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68)
#재능만렙 플레이어 268화
‘검기를…… 사용한다.’
아테네의 정순한 불꽃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김혁진만의 고유 기운. 이것은 김혁진의 권능 하에 있는 것이며 김혁진이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선화는 다치지 않게. 그렇지만 캐스퍼는 벨 수 있게.’
물리적인 ‘검’으로 공격한다면 불가능한 얘기겠지만, 기운인 ‘검기’로 한다면 가능하다. 한 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김혁진은 확신했다.
‘이론적으로 가능은 해.’
초보구간에서는 절대로 가질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정신력 스탯과 김혁진만의 집중력이 빛을 발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1초가 채 되지 않는 그 시간이, 김혁진에게는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선화를 아예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검기’의 숙련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다면 가능할 지도 모를 얘기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행히 선화는 뛰어난 탱커.’
어지간한 공격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단단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믿는다.’
자신과 선화의 능력을. 한 치의 의심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캐스퍼를 없애기에, 미래의 불확실한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이번만큼 좋은 기회는 또 오지 않는다. 반기명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섞이고 ‘노란 부적’이라는 변수가 더해져서 이런 판이 그려졌다.
‘기회는…… 놓치지 않아.’
리스크는 있다. 선화가 다칠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김혁진은 캐스퍼를 베는 것을 선택했다.
서걱!
무엇인가가 잘리는 느낌이 들었다.
선화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피가 조금 흐르고는 있지만 금방 멈출 수준이었다.
‘무엇인가를 벴어.’
김혁진은 선화의 목 말고 다른 것을 베었다고 확신했다.
풀썩.
선화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캐스퍼가 빠져 나갔다.’
넘어지는 몸을 받쳐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신연서가 빠르게 움직여 선화의 몸을 받쳐주었다. 거신길드원들은 김혁진의 행동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주시하며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김혁진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다.
‘놈이 갈 곳은 하나.’
어쩌면 캐스퍼는 김혁진 자신이 선화를 절대 베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조금은 방심했으리라. 김혁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김혁진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캐스퍼가 이를 악물었다.
‘미친 자식. 그렇게 아끼는 동생한테 진짜 칼을 휘둘러?’
당황한 캐스퍼는 선화의 몸에서 빠져 나왔다. 생각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혁진의 눈빛에 담긴 ‘살기’는 진짜였고, 가만히 있었으면 선화의 몸 안에서 크게 상처를 입을 뻔했다. 그건 싫다.
‘나한테 더 좋은 육체가 저기 있다!’
사실 김선화는 캐스퍼에게 있어서 최고의 육체는 아니었다. 육체 자체가 너무나 훌륭한 것은 맞는데, 마음대로 조종하고 다스리기가 조금 불편했다.
선화의 정신은 많이 치유된 상태였고,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이기에 ‘오빠’인 김혁진의 존재가 너무 컸다. 김선화는 김혁진에게 무한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김혁진이 옆에 있으면 김선화를 흔들거나 김선화의 몸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놈은 내가 먹어치우기 정말 좋은 놈이야.’
그래서 캐스퍼도 결단을 내렸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저 놈의 육체를 손에 넣고 일단 도망치면 된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김혁진 네 놈을 갈가리 찢어주마.’
중간 관리자인 자신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줄은 몰랐다. 사실 캐스퍼는 ‘영체‘이고, ‘육체‘없이는 플레이어에게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하기가 어렵다. 대신 완벽한 육체를 얻는 순간 일반적인 중간 관리자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보인다.’
반기명. 어두운 놈의 정신이 보였다. 갉아먹을 틈이 얼마든지 있는 나약한 영혼의 소유자.
‘빨리 들어가야지.’
그런데 캐스퍼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김혁진이 설계해 놓은 덫이었다는 것을.
* * *
김혁진은 검기를 씌워서 선화를 베는 그 전부터 이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했고, 이 판을 짜고 있었다. 김선화에게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놈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당연히 빠져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선화를 진심으로 베기만 한다면.’
그게 가장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것만 제대로 해낸다면, 김혁진 자신의 생각대로 캐스퍼가 움직여줄 것을 확신했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저곳.
‘새로운 육체를 찾아 빠르게 움직일 거다.’
