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18
18. 킬러인가?
진정해. 진정해. 진정해.
다행히 아직 시간은 있다.
엄마는 내게 전화하기에 앞서 가지고 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아직 기회는 있다!
몸을 길게 늘이고 구멍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천장에 찰싹 붙어서 뱀처럼 이동했다.
조용히 촉수를 뻗어 스마트폰을···.
엄마가 뒤로 돌았다!
나는 슬라임으로 만든 뱀 장난감이에요. 집에 아이는 없지만 천장에 붙여놨답니다.
다행히 엄마의 시선은 바닥에 둔 가방 쪽에 쏠려 천장 쪽을 보지 않았다.
스마트폰 확보!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조용히 구멍을 통해 옆집으로 이동했다.
그대로 바닥에 축 늘어졌다.
몸에서 땀이 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바닥에 압력 센서는 없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직 구멍이 뚫려있다. 엄마가 전화를 걸자마자 옆집에서 전화 소리가 울려봐. 우연일 수도 있지만, 수상쩍지 않겠어?
내가 옆집에 있을 이유가 대체 뭐야. 옆집에 여자친구가 살아서?
어라?
그런 오해를 사는 게 오히려 좋은가?
내가 여친이랑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만나자고 하는 대신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을까?
설마 옆집으로 쳐들어오지는 않을 테고.
여자친구에게 푹 빠져서 집에도 안 오고 연락도 안 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서운해하기는 해도 이해해줄 것 같은데.
아, 몰라! 여자친구 작전은 다음 달에 쓰든가 말든가 하고 지금은 구멍부터 막아!
구멍을 막기 무섭게 전화가 울렸다.
너무 바로 받는 것도 이상하니까 잠깐 울리도록 두고.
내 집은 방음을 꽤 확실하게 해놨기에 구멍을 막은 지금은 소리가 전달 안 될 거다.
“응. 엄마. 무슨 일이야?”
-반찬 채워주려고 집에 왔는데, 집에 없네?
“일이 있어서 나왔어.”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물건을 제작하고 포장하려고 옆집에 왔으니까.
“전화하고 오지.”
그랬으면 더 확실한 작전을 짜뒀을 텐데!
-언제 오니?
“꽤 늦을 것 같아.”
구체적으로 말하면 엄마가 떠난 시각 +30분 정도.
-무슨 일인데?
“돈 버는 일. 내가 요즘 잘 나가잖아? 그래서 일이 많네.”
-야외 촬영이야?
“그건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일이 있어.”
-영상. 그거 조작이 아니라는 말이 있던데 아니지?
“엄마. 인간이 그렇게 먹으면 죽어.”
나는 인간이 아니라 슬라임이니까 먹지만.
-무슨 약을 쓰면 가능하다고도 그러던데?
“약은 무슨 약이야. 약을 안 써도 충분한데 뭐 하러 그렇게 건강에 나쁠 것 같은 방법을 써.”
-그러면 어떻게 하는 거니?
“가업 비밀.”
-아들. 내가 네 엄마야.
“아무튼 비밀. 시청자의 꿈은 지켜져야 하니까. 엄마도 시청자 맞지? 설마 구독 ‘좋아요’ 안 누른 거 아니지?”
-그럼. 당연히 보지. 아들이 어릴 때 기억나서 좋더라. 댓글은 조금 그렇지만···.
“그냥 무시해. 나도 신경 안 써. 유명세라는 말이 있잖아? 어쩔 수 없어. 그런데 도대체 그 꼴의 어디에서 내 어릴 때가 생각난다는 거야?”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도 펭귄 슬라임 닮은 꼴이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똑 닮았던데?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나는 펭귄 슬라임 닮은 꼴이었던 건가?
그래서 여친이 없었나?
아니면 그런데도 여친이 없었나?
칭찬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네.
-특히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뒤 안 가리고, 무식하게 행동하는 점이.
욕이었다!
외모 욕은 아니지만.
-그리고 즐겁게 하는 게 보여서 좋더라.
“응. 재밌어.”
몰랐는데 나도 꽤 관종끼가 있나보다.
남들이 내게 관심을 두고 내가 한 일에 호들갑 떠는 게 꽤 기분 좋다.
아차. 이러면 안 되는데.
나중에 실시간 소통이니 어쩌니 하면서 생방송을 하겠다고 나설라.
-너무 오래 이야기했네. 바쁘지?
“뭐···.”
-집에 자주 오고. 연락도 자주 하고.
“엄마. 세상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아주 좋은 말이···.”
-아들.
“미안. 그래도 선물은 자주 보낼게. 이번에 연금슬라임이 낸 신제품 몇 개 보낼게.”
-엄마는 아들이 건강한 얼굴 보여주는 게 선물이야.
엄마 미안.
그건 꽤 오랜 시간 어려울 것 같아.
“이번에 나오는 이 피부에 그렇게 좋다는데? 화장한 얼굴에 붙이면 화장 지워지고, 세안한 효과에, 스킨이랑 로션 바르고 팩까지 한 효과까지 있는데?”
