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78
마탄의 사수 (78)
“그러면 주인장께서도 아는 게 없다는 거네요?”
“그럼! 아니, 삼총사 해체된 거야 퓌비엘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일 텐데 이제 와서 찾으나 마나지. 죽은 사람들을 찾아 뭐하겠어요. 무슨 소문이라도 듣고 오신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 죽었다는 증거는 좀 나왔나요?”
“증거는 무슨 증거. 실종된 사람이 죽기밖에 더 했겠습니까? 마왕의 조각까지 나왔던 대규모 전투였는데! 사체 수습도 못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방어구점의 주인이 콧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은 아는 것이라곤 뜬소문 정도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예, 그래요. 조심히 가십시오, 손님! 좋은 방어구 가져다주셔서 감사합니다요!”
스킬―흥정의 레벨이 5로 올랐습니다.
‘으음…….’
방어구점을 나오며 기분 좋은 알림까지 뜨지만, 이하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흥정의 레벨도 오르고, 라이징-선 길드원이 드랍한 장비도 성공적으로 팔았건만.
‘확실히 비싼 템들이었고, 잘 팔긴 팔았는데…….’
이하는 가방을 열어 돈 주머니를 넣었다.
우수등급의 방어구 세 개를 팔았을 뿐인데 총 재산이 7골드로 늘어났다.
원래 대략 4골드가 있었으니, 상점의 판매가로도 1골드를 쳐 주는 아이템들이었던 셈.
구입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비쌌을까.
라이징-선 길드를 생각하자면 조금 더 당해도 싸지만, 이하는 통쾌함보다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어렵네.’
정보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퓌비엘 왕국 사상 가장 유명한 머스킷티어라고 하여 실마리 정도는 쉽게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네. 그나마 방어구점 주인은 제2차 인마대전 당시의 참전자라고 해서 어떤 정보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이름은 알고 있는 정도다. 그래 봐야 의상실이나 악세사리점 주인과 같은 뜬소문이 전부였지만.
‘이제 상점 중 남은 곳은 하나.’
이하는 방어구점 맞은편에 있는 상점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딸랑― 종소리와 함께 이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복작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귀를 찌른다.
NPC들과 실랑이라는 하는 유저들, 그 앞에서 구경하는 유저들까지. 과연 인기가 많은 상점답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 어. 하이하 씨. 오랜만에 오셨네.”
“헤헤, 잘 계셨죠?”
“잘 있으나 마나지. 오늘은, 어떻게. 총 좀 바꾸시나?”
“사장님이 깎아 주시면 바로 사 버리죠! 어차피 팔리지도 않는 거 반값에만 해 주시면!”
“큭큭, 하여튼 말은…….”
이하가 뻔뻔하게 능글거리자 사장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을까.
주변에 진열된 검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는 다른 유저들처럼, 이하 또한 좋은 머스킷을 갖고 싶은 건 매한가지니까.
‘근데 너무 비싸.’
7골드라면 예전에 비해 아주 여유로운 수준이지만, 이하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막말로 7골드를 탈탈 털어 봐야 레벨 35 수준에 사용하는 머스킷이다.
물론 이하의 레벨은 겨우 32지만.
‘그래도 나는 민첩만 따지면 벌써 레벨 60대니까. 아니, 근력이나 다른 게 부족해서 레벨 60대의 머스킷은 못 쓰나? 근데 30대 머스킷을 쓰자니 안 내킨단 말이지.’
눈이 높아진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32레벨이면 미들 어스의 초보 딱지나 갓 벗었을 정도밖에 안 되건만.
이하는 싱긋 웃으며 무기점 주인에게 말을 붙였다.
“하하, 오늘은 다른 게 아니고,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응, 뭔데?”
“사장님께서 그…… 예전에, 제2차 인마대전에 참전하셨잖아요?”
여기까지는 거의 공개된 사실이나 다름없다.
방어구점 주인과 무기점의 주인은 서로 경쟁하듯 자랑하는 면이 있었으니, 이런 정보야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쉽게 캐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주변의 다른 유저들처럼 아무런 관심도 없이 무기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저 쓸데없는 NPC 설정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뿐.
“응, 그렇죠. 내가 그때 또, 날아다녔거든. 장난 아니었지.”
“정말요? 그럼 삼총사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네요?”
“삼총사! 미스터 브라운, 미스 엘리자베스, 미스터 브로우리스! 당연히 알죠. 그 사람들 나만 보면 껌뻑 죽고 그랬다니까.”
무기점 주인은 가슴을 팡, 치며 자랑스럽게 답했다.
