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32
32. 왜 치약을 먹어?
안녕하세요. 비상식량입니다.
집인데 비상식량입니다.
태생은 안전을 바라는 강한 마음이 다양한 재료와 뒤섞여 우연히 만들어진 사념체였습니다.
명확한 자의식 없이 집 내부를 떠돌며 집의 소유자와 거주자의 감정을 먹으며 차츰 성장하였습니다.
우리 사념체는 어떠한 것을 먹느냐에 따라 저주나 악령 혹은 축복이나 성령으로 성장합니다.
아주 드물게 균형을 이루면 집의 정령이 되기도 합니다만,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안전을 바라는 선한 마음에서 태어났기에 축복이나 성령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첫 소유자는 건축 기간이 길어질수록 후회와 증오로 마음이 점철됐습니다.
질서 선으로 태어난 저는 혼돈 악 쪽으로 성향이 기울었습니다.
집이 완공되고 새로운 소유주와 거주자가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따스한 특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주식은 차가운 증오와 절망.
이따금 찬란한 빛을 쬐고 꽹과리 소리를 들으며 정화됐으나 내부에서 피어오르는 악의에 흑화해왔습니다.
다음 주인을 만나면 슬슬 악령으로 거듭나겠거니 싶었습니다만.
이번에 이름을 받으면서 정체성을 확립하여 집의 정령이 됐습니다.
저주도, 축복도, 악령도, 성령도 아닌 집의 정령.
집의 정령으로 성장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소유주의 면상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센스가 얼마나 막돼먹었으면 집의 이름을 이따위로 지어.
혼돈 악으로 물들어 배관 누수로 침이나 뱉어줄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인을 봤습니다만.
바로 중립 기어 박았습니다.
뭐, 집의 정령이 된 것부터가 중립 기어를 박았다는 뜻이지만요.
그래서 뭡니까 저건.
저거 인간 맞습니까?
아니, 겉모습은 인간이 아닙니다만, 마음은 분명히 인간이 맞습니다.
그런데 대체 의지가 얼마나 강하면.
저딴 것을 몸에 품고도.
십중팔구 악령으로 거듭날 것이었던 저를.
집의 정령으로 탈바꿈시킵니까?
대체 의지가 얼마나 강하면.
저런 끔찍한 것에 침식되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까?
저거···.
인간 맞습니까?
***
[마키나 : 야호.마키나 : 뭐해?]
본명, 나이, 성별, 얼굴, 국적.
무엇하나 알지 못하는 온라인 친구 마키나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 : 집 청소]이 집의 전 주인은 자식들에게 살해당했다. 그 사실을 밝혀지면서 전원 상속 자격을 잃었다. 재산을 물려받기는커녕 가진 것마저 몽땅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이 집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몽땅 빼내 팔아치웠다. 그 뒤로도 매우 너저분한 분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집에 남은 잡동사니는 내가 처분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래서 필요 없는 것들은 쌓인 먼지와 함께 전부 녹여서 흡수하는 중이다.
소유권을 주장하며 질척거리는 사람이 올 수도 있기는 한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문조차 열어줄 생각이 없다.
[마키나 : 소리가 조금 울리는 느낌?마키나 : 넓은 장소에 있음?]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데 대체 어떻게 소리가 울려.
[나 : 솔직히 말해. 지금도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지?마키나 : 들켰네.
나 : 스토커 신고는 몇 번이더라?
마키나 : 010-7118-XXXX
나 : 무슨 번호?
마키나 : 경찰청장 전화번호.
나 :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냐.]
전화 걸어서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스토커는 무조건 잡겠네.
[나 : 넓은 장소인 거 정답.나 : 이사했어.
마키나 : 축하축하축하.
마키나 : 등골브레이커는 졸업했음?
나 : 졸업한 대신 은행이 내 등골에 빨대를 꽂았어.
