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ine Digger Gutter Slime RAW novel - Chapter 98
98. [치유☆]. >
레벨 45라는 이상한 타이밍에 요즘 저주가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사실이 뒤섞이니 저 스킬도 꽤 수상쩍어 보였다.
불신의 저주를 극복하며 [+믿음] 버프를 얻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이상하다.
[+믿음] 버프는 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치유라는 마음이 포근해지는 명칭이 붙었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평범한 인상의 [변신] 스킬은 산 제물을 요구했다.
매력적이라는 의미의 [매혹] 스킬은 사람을 세뇌하는 스킬이었고.
게다가 세상에는 치유물이라고 쓰고 치명적인 유해물이라고 읽는 장르가 있다.
겉으로는 유쾌 발랄한 척을 하면서 속에는 저주로 이뤄진 촉수가 꿈틀거리거나 하는.
스킬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폭탄 같은 스킬을 떠넘겼다면 골치가 아픈데.
[분석+] 스킬을 사용했다.
[치유☆ Lv. 1
-본래부터 가졌으나 억눌려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던 능력.
몸과 마음을 낫게 한다.
“이건···.”
조금 심란하게 하는 설명이네.
“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직업에 따라 초기 스킬은 대체로 다 비슷하다.
치유사라면 치유 스킬을 얻고.
검사라면 검술 스킬을 얻고.
마법사라면 마법 스킬을 얻는다.
하지만 처음 각성했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는 일도 있다.
이것은 흔히 고유 스킬이라고 부른다.
현재 나도 이런 고유 스킬의 소유자로 여겨지고 있다.
은 특수한 스킬이 없으면 제조할 수 없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을 만들 때 사용되는 스킬은 내 고유 스킬이 아니다.
[특성 : 슬라임]이라는 괴상한 직업으로 각성하면 얻게 되는 스킬로 만드는 거지.
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특유의 스킬로 만들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본래부터 가졌으나 억눌려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던 능력.
이 말은 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스킬은 [분열]이나 [흡수] 같은 스킬이 아니라 [치유☆]였다는 뜻이다.
사실 좀 이상하기는 했다.
제일 처음 을 만들었을 때 내가 먹었던 것은 고작해야 상비약이 전부. 무좀약은 집에 있지도 않았다.
[분석] 스킬로 비누, 세제, 연고 등의 약효를 뒤섞어서 을 만들기는 했지만, 극심한 무좀을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치료해버리는 건 과하지.
만이 아니다. 은 아토피를 치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정력까지 회복시켰다.
과 의 치료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잘 생각해 보면 어느 이나 그 치료 효과가 과했다.
그리고 몇 번 기적 같은 치유 능력을 발휘한 적도 있고.
[치유☆] 스킬이 억눌린 채로도 그 효력을 발휘했다면 설명이 된다.
별이 붙은 것을 보면 일반적인 치유 스킬과는 다른 스킬일 거다.
내가 치유사로 각성했다면 두 배는 강력한 치유 능력을 뿌리고 다녔겠지.
내가 성기사로 각성했다면 자력으로 몸을 치유하여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는 좀비 같은 생명력을 발휘했을 테고.
마법사로 각성했다면 조금 애매했으려나?
하지만 고유 스킬과 각성 직업은 대체로 연관되는 편이다. 완전히 엉뚱한 직업으로 각성하는 이는 좀처럼 없다.
계기만 있었다면 치유사라는 귀족 직업으로 각성했겠지.
[치유☆] 스킬을 지녔는데 슬라임으로 각성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로또 복권에 당첨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번개를 연달아 100번 맞고도 살아남는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낮은 확률에 적용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저주 탓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저주에 걸렸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다만 내가 슬라임이 된 것은 저주 때문인지.
저주와 내가 슬라임이 된 것은 어떤 상관도 없는지.
이 점은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이왕이면 치유사가 될 예정이었으나 저주로 인해 슬라임으로 각성하게 된 것이라면 좋겠다.
그편이 내 안에 있는 모든 저주를 제거했을 때.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더 있으니까.
저주에 걸린 원인은 모르고 별로 알아볼 생각도 없다.
만약 내가 걸린 저주의 강도가 약했다면 누구에게 원한을 사지는 않았나 고민할 수도 있었는데.
