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5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552)
―화살을 손에 쥐고 찍어 놨다.
‘뭐? 저게 일부러 만든 상처라고?’
―그래, 지붕에 구멍 내는 빛의 화살을 보다가 만든 거지. 공중에서 흩어지는 광경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꼴이다만…….
‘생각 없는 나쁜 놈들이기는 하네. 저런 갖신을 신고 누더기 껴입으면 다인 줄 아나.’
―가죽신이 뭐가 이상한가?
‘옷값이랑 신발값이랑 안 맞잖아! 먼지랑 흙 좀 묻히면 그럴듯해 보일 줄 알다니, 세상 참 쉽게 보는 짓이지. 저런 누더기를 두른다면, 갖신이 아니라 지푸라기 꼬아 만든 짚신을 신는다고.’
―흠, 그렇군. 왜 저런 겉옷을 둘렀는가 이상하긴 했다만, 그냥 멍청한 거였군.
‘멍청하긴 한데…… 대체 팔라딘에게 뭔 짓을 한 거지?’
투란은 드라고니아와 빠르게 이야기하면서 상황을 주시했다.
투란과 드라고니아가 마을 촌장이란 늙은이의 차림새에 관심을 두는 사이에 슬리피는 느릿하니 베즐 팀 멤버 사이에서 앞으로 나섰고, 베즐 팀은 그런 슬리피를 바라보며 입을 다문 채였다.
마을 촌장이 그런 슬리피를 향해 약간 격분한 듯한 목소리를 터뜨린다.
“누구냐니! 내가 바로 이 마을의…….”
“촌장일 리가 없잖아. 너, 누구냐고.”
슬리피가 귀찮다는 듯, 슬슬 짜증이 난다는 말투로 다시 묻고 있었다.
늙은 촌장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어디서 굴러먹던 이상한 놈이 남의 마을에 와서 더러운 짓을 하고는 마을 촌장에게 감히 누구냐고? 이런 미친놈을 봤나! 팔라딘이시여, 저 못된 놈을 벌하시옵소서!”
말과 함께 늙은 촌장이 지팡이를 들어 슬리피를 가리켰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일행이 의아해서 바라보니, 지팡이 꼭지에서 흰 빛의 무늬가 나타나며 미친 팔라딘에게 깜박거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여린 빛에 이끌린 듯, 팔라딘이 곧 두 주먹을 치켜올리면서 슬리피를 향해 둔하게 걸음을 옮기기도 하니…… 늙은 촌장의 말처럼 정말로 두들겨 팰 듯한 낌새였다.
―가이든 스태프로군! 과연, 저런 수가 있었나!
‘응? 가이든…… 그거 혹시?’
―들은 적 있나? 신전의 사도(師徒) 사이에서 사용되는 지팡이야. 성스러운 힘에 취해서 몽환(夢幻) 상태에 빠져 현실을 분별하지 못하게 된 신도(信徒)를 이끌기 위한 도구다.
‘아니, 그건 신전 사제만 쓸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저 사기꾼 촌장이 신전 사제일 리가?’
―사제에게 위탁을 받은 거야. 물론 그렇다 해도 팔라딘이라면 저 인도자(引導者)의 지팡이에 따르느냐 마느냐 하는 분별 정도는 가능해야겠지만…… 약물에 절인 상태라 그런 사리 분별이 불가능한 채다. 즉, 지배당하고 있는 거야!
‘사기꾼 촌장에게 어떤 미친 사제가 저걸 맡겼다고?’
―본인도 제정신을 잃은 상태잖아.
‘에? 아니, 저 화살에 긁히고 늘어진 아저씨……?’
―무슨 사정인지 자세히는 파악할 수 없어. 하지만 저 사제도, 이 팔라딘도 약물 때문에 맨정신은 아니다. 그런 상황을 예측하고 다른 사람에게 저 지팡이를 맡겼을 수도 있지. 그걸 맡은 놈이 저럴 거란 예상은 못 하고 말이야.