“역시 우리 사장님이시네. 대단하셨나 보네요!”
“그으럼, 나한테 와서 굽신굽신거리고 그랬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지금 그 말씀은 저희 브로우리스 소장님께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하긴 한데, 그걸 또 그렇게 받아들이면 내가 섭하죠, 하이하 씨.”
이하가 미소 짓자 무기점 주인이 황급히 손을 내젓는다.
적어도 이하가 수도에서 만난 NPC 중 브로우리스의 성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건방진 얘기가 그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몸에 구멍 세 개 정도는 뚫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요 앞 방어구 사장님이 다 말씀해 주셨는데요 뭐. 두 분이서 같이 보급품 전달하고 다니셨다고…….”
“그…… 새끼는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하여튼 맘에 안 든다니까. 근데 보급품 전달이니까 나한테 와서 고맙다는 말을 한 건 맞아요! 오해하지 마!”
“큭큭, 알았고요. 하여튼 제가 여쭤 보고 싶은 건 하나예요. 혹시 삼총사 중 사라진 두 분의 행방에 대해 아실까 싶어서요.”
“미스터 앤 미세스 브라운?”
“네, 그 두 분이요.”
“응, 대단했지. 전쟁통에 피어난 세기의 커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을 거야.”
무기점 주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 표정…… 혹시 뭔가를 아는 걸까?
“그 세기의 커플은 어디로 갔을까요?”
“내가 알 리가 있나. 나야 후방에서 돌아다니기나 했지, 전장에 나선 적은 없으니까. 어차피 전방에 있었어도 그걸 알 수 있었을까? 그 신출귀몰한 두 사람에 대한 걸. 어쨌건 소문이라면 수두룩하지.”
“죽었다는…… 소문요?”
여기도 끝인가.
반쯤은 포기한 채 입을 열었는데 무기점 주인의 답변은 장황했다.
“물론 그것도 있지. 죽었다는 소문이 가장 많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없으니 알 게 뭐야. 온갖 잡다한 이야기가 많았거든. 지저분한 것들도 많았고. 어쨌건 전투 당시에는 그저 죽었다는 말뿐이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니 여러 가지 상황이 계속 퍼지고 퍼져서 말이야. 이건 아예 살아만 있어도 특종감인 소문이니, 이야기꾼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몇몇은 더 가십거리로 만들기 위해 사랑의 도피처럼 꾸며 냈지만, 처음에 퍼진 소문은 그게 아니었지.”
“네? 그럼요?”
살아 있다는 소문도 있다?
“투항. 아니, 배신이라고 해야 할까.”
* * *
“투항? 배신이라뇨? 다른 국가요?”
“다른 국가라고 할 게 뭐 있겠어! 당시는 모든 인간이 연합군이었는데. 행군의 평원 전투까지는 국가별로 이권다툼을 할 새도 없었지. 그 전투에서 지면 인류는 멸절되는 셈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두 사람이 간 곳은?”
“맞아. 인간 측을 배신하고 갈 수 있는 곳은 거기밖에 없지.”
“마왕군이요?”
“쉿, 목소리가 너무 커!”
이건 또 무슨 소리? 무기점 주인은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마냥 목소리를 낮췄다.
어차피 소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무슨 저런 태도까지.
그러나 이하마저 꿀꺽, 침을 삼키자 무기점주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위험하고,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었어. 단순한 항복인지, 적극적인 가담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소문이었지.”
“에이, 근데 말도 안 되죠. 그 두 사람은 머스킷티어였잖아요. 좋은 자리에서 머스킷을 발포하기 위해 적진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무엇보다 왜 마왕 측으로 붙겠어요? 퓌비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머스킷티어들이.”
사뭇 진지한 모습에 이하까지 혹할 뻔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의심밖에 생기지 않는 소문이다.
제2차 인마대전 당시에도 이미 유명한 머스킷티어들이었다.
충분한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생활, 넘치는 명성. 그런 것들을 버리고 마왕 측으로 갔다고?
그러나 무기점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질 줄 알았나 보지! 실제로 행군의 평원 회전(會戰)도 아슬아슬했다고! 거기서 졌으면 지금 대륙을 지배하는 건 마족과 몬스터들일 거야. 그 후의 잔당 처리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 잘 알잖아요?”
확실히 이하도 알고 있다.
바로 얼마 전, 그 잔당 중 하나인 야전 부지휘관, 코볼트 족장 히쥣-카를 죽이고 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렇게 살아남은 녀석들은 지금도 도처에 남아 있었다.
수를 줄였음에도 이 정도니, 그 번식력을 억제할 정도로 몬스터들을 죽이지 못 했다면 확실히 인류는 위험해졌으리라.