지금 내가 걸린 저주는 그런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내게 걸린 저주는 비유하자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나 다름없다.
운석을 핀포인트로 내 머리 위에 떨어뜨린다?
그런 짓을 하려면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대마법사가 온갖 제물은 물론이고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대규모 의식이 필요할 거다.
지금껏 살아오며 그 누구에게도 그 수준의 원한을 산 적은 없다.
저주는 사람의 원념에서 태어난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사라지는 바라는 마음에서도.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나보다 잘난 사람이 꼬꾸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자잘한 저주는 태어난다.
하나하나는 대단하지 않더라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런 자잘한 원념들이 쌓이고 쌓여 지독한 재앙을 만들기도 한다.
내가 저주에 걸린 건 그런 천재지변에 휩쓸렸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생각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런 것을 고민하느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게 건설적이다.
[치유☆]은 무대의 뒤편에서 활동하다가 바깥으로 나오면서 레벨이 1로 초기화돼버린 것 같지만, 장막이 하나 사라지면서 스킬의 출력 자체는 비슷하게 유지된 것 같다.
대량의 불량품 양산 사태는 피할 수 있겠다.
앞으로 레벨이 오르면 그 효과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의 치유 효과를 지금보다 높일 생각은 없다.
지금 정도 세계 건강지수를 개선했으면 충분하잖아.
더 심한 물건을 내놓았다가는 내가 의약계 시장을 점령할지도 모른다.
시장 독점은 좋지 않다.
기술 저하를 불러오니까.
사람들이 자기 건강을 전적으로 내게 맡기기 시작하면 내게 문제가 생긴 순간 세계 건강지수가 폭락한다.
나라고 천년만년 살아가지는 못할 거다.
또 저주의 악영향으로 언제 이상해질지 모른다.
만약을 대비해야 하므로 독점은 좋지 않다.
그냥 슬라임랜드에서나 조금 강하게 효과를 발휘하도록 할까.
아, 그리고 에도.
[치유☆]가 적용된 을 쓰면 악화는 확실히 막을 수 있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기운을 차리게 할 수도 있고.
완전히 사멸한 머리의 치료는 어렵다.
땅에 씨앗이 있어야 풀이 자라지.
씨앗이 없는데 풀이 자란다면 그건 [치유☆]가 아니라 창조의 영역이다.
***
웹소설 작가는 에서 손목을 뗐다.
가볍게 손목을 돌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매일 키보드를 두들기는 직업이다 보니 전에는 손목이 아플 때가 많았다. 당장은 참을 수 있어도 나중에 가면 더 악화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여러 가지 해결책을 찾아봤다.
키보드 앞에 수건도 깔아봤고, 키보드도 바꿔봤고, 손목 받침대도 써 봤다.
대부분 효과가 없었다. 어떨 때는 손목만이 아니라 팔꿈치까지도 아파졌고.
그랬는데 을 쓴 뒤로는 그 아픔이 싹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옛날부터 책을 많이 읽고 최근에는 스마트폰 화면을 많이 보다 보니 시력이 아주 나빴다. 시력이 나쁜 것은 물론이고 난시에 안구 건조증까지 있었다.
특히 안구 건조증이 문제였는데 밤만 돼도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읽고 쓰기를 포기한 순간 생활도 포기하는 직업을 지녔으니 꾸준히 안과를 다녔다.
눈 찜질도 열심히 하고, 영양제도 열심히 먹고, 창밖도 자주 보고, 블루라이트 필터를 사용하고, 모니터에는 화면 보호기까지 씌웠다.
그랬는데도 시력은 서서히 나빠졌고 안구 건조증도 낫지 않아 병원비와 안약값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점점 미래가 불안해지던 무렵.
이 출시됐다.
모니터를 보는 시간 내내 을 붙이자 눈이 아픔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하루 종일 화면을 보고 책을 읽어도 눈이 피로해지지를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안경 도수를 맞추는 데 한계가 있어 조금 흐릿한 세상을 살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 렌즈 역할도 해주는지 세상이 한층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됐다.
게다가 시력도 조금 좋아졌다.
그렇게 보이는 세상이 선명해졌건만.
웹소설 작가는 현재 자기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화면이 믿기지 않았다.
알케미슬라임 컴퍼니에서 온 메일이었다.