나 : 평범한 직장인이 평생 버는 돈보다 큰 빚더미에 오름. 🙁
마키나 : 도움 필요함?
나 : 필요할 것 같아?
마키나 : nay.
마키나 : 돈 문제가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을 인간임.
나 : 이래서 눈치가 빠른 것들은.
마키나 : ㅋㅋㅋㅋㅋㅋ
나 : 빚이 많기는 한데 금방 갚을 수 있는 금액이고.
나 : 무엇보다 집이 진짜 좋음.
나 : 집이 좋은데~.
나 : 정말 좋은데~.
나 : 지면이 부족하여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다. 외형만 설명해도 마키나는 특유의 예리함을 발휘하여 집을 특정할 테니까.
마키나에게 집 주소 알리는 것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냐 싶기는 한데.
괜히 우리 사이에 형성된 암묵적인 규칙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마키나 : 내 집이 더 좋거든?나 : 아니, 내 집이 더 좋거든?
마키나 : 우리 집 125 ZB.
나 : 아니, 무슨 단위인데 ㅋㅋㅋㅋㅋ.
마키나 : Zonna Big.
나 : ㅋㅋㅋㅋㅋㅋ.]
마키나와 시답잖은 잡담을 나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마키나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모바일 앱이다.
머리를 쓰는 게임도.
손을 쓰는 게임도.
발을 쓰는 게임도.
나는 마키나의 상대가 못 된다.
저쪽은 게임계의 괴수니까.
그래도 운의 싸움이라면 승산이 있다!
요즘 왠지 운이 좋으니까!
[나 : ㅋㅋㅋㅋㅋㅋㅋ나 : 또 서울.
나 : 그쯤 되면 현실에서도 놀러 와야 하는 거 아님?
마키나 : shut up.
마키나 : 누가 죄수에게 발언권을 줬지?]
세계 각지에 호텔을 올려 상대의 돈을 뺏어 먹는 게임.
마키나는 서울의 호텔에 다섯 번 안착하는 확률의 마법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파산하지 않은 이유?
땅을 어쩜 이렇게 귀신같이 사놨는지 세계 곳곳에 있는 호텔로 내 월급을 죄다 가져갔으니까.
[나 : 감옥이 참 안락하네.나 : 나가기 싫어.
마키나 : 빨리 나오셈.]
결국 게임은 내 패배로 끝났다.
[나 : 바이바이.마키나 : Cya]
역시 친구랑 노는 건 즐겁단 말이지.
기수랑도 놀아야 하는데.
스마트폰이랑 안 친한 고대인이라 마키나처럼 함께 게임을 할 수는 없단 말이지.
집에서 함께 놀아?
하하하.
기수. 몬스터를 증오하는 우리 기수.
기수에게 지금 상태를 밝혀?
하하하.
나는 아직 죽을 생각 없다.
***
본래는 북극 출신이었으나 사춘기 때 가출을 감행해 남극에 도착.
펭귄을 잡아먹고 살다가 성체가 됐을 무렵 사람을 만나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푸딩을 받아먹고 반해버린.
푸딩 살 돈을 벌기 위해 방송을 시작한 버츄얼 스트리머 폴라걸.
그녀가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
-네가 좋아하는 것이 네가 좋아하는 것을 먹는데 봤어?
영상 도네이션이 도착했다.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전에 영상부터 확인한 그녀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틀렸잖아. 내가 좋아하는 것+좋아하는 것+좋아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맛있게 먹는 영상이잖아.”
그녀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나의 쇼츠를 화면에 띄웠다.
“아냐고? 당연히 알지. 그, 그녀, 그것, oh~ fuxx. 그냥 그라고 부를게. 그는 무척이나 귀엽고, 펭귄이고, 푸딩을 닮은 슬라임이라고. Oh~, 진짜 귀여워. 엄청나지 않아? 저렇게 다양한 요리를 동시에 하는 거 봐. 전에 아이스크림으로 저글링 하는 영상이 있는데 그건 진짜 예술이야.”