-아까 말 취소. 엄마는 아들 얼굴보다 그걸 많이 보내주는 게 더 큰 선물이야.
“엄마!”
-다 큰 아들 얼굴 봐서 뭐 하니? 매일 거울로 보는 얼굴이 더 중요하지.
“그건 그래.”
-그만 끊자. 전화하고.
“응.”
전화가 끊어지고 잠시 시간이 흘렀다.
문이 열렸다 닫힌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가 한참을 멀어진 뒤에야 나는 내 집을 엿봤다.
대충 던져놨던 물건들이 정리돼 있다.
그냥 둬도 되는데.
······말할까?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봤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뒤가 비쳐 보이는 푸르스름한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
“···아니.”
엄마가 보고 싶은 건 건강한 아들의 얼굴이지.
몸을 뱀처럼 만들 수 있는 괴물이 아니다.
***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핫한 물건을 사서 리뷰하는 남자. 또.샀.남!입니다.
이거 하나면 발 냄새 안녕~ 각질 안녕~. 무좀 안녕~으로 유명한 . 그리고 리뉴얼 제품인 을 사서 리뷰한 적이 있는데요.
7월 17일!
오늘부터 파생 제품 3종이 새로 출시된다고 해서 이렇게 사러 나왔습니다.
핫한 물건은 뜨거울 때 사서 써봐야 제맛이니까요!”
“지금 시각은 새벽 12:05분.
사실 저도 아침 일찍 나오고 싶었는데, 리뷰 영상을 보니 그랬다가는 차갑게 식은 물건을 리뷰하게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일찍 나왔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벌써 낚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어? 남성분이시네요?
를 사러 오셨을까요?
가서 인터뷰해보겠습니다.
실례합니다. 혹시 촬영―”
“촬영 허락 받았습니다. 엄청 일찍 나오셨는데요 무엇을 사러 오셨나요?”
“을 사러 왔습니다.”
“혹시 아내 선물인가요?”
“네···. 낚싯대를 샀다가 걸려서. 오늘 이거 못 사면 집에 못 들어갑니다.”
“저런. 그래도 소문에 의하면 이게 그렇게 좋대요. 분명히 사랑받으실 거예요.”
“다 늙은 여편네가―”
“네! 그렇다고 하십니다!”
“혹시 이렇게 물건을 사려고 전날부터 줄을 사보신 적이 있나요?”
“한정 릴을 사려고 줄은 선 적은 있지만, 전날부터 줄 서는 건 처음입니다. 이 대체 뭐라고 이런 고생을 하게 되네요. 아니, 따지고 보면 아내도―”
“네! 그렇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줄 보이시나요? 이 핫한 열기 느껴지십니까? 벌써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도 살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 하실 수 있는데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중앙연금센터에서 공지한 바에 따르면 품목당 살 수 있는 물건은 개인당 3개. 이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만의 장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시간!’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장바구니? 그런 거에 물건을 담을 시간이 없습니다. 상품이 올라오는 순간 바로 구매 버튼을 눌러야 하니까요.
기껏해야 한 품목밖에 살 수 없다는 뜻이죠.
오프라인에서는? 다릅니다.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제한됐으니 느긋하게 장바구니에 담아 차분하게 결제하면 됩니다.
핫한 물건이 네 종류인데 또샀남이 하나만으로 만족하면 안 되죠.
네 종류를 모두 사려고 이렇게 오프라인 매장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무슨 학교 실내화도 아니고 이 귀한 물건을 이렇게 포장하다니. 개인적으로 포장은 영하 등급을 주고 싶네요. 하지만 중요한 건 포장이 아니라 제품이 얼마나 화끈한지이겠죠. 잘샀남이 될지 또속남이 될지 바로 돌아가서 온도를 확인해보겠습니다.”
“. 이건 미지근하네요. 별로라는 뜻은 아닙니다. 를 써보기 전이었다면 뜨겁다고 방방 뛰었을 거예요. 하지만 는 물론이고 이것보다 값이 훨씬 싼 을 경험한 뒤 써보니까 영 미지근합니다. 그래도 내구성은 확실히 올랐으니 ‘도기 가마’ 등급을 주겠습니다.
“HOT! HOT! SO HOT! 여러분 미쳤어요! 연금슬라임 이 사람 방화로 잡아가야 해. 가둬두고 만 만들게 해야 한다니까.”
“미안, 취소할 게 취소.
(여러분 지금 PD가 저 엄청나게 째려봤어요. 발 대신 스컹크를 달고 다녔거든요. 써본 뒤로 그거에 환장합니다.)”
“솔직히 리뷰 영상을 봤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화장이 지워지는 건 그렇다고 쳐. 요즘 클렌징 제품 좋은 거 많이 나오니까. 그런데 스킨이랑 로션을 바르고 팩까지 한 효과가 있다고? 올인원도 정도가 있지.
