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5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43)
새하얀 안개 속에서 녹색과 청색이 엉킨 소용돌이를 품은 구체(球體)가 빙글빙글 움직였다.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듯하다가 구체의 위치가 이리저리 옮겨지는 듯했다. 멀리서 본다면 안개를 몸으로 삼은 괴수가 기묘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
그 구체 위로 먼 곳의 광경이 거울처럼 피어올랐다.
안개가 꿈틀거리며 녹색과 청색의 소용돌이를 따라 맴돌았고, 구체 위에 드리워진 광경 속에서 투란이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치솟는 중이었다.
사아아…….
서늘한 바람이 안개 속에서 흘러나왔다.
안개가 깔린 수면이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다가 부서졌다.
스아아…….
거대한 괴수가 숨을 고르는 듯한 소리가 안개 속으로 퍼져 나갔다.
안개가 꿈틀거리며 길고 거대한 뱀처럼 회전했고, 날개와 발을 펼쳐내며 뱀과는 조금 다르다고 과시하는 듯한 형체를 그려 냈다.
찰랑.
수면에 동그란 파문 다섯 개가 동시에 퍼져 나가며 안개의 형체는 녹색과 청색이 얽힌 소용돌이를 머금은 구체를 지우며 물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 * *
―시선이 사라졌다.
‘음! 그런 것도 알 수 있었어!’
홀시딘과 에스탄의 앞에 서는 순간, 가속된 사고로 잠깐 정지된 듯한 풍경을 느끼면서 투란은 묻고 있었다. 하늘에 뜬 배 위로 올라오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미묘하게 느껴졌던 이상한 눈길…… 하지만 누가 ‘봤다’는 것은 알아도 지금 계속 보는가 눈길을 돌렸는가는 쉽게 말할 수가 없는 미묘한 느낌이었다.
그러한 것을 드라고니아는 분명하게 포착했다고, 여전히 보는가 아닌가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잖는가.
―언데드는 생자(生者)의 기척에 민감했으니까. 의지를 지닌 자의 눈길에 너도 함께 민감해졌고, 덕분에 새로운 마법을 익히기도 했지. 지금 프로브에는 그렇게 추가된 감각영역이 반영된 채야.
‘음, 그래서 어디쯤!’
또다시 잊혀진, 파묻었다는 기억을 근거로 하는 말에 살짝 찌푸리고 싶은 기분을 담아 투란이 다시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엿보는 누군가, 아무래도 멀쩡한 사람은 아닐 듯싶었으니.
―호수 저편이다. 몇십 킬로 거리가 있군. 계속 위치가 변하는데…… 추적은 안 될 것 같군, 정체도 애매모호하다. 홀시딘에게 물어봐. 화이트 레이크라면 알드바인 상아탑의 관측범위 안이니까. 프로브로 어려운 광역탐색이 상아탑 쪽이라면 쉬울 거야. 뭔가 포착되었다면 상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넌 대답 안 해줄 거야!’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눈앞에 보이는 홀시딘에게 말을 걸기 전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자신이 던진 물음에 대해 다시 짚고 있었다.
―네 기억에 대해서라면, 일단 이 상황을 끝내고 얘기하자. 아무래도 널 엿보고 있던 놈, 수룡인 듯하니까.
‘어! 몰래 홀시딘을 쫓아온 눈길이 아니었어! 수룡이라면…… 아까 그 울타리만으로 충분히 상황파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투란은 멈춰진 듯한 풍경을 보는 채로 갸웃했다.
수룡의 성채이니 뭐니 했던 울타리, 수룡 크리스털 가드의 마법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 알 수 있는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니 들킬 수도 있는 눈길 따위는 아예 둘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마법이 소멸한 다음부터 봤던 모양이야. 아까 너의 늪, 마법에 적응하고 스며오는 마력에 대항했잖아. 바헬키마의 적응능력 때문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몬스터 로드의 마력답게 마법에 의한 탐지, 관측은 모조리 뭉개버렸어. 그러니까 아예 가까이 둔 눈으로 쳐다본 모양이다.
드라고니아가 상황을 다시 가늠해본 듯이 말했다.
투란은 풍경이 서서히 가속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가속된 사고가 느려지며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되물어야 했다.
‘그러면…… 상아탑이 탐지 못하는 거야!’
―글쎄! 일단 물어봐라. 아까부터 열심히 찾는 모습이잖냐.
‘으흠…….’
입을 열고 깊이 숨을 몰아 내쉬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손끝으로 한쪽을 가리키면서 목소리를 내보는데…….
“마스터 홀시딘, 혹시 저쪽 주변에…….”
“수룡! 젠장, 확인해봐야겠군!”
투란이 말을 맺기도 전에 홀시딘이 터뜨린 외침이었다.
에스탄이 맹한 표정이 된 투란을 대신하듯 바로 그 외침의 내막을 캐묻는다.
“수룡을 찾으셨단 말씀이오!”
