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6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644)
펄럭.
바닥에 펼쳐진 작은 헝겊…… 투란이 그 너저분한 걸레의 네 귀퉁이를 당기니 죽죽 늘어났다. 그리고 얼룩진 중심부가 허물어지면서 깊은 속이 드러났다. 마치 바닥에 원래 네모진 헝겊의 테를 지닌 구멍이 생긴 듯했다.
투란에게 케이라의 마도구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 효과 또한 케이라의 마도구랑 닮아 있었다.
이 헝겊 구멍이 안에 놓인 여러 가지를 이리저리 둘러볼 수 있도록 움직여 볼 수 있다는 점과 훨씬 더 넓은 내부 영역을 지녔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었다.
“와아! 보석이잖아?”
투란의 작은 외침처럼 ‘데몬스 러그’ 안에는 보석을 담은 항아리가 있었다.
녹색, 청색, 적색…… 다양한 색채의 보석이 항아리마다 한 가지씩 가득했다. 그 한편으로는 세모꼴의 금덩이가 가득한 항아리, 하얀 구슬이 가득한 와중에 간간이 검은 구슬이 보이는 항아리도 있었다.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 금과 진주로군. 은은 없나?
드라고니아가 종류를 분별해 중얼거렸다.
‘없네?’
보석과 금, 진주 항아리를 둘러보고서 내려다보이는 영역을 옮기며 투란이 웅얼거렸다. 항아리와 나란히 튼튼한 강철 상자가 열린 채로 여럿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것 중에서 은괴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다.
‘저것들은 뭐지?’
없는 것에 대해서 금방 잊고 투란은 강철 상자 안에 담긴 것의 정체에 대해 묻고 있었다. 금괴 항아리의 맞은편에 놓인 강철 상자 속에는 거무튀튀하면서도 회색이 짙은 광물이 크게 한 덩어리 담겨 있었다. 녹색의 에메랄드 항아리 앞 상자에는 노란 빛깔의 액체가 찰랑거렸다. 파란 사파이어 상자 앞에 놓인 상자에도 그 노란 빛깔의 액체가 가득 담긴 채였다. 그 아래의 상자에는…… 거대한 벌레의 단단한 껍질을 썰어놓은 듯한 것이 담겨 다른 상자나 항아리와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하하, 대단하군. 과연 악마종의 특이능력이라 저지를 수 있는 결과인가.
투란의 의문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감탄부터 했다.
‘왜? 뭔데?’
―저 광물은 아다만티어, 최강의…… 돌이다. 너무 강해서 보통은 저걸 곁들여 뭘 만들지를 못하지. 아다만티어끼리 몇 달을 문질러서 간신히 흘려낸 가루로 코팅이나 하는 것이 고작이야. 하지만 저 금속 유체(流體), 퀸의 젤리(Queen’s Jelly)가 있다면 제대로 정제할 수 있다.
‘최강의 돌이 정제가 된다고? 그럼, 망가뜨릴 수 있는 거야?’
문득 아련하게 한두 번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투란이 물었다.
최강의 돌이란 아다만티어는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물질, 불괴석(不壞石)이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너무 단단하고 튼튼해서 가루를 얻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다. 하지만 그걸 원하는 형태로 정제할 수 있다면, 아다만티어로 만들어진 것 역시 다시 망가뜨릴 수 있잖은가? 강철의 검을 다시 용광로에 담가 녹여 파괴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일은 없다, 투란. 퀸의 젤리를 두 번 먹지 않으니까.
‘뭐? 먹다니?’
―저 젤리를 아다만티어가 흡수하는 동안에 두들기고 쪼개고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흡수가 끝나면, 다시 아다만티어의 본래 성질대로 돌아가지. 그렇게 한번 젤리를 흡수한 아다만티어는 다시 젤리를 흡수하지 않는다. 즉, 저걸로 아다만티어를 정제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란 거야.
‘저 젤리가 대체 뭔데?’
갸웃하며 투란은 강철 상자 속의 노란 빛깔 액체를 바라봤다.
금속 유체란 의미도 잘 모르겠지만 무슨 여왕의 젤리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호한 말이었다. 도대체 아다만티어가 저런 것을 흡수한다는 얘기도 낯설 뿐이었다.
―비-앤트(Bee-Ant)라는 몬스터에 대해 들은 적 있나?
‘아니, 그건 또 뭔데?’
―거대한 말벌 모양의 몬스터인데…….
‘어? 그건 기간틱 호넷인가 하는 거잖아?’
―달라. 기간틱 호넷은 그냥 말벌의 형상을 한 대형 몬스터이고 개체가 따로 움직인다. 무리 짓지 않지. 비-앤트의 병정 계급은 기간틱 호넷으로 오해하기 쉽다만, 늘 무리 짓는다. 최소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비-앤트라 여기는 게 맞을 거야. 아무튼, 그 비-앤트는 벌과 개미의 혼종(混種)인 몬스터이고 하이브를 형성해서 계급화된 조직을 갖춰. 그 하이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여왕이 먹고, 여왕의 거처를 꾸미는 데 쓰이는 소재가 바로 퀸스 젤리, 저거란 말이다.