그랬는데 내가 찍은 이 영상을 봐요. 화장 없어지는 거 보여요? 진짜 순식간에 없어진다니까요? 그리고 이게 진짜 대박인 점이 뭐냐면 엄청 가벼운데다가 숨이 안 막혀요. 미세한 공기구멍이 잔뜩 있는지 답답하지 않다니까요? 눈에도 자극이 없어서 멀쩡하게 뜨고 있을 수 있고. 화장이 없어진 뒤에는 피부가 무슨 탱탱볼 같아요. 탱탱볼. 이렇게 좋으면 제가 참을 수 있겠어요?”
“짠. 요즘 이 스티커 모으는 사람도 없어서 뺨이랑 얼굴에 붙여봤습니다. 그 위에 특수 분장까지 했고요. 이렇게 하면 그냥은 안 지워져요. 녹여서 지워야지. 으로는 얼마나 빨리 지워지는지 실험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따라 하지 마세요. 이 죽어버렸어요. 그래도 가치가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특수 메이크는 물론 스티커까지 깔끔하게 지워버리고 제 얼굴을 아기 얼굴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아, 이건 너무 나갔나요?”
“저도 방송인이다 보니 메이크업할 때가 많은데 이건 꼭 집에 사둬야겠네요.”
“에 이어서 에도 ‘용광로’ 등급을 주겠습니다!”
“는 확실히 효과가 약하네요. 촉감도 그렇고 조금 더 장난감 같아요. 이건 제가 온도를 측정하면 부정확할 테니 다음에 아이를 섭외해서 리뷰하겠습니다!”
“잘.샀.남! 이었습니다! 긴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9,800원.
19,800원.
14,800원.
4,900원.
최종적으로 결정된 가격이다.
생산된 제품은,
1,500개.
5,000개.
5,900개.
1,500개.
전에 우리 공돌이가 12,000개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박태양 상담사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건 의 개수인 만큼 12,000쌍이고 물건의 개수로 따지면 24,000개가 맞다. 여기서 안전성 검사로 15%가 빠지니까 20,400개. 그 수를 알뜰하게 채워서 13,900개의 제품을 생산했다.
13,900개의 상품이 전부 팔린 건 아니다.
체험 공간에서 소비하려고 빼둔 물건들도 있으니까.
그래도 홍보 비용은 연금센터 측에서 부담하기에 내게는 이것도 매출이다.
208,370,000원. 대충 2억 1,000만 원.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D 등급 연금술사 수수료 40%가 빠져야 정상.
놀랍게도 나는 아직 F 등급 연금술사 면허를 따고 한 달이 안 지났다. 그래서 수수료가 제로.
여기에 재료비가 빠져야 하는데 이건 연금 폐기물 처리 비용에서 공제하기로 했다. 재료비가 폐기물 처리 비용을 넘어서지는 않을 테니 매달 돈이 추가로 들어올 거다.
어쨌거나 추가로 나갈 돈은 제로.
세금조차 낼 필요가 없는 돈 2억 1,000만 원.
그걸 하루 만에 벌었다.
“미쳤네.”
아무것도 안 해도 매일 2억의 돈이 들어온다.
물론 언제까지고 이어질 일은 아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 지나면 수수료를 내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의 판매는 머지않아 줄어들 거다.
효과가 강화된 만큼 일주일이면 무좀이 치료될 테니까. 그리고 무좀은 전염병이라서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는 머지않아 로 대체되겠지. 그마저도 쓰는 사람만 쓰는 물건이 될 테고.
그래도 이번 주 동안은 판매량이 유지될 것 같다.
이번 주에 들어올 돈이 최소 10억!
세후를 생각하면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많은 돈!
“나는 부자다!”
백만장자. 밀리어네어가 재산 10억 원을 뜻하니까!
“그래서?”
기껏 올려놓은 텐션이 뚝 떨어진다.
10억이 있으면 뭐 해.
슬라임인 채 그 돈으로 뭘 할 건데?
집을 살 거야. 차를 살 거야. 결혼을 할 거야.
누가 슬라임을 인간으로 바꾸는 약을 팔면 몰라.
기껏해야 몬스터 소재를 사서 레벨을 올리겠지.
“이게 인생인지 게임인지.”
저축이 일정 금액을 넘어서니 돈이 들어와도 슬라임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너무 비싼 몬스터 소재는 사지 못한다.
그런 물건은 대체로 위험하기 마련이고 다루려면 자격이 필요하니까.
C 등급 연금술사 면허 같은.
“레벨이나 올리자.”
을 만드는데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네, 연금슬라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태양 주무관입니다. 완판 축하드립니다.
“박태양 상담사님께서 노력해주신 덕분이죠.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연금술사님께서 슬라임 님을 창조해주시고 좋은 상품을 발명해주신 덕분입니다.
“물건만 좋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사람들이 잘 알아야지 의미가 있지요.”
공치사는 이쯤이면 됐고.
“그런데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났나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일인가요?”
-연금슬라임 님. 혹시 C 등급 연금술사 시험을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나보고 대면 시험을 보라고?
박태양 이 사람, 자꾸 나를 집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하는데.
킬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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