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77)
#재능만렙 플레이어 677화
느껴지는 검림인의 기운.
베른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거신길드원들과 안서희. 그리고 용돌이와 거인들까지 긴장하며 베른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김혁진은 이자의 기운이 누구의 것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베른.’
이사벨을 흠모했었던 부관.
베른은 스스로 이상향을 설정했고, 이사벨을 그 안에 끼워맞췄었다.
이사벨이야말로 진정한 절대자이며 검림을 다스리는 검제라며 찬양했었다.
‘이사벨을 이사벨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틀을 만들어 끼워맞췄지.’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짓된 질서를 만들어 끼워맞췄던 누군가와.
김혁진은 눈을 감고 회복에 집중하며 입만 열었다.
“겔론과 계약이라도 맺은 건가?”
“글쎼. 계약이라면 계약인가.”
베른의 오른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이 한자루 들려 있었다.
“네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약조를 하기는 했지.”
베른의 몸에서는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김혁진이 여러번 느껴봤던 기운이었다.
영웅력을 소모하지 않으면 공격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저 괴이한 힘.
마왕군들이 사용했던 저 힘은, 겔론이 만들어낸 힘이리라.
“그게 오늘이어서 좋구나.”
베른이 거인들 앞에 섰다.
“나를 막을 테냐?”
순간, 거인의 목이 잘렸다.
베른의 움직임을 본 사람은 신연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신연서의 몸이 굳었다.
‘지금 자른 게 아니야.’
아까 등장함과 동시에 가까이 있던 거인의 목을 잘랐다.
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던 것은 그 이유였다.
쿵!
거인의 몸이 땅에 쓰러졌다.
플레이어들은 상대조차 하기 어려운 거인이 너무 쉽게 죽어 버렸다.
순간, 라푼델은 분노하였으나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김혁진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대기해.
이는 시스템이나 귓속말 구슬 등을 사용한 귓말이 아니었다.
김혁진의 의지가 라푼델의 머리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김혁진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강하다.’
검제의 부관인 베른은 원래부터 강자였다.
이사벨이 직접 부관으로 발탁했을 정도의 천재.
그런 그가 겔론의 힘을 이용하여 훨씬 더 강해졌다.
‘목숨을 걸고 싸우면 지지는 않을 거야.’
지금은 전력을 다해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는 중.
1초 전의 김혁진과 1초 후의 김혁진은 달랐다.
거인군단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김혁진과 지금의 김혁진은 완전히 다른 김혁진이었다.
‘그러나…… 베른과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게 끝이 아닌 것 같아.’
전력을 다하면 안 될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지껏 이런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고, 진왕이 된 지금은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겔론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나귀 장인]과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적해 왔던 겔론이다.’
여기까지 오는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온갖 히든 피스와 시나리오들, 정교하고 교묘하게 숨겨진 안배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끼워 맞추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겔론 역시 그에 준하는 준비를 해왔다는 뜻일 터.
단순히 ‘초월 마법’ 하나만을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른도 그 사실을 아는 것 같은데.’
베른은 분명 ‘김혁진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행동을 보면 약간 이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힘이 회복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공격하지 않고 있어.’
베른의 목표가 단순히 김혁진 자신의 목숨 뿐이었다면, 한가로이 대화 따위는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김혁진 자신을 발견한 순간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겠지.
‘노리는 바가 따로 있어.’
베른이 말했다.
“나는 영혼을 팔아 순혈의 검제를 구원하기로 하였다.”
베른이 손을 뻗자 겔론의 지팡이가 베른을 향해 날아들었다.
베른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내버리고 지팡이를 들었다.
검림인이 마탑주의 지팡이를 든 것이다.
“너만 없으면 순혈의 검제께서는 원래의 고고하신 모습을 되찾겠지.”
“어지간히도 고고함에 집착하는군.”
김혁진은 베른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네 그릇에 겔론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냐?”
“그걸 이제야 눈치챘나? 진왕치고 눈치가 별로인데.”
베른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해는 한다. 여유로이 말을 하는 척하면서 모든 감각을 온통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
마탑주 겔론은 소멸되지 않았다.
그 역시 오늘을 준비해 왔고 소멸을 피해낸 것 같았다.