“음! 생긴 것은 그렇소만. 전설을 떠올리면, 이게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가서 확인해봐야 할 모양이오. 투란, 최대한 휴식을 취하면서 대기해라.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만, 그 자리로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어!”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 홀시딘은 투란을 향해 살짝 다그치는 말도 하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무엇 때문이냐고 되묻는 소리를 꺼낼 수가 없었다.
홀시딘이 바쁜 모습이었고, 수룡이 본체인가 분신인가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이미 드라고니아를 통해 들었으니까.
그래도 살짝 쀼루퉁한 기분은 투란의 눈가를 실룩이게 하는데, 에스탄이 슬쩍 달래는 듯이 말한다.
“투란, 뭔가 느꼈지! 그 느낌이 진짜 나를 본다란 느낌이었나 아니면 어중간하게 곁눈질하는 시늉이라 느껴졌나!”
“에, 예!”
뾰루퉁한 기분을 훌렁 잊어버린 채로 어리둥절해서 투란이 눈을 끔벅이며 에스탄을 바라봤다.
에스탄이 입꼬리에 기묘한 웃음을 매달면서 묻는 말을 잇는다.
“언더섀도우에서, 투란 너는 파밀리어 뱃을 부리며 변신하는 뱀파이어와 싸우기도 했었지. 자신이 부리는 박쥐 떼 속에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 숨는 뱀파이어 혈족을 상대할 때, 너는 파밀리어로서 소환된 박쥐가 아닌 뱀파이어의 변신체를 정확하게 찾아냈었어. 그때 네가 한 말이야, 투란. 진짜 뱀파이어의 눈길과 파밀리어 뱃의 눈길의 차이에 대해서 그렇게 말했었다. 뭔가를 거쳐온 눈길과 직접 대하는 눈길이 다르다면서.”
투란은 조금 뚱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투란은 마음 깊은 곳을 향해, 드라고니아에게 묻고 있기도 했다.
‘야, 저 얼렁뚱땅 이상한 말을 내가 했어! 정말로!’
―했다, 정말로.
대답이 매우 단호했다.
너무 단호해서 두말 말라고 으르렁거리는 낌새도 살짝 섞인 듯했다.
어이없어서, 자신에게도 드라고니아에게도 울컥하는 기분이 살그머니 솟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말했는데! 너는 그때 내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가 알 것 아니야! 뭘 어떻게 했어!’
―어쩌긴 뭘 어째! 넌 그때 순수한 몬스터 로드의 감각이니 뭐니 하면서, 완전히 느낌으로 알 것 같다고만 했어! 프로브도 옵저버도, 형성된 어떤 감각기관도 아니라 순전히 몬스터 로드만의 고유한 감이라고 촐랑거리면서 말이야. 그러니 내가 알 리가 있나!
제대로 으르렁거리며 터져 나오는 대답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왜 으르렁거리는가를 느끼고도 남을 말투였다.
이쯤 되니 투란은 뚱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에스탄을 향해 무성의하게 주절거리듯이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어, 기억은 전혀 안 나지만…… 사실 아까 누가 멀리서 조금 무섭게 날 보는가 싶었거든요. 그래서 마스터 홀시딘에게…… 우어엇! 홀시딘, 왜 그래요!”
갑자기 바닥이 확 기울면서 에스탄과 투란이 몸을 기우뚱거리게 했다.
때문에 투란이 말을 하다가 이 구름 같은 배를 다루는 홀시딘에게 급히 물은 것인데, 홀시딘은 허공에 둥실거리며 배가 기울든 말든 상관없다는 모습으로 대답을 한다.
“수룡의 성채는 투란 네가 해체했어. 수룡의 눈길은 그다음에 느낀 것이지! 언더섀도우에서 너에게 그런 재간이 생겼다면, 그건 순전히 몬스터 로드로서의 기량이다. 기억이 어떻게 되었다고 해서 그 감이 무뎌지거나 사라지진 않아! 즉, 아까 네가 가리킨 곳에 수룡의 본체가, 본체는 아니더라도 정성을 다한 분신이라도 있단 말이지! 뭐가 되었든 알드바인과 루바인에 홍수를 선물하고도 남을 것들이고!”
“그래서 지금 바로 맞붙으러 가는 거예요!”
투명한 바닥 너머로 휙휙 스쳐 가는 수면의 풍경이 은근한 거울처럼 하늘의 구름을 비춰 내며 속도를 가늠하게 해주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투란은 물어야 했다. 방금 전에 휴식을 취하라 해놓고 이 속도라니, 홀시딘은 왠지 투란이 앉자마자 바닥을 다시 열고 떨궈버릴 듯하잖나!
“키유나에게서 사룡 잡을 때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지! 본체든 분신이든, 일단 붙잡든 뭘 하든 해야잖아! 너라면 할 수 있어, 투란!”
진짜이든 가짜이든, 투란을 떨궈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홀시딘은 전혀 숨기지도 않았다!