―
“완성된 푸딩 좀 봐. 어떻게 저렇게 자기를 꼭 닮은 푸딩을 만들었는지.”
―
“지금 그 스퀴시한 소리 들었어? 이 소리를 들으면 근질근질해지지 않아?”
폴라걸은 눈에 하트를 띄우며 입을 팔로 닦았다.
“아, 그는 정말 맛있어 보여. 그를 잡아먹고 싶어. 쥬릅.”
그 순간 채팅창이 매우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의 로딩 끝에 시청자들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파악한 폴라걸은.
“내가 말한 건 그 뜻이 아니라···. Oh~ you fuxxing bastards.”
욕하고 포기했다.
이대로 묻혔으면 단순한 촌극으로 끝날 일이었다.
***
-(폴라걸은 너를 먹을 것이다.)
W튜브 영상에 이상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원래 이상한 댓글은 많이 달렸는데 특정 유형의 댓글이 부쩍 늘었다.
-(OOO는 너를 먹을 것이다.)
아무래도 인터넷 밈 같아서 유래를 찾아봤다.
시작은 백곰 소녀 모습을 한 버츄얼 스트리머. 하지만 그 뒤에는 남녀노소, 인간, 동물, 현실, 가상을 가리지 않고 스트리머 시장에 넓게 함정 카드로 활용되고 있었다.
스트리머가 커다란 슬라임 푸딩을 앞둔 나의 모습 짤을 받는다.
-[이 커다란 슬라임 먹고 싶어?]
“응. 맛있어 보이네.”
-[나는 더 큰 슬라임 쪽을 말하는 것이었어.]
대충 이런 식으로 조롱하는 인터넷 밈이다.
해외에서 시작된 이 밈은 바다를 건너 한국에도 도착했다.
바나나킥 진짜···.
푸딩 영상이 이렇게 돌아올 줄 어떻게 예상하냐고.
호재인가?
호재 같기는 하다.
일단 ‘슬라임’과 ‘먹는다’가 조합됐으니까.
영양분을 섭취한다는 의미로 먹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이러하면 이 계획을 진행해도 되려나?”
손바닥 위에 구슬을 하나 만들었다.
-수분을 흡수하면 부풀어 오르는 딸기 맛 슬라임. 찌꺼기 제거! 충치균 퇴치! 플라크 제거! 치석 제거! 치은염 제거, 치아 코팅! 잇몸 재생! 향기로운 입 냄새! 치아 반짝! 구강건강은 나에게 맡겨!
붉은색 구슬 슬라임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다가 입에 던져 넣었다.
씹으면.
“찐~뿜!”
이건 빼 먹을 수 없지.
침 대신 슬라임 즙을 공급해주자 꽤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대량의 껌을 입 안에 던져 넣었을 때와 비슷한 식감.
슬라임 즙을 계속 붓자 점점 커지던 은 형체를 잃고 흩어졌다.
이것으로 세면대에 버려도 안심.
딸기 맛 말고 다른 맛도 있다.
주황색인
노란색인
초록색인
파란색인
남색인
보라색인 .
이렇게 7가지 맛을 준비했다.
민트초코는 왜 맛이 안 붙냐고?
민트초코니까.
심해 맛은 무슨 맛?
짠맛.
[저장] 스킬 효과를 적용해 휴대의 편의성을 챙겼다. 물이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침만으로도 충분히 부풀어 오른다. 물을 과하게 흡수하면 분해되기에 세면대에 그냥 뱉으면 된다. 귀찮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도 되고.친환경 슬라임은 자연에서 금방 분해가 된답니다.
이 을 판매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팔리기는 잘 팔리겠다고 생각한다. 세안제 파는 회사에서 치약을 내놓으면 거부감이 적잖아?
돈을 버는 것만이 내 목적이었다면 바로 연금센터에 보냈을 거다.
