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38
00138 6-3. 뒤틀어진 세계 =========================================================================
이놈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방패가 폭발할 것이란 사실을 눈치 못 챈 것 같다. 사실 카르막스의 시야에는 방패에 금이 간 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 방패가 고열로 달아오른 건 전투 후 태양광 폭사 등으로 계속 있었던 일이다.
아마 먹어서 소화시킬 자신이 있나 보다.
반신격의 위장이니 그 정도는 열기도 아니란 건가.
무지와 광기로 지금 카르막스는 엄청난 짓거리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크흐흐… 이걸 먹어치우면 네놈 표정도 볼만 하겠군.”
순간 불쌍해서 먹지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당황한 척 충분히 연기했다.
“내놔라! 이놈!”
“쫑알쫑알 시끄럽다!”
카르막스는 긴 다리로 성큼 걸어 뒤로 물러나더니 득의양양한 표정이 됐다. 그리고 곧 방패를 집어삼켜 버렸다. 틀렸다, 저놈 완전히 미쳤어.
“크하하하하! 화끈한 게 도수 높은 술을 들이킨 것 같군!”
정말로 반신격의 식도와 위장은 대단하구나.
그런데 문제는 태양신격의 방패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라면 집어삼킨 마법 무기를 무력화하는 메커니즘이 있을 거다.
아무리 정신이 나간 상태라지만 본능이란 게 있는데 대책 없이 방패를 먹었을 리가 만무하다.
평소에도 상대의 무구를 먹어서 무력화하는 전투 패턴이 있었겠지. 그래서 이번에도 시도한 건가 본데, 타이밍이 너무 나쁘다.
지금 그 방패 터지기 직전이라고.
“뭐지? 크으윽!”
드디어 뭔가 오나 보다.
격통을 느끼는 듯 카르막스는 긴 팔다리를 축 늘어뜨렸다 들어 올려 사방으로 휘젓길 반복했다.
“크아아아아!”
그의 위장 부분에서는 강렬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투명한 살을 뚫고 빛이 나올 정도니 얼마나 안쪽 상황이 격렬한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나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천사들에게 서둘러 물러나도록 했다.
보니까 유송연의 상태가 안 좋았다.
“미카엘라. 무리라는 걸 알지만 송연이 좀 어떻게 해 봐. 고치라는 게 아니야. 일단 좀 지연이라도 시켜봐.”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유송연과 대천사들을 뒤로 빼고 있는데 카르막스가 기괴한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대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가엾게도 이놈은 지금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고통 때문인지 움직임도 이상해 마치 좀비처럼 보인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도 두 눈은 증오로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왼팔을 뻗어 나를 쥐어뜯으려 했으나 결국 그는 그러지 못했다.
콰아아앙!
빛이 시야를 가리며 대폭발이 일어난다.
충격파와 함께 피부를 증발시킬 것 같은 고열이 날 덮쳤다. 얼굴을 가린 손 틈 사이로 보니 상체가 분리된 카르막스가 자신의 척추뼈를 길게 늘어뜨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 보인다.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비루한 최후였다.
“흠….”
폭발의 여파가 끝나자 날개로 몸을 감싸고 있던 나는 박살 난 카르막스의 잔해를 살피러 갔다.
뭔가 철퍼덕하는 소리가 났었지.
가보니 상반신만 남은 카르막스가 땅바닥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인지, 폭발의 충격 때문인지, 그는 정신이 꽤 돌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허허…….”
그저 어이없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이 몸 정도 되는 자가 이런 촌구석 행성에서 최후를 맞이하다니.”
나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원래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아무리 귀한 놈이라도 죽을 때는 항상 비단 깔고 죽는 게 아니야.”
“…크크큭. 짜증나게도 맞는 말이군. 하지만 이걸로 네놈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말도록. 너는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네놈의 가족과 백성들은 떼죽음 당할 테니까.”
“무슨 소리지?”
“네놈 발밑을 보라. 이게 단순히 우리 결투를 위한 장소인 줄 아느냐?”
아닌 건 안다.
“네놈의 회복을 돕고 능력을 더하기 위한 곳이잖나.”
“쯧쯧! 어리석은! 큭큭큭.”
카르막스는 상당히 기분 좋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주변을 돌아보다 바닥이 파괴된 곳을 살폈다. 두꺼운 석재 바닥 아래에는 처음 보는 마법진이 있었다.
