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9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92)
―그냥 넘어갈 셈이냐!
드라고니아가 버럭 투란의 뇌리에 세찬 소리를 울려 퍼지게 했다.
하지만 투란은 이를 버텨냈고,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는 듯한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벽을 달리고 뛰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어. 이야기꾼은 이런 이야기 왜 안 하는 거지?”
이는 바로 제란드의 대꾸를 끌어내는 소리가 되었으니…….
“이야기하기는 하지. 모험가들은 암벽을 올라갔다이고 말이야.”
“어? 그게 이런 거라고! 그럴 리가!”
투란이 항의하듯이 볼을 실룩거리며 제란드를 돌아봤다.
제란드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다시 말한다.
“그냥 올라갔다고 말하기 밋밋하면 한마디 더 할걸. 아주 힘들게, 방해를 물리치고, 비처럼 쏟아지는 돌을 피해서, 같은 소리를 덧붙일 거야.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밟고 밧줄을 어떻게 걸었는지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아.”
“왜? 왜? 왜 그러는 거지!”
투란은 문득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정말 제란드의 말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투란의 모습에 시알라와 멜란드가 ‘엥?’ 하는 표정을 짓는데, 페란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제란드의 말에 보태는 소리를 한다.
“돈이 안 되니까 그럴걸.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하고 돈을 받는데…… ‘그 암벽 올라가기 참 힘들었거든요.’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거든. 그렇다고 암벽의 자세한 지형을 떠들 수도 없을 테고…….”
“암벽의 지형은 이야기꾼이 알 리가 없잖아. 몬스터의 성질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꾼이 하는 소리를 듣고 몬스터 사냥 나갔다가 죽는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제란드가 침대를 두드리고 눌러앉으면서 본격적으로 쉬려는 모습으로 페란드의 말에 덧붙이고 있었다.
투란은 이 소리에는 반박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이야기꾼이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까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그딴 이야기를 듣는다고!”
샤오콴 마을에서 그런 헛소리를 이야기랍시고 늘어놓으면 샤오덴 할배에게 아주 심하게 두들겨 맞고 쫓겨날 터였다. 쓸모없는 이야기로 사람을 혹하게 해서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다고!
“응? 제대로 된 정보를 담은 이야기를 한다고? 그냥 그 정보를 비싸게 팔아치우지 않고?”
멜란드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말은 투란을 멀뚱거리게 했다.
멜란드의 말은 마치 이야기에는 정보가 담겨 있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잖나?
시알라도 듣고 보다가 한소리 꺼낸다.
“음유시인마다 다르겠지. 그저 남에게 들은 이야기만 줄곧 떠들어대는 경우라면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자기도 모를 테고, 자기가 겪은 일만 떠드는 사람이라면 같은 일을 겪을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테지만 아닌 사람에게는 그냥 소문일 테니까. 그보다 지금 떠들어서 체력 낭비할 때야? 얼른 좀 쉬라고!”
누나의 말끝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에 세 형제는 재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투란은 뻥 뚫린 입구, 암벽가에 기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엎드린 채로 구경하는 시늉을 했다. 그 사이에 뇌리에 다시 으르렁거리려는 드라고니아의 기척이 있었고, 이를 느끼자마자 투란은 생각했다.
‘야, 넌 뿌리를 뽑는다는 말도 몰라? 집어 던지는 것만 받아서 처리한다고 저게 해결이 되겠냐?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잖아!’
이는 바로 드라고니아를 잠깐 침묵하게 했다.
카보닉이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아직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래쪽에 떨어져 내린 것을 처리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에게는 구체적으로 카보닉이 어떻게 생성되는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카보닉은 사건이 터진 다음에 그 옮겨 번지는 성질이 밝혀진 경우였고, 그 해결방법도 투란의 기괴한 짓이 아니라면…….
―절대로 그냥 가서는 안 된다.
결국 드라고니아는 이렇게 다짐하는 말로 침묵을 깨며 마무리 짓고 말았다.
그 짧은 말 속에서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조금 전에 정말 카보닉이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이대로 떠나면 안 된다는 것만을 생각해서 소리쳤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쩐지 투란이 할 짓을 드라고니아가 대신 한 듯한 느낌이 뭔가 민망하게 가슴을 쿡쿡 쑤셔왔다. 그래서 투란은 조금 전의 상황에 보다 깊이 파고들기로 했다.
‘시알라의 고스트 핸드, 꽤 대단하지 않았어?’
멀리 뛰어나간 투란을 향해 정확하게 밧줄을 가져다줬다.
보지도 않고 허공을 더듬는 듯한 고스트 핸드를 투란은 날아드는 밧줄을 통해서 분명하게 봤고, ‘악마의 심장’이 지닌 예민한 지각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황금매의 위력을 이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감각적으로 마법을 느끼고 파악하는 부분에는 확실히 재능이 있어 보였지. 암벽을 타면서 보여준 연계도 꽤 그럴듯했다. 아겔페스의 음흉한 인도를 받았다고는 해도, 저 남매들이 살아서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볼 만했어.