하지만 내 목표는 식용 슬라임의 대중화에서 이어지는 연금약 슬라임의 대중화.
작전명<>의 진행에 이 징검다리가 될지 아니면 걸림돌이 될지 잘 판단이 안 된다.
일단 이 은 슬라임을 입에 넣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줄 거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글이랑 치약은 뱉는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배우잖아. 평생 그렇게 생활해 왔잖아. 입에 넣게 하는 것까지는 도움이 되는데 전부 뱉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려서 뱉을 수 없게 만들어?
아니면 삼키지 않고는 버틸 수 없도록 맛있게 만들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도?”
이런 기사가 뜨지는 않겠지?
좋아. 그냥 팔자.
내가 무엇을 예상하든 그대로 되는 꼴을 본 적이 없으니.
링 위에서 춤추는 농구공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언젠가는 들어가겠지.
***
한때는 삶의 고단함을 양동이에 담아 사방에 흩뿌리던 악플러 회사원.
그는 덕에 가렵고 냄새나는 앞부분에서 해방된 이후 개과천선했다.
중간에 잠깐 흑화하는 일도 있었으나 국뽕 한 사발 퍼먹고 다시 깨끗해진 그는 잔잔한 회사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몸의 중앙이 평온해지니 인상이 환해지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졌다. 공감대를 나눌 상대도 있고 일도 잘 풀려서 보람찬 회사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는 연금상점에 새로 올라온 물건을 보고 바로 샀다.
선구매 후 생각이다.
‘가글? 민트초코?’
초록색에 끌려서 샀는데 하필이면 민트초코였다.
치약을 먹을 생각은 없는데 먹는 음식은 아니니까 다행일까?
가격은 10개 들이에 2만 원.
조금이 아니라 꽤 비싸다. 가글 한 번에 2천 원이니까.
‘아니야. 연금슬라임이 만든 물건인걸.’
회사원은 연금슬라임을 향한 믿음으로 후회를 떨쳐냈다.
다음날. 회사원은 점심을 먹은 뒤 을 입에 넣었다.
‘맛있잖아.’
시원함과 달콤함의 조화가 새로운 문을 열었다.
입 안쪽에서 돌려가며 몇 번 씹은 뒤 꿀꺽 삼켰다.
뒤늦게 뱉어야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으나 이미 슬라임은 목구멍을 넘어간 뒤였다.
토해내야 하는가 고민하다가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배가 아파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된다.
혀로 매끈매끈해진 치아의 감각을 즐긴 뒤 그는 일에 몰두했다.
24시간 뒤.
그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며칠 만에 겨우 오는 신호.
배의 통증은 없었다. 멧돼지가 괄약근을 미친 듯이 두드릴 뿐.
해방!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끊기지 않는 탄성과 함께 쭉 빼냈다.
이렇게 시원하게 나온 건 생전 처음.
변기를 확인하니 검은 구렁이가 그곳에 있었다.
회사원은 상쾌한 기분으로 물을 내렸으나.
구렁이는 비키기를 거부하며 쉬익쉬익 물소리를 냈다.
혼자서는 싸울 수 없는 막강한 적.
구렁이 퇴치에는 시간과 인력이 소모됐고.
회사에 뱀이 출현했다는 소문은 회사 전체에 퍼졌다.
회사원은 수치심에 죽을 것만 같았지만.
그는 연금슬라임과 한 몸이 되기로 맹세한 몸.
연금슬라임에게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겨낼 용기가 있었다.
그는 당당하게 화장실에서 구렁이를 소환한 비결을 밝혔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4시간이 더 흐르고.
회사원은 보자마자 절로 복권이 사고 싶어지는 황금 뱀 한 마리를 쌌다.
***
[소화기관을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연금슬라임의 신제품 리뷰.]음, 음.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좋아.
여기서는 이 명언을 해야겠지.
“왜 치약을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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