무려 그의 손으로 직접 그가 쓴 작품의 굿즈와 2차 저작물을 제작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고 있었다.
웹소설 작가는 ‘그의 손으로 직접’이라는 내용이 이해가 안 됐다.
그의 저주받은 손으로 사람을 그리면 만두가 됐으니까.
대체 무슨 수를 쓰면 2차 저작물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물론 2차 저작물, 즉 만화, 애니, 드라마, 영화가 된다면 무척이나 기쁠 터였다.
돈도 돈이지만, 웹소설 작가에게 작품이 영상화되는 건 꿈이나 다름없으니까.
특히 판타지 장르를 쓰고 있다면 더욱.
일본은 애니화라는 방법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판타지 장르를 드라마로 만들려고 한다면 깨질 돈이 까마득하고.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메일에 적힌 장소들 가운데 한 곳으로 나오라는 내용이 있었다.
웹소설 작가는 즉시 준비를 바치고 밖으로 나왔다.
옷은 역시나 펭귄 세트를 입고 을 얼굴에 붙였다.
3월이라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기는 했는데 펭귄 세트는 어느 계절이나 사용할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덥다고 느끼지 않는다. 언제나 최적 기온을 유지해준다.
그리고 .
예전에는 부끄러워서 밖에 나갈 때는 을 떼고 나갔는데 요즘은 그냥 붙이고 다닌다.
편리한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도 많이 이러고 다녀서 부끄러울 일이 없어졌다.
얼굴에 을 붙이는 이 패션은 알케미슬라임의 대변인이 TV에 나왔을 때 보여준 뒤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랬는데 이 패션의 엄청난 장점이 알려지면서 대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장점은 바로 필터 기능.
3월이 되면 황사와 미세먼지는 물론이고 꽃가루도 날린다. 그야말로 대기질이 최악이 되는 시기인데 을 붙이고 다니면 모든 근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여기 맞지?’
웹소설 작가는 「임대」 표시가 붙은 가게 앞을 기웃거렸다.
“우왓!”
그때 갑자기 자동문이 열렸다.
‘들어오라는 건가?’
“실례합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바깥에서는 안 보이던 슬라임으로 이뤄진 기둥이 있었다.
그 슬라임에 균열이 일고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열렸다.
판타지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에 웹소설 작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고.
슬라임이 그의 몸을 감쌌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는 듯한 부유감이 그를 휘감았다.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지?’
그 부유감은 꽤 길게 이어지다가 멈췄다.
이번에는 앞으로 가속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것을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와···.”
SF 영화에서 초공간 도약을 할 때와 같은 풍경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으니까.
수많은 별이 길게 늘어지며 지나가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그의 몸이 멈췄다.
부드럽게 밀치는 감촉에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다시 못 타나?’
그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그를 여기로 데리고 온 슬라임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책상과 의자가 준비돼 있었다.
책상 위에는 계약서가 있었다.
계약서는 조심해야 한다.
‘문제없겠는데?’
오늘 체험한 내용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웹소설 작가는 부담 없이 사인했다.
어차피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으니까.
계약서는 책상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서 책상이 위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만화 작업대처럼 변했다.
그리고 표면에 그의 소설과 메뉴가 떠올랐다.
만화화, 애니화, 3d 애니화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는 없네. 하긴, 그건 배우가 필요하니까.’
애니화가 가장 궁금하였으므로 선택했다.
다음은 각색의 정도를 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각색 정도를 0으로 했다.
[소설을 그대로 구현합니까?] “네.”
슬라임이 뒹굴뒹굴 굴러가는 화면이 나오고.
그의 소설이 애니가 돼서 화면에 떠올랐다.
“정지! 정지! 죄송합니다! 자만해서 죄송합니다!”
웹소설 작가는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위대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가 적은 내용만을 구현했을 때 어떤 처참한 장면들이 연출되는지 10초 만에 깨달았다.
각색 정도를 꽤 강하게 주며 그의 소설을 애니로 바꾼 결과.
‘이거 공부하지 않고는 못 하겠는데.’
소설의 연출과 영상의 연출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애니를 만들 때의 가장 큰 장벽인 미술 실력은 극복할 수 있었다.
‘내 소설을 애니로 만들 수 있다니.’
더 해보려는 찰나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
대신 정식 계약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런 걸 보여주고 그만두라니. 악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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