‘흠…… 고스트 핸드에 불꽃이나 얼음을 섞지 않으면 별로 쓸모가 있을까 했는데…… 그냥 밀쳐내는 것도 상당했어.’
투란은 위에서 다시 암벽에 새겨진 듯한 쉼터, 빼꼼하게 내민 자신의 머리를 노리듯이 떨어지는 돌멩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슬쩍 고개를 뒤로 빼기도 했지만, 암벽 위에서 이 안으로 돌멩이를 던져넣을 궤도는 잡을 수가 없었다. 돌멩이는 투란의 저 앞쪽 몇 미터 앞을 스쳐 지나가며 떨어질 뿐이었다.
―분명히, 시알라의 경우에는 엘레멘탈 사이크(Elemental Psych)를 익힌다면 네 말대로 불꽃과 얼음이라든가 바람, 바위를 고스트 핸드에 섞어서 굉장한 마법의 효과를 보일 수 있을 것 같긴 하군.
‘뭘 익혀?’
투란은 의아했다.
세란드가 준비한 마법 중에는 엘레멘탈 링이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그걸 적당히 섞으면 되겠구나 했는데, 드라고니아는 뭔가 조금 색다른 것을 떠들고 있잖은가.
이런 투란의 생각을 파악한 듯, 드라고니아아 미묘한 냉소를 머금은 듯한 낌새로 설명한다.
―엘레멘탈 링은 마력을 기반으로 정령의 속성(屬性)을 끌어내 덧씌우는 것뿐이다. 그 속성을 지닌 마력을 다시 주문으로 가공해서 활용해야 하지. 그 과정에서 다양한 활용법을 익히고 이를 자기 능력으로 삼는다는 점이 훌륭하기는 하다만…… 엘레멘탈 스피리투스(Elemental Spiritus)를 다루는 계약자라든가, 그에 필적하는 정령의 마물을 만나게 되면 아주 취약해질 수밖에 없어. 그쪽의 속성이 발휘되는 속도를 따라가질 못하니까.
‘음, 뭔 소리야?’
투란은 열심히 들었지만 도무지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고, 그냥 솔직하게 계속 떨어지는 돌덩이를 보며 되물었다.
―정령과 계약한 마법사! 들어본 적 있겠지? 정령을 소환해서 동료로 삼아 부리는 작자들! 그 이야기 속의 정령이 바로 엘레멘탈 스피리투스란 거다! 계약을 통해 혼자이지만 언제라도 불러 둘 이상이 되는 경우라고! 하지만 엘레멘탈 링은 자기 손으로 직접 들고 있는 횃불이나 얼음막대를 휘두르니까,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오? 그런 거야? 어, 그러면 그 사이크인가 뭔가는?’
―유사(類似) 정령화(精靈化)라고도 하는 마법의 기술이다. 스피리투스가 자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자아(自我)를 마법사가 의도적으로 구성해서 부여함으로써, 속성을 지닌 마력을 근본으로 삼는 정령의 유사종을 만들어내는 거지. 계약을 위해 정령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력을 기반으로 필요한 정령을 창조한다고 할 수도 있는 높은 수준의 기술이야.
‘헐? 마법사는 별짓을 하는군!’
―별짓이라…… 확실히 인간 마법사들이 조금 유별나기는 하지.
‘응? 뭔 소리야? 그거 너네 드라고니아가 쓰는 마법 아니야?’
투란은 떨어지는 돌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물었다.
―우리가? 우린 그냥 정령이랑 계약하지. 원래 정령의 소환과 계약이 불가능한 마법사들이 자신들이 지닌 한계를 넘기 위해서 찾아낸 방법이야, 그거…….
‘헤에? 그러면…… 시알라나…… 나도 그걸로 함께 다닐 수 있는 정령을 만들 수 있다고?’
―그렇……지. 그럴 수 있지.
조금 뚱하고 느릿하게 드라고니아는 대답했다.
몸을 누여서 암반가에서 허공으로 목과 어깨 부분을 내밀어 위를 향해 눈길을 던지며 투란이 묻는다.
‘위험한 거야? 하면 안 되는 짓이야?’
―그렇지 않아……. 일단 기본적인 것이라도 엘레멘탈 사이크가 준비되어 있다면,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아서 편리할 거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대답에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드라고니아는 조금 전에 뭔가 꺼리는 낌새를 보였는데, 막상 나온 대답은 아주 긍정적이잖은가? 마치 뭔가 안 좋은 추억이라도 떠올린 듯한 낌새가 꽤나 이상한 느낌인데…….
―키린, 그 녀석이 불을 다루는 방식이 엘레멘탈 사이크의 응용이었어. 마법도 아니고, 몬스터 로드의 능력으로 녀석은 그런 상위 마법의 기술을 사용했다. 보는 것만으로 짜증이 날 정도였지.
