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131
131. Waterland in Slimeland.
한때는 인터넷에서 악플이나 남겼고.
한때는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모든 성과를 빼앗겼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기업의 핵심 인물이 된 어병욱.
그는 통장을 확인했다.
생전 자기 통장을 장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 당당히 적혀 있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예전에는 돈을 벌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는데.
지금은 돈을 쓸 일이 없다.
현존하는 그 어떤 제품을 가져와도 그 이상을 슬라임랜드에서 체험할 수 있으니까.
마더 내부 시설의 개조 권한도 있기에 체험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만들어서 경험해볼 수도 있다.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도 체험할 수 있다.
명품 같은 것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보다 편한 옷이 없기도 했고 과시 같은 것을 할 생각도 들지 않았으니까.
과시욕도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나 갖는 거지.
어병욱이 인정받고 싶은 대상은 라임 사장님과 동료 직원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걸치고 있는 옷이 총액이 얼마가 되든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을 거다.
자동차도 필요 없었다.
숙소가 슬라임랜드 내부에 있는데 자동차가 왜 필요할까.
외근 나갈 때는 으로 코팅된 자동차를 빌릴 수 있다.
그 좋은 차를 두고 뭐 하러 차를 살까.
집 같은 것도 괜히 샀다가 라임 사장님에게 “집 산 거 축하해요. 이사 갈 건가요?” 같은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사고자 하는 마음이 싹 가셨다.
죽을 때까지 슬라임랜드에서 나가기 싫었다.
‘기부나 할까.’
예전에는 절대로 떠오르지 않았을 발상이다.
남에게 줄 천 원이 있다면 그것으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라임 사장님의 행보를 바로 옆에서 보다 보니 사고방식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라임 사장님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은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 좀 찾아봐야겠네.’
라임 사장님께서 주신 돈을 헛되게 쓸 수는 없다.
어병욱은 철저히 조사한 뒤 기부하기로 다짐한 뒤 휴식을 마쳤다.
어병욱의 업무는 연구개발.
꿈과 촉수와 희망과 슬라임의 나라 슬라임랜드는 나날이 발전하는 장소다.
이미 큼지막한 놀이시설은 여럿 준비됐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호평받은 시설은 왜 호평받았는지 조사하여 다음 시설에도 반영한다.
불평이 많은 시설은 왜 그런지 조사하여 개선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업무다.
라임 사장님께 인정받으려면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다음 과제에요. 이번에는 한 달 정도 워터랜드를 열어서 운영할 생각이에요.”
이런 식으로 갑작스러운 과제가 내려왔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둬야 한다.
사장님께서 산을 만들겠다고 하셔도, 바다를 만들겠다고 하셔도 그에 즉시 응할 수 있도록 평소에 생각해둬야 한다.
이런 대비는 연구개발팀의 기본적인 덕목이었다.
이도아와 마르코도 즉시 준비해뒀던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에 먹힌 뒤 몸속을 관통하는 놀이기구를 만들게요.”
비명 제조기라는 악명을 떨치는 이도아는 즉시 절규 머신을 떠올렸고.
“신화에 나오는 섬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맛이 특기인 어병욱은 메이저한 선택지를 내밀었고.
“저번 케이크 이벤트만큼의 규모입니까? 그렇다면 배를 타고 탐험하다가 해상전도 할 수 있겠군요.”
탐험광 마르코는 대항해 시대를 제안했다.
라임 사장님은 고개를 끄떡인 뒤에 말했다.
“다 좋은데 해저 탐험 요소도 꼭 넣어주세요.”
그 요청에 즉시 다른 의견이 나왔다.
“고래에 먹힌 뒤 하늘로 발사되는 것도 재밌겠네요. 그 뒤에는 거대한 새에 납치당해도 괜찮고요.”
이도아는 뚝심 있게 강렬한 기억을 남길 놀이기구를 떠올렸고.
“몸체가 투명한 잠수함. 혹은 해저 터널을 통해서 주변 풍경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병욱은 가족과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시설을 제안했고.
“침몰한 해적선, 잊힌 유적, 미지의 생물이 사는 둥지. 해저에도 탐험할 요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르코는 탐험할 장소들을 제시했다.
그 뒤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커다란 가지를 정하고 나면 그 뒤에는 가지를 치고 정리에 들어간다.
“새에 납치되는 건 조금 과하네요. 그러지 말고 소용돌이 같은 곳에 떨어뜨리는 게 어떻습니까.”
“그대로 그대로 지하의 유적으로 이송되는 것도 괜찮겠네요.”
“한국에는 거북이의 등을 타고 용궁에 가는 설화가 있습니다. 이동 수단 가운데 하나로 사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가지가 견고하게 얽어가며 위에서 뛰어놀아도 되는 견고한 무대를 만들었다.
“, , 같은 랜덤 이벤트도 있을 예정입니다.”