뭐라 따지고 싶어 하는 기분이 샘솟는 듯해서 투란이 입술을 달싹이려 하는데, 곁에서 에스탄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전설대로 강한 분신이든, 아니면 본체이든 맞닥뜨리기만 하면 투란은 해결할 수 있기는 하겠죠. 하지만 마스터 홀시딘,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준비는 되신 겁니까!”
달싹이려던 입술을 그냥 연 채로 투란은 에스탄을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냅다 떨구는 것을 말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매우 점잖게 뒤처리 걱정을 하라 떠들다니!
‘왜! 좀 말리는 척해도 되잖아!’
왠지 소리는 못내는 채로 투란은 이렇게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이에 대해서 드라고니아가 바로 피식 새는 듯한 웃음을 섞어 말한다.
―아케인 블러드 기간트를 네게 어떻게 쓰러뜨리는가 봤던 에스탄이다. 상대가 크고 거대한 괴수이든 전설적인 마수이든, 에스탄도 홀시딘처럼 네가 진다는 생각은 안 해. 최소한 목숨줄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을 하고 있지. 그러니 싸울 준비나 해라. 홀시딘이 널 얌전히 떨굴 생각은 아닌 것 같거든.
‘뭐!’
놀리는 것인가 다독이는 것인가 모를 이야기 끝에 걸린 경고에 투란은 흠칫해서 홀시딘을 바라봤다.
구름 같은 배를 바람타고 날아가는 화살처럼 움직이는 홀시딘, 그런데 그 마법의 한 자락은 배 밖이 아니라 배 안에서 은근하게 뭔가 준비하고 있잖은가! 그야말로 누구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듯이 은근하게 그 마력이 둘러싸는 것은 틀림없이 투란 자신!
“어, 홀시…….”
“주변에 쪼그만 섬이 있다, 너비 십오 미터, 폭은 십 미터. 나무도 있고 제법 커. 그쪽으로 수심이 얕아지니까, 여차하면 그리로 튀어나와! 그 상공에 배를 두고 대기하겠어!”
뭐라 투란이 말하려는 시도를 홀시딘은 낭랑하고 빠른 말을 벼락 치듯이 쏟아내서 바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투란은 마력이 감싼 영역째로 자신이 투하(投下)당하는 중인 것을 깨달아야 했다.
요동치는 마력, 갑자기 공중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바람결이 투란이 뒤늦게 토해내는 말소리를 홀랑 삼켜버렸다.
투석기에 쏘아진 돌덩이처럼 떨어지면서도 한쪽으로 겨냥된 채로 날아가는 듯한 투란을 보면서 에스탄이 중얼거린다.
“욕이려나! 음…… 입술 읽기로는 뭔 말인가 알 수가 없군.”
홀시딘이 후우하고 작은 숨을 내쉬면서 씁쓸하게 이에 대꾸한다.
“보상금 많이 내놓으랍니다. 갑자기 떨군 것에 대한 위로금까지 포함해서요.”
에스탄은 홀시딘을 보며 눈을 깜박하고 풋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핫, 아…… 실례했소.”
“괜찮아요,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한 짓이기는 하니까.”
홀시딘은 한층 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적게 주기만 해봐아아아!”
―새삼스럽기는 하군. 상아탑과 헌터길드의 보상금이라…… 그러고 보니 언더섀도우에는 어느 쪽도 영향을 끼치질 못하고 있었잖아! 흐흠.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투덜거림을 일부러 덮어 누르듯이 중얼거렸다.
‘야, 뭐가 보이는가를 말해 줘야지!’
―뭣도 없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넌 뭐 느끼는 바가 있나! 상아탑을 통해 뭘 감지했든 간에…… 아무것도 감지 못해서 이러는 건가!
‘갑자기 뭔 소리야!’
―수룡이 마법의 탐지를 봉쇄했을 경우, 탐지되지 않는 곳을 수룡이 숨은 곳으로 찍을 수가 있잖아. 하지만 그 자리에 도달했다 해도 프로브나 다른 탐지 마법으로 못 찾는 것은 여전하지. 즉, 너처럼 이렇게 몸으로 맞닥뜨려볼 수 없단 말이다. 아, 맞힌 건가!
중얼거리던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투란이 닿을 수면 아래, 그 깊은 곳에서 부글거리며 맴도는 거품을 투란에게 보여주며 말을 맺고 있었다.
물 속 깊은 곳, 투란은 그 속에 거품으로 이뤄진 거대한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봤다. 그리고 곧바로 수면을 가르고 물속으로 몸이 파고들면서 투란은 더 볼 수 있었다.
거품이 커다란 소용돌이 같은 구멍을 드러내고, 창처럼 길쭉하고 뾰족한 물방울을 뭉쳐 쏘아낼 태세를 갖추는 광경…….
―워터 스피어! 아니, 버블 블라스터인가!
‘얀마! 피해야 하는 거야, 그냥 있어도 되는 거야! 그것부……!’
―그냥 맞으면 으깨진다, 어쩔래!
‘야, 이 미친놈아!’
너무 느긋한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격노했다.
거품 속에서 뿜어져 나온 파괴력 또한 그런 격노를 담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