‘흐흠, 복잡하긴 한데…… 어라?’
투란은 팔라딘이 두 걸음째를 디디며 늙은 촌장의 명령에 따르는 광경 속에서 슬리피가 매섭게 손을 뻗어 지팡이를 낚아채려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걷는 것이 힘들다며 지팡이에 몸을 기대 나왔던 촌장이 날렵하게 뒤로 물러서며 그 손짓을 피하는 것도 똑똑히 봤다.
“흥! 드디어 더러운 속셈을 드러내느냐, 이 추잡한 헌터 새끼들!”
히죽 웃으면서 촌장이 외쳤다.
투란은 어이가 없어서 일행을 슬쩍 둘러봤다.
라펜도 투란처럼 어이없다는 듯이 늙은 촌장의 날렵한 걸음걸이를 바라보는 듯했고, 베즐 팀은 너무 황당해서 돌처럼 굳어진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리고 마켈은 방패를 고쳐잡으면서 꽤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느릿한 팔라딘이 겨우 세 걸음째를 옮기는 사이였다.
―어쩔 거냐?
돌연 드라고니아가 굉장한 호기심을 품은 듯한 낌새로 투란에게 물었다.
몬스터 떼와 치른 격렬한 전투가 어제 일도 아니고 방금 전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길게 잡아 봐야 반 시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투란 일행은 꽤 지쳐 있는 상태였다.
반면에 저 이상한 촌장과 울타리 안의 기묘한 일당들은 미친 팔라딘을 내세운 채로…… 몇몇이 들락거리면서 괴상한 몰골로 팔라딘을 도운 것을 빼면 아주 팔팔하게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드라고니아는 이런 상황에서 투란이 일행을 위해 힘을 쓸지, 그냥 지친 척하면서 어우러져 보려 할지 궁금한 듯했다.
‘내가 뭘 어쩌는 것보다는…….’
투란은 가만히 하울링 애로우 하나를 시위에 걸면서 라펜의 뒤편에서 기우뚱하며 몸을 저쪽 시야에서 숨겼다. 베즐 팀이 어떻게 하려는지, 무엇보다 슬리피가 왜 저러는가에 대해서부터 확인하면서도 여차하면 시끄럽게 한 대 쏘아 줄 생각이었다.
이런 투란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마켈이 방패를 내밀면서 라펜의 곁으로 서며 투란의 태도를 더 확실하게 가려 줬다. 말도 없고 눈짓도 없었지만.
슬리피가 불쾌함이 가득한 채로 다시 말문을 여는데…….
“제대로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면…….”
“아, 기억났어! 융카 일가(一家)야! 설마 페브라랑 마르크, 두 왕국에서 이름난 도적 집안이 여기 와 있을 줄 몰랐네!”
테란이 갑작스럽게 슬리피의 말을 끊으며 높은 외침을 터뜨렸다.
베즐부터 나머지 팀 멤버가 그 소리에 ‘어?’ 하면서 굳어졌던 표정이 풀렸다.
험악하게, 짜증스럽게…… 슬리피보다 몇 배로 더 불쾌한 표정으로!
투란에게는 낯선 국명(國名)이었다.
‘어디? 그게 어디야?’
―칠왕국 중에서 동북쪽 끝에 있는 두 나라잖아. 춤추는 산맥의 가장 바깥쪽이라고 해도 좋은…….
‘그럼, 여기서 가깝지 않잖아?’
―그래, 그래서…….
드라고니아가 뭐라 하려 할 때, 테란의 목소리가 더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랐잖아! 어디서 봤나 했는데…… 설마 여기서 만날 일은 없을 줄 알았다고! 그런데 수배서보다 더 늙었구먼?”
말과 함께 테란은 슬리피 곁으로 쓰윽 나서고 있었다.
팔라딘을 가로막으려는 듯한 자리였고, 거기서 테란의 손길이 재빠르게 허리띠를 따라붙은 듯한 주머니를 더듬었다.
뻐억!