이따금 라인 사장님이 열매를 더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한층 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워터랜드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
레몬 대1과 민초 대1.
수능 시험장에서 으로 시작된 인연을 「절규 코스」의 네버엔딩 풀오토로 한층 다진 이 둘은 오늘도 슬라임랜드를 찾아왔다.
방학이 되기 전에도 매일 같이 찾아왔고 방학이 되고 한 달 가까이 흐른 지금도 거의 매일 같이 찾아왔다.
연금슬라임이 나쁘다.
이렇게 재밌는 곳이 있는데 공부고 아르바이트고 손에 잡힐 리가 없지 않은가.
슬라임랜드에 시간을 쏟아붓는 바람에 1학년 1학기 학점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으나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 술.
돈이 없으면 슬라임랜드.
이게 대학교 1학년생들의 행동 패턴이었다.
잘 놀든 잘 놀 줄 모르든 상관없었다.
슬라임랜드에 오면 어지간한 취향의 소유자는 죄다 만족할 만한 무언가가 있으니까.
한국의 대학은 거의 모든 과목이 상대평가.
다 함께 망하면 학점 보존의 법칙이 성립된다.
성적표를 A로 꽉 채우고 싶은 게 아니라면 공부는 적당히 해도 된다.
이게 증명됐기에 레몬 대1과 민초 대1은 마음 편히 슬라임랜드에 매일 놀러 왔다.
팔찌를 확인한 레몬 대1이 말했다.
“롤러코스터 자리 비었다.”
“오케이. 먼저 비명 지르는 사람이 쏘기다.”
“야. 지금까지 몇 번을 탔는데 인제 와서 비명을 지르겠냐?”
“쫄?”
“아, 씨···. 받고 추가.”
“콜.”
둘은 팔찌를 조작했다.
[지금 이동하시겠습니까?]라는 안내창에 [네]를 선택하자 바로 바닥에서 카트가 올라왔다.그것에 타면 바로 이동했다.
거의 기다리지 않고 놀이기구에 탑승할 수 있었다.
슬라임랜드가 다른 테마파크와 비교해서 갖는 절대적인 강점.
그건 바로 대기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이다.
놀이기구에서 다른 놀이기구로 이동하는 것에 시간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놀이기구 수가 매우 많다. 어느 놀이기구에 대기인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이 합쳐져서 아무리 유행하는 놀이기구라도 대기 시간이 거의 없이 체험할 수 있다.
고객에게는 장점인 점들이었으나 운영 측에는 단점들이었다.
콘텐츠 소모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빨라지니까.
이런 챌린지가 나올 만큼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놀이기구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온라인 게임 수준의 속도로 콘텐츠가 소모됐다.
그러니 거의 두 달을 날마다 찾아왔으면.
-아···. 이것도 슬슬 질리네.
-그러니까.
썩은 냄새가 나는 고인물의 포스를 풍겨야 정상.
그런데 슬라임랜드는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레몬 대1과 민초 대1은 입을 꾹 다물고 롤러코스터의 가속을 견뎠다.
몇 번이고 체험했으니까 비명은 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슬라임랜드의 놀이기구는 하루아침에 돌변한다.
어제까지 없었던 코스가 갑자기 추가될 때도 있다.
롤러코스터 열차가 거대한 공에 돌입했다.
각각의 칸이 다른 차로로 나뉘었다.
서커스의 오토바이 공연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구체 내부를 돌며 교차하는 카트들.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비명이나 욕이 나올 것 같았으나 두 대학생은 절대로 부딪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물고 버텼다.
이 공을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롤러코스터는 끝난다.
이대로 승부가 무승부로 끝나려나 싶었던 찰나.
덜컹.
“?!?!?!?!?”
“!!!!!”
공이 구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그냥 구르기만 해도 정신이 없는데 공은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설계자 죽어! 죽어!”
욕은 그만하고 비명이나 지르라는 듯 공은 회전 코스에 들어갔다.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가속과 무중력이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공은 스프링에 튕겨 하늘을 날아 제자리로 돌아갔다.
각각의 카트는 공에서 나오며 다시 하나의 열차로 합쳐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거장에 멈췄다.
놀이기구에서 내린 두 대학생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레몬 대1은 을 2개, 민초 대1은 2개를 산 뒤 벤치에 앉아 각자 사 온 것을 나눴다.
차갑고 달콤한 게 들어가자 둘의 정신은 조금 돌아왔다.
“「절규 코스」 설계자는 미친 게 분명해.”
슬라임랜드는 대기 시간이 없다는 점을 무기로 삼았다.
다른 놀이동산에서는 대기 시간에 롤러코스터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보게 된다.
그러나 대기 시간도 없고 이동도 바로 이뤄지기 때문에 밖에서 롤러코스터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단이 없다.
