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6)
Chapter 54. 갈라진 땅과 회색 암벽 Ⅰ
‘역시 이상해.’
까닥까닥, 늘어뜨린 발을 흔들면서 투란은 생각했다.
발아래로 멀리 보이는 지상, 거의 높이 70여 미터 이상의 탑의 정상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투란이 있는 곳은 공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비록 걸터앉을 자리도 있고, 이 탑, 원래는 등대의 형태여야 하지만 몰상식하게 높이를 키우고 속을 비워 벽면을 따라 나선 계단까지 꾸며놓은 탑이라는 기반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래도 이 높이는 내려다보는 투란에게 반쯤은 하늘을 날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이 탑, 등대의 원형은 제란드의 세이프티 하우스에 기반을 둔 채로, 네 남매가 황금매의 마력을 모아 만들었다. 네 남매의 힘이 합쳐진 탓인지 등대는 거의 40여 미터까지 가뿐하게 올라섰다. 거기에 투란이 아케인 포스를 보태서 70여 미터까지 높여놨다. 하지만 너무 높이 올린 탓인지, 세이프티 하우스의 방호 마법은 아래쪽에 집중된 채였다. 쉬고 머물 자리가 없이 그냥 텅 빈 채로 계단만 설치된 위쪽은 그저 높이를 견뎌내는 정도로 유지될 뿐이었다.
그 높은 곳에서, 반쯤은 하늘을 날며 내려다보는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남매가 검은 소, 플레임 불과 싸움 끝에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뭐가 그리 이상한가?
드라고니아가 조용히 물었다.
투란은 바람이 긁고 지나가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 번 더 긁으며 대답을 골랐다.
‘파티인 줄 알았더니, 팀을 꾸민 꼴이라고나 할까?’
―그게 무슨 말이냐?
대답은 드라고니아에게 이상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투란도 자신이 한 말을 더듬고 피식 웃고 말았다.
뭔가 열심히 생각했는데, 말로 꺼내고 보니 그리 좋은 모양이 아니었다. 설명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음, 그러니까 이게 뭔 말이냐 하면…… 사냥을 위해, 뭔가 확실하게 노리고 잡으려고 모이는 경우를 파티라고 하거든. 그러니까 파티는 그 사냥이 끝나면 보통 헤어져. 그 사냥이 마음에 들었다면 다시 새 파티를 결성할 수도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사냥 후에 분배라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들이 더 많으니까…… 대충 일 끝나면 그냥 자기 몫을 받고 갈라서지. 나는…… 시알라 네랑…… 세란드의 동생들이랑 그런 파티를 꾸몄다고 생각했는데…… 흠…….’
―팀은?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드라고니아는 다시 발을 까닥거리면서 바람결을 붙잡듯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채로 투란이 갸웃대는 모습에 재촉했다.
‘어, 팀은…… 갈라서지 않아. 뭐, 쉽게 결성되지도 않지만 팀은 한번 결성되면 쉽게 멤버가 빠지거나 새로 받거나 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팀의 멤버가 무슨 일을 저지르면 함께 책임도 지고…… 분배도 정해진 대로 한다기보다는 그때마다 더 필요한 멤버에게 몰아주는 식으로 하지. 에, 그러니까…… 파티에 참여했다가 뒤통수치고 도망간 놈이 있다면, 쉽게 못 잡을 것 같으면 욕하고 끝나지만 팀 멤버가 배신하고 달아나면 어디 있는지 꼭 찾아내서 죽을 때까지 쫓아가서 반드시 벌을 준다는 점도 다르려나?’
―그런가, 그게 네게 생각하는 파티와 팀의 차이인가…….
‘꼭 그런 거는 아니고, 팀 같은 파티도 있고 파티 같은 팀도 있고…… 에이, 이게 뭔 말이냐! 아무튼 샤오콴 마을에서 보면 대강 그랬다는 거야.’
―그 대강의 차이란 점을 고려해서, 투란 너는 저 남매가 이곳에서 벗어날 때까지 함께 하는 파티였다고 생각했는데 저들은 너랑 팀을 맺었다고 여긴다, 그렇게 느껴진다는 말이냐?
“응.”
소리 내서 짧게 대꾸하며 투란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상의 까마득한 풍경과 다르게, 몸으로 스쳐 가는 바람을 느끼면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그냥 언덕이나 나무 꼭대기에서 보는 것처럼 아득하게 높기만 했다. 반쯤 날고 있다는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저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기분만이 또렷하게 남을 뿐이다.
―그게 기분 나쁜가?
‘어?’
―언짢아서 더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가?
‘엥? 아니, 그런 거는 아니고.’
한숨을 살짝 내쉬면서 투란은 다시 고개를 떨구며 지상을 바라봤다.
플레임 불이 띠룩띠룩 몸을 흔들며 다가오던 초원의 풍경 너머, 투란과 네 남매가 지나온 길의 반대편으로 넓고 황량한 풍경인, 텅 빈 듯한 채로 금이 쩍쩍 가서 갈라진 암반(巖盤)으로 꾸며진 듯한 들판이 보였다.
