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63
63.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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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입는 사람이 많아서 교복이라고 조롱받기도 하는 이 옷이지만, 커플 아이템으로 주목받는 중이었다.
둘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커플이 이 을 찾는 이유.
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꾸밀 수 있으니까.
티셔츠라면 모를까 코트는 원하는 대로 꾸미기 어렵다.
재질 때문에 커스터마이징 자체가 쉽지 않은데 티셔츠와는 가격의 자릿수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망설여질 수밖에. 겨우내 입을 코트를 맡겼는데 완성된 상태가 마음에 안 들면 끔찍하다.
반면 은 이 있으면 간단하게 꾸미고 지울 수 있다. 가격도 조금 비싼 티셔츠 수준이고. 사랑에 매일 같이 심장이 떨려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운 커플에게는 기꺼이 낼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의 특성상 추억의 물건을 영원히 보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으나 사진은 남으니까 문제없다.
본인과 연인이 예술 재능이 없더라도 괜찮다. 콩깍지가 씐 채라면 연인이 그려준 정체불명의 무언가도 귀여워 보이기 마련. 콩깍지가 벗겨져 보는 것만으로 몸이 오징어처럼 꿈틀거리게 된다고 해도 괜찮다. 은 이 있으면 간단하게 지울 수 있으니까.
사진은 남겠지만.
직접 꾸미기 싫고, 연인에게 맡기기 싫어도 괜찮다.
을 사용해서 을 꾸며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니까.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있고, 가게도 있고, 축제가 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부스가 최소 하나 생긴다.
의 중고 거래는 불법이지만, 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일은 불법이 아니니까 문제없는 장사다.
여기에도 유행을 따르는 하나의 커플이 있다.
각자의 에 반쪽짜리 하트를 그려 몸을 맞대면 하트가 완성되게 꾸며 놓았다.
등에는 각자의 캐리커처를 그려놨고 그 아래에는 애칭을 큼지막하게 적어놨다
그 밖에도 ‘우리의 영원한 사랑.’ 같은 문구를 적어놓고 자물쇠를 그려놓는 등 아주 꼴값을 떨어놨다.
이 커플에는 매우 특이한 점이 있었으니 그들이 있는 장소였다.
산.
이 커플은 놀랍게도 겨울 등산이라는 무척 드문 데이트 코스를 선택했다.
서로 몸을 붙여 하트를 완성한 채 걷는데 힘들지도 않아 보인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웃음이 가득하다.
이것이 사랑의 힘?
시시덕거리며 올라가던 둘.
“우리 올라가서 먹자.”
하트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남자의 말에 여자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을 가져왔어?”
“응. 산 정상에서 먹는 이 그렇게 맛있대.”
“우리가 그렇게 힘든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 돌아가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게 낫지 않아?”
탕수육의 부먹 vs 찍먹에 버금가는 다툼이 벌어지는 의 팝콘 vs 솜사탕 논쟁.
그냥 먹느냐 아니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느냐.
사람에 따라 취향이 극명하게 갈렸다.
사실 그냥 먹으면 팝콘보다는 알갱이에 가까웠지만, 의 이름에서 따서 그냥 팝콘 vs 솜사탕 논쟁이라고 불렸다.
서로를 아무리 사랑해도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는 법.
하트가 완전히 떨어졌다.
“됐어.”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자기야.”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붙잡으려고 했고, 그녀는 그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여자는 균형을 잃었고 그녀의 몸이 쏠리는 방향에는 급한 경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악!”
“민희야!”
남자는 여자를 감싸며 함께 굴렀다.
여기저기 부딪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시간이 흐르고.
둘은 나무에 걸려 겨우 멈췄다.
여기부터는 다양한 전개로 나뉠 수 있다.
다치지 않은 남자가 여자를 두고 혼자 떠나고 귀신이 된 여자가 남자를 괴롭히는 공포물.
날이 어두워지고 추워지자 서로 옷을 벗고 체온을 나누는 로맨스물.
조난한 채 발견되지 않아 변사체로 발견되는 현실물.
이렇게 다양한 장르로 파생될 가능성을 품은 사고.
“괜찮아?”
“어···. 오빠는?”
“나도 괜찮은 것 같아.”