‘짜증……? 아니, 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정령의 기척을 느끼고, 당연히 거기 정령이 있는 것을 알고서 교감을 하며 자란다. 우리에게는 계약이란 자라면서 당연히 이뤄지는 거야. 그렇게 계약한 정령은 인간 마법사가 억지로 부여한 자아를 지닌 유사종과는 그 격이 아예 다르다. 한데 키린이 부리는 정령의 유사종은…… 아,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군!
‘뭐야, 그게!’
이야기를 하다가 돌연 울컥한 기척을 드러내며 말문을 닫아버리는 드라고니아였고, 듣던 투란은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말을 꺼내놓고 맺지를 않는단 말인가!
문득 투란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너, 설마 키린이 지닌 그것 때문에 나한테 가르쳐주기 싫은 거야? 내가 혹시나 키린처럼 널 짜증 나게 할 정령을 만들까 봐?’
―그런 일은 있을 리가 없어. 키린의 정령은 다른 누가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꽤나 단호한 대답이 금세 나왔다.
때문에 투란은 한결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야, 그럼…… 어, 잠깐. 너 지금 키린의 정령이라고 했어? 그거 키린이 부리는 건 그, 유사……어쩌고가 아니란 거야?’
툴툴대면서 따지려던 투란은 문득 드라고니아의 말투 속에 담긴 미묘한 낌새를 느꼈고, 바로 짚어 묻고 있었다. 처음에 키린이 부리는 유사종이니 뭐니 할 때도 미묘하게 드라고니아의 소리는 울컥한 낌새가 있었고, 결국에는 그냥 정령이라고 하는 부분이 묘하게 투란의 마음에 와닿은 것이다.
이 물음은 잠시 드라고니아가 얼버무리고 싶어 하는 듯한 기척을 품게 했고, 곧 둘러대고 싶어 하는 듯한 대답을 노골적으로 꺼내는 것을 투란에게 바로 느끼게 했다!
―마법사가 설계를 잘하면, 유사종도 정령과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다. 그리고 마법사와 단절되는 상황에서 독립하고 움직이면…… 딱히 유사종이니 뭐니 할 것 없이 정령이라고 할 수 있어. 이 세상에 그 존재를 시작하게 된 원인은 다를지라도…….
‘헤에, 그러니까 키린은 몬스터 로드이면서 진짜로 정령을 끼고 다닌 거야? 아하, 그래서 그렇게 불꽃이 자유롭게 키린 주변을 맴돌았구나! 와, 그런 거였어! 그러니까 불꽃을 일으키면서도 몬스터 엠블럼을 마음대로 꺼냈고! 과연 왕자님! 역시 전설의 괴물 왕자님이군!’
투란은 노골적으로 키린을 향해 찬사를 바쳤고, 신나는 기분을 잔뜩 품었다!
―약 올리려는 거냐? 흥! 어림도 없는 수작이로군! 기껏 몬스터 로드가 정령을 부린다는 정도로 내가 약이 오를 것 같아?
‘호오? 거기서 이야기가 끝이 아니었어? 흐흠…….’
투란이 바로 짓궂은 기분을 품으면서 드라고니아를 놀리려 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이를 비웃는 듯한 대꾸를 할 뿐이었다.
―네 수준으로는 그다음 이야기를 해줘도 못 알아들을 테니, 그만하도록 하지. 알아듣는다면, 나도 오랜만에 그 울화를 수다로라도 풀겠지만…… 아는 게 없는 너랑 대체 뭔 대화를 더 이어가겠냐!
‘잉? 갑자기 왜 내가 알아듣는 걸 걱정하는데!’
투란은 입술을 삐죽하면서, 아련하게 높이 보이는 암벽 위쪽에서 불꽃을 찰랑이는 헬 임프의 머리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며 반발했다.
―걱정을 하는 게 아니지! 네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짜증 난다고!
‘어? 그게 무슨! 네가 말을 해주지 않아서 모르는 거잖아! 나는 많이, 아주 많이 알고 싶어 한다고! 알려줘 봐!’
투란이 몸을 일으키면서,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와 멜란드가 각자 휴식을 취하면서 지친 힘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살피며 당당하게 반박했다. 한데 이는 곧바로 드라고니아의 음울하면서도 흉포한 기척을 가득 담은 말을 뇌리로 끌어온 듯했으니…….
―호오? 그러셔? 그러면……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엘레멘탈 사이크를 단련해볼 테냐? 몰라도 되네, 그 정도면 충분하네, 알 게 뭐야 따위 소리를 하지 않고, 단련하겠다고 약속해보겠어? 그렇다면…… 친절하고 엄격하게 가르쳐주고 들려주겠다만…….
‘야, 친절이랑 엄격한 거랑 전혀 가깝지 않은 거잖아!’
―쯧! 그게 바로 네 교양의 한계란 거다! 가르치는 자는 친절하면서도 엄격해야 하는 것! 그게 바로 진짜 가르치는 자의 자세! 그런 것도 모르는 너니까, 내가 알아듣게 말을 할 수가 없잖아!
‘그게 말이 되냐!’
투란은 반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