‘처음 듣는 몬스터네. 그래서, 몬스터의 둥지를 뜯어내서 저렇게 상자 안에 담아둔 거라고? 둥지에서 와글거리는 몬스터 떼를 돌파해서 얻기 힘든 거라는 말이야?’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감탄한 것을 되새기며 물었다.
―투란, 비-앤트는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 나오지 않……? 아! 그러니까 이 악마종 형제들이 산맥 깊은 곳에 가서 비-앤트의 둥지를 털어 나온 거라고? 으흠.’
조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악마종이니 뭐니 해도,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이라면…… 뭐에 휩쓸려 무슨 꼴을 당할는지! 이런 킨사티어의 몸으로 견딜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란 것을 투란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
‘얼마나 깊은 곳에 사는데?’
깊다고 해도 사실은 역병의 수해를 살짝 넘은 정도라면 투란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언저리였다. 슬그머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인 셈이다.
―아주 깊어. 너랑 키린이 만난 곳이 겨우 산맥 변두리로 여겨질 정도로 깊은 곳이지. 그래서 비-앤트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꽤 드물어. 그러니까 너도 내게 듣기 전까지는 기간틱 호넷 정도려니 할 수 있는 거야. 얕보지 마라, 투란.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속셈을 안다는 듯이 경고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슬쩍 산맥 안쪽을 뒤져서 비-앤트를 찾아내고, 아다만티어를 구해다가 뭔가 해보고 싶다는 야망을 찍어누르겠다는 듯!
‘얕보기는 뭘…… 그 옆에 썰어놓은 껍질도 비-앤트란 녀석인가?’
슬쩍 말을 돌리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일단 경고했으니 그냥 넘어간다는 듯한 기분을 휘날리는 말투로 대답을 한다.
―그럴 거라고 여겨진다만, 다른 것일 수도 있지. 비-앤트의 갑각이라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아다만티어의 성분을 내포했을 테니까, 일단 챙겨둔 것이 아닐…….
‘아다만티어를 내포하다니? 얘네 아다만티어 갖다가 둥지라도 짓냐?’
가만히 듣다가 어이없어 참지 못한 투란이 말을 자르면서 물었다.
잠깐 망설이는 듯하던 드라고니아가 침착한 말투로 대답한다.
―그래, 그게 이 녀석들 습성이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다만티어 암벽을 찾아 들쑤시고 둥지로 삼는 거라 해야겠지. 웬만해서는 부술 수가 없는 둥지인 셈이야.
“헐?”
투란은 멍한 기분을 그냥 토해냈다.
도대체 이 형제들이란 악마종은 저걸 어떻게 구해온 것일까?
아다만티어를 내포했다는 말이 맞다면 저렇게 썰어놓은 것도 굉장하고 이상한 능력을 갖췄다고 여겨지기는 하지만.
“음?”
투란은 뒷골로 시원하게 스며오는 지식에 움찔했다.
비-앤트, 그 사냥법은 간단했다.
한 마리를 잡아서 그 생체조직을 얻는다, 비-앤트의 다양한 계급 중에서 적당한 것으로 고르면 한 마리 정도는 격리해서 잡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얻은 생체조직을 바탕으로 ‘기생체(寄生體)’, 비-앤트란 품종의 어떤 계급에도 들러붙을 수 있는 ‘기생하는 마수(魔獸)’를 만들어 비-앤트를 깃들 수 있는 몬스터로 개조한다! 이 과정을 지루하다 여길 정도로 되풀이해서, 둥지를 점령하고 여왕을 산채로 포획하는 것이 바로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의 사냥법!
끈기, 인내…… 험악한 암벽 주변의 환경에서 버티는 강인함을 갖춘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만이 가능한, 간단하면서도 대담한 사냥법…… 단점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한 가지!
“……라네?”
―이런 썩을 것들! 그런 잔꾀를 잘도!
투란이 스며온 지식을 바로 공유해주니, 드라고니아는 발끈했다.
하지만 투란은 하하거리면서 한숨을 쉬며 다시 항아리와 상자를 내려다봤다.
처음과 다르게, 이번에는 제대로 설명을 요구하는 기분으로.
다시 뒷골이 시원한 바람에 젖는 듯하면서 투란은 산양의 뇌리에 스며오는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의 지식을 알 수 있었다.
“우와, 이거 그냥 항아리가 아니네!”
―뭐? 그럼 어떤 항아…… 허엇!
다시 공유된 지식에 드라고니아가 흠칫 놀랐다.
투란은 녹색의 에메랄드가 담긴 항아리를 데몬스 러그에서 끌어 올렸다.
헝겊 테가 움찔거리면서 항아리 하나가 얌전히 구멍 안에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항아리가 투명하게 일렁이는 헝겊 위에 올려진 듯했다. 구멍 안이 여전히 보이고, 언제라도 다시 항아리를 밀어넣을 수 있지만 이렇게 올려진 다음에는 항아리에 마음껏 손을 댈 수가 있었다.