다친 곳 없음.
“다행이기는 한데···.”
걸어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경사에 둘이 절망하려는 찰나.
“핸드폰이 멀쩡해!”
“내 것도!”
핸드폰 멀쩡.
“전파도 잘 터지네.”
전파도 잘 터짐.
남자는 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안내에 따라 국가지점번호를 알아내 구조를 불렀다.
“하하하.”
전화를 마친 두 커플은 서로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설령 전파가 터지지 않았어도 문제가 없었다.
주머니에 이 있어서 탈수 걱정은 없음.
도 있어서 며칠은 버틸 수 있음.
과 이 따스하게 감싸주기에 저체온 걱정도 없음.
그냥 길을 잃었을 뿐인 가벼운 사고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오빠. 아까 멋졌다?”
이렇게 훈훈하게 끝나는가 싶은 찰나.
“그런데 오빠.”
“왜?”
“민희가 누구야?”
—
이상.
슬라임극장이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이야기를 재구성해봤다.
여럿이 만화로도 그렸는데 결말이 꽤 여러 가지로 나뉜다.
뒤늦게 찾아온 구조대가 싸늘하게 식은 남자만을 발견한다거나.
사실 여자는 없고 남자의 망상이었다든가.
여자는 사실 귀신이었는데 남자는 덕에 목숨을 구한 거라든가.
배드 엔딩이 많다.
커플은 죽어라.
이게 실화든 아니든, 실화라면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유행하면서 이 조난 사고 예방에 무척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퍼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0에서 30대 정도까지 연령층에서 유행했다면 지금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을 사려고 한다.
판매량을 늘리자.
머지않아 한국이 남극 뺨치는 펭귄 대국이 되겠는걸.
과 을 포장하고 보관함에 뒀다.
이왕 온 김에 옆방으로 가서 도착한 택배를 정리하는데.
Sole Alchemy에서 온 택배가 있다.
그래도 내 메시지를 이해하기는 했나 보네.
가지고 들어와서 뜯어봤고.
“이 인간이···.”
저번에 너무 어렵다고 불평했더니 프라모델을 보냈어!
프라모델 따위 배 속에 넣고 10초면 도색까지 끝낼 수 있다고!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물론 진짜 프라모델을 보내지는 않았다.
차라리 진짜 프라모델을 보내왔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라도 했을 거다.
이건 정말···.
연금 제품 제조 꾸러미 같은 것을 보내왔다.
재료는 전부 준비 됐고 제작 방식이 참 친절하게 적혀 있다.
나는 연금술사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요구하는 기술은 상당한 것 같다.
내가 짜증을 내는 이유는 ‘이대로 그대로 따라 하면 설령 이해할 수 없어도 제품은 나온다.’라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는 네 하청 직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미국에서는 이 Sole Alchemy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이 Sole Alchemy 제품이라고 생각했어.
SLimelove 영상에 이런 댓글이 종종 달린다.
아니라고! Made in 연금슬라임이라고!
이런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
내가 추측하기로는 의 가격과 성능이 주된 이유 같다.
미국에서 은 사치품이다.
한국에서는 꽤 싼 편에서 팔고 있지만, 미국으로 넘어가면 가격이 최소 6배로 뛴다. 최소 6배다. 미식축구로 의 이름값이 커지자 가격이 더 올랐다.
을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가격으로 판다.
성능은 말이 필요 없도록 뛰어나고.
가격이 비싸며 성능이 뛰어나다.
명품의 일반적인 이미지다.
여기에 자국을 향한 자부심이 더해지면.
‘이런 명품을 만든 건 세계 최고 기업인 Sole Alchemy가 분명하다.’
미국인들이 이런 결론에 도달해도 이상하지 않지.
SLimelove의 칠면조 먹방이 미국에서 대히트하고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 세일 가격으로 풀리면서 이러한 오해는 많이 풀렸다.
그야 Sole Alchemy 로고가 아니라 이 붙어 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연금슬라임이 Sole Alchemy 소속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불쾌하기는 해도 이런 오해는 내게 꽤 큰 이익이라서 적극적으로 해명하지는 않는다.
세계 1위 기업의 브랜드 네임을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니까.
