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4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45)
“후웃, 으랏차!”
투란은 기지개를 켜고 깡충 뛰었다.
몸에서 넘쳐나는 활력이 투란을 휘감으며, 한껏 몸이 가볍다고 알려왔다.
‘와, 보르가의 독이 정말 대단한데!’
뼈를 부수고 그 속에 고인 독액을 놓치지 않고 계속 섭취했다.
그러면서 투란은 어렴풋이 느끼던 것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독이 악마의 심장에는 굉장한 양분이 된다는 것을.
덕분에 투란이 형성한 ‘악마의 심장’은 뱀의 뼈와 고기에서 얻은 것보다 몇 배나 되는 양분을 흡수해서 소모된 체력을 완전히 채웠고, 여분의 양분마저 축적해 놓았다. 이대로라면 체력을 최고로 발휘해도 한 사흘은 그냥 버틸 듯할 정도였다.
천천히 선 채로 숨을 들이쉬면서,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허파와 목을 맴도는 것을 느꼈다. 이 높은 곳은 여전히 사람이 숨을 쉬기에는 버겁지만, 그래도 저 늪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버틸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잠깐에 불과하지만…….
투란은 정상을 올려다봤다.
한쪽만을 향한 암벽의 작은 틈새인 이 자리와 다르게, 저기 올라가면 사방이 다 보일 듯했다. 올라가면서 돌다 보면 다른 풍경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고!
문장 속에 맴도는 고요함을 느끼면서 투란의 입가에 쓴웃음이 솟아났다.
드라고니아는 정말 삐진 것처럼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뭐라 더 놀려먹고 싶은데, 이러고 있으면 그 반응을 느낄 수가 없으니 장난칠 의욕이 사라질 수밖에 없잖은가.
일단 투란은 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디뎠다.
발가락이, 발목과 정강이, 허벅지와 허리까지 모두 잿빛바위 그랑츄의 형상을 드러냈다. 그리고 배꼽 아래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감싸며 검고 두꺼운 가죽이 무릎 아래를 잘라낸 바지처럼 덮였다.
‘으흐흣.’
굵고 커다랗게 변한 하반신을 꽉꽉 조이던 뱀가죽과는 다른, 아주 편안하게 착 달라붙은 듯이 꼭 맞는 가죽의 느낌이 투란을 저절로 웃음 짓게 했다. 이는 가죽을 기억하는 ‘패러블랙 잉크’의 능력이었다.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벌거숭이 몬스터 로드의 불쌍한 몰골은 피할 수가 있게 되었으니, 서서히 베터랑의 근사한 모습에 다가서고 있잖은가?
“초보 티가 어디서 나냐고? 그야 옷 찢어먹는 꼴을 보면 바로 알지. 자기가 삼킨 몬스터의 변신역(變身域)을 파악 못 해서 입고 있던 옷을 찢어먹고, 벌거숭이 꼴이 되거든. 능숙한 몬스터 로드라면 몸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변신하는가에 맞춰서 그에 맞는 장비, 옷차림을 갖추지. 그러니까 벌거숭이가 되지 않고, 몬스터의 형상을 갖춘 채로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초보를 벗은 몬스터 로드야. 옷을 유지 못 하는 건, 확실하게 초보라고, 초보.”
고무쇠의 몬스터 로드, 그가 나불거리던 말이 투란의 뇌리에 단단히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옷이란 사람답다는 징표의 한 가지라고, 샤오덴 할배도 그랬다. 벌거벗은 채로 살가죽만 입고 뛰어다니는 놈이 짐승이랑 뭐가 다르냐면서.
하지만 이 치열한 난장판에서 투란은 가죽옷을 찢어먹어야 했고, 뱀가죽으로 대충 아랫도리를 가리는 정도만 겨우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고생한 보람이다! 으히히힛!’
즐거움과 함께 투란은 정상을 향한 등정(登程)을 시작했다.
붉은 늑대의 팔과 샤머닉 트롤의 팔이 투란의 좌우에 형상을 갖추면서, 잿빛바위 그랑츄의 발과 함께 암벽을 긁고 쥐고 밟아갔다.
슈이이잉!
귀를 스쳐 가는 바람이 귀를 잘라가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게 했다.
드레이크의 날개를 써서 더 높이 치솟았을 때와는 완연히 다른 감각이었다.
투란은 바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바위벽에 매달린 채로 대롱거리는 꼴이었다.
‘이렇게 다른가.’
늑대의 손톱, 트롤의 손톱은 사람이 잡을 수 없는 틈새를 잡고 긁어내면서 투란을 매달리게 했고 그랑츄의 발가락은 바위벽을 파내듯이 긁는 꼴로 달라붙으며 더 높은 곳으로 몸을 밀어올리게 해줬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와서, 이제 거의 정상까지 한 십여 미터 남긴 곳인가 싶었을 때 몰려온 거칠고 사나운 바람결이 투란을 대롱거리게 했다. 그 날카로움이 귓속에 섬뜩한 소리와 거친 감각을 남긴 것인데…….
‘에? 진짜 베였나?’