다음 순간, 팔라딘의 온몸이 무슨 바윗덩이에 부딪힌 것처럼 저쪽으로 튕겨 나갔다.
투란은 움찔해서 테란이 대체 주머니에서 뭘 꺼냈는가, 곁눈질로 봤으면서도 다시 제대로 고개를 돌려 봐야 했다.
‘뭐여, 저거!’
사람 몸통만 한 네모진 망치, 괴상할 정도로 자루가 길고 가늘어서 낭창낭창 휘고 있으면서도 그 끝에 달린 쇳덩이는 길쭉하고 네모난 망치 머리 모양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무게만 봐도 어림잡아 5, 6백 킬로는 가뿐히 넘을 것 같은데, 테란은 그걸 한 손으로 휘둘러 미친 팔라딘을 저쪽으로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거의 한 방에 죽였나 싶은 광경이었다.
―안 죽었네?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잉? 팔라딘 몸이 엄청 튼튼……?’
―아니, 저 대형 쇠망치에 살상(殺傷)을 억제하는 기능이 붙어 있다! 하하, 룬디아크 공방에서 정말 별걸 다 만드는군!
투란만이 들을 수 있는 말로 드라고니아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투란은 이 상황에 마음 한구석이 덜컹거리면서 놀라기는 했지만 손은 착실하게, 아주 조심스럽게 시위를 당기는 중이었고 테란과 슬리피의 앞쪽에서 엄청나게 놀란 늙은 촌장…… 정체가 융카인가 뭔가라는 작자를 눈에 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놀랐다고 그 놀란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멀뚱거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칼잡이 카엘의 목소리가 이런 투란의 귓가로 살짝 스며 왔다.
“맞히지 않아도 돼. 높이, 저 지붕을 훌쩍 넘어가게…… 울타리에 걸리지 않게 대충 쏴.”
투란이 눈알을 굴려 보니, 어느새 칼잡이 카엘은 투란 곁에 가까이 붙어서 라펜과 마켈을 장막으로 이용하는 데 동참하고 있었다. 두 손에는 어느새 낡고 둔해 보이는 단도 두 자루를 쥔 채로!
이 동안에도 촌장이라 우기던 늙은이의 목소리도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뭐, 뭐야! 그 이상한 쇳덩이는!”
“한 대 맞아 보면 알 거야! 이게 얼마나 이상한 쇳덩이인가!”
테란의 대답이 아주 시원하고 상쾌하잖은가!
말과 함께 테란의 손이 다시 괴기스러운 망치를 창처럼 내질렀고, 축 늘어진 사제가 거기 맞았다. 얼굴이 긁힌 사제를 쇳덩이 앞으로 내던지면서 다들 피한 것이다.
뻐엉!
가죽 북을 후려친 듯한 큰 울림이 터지면서 사제가 저 안으로 깊이 튕겨 나갔다.
뭔가에, 누군가에 제대로 부딪힌 듯 울타리 안 깊은 곳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간간이 섞인 비명, 사제에 대한 염려 같은 몇 마디도 그 속에 끼어 있었다.
투란은 거기에 대해 신경 쓰는 대신, 곁에서 카엘이 속삭인 ‘지금!’이란 한마디에 재빨리 몸을 돌리며 라펜과 마켈이 나란히 선 틈새로 화살을 쏘아 올렸다. 뭘 맞히려 하지 않는, 지붕 위로 괴성을 지르며 날아가도록!
라펜과 마켈은 자신들 틈새로 화살이 나는 순간, 사제를 부축하는 척하고 잡고 있다가 쇳덩이를 피하며 내던진 둘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 뒤를 칼잡이 카엘이 냅다 쫓으려는 듯했는데…….
“이 빠진 걸로 나도 한 자루 줘 봐.”
베즐이 냉큼 그 앞을 막듯이 서면서 멈춰 세웠다.
칼잡이 카엘은 꽤 못마땅한 듯이 입술을 삐죽였지만, 손에 든 단도 한 자루를 넘겨줬다.