아무리 만드는 제품이 좋아도 나는 C 등급 연금술사다.
S 등급 연금술사 등에 올라탔으면 튕겨 나가거나 잡아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위에서 버텨야지.
그래도 짜증이 나는 건 나는 건데
이 인간이 기름을 붓네?
도발이냐?
그렇다면 기뻐해라. 잘 통했으니까.
냠.
[분해 스킬의 레벨이 38로 올랐습니다.] [특성 : 슬라임☆☆의 레벨이 35로 올랐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특성 : 슬라임 ☆☆ Lv. 35―
스킬+] [스킬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일반 스킬 : 견고 Lv. 1.
2. 특수 스킬 : 특수 분열.]
여기서 또 [견고]가 뜨네?
이 스킬은 대체 나랑 인연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쨌든 여기서는 [특수 분열]을 선택할 차례.
-슬라임의 몸이 찢기는 동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짜증이 누그러졌다.
애쉬가 보낸 이거.
사용하는 소재의 질이 좋고 기술이 뛰어나다 보니 레벨이 잘 오르네.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친구’ 목록에는 못 넣어주지만.
학문적인 교류를 나누는 ‘아는 사람’ 목록에는 넣어줄까.
학문적인 교류라면 서로 얻는 게 있어야 한다.
가짜 연금술사인 내가 S 등급 연금술사에게 연금술에 관해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슬라임의 비밀을 밝히는 건 멍청한 짓이고.
하지만 목이 90도 단위로만 돌아가는 인간에게 목은 45도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려줄 수 있다.
비록 보이는 범위는 넓어지지 않겠지만, 전에는 놓치던 것들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되겠지.
그걸 무가치하다고 여긴다면 어쩔 수 없지.
그냥 우리의 관계는 거기까지인 거다.
우선 몬스터 소재를 삼켜 레벨을 올렸다.
[특수 분열]을 하면 모든 스킬의 레벨이 1로 초기화된다.슬라임 육체는 원체 튼튼해서 큰 문제는 없으나 기운이 쭉 빠진 기분이 든다.
레벨을 올려 기운을 차리고 애쉬에게 보낼 물건을 만들었다.
포장해서 보관함에 넣은 뒤 새로 태어난 슬라임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 아이는 공돌이와 공순이처럼 연금센터에서 갈갈 갈려 나가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갈려 나가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갈려 나가는 장소가 다르다.
쓰레기처리장에 도착한 나는 슬라임을 쓰레기 산의 꼭대기에 올려놨다.
“너의 이름은 마더.”
이곳의 쓰레기를 깨끗이 처리하고 땅에 마나를 공급한 뒤.
만약 이 땅이 되살아나는 것에 성공한다면.
슬라임랜드의 핵이 될 슬라임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
마더는 부르르 떤 뒤 쓰레기의 산을 파고들었다.
슬라임랜드의 핵심을 사람에게 맡기기 불안했는데. [특수 분열]로 얻은 내 분신에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와 한스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처음에 영상 통화로 시작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영상 통화를 하게 됐다.
이래서 처음이 중요하다니까.
업무를 진행할 때 정보 공유는 매우 중요하다.
조별 과제의 망령은 인원이 둘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이 지독한 망령은 언제 누구의 가족을 죽일지 모르기에 언제나 대비해야 한다.
한스가 전화를 받았다.
대략 언제쯤 쓰레기처리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될지 내 예상을 한스에게 전하려고 그의 얼굴을 봤는데.
“어?”
“왜 그러십니까?”
슬라임 특유의 광택을 지닌 보라색 가발이 여전히 머리에 올라가 있다.
아래로 보이는 눈은 여전히 실처럼 가늘다.
편한 복장을 하라고 했는데도 언제나 정장 차림인 점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외계인 같다고 표현한 한스의 평소 모습 그대로다.
“왠지 오늘은 달라 보이네요.”
“그렇습니까? 변화를 주지는 않았습니다만.”
한스가 전처럼 수상쩍어 보이지 않는다.
자꾸 보다 보니까 익숙해져서 그런가?
***
B 등급 연금술사가 됐다.
“나는 연금슬라임이 머지않아 S 등급 연금술사로 인정될 인재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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