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9)
깊고 그윽한 땅울림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를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기묘한 힘이 느껴졌다. 때문에 언제 끝날지도 전혀 짐작할 수 없게 하는 듯했다.
투란은 그 땅울림 속에서 어딘가 친밀한 부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다시 마그마 로드의 거대한 형상을 끌어내고 싶다는 충동이 잔잔하게 피어나게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투란의 몸에서는 시커먼 크리스털의 광택이 완전히 사라지고 매끈한 가죽의 질감만이 짙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시알라 남매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땅울림이 해로운가 해롭지 않은가에 대해서 가늠하듯이 중얼거림을 토해내니…….
“이거 누가 우는 소리야?”
“우는 게 아니고 부르는 거 아닐까?”
“맞고 억울해서 한판 더 붙자고 부르는 거는 아니겠지?”
“누가 때리고 누가 맞았는데?”
문득 남매의 눈동자 네 쌍이 투란을 향했다.
투란은 멀뚱하니 귀를 쫑긋거리다가 뒤늦게 그 눈길을 느꼈다.
“응? 나? 왜? 내가 뭘!”
―마그마 로드의 명동(鳴動)이다. 너, 범인 맞아.
드라고니아의 말은 단지 투란의 뇌리에만 울릴 뿐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말 들은 시늉 따위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시알라 남매를 둘러볼 뿐이었다. 이런 투란을 향해 시알라가 불쑥 한마디를 꺼낸다.
“아래에서 아무 일 없었어, 투란?”
“아래에서?”
투란의 대답은 살짝 늦어진 채로 나왔다.
사실 이 암반 지역의 땅 밑 깊은 곳에서 투란이 저질러놓은 일 때문에 암반이 흔들리고 갈라지면서 난동을 부리는 중이었다. 몬스터를 보러 가서 데몬을 만났고, 거기에 미로의 갈래인 구멍이 뚫렸다거나 그 구멍에서 떼어놨던 마그마 로드의 파편이 나왔다거나……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일을 전부 늘어놔야 할 판이잖은가!
슬슬 눈길을 돌리는 투란을 시알라가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늉을 했다. 그런 누나를 흘깃하고서 제란드가 말한다.
“꽤 오래 있다 나왔잖아.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 할 때가 아니야. 보라고…… 여기 별로 안전하다고 할 수가 없어.”
말과 함께 이어진 제란드의 손짓에 모두 주변을 둘러봤다.
땅울림은 꽤 먼 곳인 듯, 꽤 깊은 곳인 듯해서 뭘 어떻게 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듯했지만, 제란드의 손짓이 가리키는 주변에는 약간 거리가 있기는 해도 당장 뭘 할 수 있어 보이는 녀석들이 보였다.
작은 날개를 팔락이며 눈꼬리에 불꽃을 매달고 있는 헬 임프라든가, 그런 헬 임프를 꼬리로 후려치고 발로 걷어차면서 당당하게 걷는 다크 레이디라든가, 아무렇게나 걸리는 것은 마구 짓밟으면서 씩씩대는 둠고그라든가…….
암반의 붕괴, 균열에서 도망친 무리가 가깝게는 수십 미터 거리에 있었고 좀 멀면 몇백 미터는 될 듯한 저쪽에 있었다.
투란이 그 꼴을 보다가 중얼거린다.
“이쪽으로 덤벼들 궁리는 하지 않나 보네.”
“그야 덤비는 녀석들을 처리했으니까.”
쓴웃음과 함께 페란드가 투란의 말에 대꾸했다.
“어?”
투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처리한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이 의아해하는 투란의 모습에 제란드가 페란드의 말에 이어 보태 말한다.
“파묻었어. 물에 던져넣기도 했고. 몸에서 불이 너풀거려서 그런지 물을 아주 질색하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물에 처넣는 꼴을 본 다음부터는 저렇게 거리를 두고 있는 거야.”
“헐? 몬스터를 겁줬다고?”
투란이 어이없는 듯 되물었다.
제란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고, 페란드가 대답한다.
“멜란드가 뿔비비의 팔을 휘두르다가 털가죽에 불이 잠깐 붙었거든. 그래서 냅다 물속에 작은 녀석 하나를 집어넣었더니…… 아주 난리를 치다가 기절하던걸. 그걸 본 녀석들은 저렇게 거리를 두고 우릴 아예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지.”
“기절? 그래서? 불이 꺼지는 것처럼 죽었어?”
투란이 눈을 번뜩거리면서 물었다.
연옥의 불꽃을 몸에 품고 있는 헬 임프였다.
다크 레이디도, 둠고그도 마찬가지였다.
불이 몸 안을 채운 듯한 몬스터라 물에 약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그렇다면 물에 닿으면 얼마나 심각한 상태가 되는 걸까? 몬스터 로드가 그 형상을 재현해낸다고 해도 그 약점은 고스란히 유지될 테니 이는 알아둬야 할 일이었다.