이 짧은 동안에 마켈은 방패를 내세우고 돌격해서 한 명을 밀어붙이며 다리를 걸어 자빠뜨렸고, 테란의 망치가 그 넘어진 자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뻐엉!
다시 이상할 정도로 굉장한 소리가 울렸다.
마켈과 테란이 그렇게 한 명을 잡는 사이, 라펜은 뒤춤에서 칼을 꺼낸 자와 어우러져 칼부림을 하는 듯했지만…… 갑자기 날아든 몇 가닥의 빛의 화살이 상대의 팔다리를 맞히는 순간, 칼자루로 후려갈겨서 바닥에 꽂을 수 있었다.
그리고 테란은 화살에 맞고, 칼자루에 맞은 작자 위로 다시 망치를 내리찍었다.
뻐엉!
‘아, 대체 저게 뭐야?’
―제압용 해머? 그렇게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땅이 파인 거 안 보이냐! 터져 죽었어야 할 것 같다고!’
―응, 그래 보였지. 하지만 저 망치는 육체를 요란하게 제압만 할 뿐이고, 상처도 입히지 않거든. 하핫, 진짜 엉뚱한 물건이잖아.
‘룬디아크 공방,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가 궁금해지네.’
투란은 망치가 그 크기와 무게에 걸맞은 위력을 뿜어내며, 사람을 땅에 그대로 박혀 들게 하고 부딪힌 것을 확실히 부서지게 하면서도 적중된 사람의 몸에는 전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테란이 한 손으로 저걸 휘두르는 것은 차라리 마법이니까, 무거운 것을 가볍게 휘둘러 제 위력을 발휘하게 해 주는 높은 수준의 마법이니까 저럴 수도 있겠거니 하며 이해할 수 있었지만 대체 저 위력에 맞고서 멀쩡하게 기절만 시키는가는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투란이 살면서 저딴 망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이렇게 투덜거리는 기분으로 느릿하게 투란은 울타리 안으로 쳐들어가는 일행을 따라갔고…….
“움직이지 마! 더 가까이 오면 이놈들, 한 놈씩 멱을 따 버릴 테니! 이 늙은 융카가 하는 말이 의심스럽다면, 일단 한 놈 멱 따이는 꼴을 보여 줄까?”
촌장 노릇은 때려치운 듯, 자신을 늙은 융카라 하는 늙은이가 한 사람의 뒷덜미를 잡고 방패처럼 내세운 채로 그 목에 칼날을 들이댄 모습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 손에는 이미 지팡이가 없었고, 마을 촌장의 힘겨워하는 태도도 전혀 없었다.
베즐이 그 앞으로 느릿하니 나서면서, 노골적으로 주변을 훑어보는 눈길을 뿌렸다.
울타리와 지붕의 그늘 안에 머문 이들은 명백하게 두 부류로 분리된 채였다.
한쪽은 허름한 차림새, 팔라딘을 돕다가 그리핀의 피를 뒤집어쓰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일행과 어린아이들, 여자들과 어우러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늙은 융카처럼 허름한 차림을 흉내만 낸 채로 질 좋은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베즐은 그 상황을 대강 둘러보고 입술을 달싹이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늙은 융카가 인질로 내세운 이가 쇠약한 목소리를 터뜨렸으니…….
“슬리피? 와 줬구나!”
늙은 융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려서 몹시 불쾌한 듯! 그래서 더욱 사납게 인질의 목덜미를 조이고 당기는데…….
투란은 아까 슬리피가 보인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마을의 진짜 주민들은 알드바인의 잠꾸러기 헌터 슬리피를 아는 것이다. 슬리피도 이들을 알고!
‘아, 이거 진짜 저 사람들 챙겨야 하나.’
―뭐?
투란이 인질에 대해 조금 마땅치 않아 했고, 드라고니아는 너무 황당해서 테란의 망치를 보고 느낀 기분을 다 날린 것처럼 되묻고 있었다.
그리고 베즐은 협박을 한다!
“곱게 죽을래, 험하게 죽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