“아하핫, 여기가 입이야. 여기로 뭘 먹이면 이렇게 에메랄드를 낳는 거야. 항아리 안에 말이지. 이거 대단하잖아!”
항아리 아래쪽에 양각(陽刻)되어 있는 두툼한 입술 모양을 가리키며 투란이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이런 식으로 연금술과 마법에 에네르기움을 응용할 수 있다니…….
드라고니아는 근심하듯 중얼거렸다.
투란이 얻은 지식, 악마의 지식이 알려온 바는 확실하게 드라코눔의 아칸조차도 경이(驚異)를 느낄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이 항아리는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의 생체공방, 킨사티어의 육체를 제작하는 공방의 핵이 되는 에네르기움의 구조, 기능을 연금술과 마법에 적용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생체를 조작하는 기능 대신에 물질에 간섭해서 변이시키는 항아리, 마무리는 분명히 악마종의 능력으로 해놓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는 물질변환의 마도구였다.
세모꼴의 금괴도, 새파란 사파이어도, 간간이 검은색이 섞인 하얀 진주 무더기도, 모두 녹색이 영롱한 에메랄드의 항아리랑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의 뭔가를 먹고, 이 항아리는 보석과 금을 낳아 쌓는다!
―똥을 싸도 호화롭다고 과시하는 건가.
드라고니아가 놀라운 일이지만 짜증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더했다.
투란은 그 태도에 살짝 울컥했으니…….
‘야, 왜 갑자기 똥이야!’
막 에메랄드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어 든 참에 나온 말이라, 작은 짜증이라도 내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모처럼 부자 된 기분인데!
한데 드라고니아의 심술궂은 말은 멈추지를 않았다.
―홀시딘이 보면 좋아라 하겠군. 저 금괴 항아리만 있으면 굳이 나돌아다니면서 보상금 받아올 필요도 없잖아. 저기서 계속 퍼내 주면 되니까. 아, 그냥 보석 항아리만 비워도 넉넉할 수 있겠는데? 순도가 높아서 평가가 꽤 좋을 것 같은걸!
‘야, 왜 여기서 퍼낸 보석이랑 금덩이로 홀시딘이 나한테 보상금을 줘? 이건 내 거라고, 내 거!’
투란은 으르렁거렸다.
―홀시딘에게 안 보여줄 거야?
‘왜 보여줘야 하는데!’
―도둑맞지 않게 로열가든에 넣어둘 거 아닌가?
‘어? 어…… 그냥 데몬스 러그인 채로 숨겨둘 거야! 아무한테도…… 항아리는 안 보여줄 거야! 몇 개씩 꺼내서 조심해서 쓰면 될 테니까.’
잠깐 더듬으며 열심히 생각하다가 투란은 마음을 정했다.
어차피 데몬스 러그에도 칼라고드라니샥 형제들의 특이한 능력이 적용되어 있는 참이었다. 이 형제들은 마법과 연금술에 자신들의 에네르기 하트를 적용해 제어하는 방법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데몬스 러그가 그 결과!
때문에 데몬스 러그는 마법을 기반으로 한 탐지를, 연금술을 응용한 검사를 모두 회피할 수 있었다. 무늬를 담은 두개골, 악마가 남긴 유골(遺骨)이 아니면 누구도 데몬스 러그의 조작법에 대해 모른다!
―투란, 홀시딘에게 이 악마의 공예품을 넘겨주지 않는 것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감추지는 말아라. 홀시딘은 시크릿 키퍼야. 알려두는 편이 오히려 더 강하게 홀시딘을 구속해서 비밀을 지키는 방법이다.
‘어? 어…… 음…… 그런가? 일단 보상금 받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투란은 잠시 갸웃하다가 살짝 생각을 고쳤다.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었다.
―그래야지, 미리 알면…… 상아탑의 마법사가 어떻게 해서든 금괴 항아리를 이용해서 보상금을 주려 할 테니까.
‘홀시딘한테 뭔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
살짝 장난꾸러기의 심술궂은 말투인 드라고니아에게 어이없어서 투란이 물었다.
―상아탑에 대한 불만이지. 홀시딘 개인에게는 별로…….
‘복잡하구나, 드라코눔의 아칸은.’
툴툴거리면서 투란은 데몬스 러그 속으로 다시 항아리를 떨궈 넣었다.
에메랄드 하나는 손아귀에 쥔 다음이었다.
데몬스 러그를 곱게 접은 다음, 투란의 눈길이 다시 탁자를 훑었다.
아직 남아 있는 것…… 다채로운 깃털이 꿰어 있는 가죽 고리가 먼저 투란의 관심을 끌었다.
‘잉칼의 날개고리…… 잉칼의 일족이라고 들어봤어?’
―못 들어봤다. 악마종이 자신들을 일컫는 호칭이라면,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진 적이 없어.
‘그래? 흐흠…….’
투란은 가만히 가죽고리 쪽으로 눈을 들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