이런 투란의 궁금함에 대해 페란드가 어색한 웃음을 띠고, 멜란드가 투덜거리는 소리로 답한다.
“죽기는…… 어디 상처도 없이 기절만 했어. 꺼내서 땅바닥에 내려놨더니 얼마 안 가서 바로 정신 차리고 도망치던걸.”
“상처라든가 해를 입었다든가는?”
“없어, 전혀! 아, 좀 깨끗해지기는 했어. 잠깐 물에 담가 놨던 것뿐인데, 아주 깔끔해지더라고.”
멜란드는 그 광경을 다시 떠올리는 듯, 툴툴거리는 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제란드와 페란드도 그런 멜란드에게 동조하는 듯한 쓴웃음을 머금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잠시 눈을 껌벅이다가 다시 묻는다.
“작은 거만 빠뜨려 본 거야? 꼬리 달린 거랑 덩치 큰 놈은?”
시알라가 이 소리에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으로 답한다.
“작은 놈이 빠져서 비명을 지르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던걸. 뭐, 꼬리 긴 년은 애초에 물가로 오지도 않았고, 덩치는 꽤 신경 써서 물가에서 거리를 두기도 했고…… 어쩐지 작은 것들이 아무 생각이 없어서 우리한테 덤빈 것 같았어.”
투란은 멀리 있는 다크 레이디, 둠고그, 헬 임프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암반 속에서 툭탁대고 싸울 때와 물가에서 싸울 때의 모습이 아주 다른 듯한 이야기였다. 저 아래에서 헬 임프가 조심스러웠고, 다크 레이디나 둠고그는 아주 미쳐 날뛰는 꼴이었는데…….
―잘못 보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야. 다크 레이디나 둠고그는 자기 영역을 확실히 정하고 활동하니까. 그 영역 안에서라면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하는 성향이 짙다. 거기서 벗어나면 조심스러워지는 것일 테고.
조심스럽고 은밀한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투란의 눈매를 살짝 구겨지게 했다.
“여기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면…… 잡기 힘들 수도 있겠네. 팔랑대며 잘 날아다니잖아, 저 꼬리 긴 녀석…….”
불쑥 튀어나온 투란의 말은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로 하여금 살짝 멍한 표정을 짓게 했다. 그리고 멜란드는 갸웃거리는 표정으로 묻는 말을 꺼낸다.
“잡으려고? 저 꼬리 긴 년?”
“응? 그야…… 시알라가 잡겠다고 했잖아? 아, 혹시 벌써 잡았어?”
투란이 시알라를 바라보는 채로 멜란드에게 대답하고 물었다.
멜란드가 잠깐 멍하고 뚱한 표정을 짓다가 누나를 바라봤다.
시알라는 미묘하게 구겨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잡을 궁리조차 안 했는데?”
“어? 왜? 잡겠다고 했었잖아?”
투란은 어딘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되물었고, 이는 곧 제란드와 페란드로 하여금 작은 웃음을 흘리게 했다. 투란이 짚은 대로 시알라는 확실히 다크 레이디를 잡겠다고 말한 적이 있기는 했다…… 단지 그때 시알라의 정신이 멀쩡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머뭇거리면서 고개를 살짝 저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을 뿐!
시알라는 나직하게 웃는 듯한 동생들을 스윽 둘러보고는 침착한 말투로 투란의 물음에 답한다.
“여기까지 도망치느라고 바빴거든. 그리고 여기 와서도 가까이 있는 녀석들이랑 엉겨서 한바탕했고…… 보다시피 아직 쉴 곳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잖아. 투란이 바로 우릴 따라붙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음, 그러니까…… 일단 좀 쉬었다가 주변 좀 살피고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고.”
“흠…….”
투란은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를 잡는다는 것은 확실히 조심해야 할 일이므로!
이 낯선 호숫가에 뭐가 있는지도 확실히 살펴둬야 했다.
펑펑 터지는 꽃봉오리라도 있으면 잠깐 한눈팔다가 몰살당할 수도 있잖은가?
불쑥 떠오른 생각에 투란의 눈길이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고…….
우르릉.
땅울림이 돌연 세찬 음향을 토해내며 다가왔다.
직접 몸을 움직여 다가온 것은 없었지만 은근한 땅울림의 억센 진동은 호수 위에 파문을 그려넣을 정도였고 일어선 사람을 잠깐 주춤하게 할 지경이었다.
날개를 지닌 헬 임프, 다크 레이디가 여기저기서 날아오르려는 듯한 모습이 바로 보였고, 둠고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바닥이 무너지지 않을 곳을 찾는 듯이 보였다.
‘아, 이거 어떻게 조용히 못 시키나?’
투란은 멀리 보는 시늉을 하면서 드라고니아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시원하게 대답하는데…….
―여길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고, 기반을 다져서 견고하게 만드는 중이다. 무너져 내릴 염려 따위는 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 아니면 얼른 여기서 떠나든가.
왠지 투란을 놀리는 듯한 말투가 느껴진다!