이사벨을 회수할 시간도 없었다. 땅에 떨어뜨렸다. 0.1초가 귀하다. 땅에 떨어진 이사벨을 다롱이가 얼른 달려가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사이 김혁진이 활을 꺼내들었다. 초보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초보자용 목궁. 큰 기술을 사용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초보자용답게 가볍고 공격속도가 빨랐다. 김혁진이 정말 쉽게 다룰 수 있는 활이다.
궁신지체를 머금은 신체가 캐스퍼를 조준했다.
‘단순 물리공격으로는 힘들어.’
아마 캐스퍼는 그 공격을 흘려낼 거다.
‘검기를 화살에 씌운다.’
해본 적은 없지만 가능할 거다. 김혁진은 검신지체를 가졌으면서 또 궁신지체를 가졌으니까.
‘된다.’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캐스퍼를 향해 쐈다. 유령 형태의 중간 관리자, 육안으로는 식별이 잘 되지 않는 캐스퍼의 등을 향해 화살이 쏘아졌다.
그것을 주시하고 있던 곽태운이 빠르게 바람 마법을 사용했다. 화염계 마법보다 파괴력은 약하지만 정확도와 속도가 빠르다.
굳이 육성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바람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캐스퍼의 등을 뚫었다. 워낙 빠르게 사용한 마법이라 큰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등을 공격당한 캐스퍼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기명을 향해 움직였다. 김혁진은 또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목표는 반기명.’
온전한 반기명의 육체를 먹어치우면, 놈은 반드시 도망칠 거다. 워프 같은 상위계열의 마법을 통해서.
‘네 놈이 지금 도망치지 않은 건 실수다.’
만약 지금 도망쳐 버렸다면? 아마 김혁진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독기를 품은 캐스퍼의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할 테니까. 하지만 캐스퍼는 눈앞의 ‘완벽한 육체’인 반기명을 포기하지 못했다.
김혁진은 연거푸 활시위를 당겼다. 신궁 현정화의 움직임을 관찰했었고, 그 움직임을 따라 해본 적이 있었다. 스킬로서의 ‘연속 속사’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는 있었다.
거의 동시에 쏘아진 화살 네 발에 캐스퍼는 당황했다.
‘뭐야!’
이미 두 발의 화살을 등에 꽂았다. 많이 아팠다. 그래서 화살이 날아드는 것을 느끼고 움찔했다. 아주 잠깐 그 찰나의 순간. 그 ‘움찔거림’이 시간을 벌어줬다.
그런데 김혁진의 화살은 캐스퍼에게 데미지를 가하지 못했다.
‘내 몸을 관통했어?’
김혁진의 기운을 머금은 화살이 아니었다. 그냥 화살이었다. 캐스퍼는 깨달았다. 첫번째 공격. 굳이 기운(검기)을 덧씌워서 사용했던 것은 그 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잠시 움찔하는 타이밍을 벌고 그사이에 반기명의 육체를 공격하는 것.
탁. 탁. 탁. 탁.
네 군데.
양 어깨와 허벅지에 화살이 꽂혔다.
“크아아아악!”
반기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으, 으어억!”
이제 겨우 각성한 레벨 1짜리 플레이어다. 급소를 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그래도 김혁진의 공격은 위협적이었고 강력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생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이었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자신의 몸을 꿰뚫고 신경을 찌르고 몸을 관통하는 이 섬뜩한 기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반기명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다 도대체 뭐야.’
뭔가 꿈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다.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세상이 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 죽는 건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조금 이상했다.
‘아니.’
진짜 이상하다. 정말로 죽을 것 같은 순간이 다가오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 살고 싶어.’
죽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여행을 즐겼었는데. 이제는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죽을 때가 되자 살고 싶었다. 인간이 원래 이렇게 간사한 걸까 싶을 정도였다.
반기명은 바닥에 쓰러진 채 눈앞의 사람들을 보았다.
‘저 사람은…… 설마 그 유명한 송기열?’
한국에서 첫손에 꼽는 유명한 탱커.
‘어라? 그러고 보니.’
아까 불현듯 봤던 사람들이 있다.
‘아까 분명히 저들을 봤었는데……? 왜 처음 보는 것 같지?’
