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556)
#재능만렙 플레이어 556화
“그쯤 하지?”
그와 동시에 강선일이 몸을 뒤로 피했다.
푸른색 검의 잔상이 남았다.
검을 휘두른 사람은 베른이었다.
베른이 말했다.
“빠르시네요.”
강선일은 베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베른이 빠른 움직임과 강한 무력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저 뒤의 여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순혈의 검제.”
김혁진이 뒤를 쳐다보았다.
사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아차렸다.
‘이사벨!’
늘 보고 싶었던 얼굴이 저기 있었다.
뚜벅뚜벅.
이사벨이 천천히 걸어왔다.
이사벨이 말했다.
“내 남편 몸에 작은 생채기라도 냈다가는, 넌 여기서 죽었어.”
김혁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강선일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글쎄. 네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쓰러져있던 라푼델도 이사벨 쪽을 쳐다보았다.
‘누구……?’
아직도 머리가 아팠다.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저 여자의 존재감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워.’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존재 자체가 아름다웠다.
‘누구지?’
한 걸음.
한 걸음에 거대한 존재감이 묻어 있었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거인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감히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는 거대한 거인.
‘거인?’
심장이 쿵! 쿵! 뛰었다.
‘거인.’
환청이 또 들려왔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딸아. 네 진정한 자아를 되찾거라.
한편, 이사벨이 검을 뽑아 들고 말했다.
검 끝으로 강선일을 겨누었다.
“내 남편이 다치지 않았음에 감사하도록 해.”
김혁진은 느낄 수 있었다.
‘저 강선일이…….’
마왕이라 불리기에 한 점 부족함이 없는 저 강대한 생명체.
유명 수호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대화를 나누는, 저 격이 다른 존재가 긴장하고 있었다.
김혁진 자신을 상대할 때와는 자세와 태도가 많이 달랐다.
강선일의 모습에서 아까와 같은 여유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제가 베겠습니다.”
그사이,
베른이 거리를 좁히며 파고들었다.
“꽤 괜찮은 부관을 들였구나.”
강선일이 요리조리 몸을 숙이며 베른의 검을 피해냈다.
김혁진은 베른의 검로를 읽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안 보여.’
베른의 검술은 빨랐다.
지금 김혁진의 눈으로는 그 경지를 정확히 읽어내기 어려웠다.
‘저것이…….’
검림의 검.
순혈의 검제를 모시는 부관의 검술.
그 경로를 정확히 읽지는 못하지만, 눈에는 계속 담았다.
‘최대한 정확히 봐야 해.’
지금은 읽지 못한다.
그러나 훗날에는 읽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저 움직임.
저 마나 흐름.
저 궤적.
저 모든 것들이 김혁진 자신의 자산이 되어줄 거다.
지금 보는 모든 것들을 ‘복기분석시’로 다시 살펴볼 수 있을 테니까.
강선일의 몸에서 검은색 기운이 일렁거렸다.
“성가시게 하는군.”
살기가 폭사되었다.
김혁진과 상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 뿜어졌다.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거인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번쩍!
검은빛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보지 못했다.
강선일이 어떤 힘을 사용한 것 같았다.
이사벨의 몸이 움직였다.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가볍게 휘두른 그 한 수에, 태산을 쪼개고 하늘을 가르는 거력이 담겨 있었다.
순간,
검은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에 거미줄처럼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와장창!
강선일의 검은 기운이 깨졌다.
어느새 이사벨이 베른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사벨…… 님. 죄송합니다.”
“됐어. 수고했어. 애초에 네 상대가 아니야.”
베른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김혁진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보이지도 않았다.
강선일과의 격차가 엄청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
강선일이 말했다.
“나타났군, 순혈의 검제.”
“내가 나타날 줄 미리 알았던 것 같은 말투네.”
“진짜로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강선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사벨을 향해 물었다.
“너. 도대체 어디까지 진심인 거냐?”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히 하룻밤의 장난 같지는 않고.”
