게 누리면 된다.
그때까지는 권리 뒤에 숨겨진 의무와 책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의무와 책임은 권리보다 두 배, 세 배 이상으로 커지게 된다.
당연히 미들 어스 최고위 사제로 군림하며 누릴 것도 많겠지만, 자신의 플레이 하나, 하나가 미들 어스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항상 고민해야만 한다면?
단순한 점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착한 기정은 매일매일 편한 잠조차 취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티 가즈아의 성주다. 미들 어스 최초의 ‘개인’ 성주라는 타이틀이 있다지만, 그래 봐야 일개 성주야.’
이익을 배분하지 않고 독식할 수 있다는 이점 외에는 오히려 더 불편한 게 많았다.
만약 람화연이라는 특급 도우미가 없었다면, 이하의 시티 가즈아는 여전히 적자 재정 상태를 기록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작 성 하나 가지고도 쩔쩔매는 상황이 많았는데…… 만약 기정이 놈이 홀리 나이트가 되어 버리면…….’
그 부담감은 시티 가즈아의 성주라는 직함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아무런 부담도 없다. 즐기면 된다.
그러나 미들 어스가 ‘일반적인 게임’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했다.
아이템들이 많이 풀리고 전체 통화의 유통량이 많아지며 현금과 교환 비율은 다소 낮아졌다지만, 각종 이벤트전 등의 영상이 신규 유저의 유입을 촉진시킨 덕에 골드의 수요도 대폭 늘어난 상태다.
교환 비율이 아무리 떨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미들 어스의 1골드는 10만 원 전후의 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하가 열심히 현금화를 할 때도 10만 원에서 12만 원을 오갔으니, 사실상 시세 변동은 거의 없는 셈이었다.
‘오히려 안정화에 가깝지. 오락가락하던 시세는 요즘 거의 10만 원 선에 정체되어 있으니까. 미들 어스는 게임이 맞아.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인간 이상의 NPC들이 있는 게임이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게임이 아니다.
막대한 이권이 얼기설기 되어 있는 미들 어스에서 한 사람에게 강력한 권한이 주어진다면?
이하는 알 수 있었다.
기정을 포섭하기 위해 온갖 단체들이 접근하리라는 것을.
“으으음, 어렵다, 어려워! 차라리 정답이 있는 수학 문제 푸는 게 낫― 아니다. 근데 나도 수학은 잘 못했구나.”
저격 교육을 받으며 가장 어려워했던 것도 바로 공식에 의한 탄도 계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하.
그럼에도 쏘는 족족 적중이었으니, 저격반장 김 상사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가르칠 맛 없는 제자만큼 미운 캐릭터도 별로 없을 테니까.
“우선은 페르낭 씨가 알려 준 미스터 앤 미세스 브라운의 집부터 가 볼까?”
[묭묭!]이하는 지도를 펴고 발걸음을 옮겼다.
기정의 일만 걱정하기엔 당장 이하 자신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미들 어스의 재미지.’
가슴이 뻐근할 정도의 걱정과 흰 머리가 돋아나지 않을까 싶은 근심이 있음에도 미들 어스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
‘인생 게임이라는 말 그대로 인생과 게임을 뒤섞어 놓았으니까.’
극한의 난이도와 철저하게 유저의 선택권에 의지한 세계관의 흐름.
마약과도 같은 중독의 원천이 그것이라는 점을 이하는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제 코가 석자인 이하가 엘리자베스를 찾기 위해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신대륙의 서북부 지방의 팔레오 부락 인근은 벌집을 들쑤셔 놓은 소동이 일고 있었다.
* * *
“나는 이게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뭐가?”
주변에서 울리는 기합과 비명, 검이 공기를 베어 내고 방패가 무언가를 퉁겨 내는 소음이 장소를 메웠다.
피와 살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라르크는 긴장하지 않았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못 하는 거야? 방법까지 다 알려 줬는데.”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금빛 잉어 팔레오 부락의 〈제압〉은 사실상 종료된 상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예산이 남아도나? 유저들이야 그렇다 쳐도 NPC들은 죽고 나면 다시 뽑아야 할 텐데. 철저한 준비 없이 뛰어들어 봐야―”
“아니, 아니. 철저한 준비고 자시고. 말이 안 돼. 미니스의 기사단 수준이 엄청나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말이야.”
퐁이 주판을 퉁기며 라르크의 말을 받으려 했으나, 라르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었다.
미니스의 기사단이 어째서 팔레오 제압에 실패했는가?
어중이떠중이 길드라면 이해라도 하겠다. 유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
그들은 정말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간이니까.
그러나 최소 절반은 NPC로 이루어진 기사단이 임무 수행을 느슨하게 한다?
심지어 전멸이라는 사태를 맞을 때까지 그 누구도 도망가지 않았다고?
“무홍홍,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 깜짝이야. 물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푸휴우우우웃───!
금빛 잉어 팔레오의 영물, 쇼어의 입에서 순식간에 물 대포가 쏘아졌다.
해신보다도 거대한 잉어의 입에서 뿜어지는 물줄기의 압력은 돌벽조차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이 있건만!
“〈허리케인 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