그러니 변화가 있으면 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W튜버의 리뷰를 보면 되지만, 「절규 코스」를 즐기러 온 사람치고 그런 것을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 공이 움직이는 건 상상도 못 했어.”
“움직이는 건 둘째 치고 그 공을 롤러코스터에 태우겠다는 발상은 대체 어떻게 해야 나오는 거냐?”
“보통은 상상해도 실현을 못 하지.”
저런 것을 구현하려면 엄청난 대공사가 필요할 거다.
심심하면 안전사고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안전 안심의 슬라임랜드, 그것도 「절규 코스」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다들 놀랐다고 넘어가는 거다.
차에 치여도, 눈사태에 휘말려도, 급류에 휩쓸려도 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사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 을 만든 당사자가 세운 슬라임랜드이며 안전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 덕분에 저런 놀이기구를 안심하고 탈 수 있는 거다.
만약 다른 놀이동산에서 예고도 없이 롤러코스터에 저런 변경을 가했다면 민원이 폭발했을 거다.
죽일 셈이냐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아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게 본능이니까.
그런 전율을 느낄 수 있으니까 타는 거고.
을 다 먹은 민초 대1은 고개를 들었다.
“야.”
“왜.”
“하늘이 이상해.”
그 말에 레몬 대1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하늘이 바다의 표면처럼 일렁였다.
그 안에 도망치는 장어와 뒤쫓는 펭귄이 있었다.
“저거 펭라임 아니야?”
“아마도 그렇겠지?”
펭라임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저런 광경을 보여줄 리가 없다.
두 대학생은 케이크 이벤트를 떠올렸다.
“또 이벤트인가?”
“장어? 축제? 아, 초복!”
“초복은 삼계탕 아니야?”
“몸보신을 위해 먹는 거니까 장어도 많이 먹어!”
하늘의 일렁임이 사라졌을 때 사방에서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확인하자 역시나 SLimelove의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두 대학생은 영상을 재생했다.
—
팔짱을 낀 펭라임은 돌솥과 석쇠를 앞에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했다.
돌솥으로 정했는지 석쇠는 치우고 돌솥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놨다.
그러고는 아이스박스를 조리대 위에 올려놨다.
거기서 엄청나게 커다란 장어를 꺼냈다.
힘이 무척 강한 장어는 마구 발버둥 쳤다. 꼬리로 펭라임의 뺨을 한 대 치며 펭라임의 손아귀에서 탈출해 하수구로 도망쳤다.
하수구를 들여다보며 잠시 고민한 펭라임은 서랍을 열더니 안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꺼내 썼다.
그리고 하수구에 다이빙했다.
하수구를 통과하자 그곳은 바다였다.
저 멀리 도망치는 장어를 발견한 펭라임은 펭귄다운 빠른 속도로 뒤쫓았다.
장어는 동굴로 도망쳤다.
펭라임은 망설이지 않고 뒤쫓았다.
빛나는 광석이 가득한 동굴의 깊은 곳.
그곳에는 눈을 감은 거대한 바다 괴수가 있었다.
장어는 거대한 괴수를 깨웠다.
‘흑흑. 저 펭귄이 저를 먹으려고 했어요.’
거대 괴수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거대 괴수와 펭라임은 눈빛으로 대답을 나눴다.
‘내 아이를 건드린 게 네놈이냐?’
‘덤벼라.’
펭라임은 당당하게 손짓했고 거대 괴수에 꿀꺽 먹혔다.
그 뒤로 다양한 장면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괴수의 배 안쪽에서 난파선을 발견하여 유령 펭귄들과 싸우기도 하고.
유령선을 타고 괴수의 뱃속에서 탈출하고.
해적질도 하고.
갈매기 떼에 습격당하고.
조난해 집도 짓고.
야만인들에게 산 제물로 바쳐져 용궁에도 찾아가고.
해저 던전의 몬스터들과도 싸우고.
용궁의 보물을 무역선에 가득 채우고.
전함을 구해 거대 괴수도 토벌하고.
장어구이도 맛있게 먹고.
태풍에 휩쓸리고.
거대 고래에 삼켜졌다가 물과 함께 하늘로 발사됐다.
퍼덕이던 펭라임은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일어난 물보라가 카메라를 덮쳤다.
물이 흘러내리며 문자를 남겼다.
Waterland in Slimeland.
Coming Soon.
—
“해상전? 무역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고래를 「절규 코스」 설계자가 설계했으면 내부가 장난이 아닐걸.”
“생존 게임도 할 수 있는 것 같고.”
두 대학생은 서로의 얼굴을 봤다.
남은 방학 동안 무엇을 하고 지낼지 결정이 났다.
저기에 참가해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1학기 때 배운 내용은 전부 머릿속에서 표백될 거다.
그렇게 됐을 때 2학기의 학점은···.
괜찮다.
2학기 학점은 2학기의 그들이 어떻게든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