“아슬아슬한 전투였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직접 보진 못했어도, 듣는 귀는 있어. 아침 먹고 받은 승전보가 저녁 먹을 때의 패전보로 덮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니까. 사실 우리 쪽이 훨씬 어렵다는 게 총평인 상황이었어. 이긴 게 기적이지!”
“흐음―!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좀…….”
“에헤이, 뭐 믿기 싫음 말고.”
무기점주가 혀를 쯧, 차며 눈을 흘겼다.
‘확실히 흥미롭기는 해. 하지만 증거가 없기는 매한가지. 이래서야 사랑의 도피 설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잖아.’
죽었다는 소문,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소문도 분명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퍼졌으리라.
소문이란 건 으레 그런 거니까.
‘그리고 사랑의 도피 같은 얘기를 떠든 놈은…… 브로우리스 소장이 죽도록 두들겨 팼다고 했으니…….’
지금 이 이야기도 대충 들고 갔다가는 어떻게 될지 뻔하다.
생각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이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재미있긴 하네요.”
“그치?”
“네. 이건 뭐…… 영웅의 배신이잖아요.”
“맞아. 바로 그거야! 그래서 왕궁에서도 쉬쉬한다는 소문도 있었지.”
“아아, 그거 말고요.”
이하가 싱긋 웃었다.
“그럼 뭐? 또 뭐, 다른 게 있나?”
“아니요. 이 이야기는 다 사장님이 만든 거잖아요. 제가 모를 것 같아요? 사장님 정말 작가하셔도 되겠는데요?”
“허! 하이하 씨!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네? 아니, 그렇잖아요! 사장님은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으셨는데요? 요즘은 다 죽었다는 말만 하던데. 솔직히 너무 황당해서 믿으려야 믿을 수가 없어요.”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런 얘기를 하겠나? 이건 진짜 섭하구만!”
이하가 속을 살살 긁자 무기점주가 홱, 돌아섰다.
“에이, 사장님! 그니까요. 저는 당연히 우리 사장님 믿죠. 그런데 또 상황이 그게 아니잖아요. 괜히 이런 말 했다가 거짓말쟁이로 몰리면 어떻게 해요. 요즘 사람들이 뭘 아나요? 의심만 많아 가지고……. 괜히 우리 사장님 욕할까 봐 걱정돼서 그렇죠. 제가 우리 사장님 편인 거 잘 아시면서 그런다.”
진짜 미들 어스 하면서 말빨만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능수능란하게 표정까지 바꿔 가며 얘기하자 무기점 주인의 표정이 금세 풀린다.
심지어 고개까지 끄덕거리며 이하의 말에 찬동하고 있으니…….
“그러게 말이야. 사람들이 뭘 알아야 말이지. 나 같은 참전 용사가 뭐 아무 근거도 없이 얘기하나? 안 그래요?”
“그렇죠. 그러니까, 사장님은 이걸 누구에게 들었다는 말이잖아요?”
이하가 눈을 반짝였다.
근거가 있다?!
“맞아. 내가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내진 않지! 마왕군으로 그 두 사람이 가는 걸 본 사람이 있어요. 나도 그 사람한테 얘기를 들은 거고.”
“진짜요?”
이하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목격자가 있다고?’
갑자기 신빙성이 확 올라간다.
만약 정말 제대로 된 증인이라면 이거 한 방에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건가?
‘브로우리스는 아예 모른다. 작전 투입 이후가 마지막 소식이라고 했지. 즉, 그 증인이라는 사람이 확실하다면…….’
브로우리스가 모르는 ‘마지막 모습’을 전달해 줄 수 있다. 어쨌건 일단 그 증인을 만나 봐야 한다.
“누구예요? 그 목격자라는 사람.”
“크흠…… 에헴. 내가 하이하 씨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거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해도 되나 몰라.”
“에이, 사장님. 우리 사이에 또 그러신다. 내가 좋은 무기 생길 때마다 여기서 팔잖아요.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거고요.”
이하가 투덜대자 무기점주도 슬쩍 물러섰다.
저 태연한 표정. 어쩜 게임이 이렇게 표정까지 디테일하게 만든 건지.
어쩌면 팔짱을 낀 안 보이는 손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하는 생각했다.
“하하하, 이하 씨도 잘 알잖아? 요즘 머스킷티어 보기가 힘들어서 말이야. 크흠, 우리 가게도 뭐…… 거시기…….”
“머스킷 재고가 쌓일까 봐 걱정된다고요?”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 무기 바꾸실 때 안 됐나?”
무기점주가 실실대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