귓가로 살짝 ‘악마의 심장’ 줄기가 움직이면서 한 겹 더 실그물을 자아내면서 살갗을 덮고 있었다.
투란은 조금 전에 자신을 흔들고 스쳐 간 바람이 어디서 왔는가를 되짚어 봤다. 저 아래에서 밀려와 암벽의 틈새에서 뒤틀려 온 바람결이었고, 아직도 조금 이어지고 있었다. 그랑츄의 바위살갗과 얇게 저며낸 듯한 그림모스의 가죽은 거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미세한 살갗과 맞물린 ‘악마의 심장’ 껍질은 조금 찢기고 베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피 한 방울 놓치지는 않았지만…….
‘이런 짓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조금 반성하는 기분이 투란을 찾아왔다.
날개로 한 방에 날아오르지는 않더라도, 몸을 지킬 정도의 준비는 하고 기어 올라온 것인데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드레이크에게는 있을 리가 없는 몸이니, 역시 좀 더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상황이었다.
바람이 잦아들었고, 대롱거리는 몸이 다시 찰싹 암벽에 붙었다.
투란의 손발이 다시 움직였고, 단숨에 십여 미터를 기어올랐다.
그리고 정상에서…….
“좁아!”
바로 투란의 불평이 나왔다.
멀리서 봐서 삐죽해 보였으니, 어느 정도 좁을 거란 생각은 당연히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서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있을 줄 알았다.
한 2, 3미터의 폭은 갖춘 정상일 줄 생각한 것이다.
고작 20, 3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바위 방석처럼 보일 줄이야!
이러면 그랑츄의 발은 겨우 하나 디딜 수밖에 없고…… 외다리로 서서 쏟아져 오는 바람결에 버텨야 하는 꼴이잖은가! 그랑츄의 하반신인 채로 여기 앉으려 하면, 뭔가 똥침 맞고 있는 모양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에구…….’
투란은 타협하기로 했다.
무릎 아래쪽에만 그랑츄의 형상을 남기고, 위는 사람의 형상으로…….
그렇게 해서 결국 정상에 앉을 수가 있었다.
세찬 바람결이 사방에서 번갈아가며 몰려오는 듯했고, 귓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이 노래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벗어난 늪은 여전히 거뭇하고 투명한 장막을 경계처럼 드리우고 저 깊은 곳을 향해 응축되는 꼴이었지만, 얼마나 넓은지 구불거리며 들쭉날쭉한 경계의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느릿하게 두 팔을 사람의 것으로 되돌리면서, 투란의 눈꺼풀이 거뭇해졌다.
얇게 저민 시커먼 가죽 눈꺼풀이 깜박이면서 뿔수리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흐릿하고 멀리 보이던 풍경이 순식간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투란에게 상쾌함을 전해왔다.
‘저쪽은 그래도 늪인 것 같고, 이쪽은 늪이 없는 숲인가.’
영역 몬스터라는 녀석을 가운데 놓고, 왼편으로는 그 경계를 이룬 장막에서 벗어난 색다른 늪의 냄새가 저절로 풍겨왔다.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높이 치솟은 절벽이 길게 이어진 담장처럼 보이면서 그 아래로만 늪이고, 절벽 위로는 짙은 숲의 풍경이 보였다. 투란이 내려다보는 그 숲은 무슨 바위들판을 가득 메운 이끼처럼 보이지만, 저쪽의 넓은 들판과 암산(巖山)이 가득한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의 등 뒤로는 양쪽의 숲과 늪이 적당히 어우러지면서 얽힌 볼록볼록한 구릉(丘陵)이 늘어져 있었다.
사방을 가만히 관찰하면서, 아래로 까마득하게 내려가는 산의 정상에서 투란은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했다.
‘악마의 심장’은 여전히 늪을 선호했고, 가능한 한 늪이 있는 쪽을 향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주장을 했다. 하지만 투란은 슬슬 늪의 풍경에 질릴 대로 질렸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딱히 온몸을 늪에 담가 놓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 지금, 다시 저 축축한 늪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분전환을 위해서, 조금 마르고 상쾌한 숲의 향기를 즐기고 싶었다.
“좋아, 이쪽이다!”
잠시 코를 킁킁거리면서 가장 건조한 느낌을 주는 숲을 향한 채로 투란은 몸을 일으켰다. 그랑츄의 발가락이 억세게 조이면서 발바닥은 단단한 암벽을 디뎠다.
촤아아!
좁아터진 정상에서 그대로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로 암벽에 두 발을 디딘 채로 투란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숲으로 이어진 면을 따라, 투란은 암벽을 미끄럼틀 삼아 내려갈 작정이었다.