때문에 투란은 살짝 울컥해서 네 남매에게는 먼 곳을 보는 모습을 꾸며 보이면서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다지긴 뭘 다져! 저 아래에서 싹 갈아엎는 거 아냐? 그러니까 이렇게 들쭉날쭉 그러고 있는 거잖아!’
―싹 갈아엎어야지. 광야의 미로가 제멋대로 열린 땅 밑이다. 암반이 미로 안쪽으로 침식해서 생겨난 틈새, 그 때문에 뒤틀려서 생긴 이 넓은 지역의 지하에 생긴 공동(空洞), 거미집처럼 생긴 그 동굴 전체를 닫아걸고 거기 들러붙은 헬 임프 따위를 싹 몰아내기도 해야 하니까. 말했잖아, 파워 서클은 몬스터라든가 뒤틀린 존재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고.
‘언제 그딴 소리를 했는데!’
―첫 번째 사본, 그 주변이 안전하다고 말할 때 했을걸?
다시 따지려 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느긋하게 대답했고, 투란은 불쑥 떠오르는 기억에 움찔했다. 되새겨보니, 분명히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기는 하다.
“투란, 조금 더 저쪽으로 가자. 큰 놈이건 작은 놈이건 피하는 꼴을 보니, 그나마 저쪽이 쉼터를 만들기 괜찮아 보이거든.”
시알라는 생각에 잠겨드는 듯한 투란에게 조금 높은 목소리로 말했고, 투란은 얼른 돌아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다들 일단 좀…… 쉬어야겠지?”
새삼 지친 기색이 가득한 모습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자신도 쉬어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일 때는 느끼지 못한 묘한 피로감이 배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듯한 감각이 낯설었다. 마치 조금 더 마그마 로드인 채로, 이 호수처럼 넓게 퍼져 몇 년이고 잠들고 싶은 듯한 기분이잖은가.
―투란, 마그마 호숫가 되고 싶었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속내를 읽은 듯, 바로 엄격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냐!’
투란은 단호하게 대꾸했고, 시알라가 말한 방향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그 뒤를 바로 네 남매가 가만히 따르면서 이쪽저쪽을 향해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남매와 우연히 눈이 마주친 듯한 헬 임프, 다크 레이디 몇 마리가 작게 펄럭이는 날갯짓으로 경계하는 모습이 되기도 했다.
파아아.
물결과 바람을 밀어내는 듯한 시원한 소리와 함께 흙과 돌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반쯤 물에 걸친 듯하고 땅에 걸친 절반도 바닥에서 2, 30센티 정도는 떠 있는 간격을 둔 묘한 건물이 나타났다.
마법에 의해 움직인 흙과 돌이 일궈낸 건물이었다.
투란은 고개를 옆으로 누였고, 제란드와 멜란드가 협력해서 만들어낸 마법의 집을 바라봤다.
“이거…… 바닥에 딱 붙어 있지 않네?”
둘이 의논을 하는 모습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긴 탓에 투란에게는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의 결과로 나온 세이프티 하우스인가 애매하게 여겨졌다. 사실 둘이 주고받은 이야기라고 해봐야 ‘그거 기억나지?’ ‘아, 그거.’ 하는 식이라서 제란드와 멜란드가 아는 뭔가려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땅바닥에 짧은 다리를 대고 서 있는 듯한 집 모양은 예상을 못 하기도 했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투란이 어리둥절한 모습에 싱긋 웃었고, 페란드가 문득 생각난 표정으로 말한다.
“아, 이거 혹시 그 물 위의 정원인가 하는 그거?”
“정원? 물 위의 정원?”
투란은 그 묘한 호칭에 중얼거렸고…….
―수상가옥(水上家屋)이로군.
드라고니아는 완성된 세이프티 하우스를 간파한 듯 짤막하게 말했다.
‘그게 뭐야?’
―평원 쪽의 대습지(大濕地), 그 근처에 이런 집이 많다. 뭐, 강이 넓게 분포한 지역에서도 간혹 보이기는 하지. 배처럼 물 위에 완전히 띄운 경우도 있고, 저렇게 절반 정도 땅에 뿌리박은 채로 물 위에 걸쳐놓는 경우도 있다. 땅울림에 대비한 완충대의 역할도 하는 주춧돌을 생각한 모양이군.
드라고니아는 이야기와 함께 기묘한 심상도 함께 투란에게 전해왔다.
투란은 그 심상 속에 담긴 풍경을 알아차렸고, 물 위에 집이 뭔가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저렇게 띄워놓은 집은 땅이 갈라질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물 위로 둥실거리며 떠다닐 수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하지만 투란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현상도 금세 발견하고 말았다.
‘근데, 이런 집에는 무슨 마법이 저절로 걸려? 물이 막 덤비게 하는 마법도 저절로 걸린 건가?’
분명히 제란드와 멜란드가 쓴 마법은 투란도 아는 것이었다. 한데, 거기에 물결이 다가와 툭툭 치고 만지작거리는 효과도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