간혹 그 갈라진 틈에서 하얀 거품과 함께 치솟는 물줄기가 보였고, 이는 저 갈라진 틈새 어딘가로는 물이 흐른다는 것을 알려주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틈새 아래의 풍경이 어떻든 상관없이, 저 갈라진 땅의 풍경은 텅 빈 듯하고 황량하기만 했다. 이쪽 아래로 보이는 풀밭의 풍경과는 아주 다른 모습.
그 갈라진 틈새가 가득한 암반 지형의 너머로는 짙은 회색의 암벽이 길게 늘어진 끝이 보이고 있었다. 암벽의 곳곳, 갈라진 암반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는 듬성듬성하지만 제법 울창해 보이는 숲이 작은 덤불처럼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가까이 가면 꽤 큰 숲이겠지만, 이 높이와 거리에서는 그저 작게만 보이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그 먼 풍경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플레임 불을 삼킨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지? 그냥 몽땅 불태워 없애고 남은 뿔이랑 뼈라고 여겼지? 흠, 계속 삼키지 않은 척하고 있어야겠다.’
―뭐? 갑자기 그건 무슨…….
느닷없이 화제가 홱 돌아간 것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했다.
하지만 투란에게는 이것이 일관성 있는 생각의 연속이었다는 듯…….
‘파티면, 나눠야 하거든. 하지만 팀이면 내게 몰아줬다 쳐도 된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닌 척하고 있겠다고. 흠, 좋은 생각이지?’
―뭐? 야, 이 녀석!
윌 라이트가 맥동하고 드리고니아로부터 분개해하는 기분이 전해왔다.
투란은 키득거리고 웃다가 점점 짙어지는 윌 라이트의 맥동과 드라고니아의 분개하는 기분을 달래려는 듯이 다시 소리 없이 말한다.
‘키린이 조심하라고 했잖아.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껍데기만 사람이고 정체가 괴물일 수 있다고. 상냥한 척, 친절한 척하면서도 아주 쉽게 돌변해서 위험해질 수 있다고. 이것저것 키린이 꼭꼭 새겨준 것을 생각하면…… 조심하는 게 맞아. 저렇게 친절하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적당히 안전해진다 싶으면 자기네끼리 차지할 수 있다 싶으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잖아?’
―네가 걱정하는 꼴을 보니 세란드가 자기 동생들의 안전에 엄청나게 민감한 까닭을 알겠군. 아주 쉬운 착각으로도 투란, 너에게 동생들이 몰살당할까 봐 불안해서 가디언의 계약으로 어떻게든 널 막으려 한 모양이었어.
‘뭔 소리야, 그건?’
이번에는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말을 느닷없고 뜬금없다 느꼈고,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간 삐딱하니 날이 선 말투로 드라고니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동일한 가디언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면, 가디언이 자신의 계약자끼리 벌어질 수 있는 상해(傷害), 사투(死鬪)를 막을 수가 있거든. 즉, 세란드가 동생들의 가디언이 되면서 너와도 계약을 완성시키려 했던 거는…… 혹시나 네가 뭔 짓을 하려고 할 경우,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확실한 수단을 확보하려 했던 거란 말이야.
‘뭐야! 그럼, 동생들이 날 다치게 하려고 할 경우에는? 가디언의 계약으로 날 묶어두고 동생들 편을 들 작정으로?’
―그건 아니지. 가디언으로서, 너 또한 자신의 보호를 받게 할 작정이었겠지. 쉽게 말하자면…… 세란드는 너와 동생들을 팀으로 묶고 싶었다고 해야겠지. 서로 다치게 할 수가 없는…… 서로를 믿고, 서로 지켜주는…… 헤어질 리가 없는 파티, 팀으로 말이야.
‘음, 그런 건가. 서로 안전한 사이라…… 이젠 늦었구만.’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살짝 아쉽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늦어? 이제는 계약이 안 될 거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라면, 그렇지 않아. 세란드는 자신이 형성한 가디언의 씨앗을 네게 남겨뒀다. 언제라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너에게도 가디언으로서 간섭할 수 있는 근거로 말이야. 물론 완벽한 가디언으로 계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간섭은 그저 영향력일 뿐이지만…… 늦은 거는 아니다.
‘젠장, 세란드 정말 철저하네. 다 끝난 줄 알았더니, 그런 수작도 부려놓다니! 과연 이 안에서 만난 녀석은 얕보지 말고 끝까지 조심하라는 키린의 말이 맞잖아!’
잠깐 드라고니아의 침묵이 투란의 마음으로 전해왔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는 듯한 침묵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드라고니아는 침묵 끝에 깊은 생각이라도 했다는 듯이 투란에게 으르렁거림을 토해낸다.