왜 지금까지 이걸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당황하는 내 모습에 카르막스는 더욱 크게 웃었다.
“왜 못봤던 걸까 싶지? 크하하핫!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 몸께서 교묘히 감춰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왜?”
“당연한 거 아니냐. 지금 내가 이리 쓰러진 탓에 마법이 풀린 것이다.”
바로 내 발밑에 있었으면서 모를 정도로 잘 감춰진 마법진이라니.
일단 시합장으로만 보이게 했고, 그다음은 오벨리스크로 시선을 돌려 회복 시설 정도로 착각하게 했고, 마지막으로는 마법으로 모습을 가려뒀다.
이 정도까지 하니까 모를 수밖에.
“이게 대체 무엇인데?”
“태풍보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진이지. 주로 행성을 파괴할 때 사용하는 고강도의 주문이다. 네놈 같은 하등 민족은 꿈도 못 꾸는 일이지. 저 마법진인 터지면 반경 3,000킬로미터가 깨끗하게 날아간다. 행성의 점령하기 전에 벌레 같은 원주민들을 일소하기 좋지.”
저게 터지면 한중일은 흔적도 없이 지워지게 생겼다.
“이 몸이 소환되고도 왜 네놈들이 사는 곳으로 바로 쳐들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 더 편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네놈들의 원시적인 도시로 쳐들어가서 투닥투닥할 필요 없었지. 여기서 한 번에 날려버리면 되니까. 게다가 네놈들은 나를 막으러 이쪽으로 올 수밖에 없으니, 찾아갈 필요도 없지.”
맞는 말이었다.
이 대폭발의 마법진이 터지든 안 터지든 우리가 먼저 찾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군세를 모으느라 안 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군.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 아닌가. 일단 찾아온 우리를 제거한 뒤에, 이런 마법진을 열 번만 터뜨려도 지구의 문명은 더 남아있기 않게 될 것이다.
“크크크… 어서 도망가라. 그리고 네놈의 백성들이 끔찍하게 죽는 꼴을 즐겁게 감상하도록.”
아주 유쾌하다는 듯 웃어대는 카르막스.
그는 이쪽에서 저 마법진을 저지할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리 노력해 봐라, 저 마법진은 감히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반신격이 아닌 이상.”
“…반신격이라 했나?”
“그렇다. 지금 이 행성에 반신격은 나 말고 없을 터.”
편안하게 눈을 감으려는 카르막스를 무시하고는 스이엘을 불러들였다. 대천사들도 상황이 궁금한지 대부분 몰려왔다.
“네, 부르셨나요?”
“전에 나보고 반신격이 되라고 했지. 이놈의 담당 영역을 빼앗아서.”
“물론이죠!”
“할 줄 아는 거야?”
“그럼요!”
스이엘이 자신하자 죽어가고 있던 카르막스가 비웃음을 흘렸다.
“어이없는 소리를 다 하는군. 신격의 담당 영역은 같은 신격이나 되어야 빼앗아 볼 수 있다. 나의 담당 영역을 가져가려면 적어도 반신격은 되어야 한단 소리다. 감히 네년 같은 미물이 할 수 있다고?”
전투력이나 권능으로 따지면 스이엘은 카르막스에 비해 벌레 정도 수준이긴 하다. 그러니 저리 황당하게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무시해도 좋을 텐데 굳이 저리 대꾸하는 걸 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호호호, 물론 제가 하지 않는답니다. 여기 대천사님들이 할 것이죠.”
“이 몸이 보기에 네년이나 대천사나 마찬가지다. 감히 서번트들 주제에 담당 영역을 빼앗는다고? 주인이 그런 일을 허락할 리가….”
“당신의 주인과 우리 주인은 다릅니다. 우리 주인은 쓰러뜨린 신격의 담당 영역을 빼앗는 작업을 귀찮… 아니, 좀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싶어하셨죠. 그래서 수하들이 모여서 담당 영역을 회수해 오게 만드신 거예요. 당신 쪽과 다르게 우리는 그런 거창한 능력을 받았답니다.”
“말도 안 돼! 자칫하다가는 회수에 나선 수하가 강하다면 그대로 신격에 올라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걸 맡긴다니!”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주인이 은행에서 1,000억쯤 뽑아야 하는데 일의 효율을 위해 부하에게 맡긴다는 거다.