저 거대한 덩치, 튜토리얼 종결자. 아까 분명히 보기는 봤었는데 지금 다시 또 새로 보는 기분이다. 아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다른 사람 같은 느낌. 무엇인가에 홀려 있었던 것 같다.
“으랏차!”
반기명의 육체에 크게 손상이 가자, 캐스퍼는 그제야 상황을 읽었다. 지금 여기서는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이곳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했다.
그리고 모든 힘을 거둬들이는 그 순간을 마상현은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캐스퍼와의 거리를 좁혔다.
“나도!”
마상현의 주먹에는 은은한 권기가 서려 있었다. 김혁진이 사용하는 검기만큼 상위 등급의 기운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체를 공격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팔을 뻗었다.
“형님 앞에서!”
캐스퍼의 몸에 올라탔다. 어떻게든 꽉 끌어안았다.
“활약!”
그 커다란 덩치로 캐스퍼를 깔아뭉갠 뒤, 캐스퍼의 목을 그 커다란 이두박근으로 감쌌다. 뒤에서 목을 감았다.
“한다! 활! 약!”
캐스퍼의 목을 졸랐다. 때문에 캐스퍼는 도망갈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이 하등한 것들이!’
평소라면 눈도 마주치지 못할 것들이다. 지금 이렇게 지치지 않았다면 놈들 모두 머리를 터뜨려버렸을 거다.
‘인간들 주제에.’
지쳤지만 중간 관리자다. 힘을 끌어 올렸다. 무형의 기운이 마상현을 밀쳐냈다. 마상현의 몸이 허공에 붕 떠서 날아갔다.
“컥!”
강력한 바람이 일어 마상현을 날려 버린 것 같았다. 곽태운이 바람을 일으켜 마상현의 몸을 받아 주었지만, 마상현의 무게를 모두 받아주지는 못했다.
쾅!
마상현의 몸이 벽에 부딪쳤다. 벽에 금이 갔다.
쿨럭. 쿨럭.
마상현이 꽤 큰 충격을 입은 듯 쿨럭 거렸다.
캐스퍼는 자신이 도망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믿었다. 저놈들도 잠시 주춤하겠지. 무리해서 큰 힘을 끌어내기를 잘한 것 같다. 캐스퍼는 그렇게 착각했다.
김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네가 우리처럼 연약한 존재였다면.”
자신보다 강력한 몬스터를 레이드해야 하고, 어려운 시나리오와 퀘스트를 깨나가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머리를 많이 써야 했을 거고 경험도 많이 쌓았을 거다. 그렇지만 캐스퍼는 아니다. 캐스퍼는 중간 관리자였고, 직접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경험은 다르다.
그와 동시에 강상구의 ‘불채찍’이 날아들었다. 강상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곽태운처럼 빠르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는 없다. 그건 곽태운의 몫이다. 대신 조금 더 큰 파괴력의 마법을 준비했다. 혹시라도 타이밍이 나왔을 때. 캐스퍼를 치기 위해서.
불채찍이 캐스퍼의 몸을 감싸고 활활 불타올랐다. 김혁진이 말을 이었다.
“지금 그렇게 큰 힘을 쓰지는 않았을 거고.”
캐스퍼는 도망치지 못했다. 이미 너무 지쳤다. 강상구의 불길에 저항하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팀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겠지.”
김혁진이 ‘이형환위’를 사용했다. 승기를 잡았다. 이때가 기회다. 역시 호흡을 오래 맞춰온 길드원들답게 각자의 역할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수행해 줬다.
‘이 타이밍을 위해.’
결국 캐스퍼를 완벽하게 없애 버리기 위해서는 큰 기술, 큰 힘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팀원들이 시간과 틈을 만들어 줬다.
캐스퍼가 불채찍에 감싸진 채 바닥을 뒹굴거렸다.
“이, 이 개 같은! 저리 꺼져!”
다롱이로부터 이사벨을 건네받은 김혁진이 캐스퍼의 몸 위에 올라탔다.
강상구의 불채찍은 김혁진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뜨겁기는 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두 다리로 캐스퍼의 몸을 꽉 조였다.
이사벨을 역수로 들었다.
“잘 가라.”
변수를 없애기로 했다. 김혁진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최강의 능력을 꺼내들기로 했다. 비록 송기열이 보고 있는 자리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사벨의 검신이 검은색 불꽃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