흩어져 있던 존재값이 지팡이를 매개체로 하여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베른의 눈이 시꺼먼 색으로 물들었다.
“겔론의 영혼에 베른의 육체의 조합. 아름다운 조합 아니겠느냐?”
순간, 김선화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베른 혼자서 말을 하는데,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겔론과 베른의 목소리가 한 데 섞여서 튀어나왔다.
분명히 한 사람이 서 있는데 두 사람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김혁진이 말했다.
“확실히. 그 조합은 까다롭겠어.”
마탑주의 영혼에 베른의 육체라.
겔론이 진왕의 탄생을 대비하여 준비해온 최후의 안배인 듯 했다.
“그래서 그토록 인체실험을 하면서 [마왕]을 탄생시켜온 것이었군.”
마왕군의 끔찍했던 인체실험.
그 실험의 목적은 단순히 ‘사기(死氣)’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을 위하여 겔론은 끊임없이 인체실험을 해왔던 것 같았다.
“지금 당장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네게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고.”
당나귀 장인의 안배가 완전무결하지는 않았듯, 겔론의 안배 역시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 듯했다.
베른이 씨익 웃었다.
“네 말이 옳다.”
보라색 장막이 베른의 몸을 뒤덮었다.
지팡이가 요사한 빛을 내며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뿜어냈다.
베른의 모습이 장막에 가려져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게도 시간이 필요하지.”
영혼과 육체의 융합이 그리 간단한 작업은 아닌 듯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당나귀 장인의 안배에 의하여 완성된 진왕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느껴봐야겠어.”
겔론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정면 대결이었다.
김혁진에게도 회복할 시간을 주면서 자기 스스로도 강해질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겔론의 목표인 듯했다.
김혁진은 눈을 감았다.
‘만 분의 일초까지 철저하게 계산했을 것이다.’
겔론은 여지껏 진왕의 완성을 두려워했다.
어떻게든 빠르게 결판을 보고 싶어 했었다.
그러니까 지금 겔론의 선택은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완벽히 회복하기 전, 융합이 끝날 거야.’
그 것이 불과 1초라고 해도,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김혁진과 겔론 정도의 절대자들에게 1초는 일반적인 1초와는 달랐으니까.
결판을 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회복하기 전 겔론과 베른은 융합작업을 끝낼 거고 이쪽을 몰살하려 들 거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혁진은 조금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10초.’
딱 10초 정도만 시간을 벌면 이길 수 있다.
겔론의 재탄생으로부터 10초만 시간을 벌면 된다.
‘가능한가?’
거신길드원들과 거인들이 그걸 해주어야 한다.
‘아니. 안 돼.’
저들의 전력으로는 3초가 한계다.
그렇다면 나머지 7초의 시간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던 그 시점, 강상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또, 음청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겠구만.”
그의 몸에서 불길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놈 죽이면 되는 거지?”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강상구 스스로도 알고 있다.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베른은 절대자였고, 그의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왔다.
강상구의 주변을 둘러싼 마나는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죽이지는 못해도 방해는 할 수 있잖아.”
보라색 마나의 장막을 뚫을 수는 없다.
그래도 정신사납게 방해는 할 수 있었다.
“슈발, 내 목표는 가늘고 길게 사는 거였는데. 아무튼 혁진아. 우린 시간만 끌면 되는 거지? 그럼 뒷일은 부탁한다?”
강상구는 김혁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지금의 김혁진에게는 대답할 여유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대답을 강요할 생각도 없었다.
곧바로 마나를 일으켜 베른을 공격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사용했다.
“열화지옥.”
거기에 곽태운이 힘을 보탰다.
“바람오름.”
둘은 유명한 콤비였고, 둘의 마법은 한데 섞여 근정전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아라테사에 거의 필적할 정도의 열기를 내포한 불길이 보랏빛 장막을 덮쳤다.
김혁진은 이를 악물었다.
강상구의 말대로, 베른을 방해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베른에게서 예리한 살기가 느껴졌다.
‘베른이 깨어나는 순간…… 강상구부터 죽일 거야.’
김혁진이 보는 모든 미래에서 강상구는 목숨을 잃었다.