미끄러질수록 암벽의 폭이 점점 넓어졌고, 투란은 저 아래를 정면으로 삼으며 옆으로 휙휙 스쳐 가는 풍경이 얼마나 기묘한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단단한 잿빛바위 그랑츄의 발가죽은 암벽에 맞닿은 마찰에 후끈 달아올랐지만, 찢어지거나 익어버리거나 타오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불쑥 튀어나온 암벽의 한 부분과 충돌하면, 그랑츄의 발은 가차 없이 이를 뭉개고 있었다. 잿빛바위의 강인함이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실감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라도 펼치고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있었기 때문에 투란은 이 암벽 활강(滑降)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때문에 산의 절반 정도를 내려와서, 갑자기 발끝에서 치솟은 불길이 온몸을 휘감으며 그랑츄의 발이 사라지고 발바닥이 화끈하다 싶은 순간, 튀어나온 돌에 부딪히고 튕겨서 암벽에서 멀어진 채로 공중에 뜬 꼴이 되었을 때…… 투란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어? 으아아!”
뾰족한 산은 높았고, 절반 정도라 해도 여전히 높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공중에서 허우적대는 꼴이라니, 발가락이 시큰하고 어디 부러지지 않았나 싶은 통증이라니!
갑작스럽게 몬스터의 형상을 잃은 몬스터 로드라니!
투란이 잠깐 진심으로 놀라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싶은 순간이 저절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투란은 느닷없이 불꽃으로 그려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눈을 감든 뜨든 상관없이, 눈동자 속에 나타난 얼굴…….
“키, 키린?”
휘이잉!
투란이 키린의 얼굴에 놀란 순간, 바람이 짙게 투란을 받쳐 올리면서 허우적거리며 돌던 투란의 몸을 바로잡아 줬다. 그래 봐야 공중에 활개 치며 엎어진 꼴로 추락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는가 했지만…….
‘오러! 오러다!’
투란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불길, 느닷없이 치솟아 놀라게 했지만 어째서인가 불의 위험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이 불길은 오러에 의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현상을 일으킨 원인, 키린의 얼굴이 투란의 눈동자 속에서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새, 불꽃의 새.
첫마디부터 투란에게 뭔 소리인가 모를 말이 툭 나오고 있었다.
‘엥? 키린, 그게 뭔…….’
입안 가득히 바람을 물고 소리를 못 내다가 투란은 퍼뜩 깨달았다.
키린이 남긴 오러의 불꽃이 어느새 투란의 온몸을 휘감았고,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키린이 꺼낸 첫마디처럼, 새의 형상이었고 분명히 불꽃으로 이뤄진 새였다.
―땅속을 파고 움직이고 있었다면, 두더지곰이 되었을 거야. 땅을 밟고 뛰고 있었다면 그냥 불곰이었을 거고…… 혹시 강과 늪의 물결을 가르며 헤엄치던 중이었다면 불타는 뱀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괴상한 꼴이겠다! 와, 그건 한번 보고 싶은데……. 아, 그래도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쪽은 투란이 높이 치솟았다가 내려오는 광경에서 새가 되는 거야. 뭐, 나가는 길에 날개비비라도 잡았다면, 분명히 날개가 있을 테니까. 후훗.
‘후, 후훗? 키린, 나 지금 추락하거든요! 몸에 붙은 불이 새 모양인 걸로는 해결이 안 된…… 응?’
여전히 입안 가득한 바람 탓에 소리 없이 따져보던 투란은 흠칫했다.
오러에서 흘러나온 불꽃, 새의 형상을 이룬 불꽃이 투란의 외피(外皮)가 되는가 싶더니,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저절로 투란의 손발도 움직이고 몸도 자세를 잡기도 했다. 팔다리의 움직임에 오러가 맞춰지는 것이 아닌, 오러의 흐름에 저절로 몸이 따르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키린이 투란에게 심어놓은 오러의 강요(强要)!
이제는 암벽이 아닌 바람을 타고 활강하는 꼴이 된 채로, 투란은 키린의 형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키린은 여전히 말을 잇고 있었고, 전에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건 분명히 뭔가를 강제주입으로 학습시키려 하는 것일 테니!
―일단은 지금 얻은 것을 확실히 기억해둬. 투란이 조금 더 연습하면, 오러의 형상화(形象化)를 혼자서 알아서 하게 될 거야. 그 때까지는 내가 주입해놓은 이 형상을 꺼내는 연습을 해. 하다 보면 요령을 익힐 거고, 그러면 혼자서도 형상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될 거야. 아, 그런데 지금 전하려는 거는 이게 아니고…….
‘켁? 아니, 좋게 말로 하다가 왜!’
투란은 싱긋 웃는 얼굴의 키린이 제대로 눈동자를 번뜩거리는 꼴을 보며 당황했다. 생각보다 상냥하게, 비록 이 불꽃새를 강제로 덮어씌우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말로 하는가 해서 안심했는데 키린은 잠깐 옆으로 새는 이야기를 한 것뿐이다!
본론은 지금부터고, 투란은 바로 뇌리를 쑤셔오는 강한 오러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축하! 재앙(災殃)의 늪, 광대한 영역을 제압한 몬스터에게서 벗어난 것을 축하해줄게. 이 두 번째 편지는, 그 때 전해질 거니까.
‘응?’
투란이 흠칫하는 순간, 드라고니아가 침묵을 깨고 포효했다.
―이런 나쁜 놈! 흉악한 놈! 티탄 클래스 몬스터라는 걸 알면서도 거기 들어가 놀다가 그냥 떠났단 말이냐! 키린, 이 나쁜 놈!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