강선일이 크하하! 웃었다.
한참 동안 웃던 강선일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진심이군.”
“말했잖아. 남편의 몸이 조금이라도 다쳤다면, 나는 너를 죽였을 거라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불가능할 것도 없겠지.”
“공멸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너는 검림을 사랑하고 있을 텐데.”
이사벨이 뒷쪽의 김혁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맞아. 나는 검림을 사랑해.”
오라버니인 이센에게 약속했다.
검림을 누구보다 번영시키겠다고. 역사상 가장 치졸했던 검제로 기록될 오라버니를 위하여, 이사벨은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렇지만, 나는 김혁진을 더 사랑해.”
“미쳐 버렸군. 검림을 위해 태어난 수호자가, 한낱 인간에게 이토록 빠져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진심으로 경고할게.”
이사벨과 강선일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내 남편에게 해를 가하는 순간.”
“…….”
“내가 너를 죽일 거야. 검제의 이름을 걸고서.”
강선일이 피식 웃었다.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이사벨과 강선일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강선일이 먼저 등을 돌렸다.
“다음에 만나자, 김혁진.”
* * *
베른은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왜?’
이사벨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사벨의 눈빛에 담긴 사랑을 읽었다.
‘저는 한 번도, 그렇게 봐주신 적 없잖아요.’
이사벨과 김혁진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다.
‘인간.’
약한 인간.
강선일이란 존재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인간.
나약한 인간.
약해빠진 인간.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인간.
‘왜 이사벨 님은…….’
이사벨이 왜 저 남자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다.
베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김혁진을 더 사랑해.
검림을 다스리는 순혈의 검제.
검신의 지위에 오른 이사벨이 할 말은 아니었다.
검림의 왕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베른이 보는 이사벨은 완벽한 왕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완벽하지 않았다.
‘이사벨 님. 당신은 완벽한 나의 왕이셔야 합니다.’
김혁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저 인간이, 당신을 불완전하게 합니다.’
순간,
김혁진과 눈이 마주쳤다. 베른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평정심을 되찾았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연인답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김혁진이 입을 열었다.
“이사벨. 우리는 얼마나 같이 있을 수 있어?”
“이 필드가 유지되는 동안. 앞으로 10여 분? 물론.”
이사벨이 세 명의 그림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
“저분들이 도와준다면 조금 더 오래.”
순간,
알림이 들려왔다.
[‘소음의 지휘자’가 ‘순혈의 검제’를 돕기로 작정합니다.] [‘영원의 투사’가 동참합니다.] [‘영면을 선택한 거신’이 동참합니다.]김혁진은 황당한 듯 웃었다.
“이런 것도 돼?”
“응. 저들의 아주 친한 친구 덕택에 네가 위험해졌잖아.”
“…….”
“위험했어.”
“응?”
“하마터면 쟤들 죽일 뻔했지, 뭐야?”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명의 인영이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10여 분 정도 더 늘어났다.
대략 2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김혁진이 생각에 잠겼다.
“아주 친한 친구라.”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강선일과 저 세 수호자 간에는 커다란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더 안 물어봐?”
“물어봐도, 어차피 시스템에 의해 걸러질 거야.”
강선일에 대한 것이 궁금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의미가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이제 대충 감이 온다.
시스템이 어느 정도의 정보를 허용하는지.
강선일의 정체나 목적에 대해서는 최대한 비밀로 감춘다.
‘그런 의미에서…… 잭슨의 말은 거짓이겠지.’
잭슨의 말이 진실이었다면,
‘시스템이 어떻게든 잭슨을 막았을 거야.’
그러나 시스템은 잭슨을 막지 않았다.
잭슨의 말이 거짓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소리였다.
김혁진이 물었다.
“검림의 일은 어때?”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어.”
“부관이 잘 도와줘?”
“응. 꽤 유능해.”
“그렇구나.”