김혁진은 이를 악물었다.
거신길드원들이 모두 합심하여 베른에게로 달려들었다.
보라빛 장막은 거신길드의 공격을 모두 튕겨내거나 반격하면서 베른을 보호했다.
김혁진이 보는 미래 속에서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젠장.’
환상이 보였다.
김선화는 그래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버리지 않아줘서 고맙다며 눈을 감았다.
신연서는 대장이랑 플레이를 같이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하며 죽었다.
강상구는 자양동 방화 마스타를 기억해줘라, 라고 말하며 죽었다.
곽태운은 형과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제게는 영광이었다고 말하며 죽었다.
마상현은 ‘형님! 마무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치며 죽었다.
슈르트는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며 편안한 표정으로 죽었다.
용돌이는 ‘내가 1000살만 더 먹었어도 저런 것쯤은 주옥밥인데!’라고 외치며 죽었다.
라푼델은 ‘쬐끔이라도 은혜를 가플 수 있는 것 가타여’라고 말하며 죽었다.
안서희는 제 주인이 오빠라서 좋았다라고 말하며 파괴되었다.
진왕이 본 미래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의 강물이 흘러내렸고 허상 속 베른이 실실대며 예언을 읊었다.
[피를 원하는 이가 있어 피의 강물이 흐를 것이요.] [제 아이를 잃은 주인이 슬피 울며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리라.]그 예언은 세례자에게만 적용되는 예언이 아니었다.
김혁진에게도 닥칠 수 있는 예언이었다.
필사적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회복에 집중했다.
‘저들의 공격으로 2초는 더 벌었어.’
7초 중 2초의 시간을 벌었다.
그러면 5초의 시간이 남는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5초의 시간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미로를 끊임없이 돌파해냈던 김혁진에게도 오늘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도 제 할 일을 위하여 왔습니다.”
태극방패 송기열이었다.
그를 비롯한 태극방패 길드원들이 근정전에 당도했다.
그들은 비록 거신이나 김혁진에 비하면 훨씬 약했으나 베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이런 거사에 우리를 빼놓으면 섭하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일 끝나고 김혁진 놈과 한 판 떠야겠어.”
명예 길드원이자, 중국 서버에서 라오위를 돕고 있던 등평과 린하이도 근정전에 도착했다.
등평이 뇌전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 힘을 받아 린하이가 뇌전이 흐르는 창을 쏘아냈다.
반기명이 언령을 사용하여 그 공격을 도왔다.
“어린 아이들이 제법이구나. 말년이 심심하지 않아 좋아.”
반기명의 스승인 학사 단천학까지 힘을 보탰고, 미셸사단과 크로우도 모습을 드러냈다.
“저희도 함께하죠.”
미셸은 뛰어난 군주였고 김혁진을 대신하여 이 곳에 모인 모든 길드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그 밖에도 독인 정창인, 독마녀 천수지가 독을 이용하여 마나의 장막을 괴롭혔고 강철남매가 이끄는 날개 길드원들도 힘을 보탰다.
겔론은 혼자였으나 김혁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의 힘은 미약할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저들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혼자서 모든 걸 이고 갈 필요는 없어요.”
신궁 현정화도 활을 들고 나타났다.
현정화는 마크, 슈르트와 함께 콤비를 이루어 활로 다른 인원들을 지원했다.
“우리 빼놓으면 섭섭하지 않겠냐?”
“저희도 엄연히 거신 아니었습니까? 이러면 섭하죠.”
이탈리아 서버에 있던 투왕 벨라와 전신 살바레토까지 합세했다.
이탈리아의 랭커들을 다수 이끌고.
둘은 계약 수호자를 잃고 힘이 약화되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자원자들이 근정전 필드로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김혁진의 회귀 전, 해상여제라 불렸던 8영웅 중 한 명 강소연도 있었다.
그녀는 김혁진과 어떠한 관련도 없었지만 스스로 근정전으로 향했다.
이토록 많은 인원들이 몰려들었으나 혼란은 없었다.
피에트로와 검은나비가 인원관리를 도맡아서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피에트로는 눈 앞에 보이는 환상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철저히 이득으로 움직이는 검은나비지만, 오늘은 무보수 노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