카르막스 입장에서는 부하 놈이 1,000억을 들고 튀면 어쩌냐고 황당해한 거지만, 이 천사들의 주인은 대담하게 그걸 허락했던 것이다.
스이엘은 발작을 일으키려는 카르막스를 보고 의기양양해 했다.
“우리 주인의 게으름은…, 아니, 우리를 향한 신뢰는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별로 자랑스러워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얘기였다.
미담인 줄 알았는데 스이엘의 고의 같은 말실수로 빛이 완전이 바래버렸다.
“자, 그런 이유로! 대천사님들 부탁할게요. 이 죽어가는 천 것의 담당 영역을 뽑아서 우리 천사장님에게 주는 것이에요!”
유송연을 돌보고 있는 미카엘라를 빼고 모든 대천사가 원진을 이뤄 카르막스를 둘러쌌다.
가브리엘, 라파엘이 전사하고 서열3위에 오른 바라카엘이 쓴웃음을 짓는다.
“작업하기 좋게 잘 다져 놓으셨군요. 덕분에 수월하겠습니다.”
“안 돼! 이 쓰레기들이 끝까지!”
카르막스는 발작을 해댔다.
내 옆에 바짝 붙은 스이엘에게 담당 영역을 잃는 게 어떤 건지 물어보니 설명해 준다.
“그건 무척 큰 상실이에요. 담당 영역을 잃으면 온전한 신격이 아니라 준신격으로 내려앉거든요. 쉽게 말해 별 볼 일 없는 동네 아저씨가 된단 말이에요.”
준신격이라고 해도 충분히 강해 보이긴 하는데.
뭐, 그렇다면 그런 걸로 알자.
스이엘은 과도할 정도로 찰싹 달라붙어서 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한다. 귀엽고 달달한 향이 나는 자신의 여체를 비비면서 말이다.
“좀 너무 붙은 거 아니냐?”
“어머, 아니에요. 다 치료를 위한 것이랍니다. 스이엘은 요정 같아서 피부에서 치료의 가루가 떨어져요.”
“거짓말이 틀림없는데.”
“에이, 너무 그러지 마는 거예요. 이제 신세계의 지존이 될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스이엘은 첩의 자리라도 괜찮아요.”
“뭐?”
“제가 섹시미는 없지만 큐트하기로는 대천사님들에게도 안 밀리는 거예요. 자, 기다리는 동안 제 어필 타임을 즐겨주세요. 말랑말랑하고 향기가 좋잖아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완전히 뻥은 아닌지 스이엘이 내게 몸을 비벼댈 때마다 상처가 나아간다. 몸 곳곳을 괴롭히는 격통이 수그러들자 스이엘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카르막스에게서 담당 영역을 뽑아내기 위한 의식이 계속되었다.
“이 천한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으아아악!”
카르막스는 그야말로 대노한 상태로 저항했다.
하지만 처량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덫에 걸려서 죽어가는 맹수와 같다고 할까.
대천사들은 차근차근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과정을 완료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카르막스의 길고 긴 절규와 함께 담당 영역을 뽑아내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네놈을 저주할 테다! 저주할 거야! 나는 고귀한 존재란 말이다! 감히 너희 같은 벌레들이 무례하게 굴 존재가 아니다!”
대천사들은 카르막스의 일갈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뽑아낸 담당 영역을 조심히 가지고 내게 왔다.
그것은 마치 전자로 둘러싸인 원자핵과 같은 모습이었다.
“원래 담당 영역이란 게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건가?”
내 물음에 바라카엘이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저희는 필요에 의해 유형적으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담당 영역을 취하는 과정은 다 다릅니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반신격이 될 수 있는 건가?”
“이미 천사장님께선 반신격에 준하는 위치에 계시니까요. 원래라면 이것만으로는 무리입니다. 이게 다 사전에 저희 주인에게 힘을 받았으니 가능한 겁니다. 자, 그러니 이걸 취하시고 새롭게 태어나십시오.”
내가 두 손으로 뽑아낸 그것을 받아들자 바라카엘이 덧붙인다.
“서두르십시오. 마법진의 폭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분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라카엘은 죽어가고 있는 유송연을 가리켰다.
현재 그녀는 미카엘라의 노력으로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의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지구의 통치자이자, 지존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