김혁진의 감각안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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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진실된 분노/적개심/진정한 사랑
요약 : 완벽한 왕을 잃은 검제의 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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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찰나였지만 읽어낼 수 있었다.
‘지금 내 수준으로 베른의 상태를 읽어내는 건 불가능.’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베른의 상태를 읽어낼 수 있었다는 건, 베른이 그만큼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소리였다.
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감정을 말이다.
“플레이어로서는 네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을 거야.”
“……응?”
“그렇지만 남편으로서는 한마디를 해야겠네. 둘만의 대화니까, 우리 둘만 들을 수 있도록 해주겠어?”
“무, 무슨 말인데?”
이사벨은 조금 긴장했다.
김혁진 앞에서의 이사벨은 강선일 앞에서의 이사벨과 사뭇 달랐다.
지금의 이사벨은 순혈의 검제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인 같았다.
그 모습에 베른은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다.
이사벨이 손을 한 번 휘둘렀다.
천부적인 마법 재능을 타고난 이사벨답게, 한순간에 공간이 격리되었다.
거기에 더해 한 명의 수호자가 힘을 보탰다.
[‘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은밀한 다과회’을 준비합니다.]화살 쏘는 아기천사가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네 부관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대.”
“그, 그건…….”
“왕에 대한 경외라고 생각한다고?”
“…….”
“아니야. 부관은 진심이던데. 내 감각안에 읽힐 정도였어.”
“그, 그건…….”
이사벨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죄지은 게 없는데, 괜히 죄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남편도 나 없을 때 나쁜 짓 했잖아.”
“나쁜 짓?”
김혁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정확히 말해봐.”
“아까 저 밖에 쓰러져 있던 여자애. 안아줬잖아. 엄청 오래.”
“안아줬다고?”
“으, 응.”
“엄청 오래?”
김혁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역시 그렇지?”
김혁진은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수호자들의 농간이었던 것 같다.
영상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김혁진이 라푼델을 안아준 것처럼 만들었겠지. 그 영상을 본 이사벨이 게이트를 열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김혁진은 순간 멈칫했다.
‘그런데 과연. [화살 쏘는 아기천사]를 비롯한 다수 수호자들의…… 단순한 협잡질이었을까?’
과연 그랬을까?
만약 게이트를 여는 것이 쉬웠다면, 애초에 이사벨이 열고 들어왔을 거다.
이사벨도 김혁진도, 서로를 늘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평소에는 못하던 걸 갑자기 했다?
수호자들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는 뜻이 된다.
‘단순한 협잡질이 아니라…… 이사벨을 이곳으로 불러오기 위해 그들이 안배를 한 건 아닐까?’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왜 강선일은…….’
강선일에게서는 단 한 줌의 아쉬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이곳에서의 목적을 모두 이루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겉모습으로 속을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인 것은 맞다.
그러나 강선일을 여러 번 마주치면서 조금은 파악했다고 자부한다.
강선일의 목적은 단순히 ‘궁극의 투사’를 빼앗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죽이는 것도 목적은 아닌데.’
죽이려고 했다면 진작에 죽였을 것이다.
애초에 강선일이 ‘투사들의 전당’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을 해주었었다.
먼저 단서를 제공해 준 셈이었다.
‘이상한 점들이…… 있다.’
이사벨이 옆에 있으니 상황이 많이 안정되었다.
“잠깐만, 이사벨.”
“응.”
이사벨은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김혁진의 품에 파고들었다.
강선일을 상대하던 검신은 이 자리에 없었다.
김혁진을 꽉 껴안고 냄새를 킁킁 맡았다.
김혁진은 반쯤 무의식인 상태로 이사벨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마음이 안정되었다.
세상을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좋다. 남편 품 따뜻하네.”
김혁진의 품속에서, 이사벨이 행복하게 웃었다.
김혁진의 가슴 속에도 풍만한 행복감과 만족감이 차올랐다.
아직도 ‘투사들의 전당’ 속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되었다.
안정된 상태가 되자 하나둘, 이상한 점들.
아까까지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