―세란드 입장에서 보면, 네가 바로 조심해야 할 위험물이잖아! 특히나 마법사에게 속아 여기까지 온 동생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지금 이 근처에서 너보다 위험한 놈이 있겠냐! 이곳에서 벗어날 때까지, 넌 계속 위험물이라고! 심지어 대놓고 죽이겠다는 소리도 했잖아!
‘엥? 내가!’
투란은 갑자기 들이닥친, 완벽하게 누명 쓴 기분에 억울함을 토해내려 했다.
드라고니아 또한 뭔 소리가 나오든 바로 다시 반박하려 했다.
“투우우라아안!”
높은 탑 안쪽을 울리며 거세게 메아리쳐 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잠깐 눈을 깜박거리다가 투란은 몸을 돌려 탑 안쪽으로 뚫린 구멍을 내려다봤다. 정상에서 저 아래로…… 절반 이상을 뻥 뚫린 채로 비어 있는 탑의 아래편에서 질러대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귓가로 들려온다.
“이이이사아앙한 거시이이이 나아아아타아!”
더 듣지 않고 구멍에서 몸을 돌린 투란은 여태 걸터앉아 있던 자리에 선 채로 탑 아래편을 바라봤다. 멀리 보면서 드라고니아랑 툭탁대다가 보지 않고 있던 아래편에 대체 뭐가 나타났기에 멜란드가 저리 소리를 지르고 있는가?
“에, 하마?”
―작아 보이지만, 덩치는 코끼리 수준이군.
투란에게는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짐승의 형상이었다.
벌떡 일어선 악어에게 물어뜯겨 죽던 작고 작은 짐승, 그것이 바로 투란이 아는 하마였는데…….
―뭔 꼴이냐, 그 하마는!
투란이 떠올린 기억 속의 심상에 드라고니아가 화들짝 놀란 소리를 냈다.
‘응? 뭔 꼴? 하마잖아? 큰 개 정도 크기이고 뭉툭한 입에다가…….’
―너무 작아! 하마라면 어지간해서는 악어를 짓밟고 물어뜯는 난폭한 놈인데!
‘어디 사는 괴물 하마냐?’
―젠장, 작아져 버린 하마를 본 모양이군. 하마는 원래 크다! 코끼리보다는 작아도.
‘코끼리는 못 봤어. 하지만 하마는 봤다고! 작던데!’
―내려가 보지그래? 큰 하마를 볼 기회 같은데?
끝날 리가 없는 말다툼이 지겹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권했다.
투란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상황에서도 작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하마에 대해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다. 저게 가까이 가면 어느 정도로 커 보일까? 과연 저것이 진짜 하마의 크기인가?
투란은 바로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고, 계단을 밟아 내려가기보다는 뻥 뚫린 구멍 속의 허공을 가로질러 떨어져 내렸다.
―야!
아무 대책 없는 듯한 투란의 행동에 드라고니아가 꽥 소리를 냈다.
거기에 답하듯, 투란은 가볍게 주문을 속삭인다.
“에어 넷.”
한 겹, 두 겹…… 투란을 가볍게 붙들어주는 바람의 그물이 생겨났다.
결코 가속해서 추락하는 일이 없도록, 너무 세게 움켜쥐어 팔다리가 꺾이는 일조차 거부하듯, 바람의 그물은 부드럽게 투란을 아래로 이끌고 받아줬다. 몬스터를 묶고 조일 때와는 아주 다르게!
물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고…….
“투란!”
“왜?”
시알라와 제란드의 입에서 짧은 비명처럼 괴성을 터뜨리게 했다.
그 곁에서 페란드가 보다 침착하게 중얼거린다.
“마법인데…… 바람을 이용하는…….”
그리고 아래에서의 작은 놀람과 다르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뇌리에 크게 울려대는 잔소리를 퍼붓는다.
―이렇게 속도를 줄일 작정이었으면 그냥 계단 밟고 뛰어 내려오는 게 더 빠르잖아! 뭔 짓이냐, 대체!
‘헛? 너무 늦췄어?’
투란은 살짝 바람의 그물을 느슨하게 하며 더 빠르게 떨어졌고, 두 발을 재빠르게 히엔나의 두툼하고 넓은 발로 바꾸며 내려앉았다.
쿠웅.
위로는 삐죽하게, 아래로는 넓게 만들어진 탑이 미미하게 울리면서 대략 4, 50미터를 떨어져 내린 투란을 받아줬다.
“웃차! 대체 뭔 하마인데 저리 커?”
쪼그렸던 몸을 발딱 일으켜 세우며 투란이 기운차게 외쳤다.
한숨을 쉬면서 제란드와 시알라는 그냥 멜란드가 매달린 탑의 넓고 긴 창가로 손짓하며 다가갔다. 페란드도 창가로 움직였고, 투란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멜란드가 창가에 기대면서 외치는 소리가 쩌렁거렸다.
“뿔도 달렸는데, 저거!”
어기적거리며 느릿하니 움직이는 큰 하마의 콧등, 미간 아래쪽으로 확실하게 삐죽하고 높은 뿔이 솟아나 건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