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7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709)
“아우으아으! 이 썩을 영감탱이가!”
“벌떡 일어났어, 벌떡! 벌떡!”
“멀쩡하잖아! 왜?”
욕설과 섞인 당황한 목소리가 홀을 메우려는 듯이 울려퍼졌다.
이를 듣지 않겠다는 듯이 이자닌은 귀를 막았고, 투란은 귀를 쨍쨍 울리는 그 날카로운 목소리에 머리를 흔들어야 했다.
가르 영감이 침상의 장막을 밀치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옆구리에 꽂힌 단검을 스윽 뽑아내서 가볍게 이자닌에게 던져줬을 때까지는 재스퍼부터 홀을 지키던 모두가 고요했었다.
하지만 그다음에 가르 영감이 ‘피투성이가 되었구만, 갈아입을 옷 좀…….’이라고 손짓하며 말문을 여는 순간부터, 재스퍼를 비롯한 홀의 일당은 저리 당황해서 입을 열고 나오는 대로 마구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과 함께 피워올리는 분위기는 가르 영감의 상태에 대해서 다들 걱정했고, 어서 일어나기를 나름대로 간절히 바랐지만…… 저렇게 아픈 척, 거의 죽은 척을 하며 쳐 누워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아 배신감이 넘쳐나는 중이라고 명확하게 외치는 듯했다.
그 소란스러움을 잠시 귀를 막고 외면하던 이자닌이 다시 목소리를 높여 외친 것은 가르 영감이 혀를 차면서 침상에서 내려서서 홀의 한편에서 새 옷을 찾아 갈아입은 다음이었다.
“뭘 하고 있었기에 다들 저렇게 성질내면서 미쳐 날뛰는 거냐고, 이 못된 영감님아!”
이는 바로 당황했던 재스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못된 영감!”
“맞아, 못돼 먹었어!”
“이 빌어먹을!”
더욱 심해지려는 욕설의 낌새는 투란이 듣다가 가면 속에서 어이없어 웃을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 가르 영감의 걱정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으니! 상황이 그럴 만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투란에게는 재스퍼 일당이 저리 변한 분위기인 것이 조금은 심해 보였다.
‘와, 멀쩡하다고 좋아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네!’
―그럴 기분을 전혀 못 느끼게 해준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처럼, 가르 영감을 욕하느라 정신없는 재스퍼 등을 두둔하듯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투란도 바로 동의할 수 있기는 했다. 다만…….
‘그래도 조금은 멀쩡해서 다행이라고 해줄 수 있잖아?’
이렇게 갸웃거리는 말을 소리 없이 중얼거려 볼 뿐이었다.
소리내 말해도 아무도 찬성하지 않을 듯하기는 했지만, 욕을 먹는 가르 영감은 투란의 기분에 동의한 듯이 말하고 있기는 했다.
“내가 무사해서 다행인 녀석은 하나도 없냐?”
“이 미친…… 썩을 영감아, 지금 그런 소리가 입에서 나와!”
재스퍼가 가장 큰 목소리를 냈고, 순식간에 그에 동조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를 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가르 영감은 혀를 차면서 자신을 지켜온 이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홱 고개를 돌려 이자닌에게 눈길을 고정하며 묻는다.
“대체 어찌 된 거냐?”
이자닌이 스윽 귀에서 손을 떼고 바로 되묻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가르 영감이 어이없다는 표정 사이로 눈꼬리를 치켜올렸지만, 이자닌도 엇비슷한 표정으로 마주 쏘아볼 뿐이었다. 그 틈새로 재스퍼가 성난 표정을 들이밀면서 가르 영감을 향해 외친다.
“왜 그랬는가 설명을 해봐, 이 썩을 영감아!”
가르 영감이 눈매를 좁히다가 한숨을 쉬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침상에 걸터앉으면서 다시 입을 연다.
“앉아라. 아무래도 긴 얘기니까…… 듣기 싫어? 내가 그렇게 미워? 그럼 당장 칼 들고 덤벼볼래? 왜 그랬는가는 따지지 말고 그냥 칼부림할까?”
이 소리에 재스퍼는 벌게진 얼굴에 더욱 성난 표정을 띠면서 아예 칼자루에 손까지 얹고 있는데, 이자닌이 냉큼 한쪽에서 의자를 갖다 재스퍼 앞을 가로막듯 놓고 앉으며 말한다.
“좋은 이야기여야 할 거야. 이야기한 다음에 칼부림하기 싫으면!”
재스퍼는 멈칫하다가 그냥 이자닌 옆의 바닥에 주저앉아서 입을 다물었다.
원래 가르 영감을 지키던 홀의 일당도 서로를 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침상 앞에 주욱 늘어앉았다.
투란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냥 이자닌의 뒤에 선 채로 팔짱만 꼈다. 어떤 경우라도 이자닌만 제대로 지키겠다고 자세로 드러낸 셈이었다.
가르 영감이 조금 진정된 분위기를 보고 다시 큰 한숨을 쉬고서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나 혼자 살자고 이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지? 자기가 바보라고 자랑하고 싶냐, 재스퍼? 눈치 보지 말고 다들 닥치고 들어! 내가 다친 척하고…… 아니, 실제로 중상을 입기는 했군. 내게 이런 회복능력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몰라. 어쨌든 시작부터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단 말이다. 누워야 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몸을 숨긴다는 핑계로 적당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냥 이용한 것뿐이야. 그래, 몸을 숨기겠다고 마음먹은 까닭은 도적 길드를 손에 넣겠다고 음모를 꾸미며 나 같은 길드의 늙은 도적을 방해물로 여기고 제거하려 나선 것이 세상 물정 모르고 어설픈 신참 도적 애송이들이 아니라 왕족이라서였다. 그러니까…….”
“와, 왕족?”
“아, 이 영감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재스퍼와 동료들이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이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바로 다시 으르렁거리며 욕설을 쏟아내려 했다. 거기에 날카로운 소리가 스쳐가면서 이자닌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린다.
“닥쳐, 영감 이야기 끝날 때까지 들어! 계속해봐, 가르 영감님. 근거 없는 헛소리라도 일단 끝까지 들어줄 테니까.”
가르 영감이 쓴웃음을 지었고, 그를 호위하던 일당은 순식간에 이자닌의 말을 따르는 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가르 영감이 그 꼴을 어이없어하듯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틈을 타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근거를 원하는구나, 이자닌. 그래, 좋은 태도야. 십 년? 아니, 십 년이 넘은 듯하구나. 그 세월을 넘어 다시 얼굴 봤는데 아는 사람이라고 말만 듣고 근거도 없이 믿는 것은 바보지. 넌 바보가 아니고, 나도 바보가 아니야. 알아, 간단히 짧게 말하마. 근거는 나를 노린 녀석이 내 몸에 박아둔 단검이다. 보통 단검이라면 내 몸에 꽂혀봐야 뽑아내고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아무는 상처를 남기는 게 고작이야. 하지만 이 단검은…….”
스윽, 몸을 숙인 가르 영감이 침상 아래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잠기지 않은 상자는 바로 열렸고, 가르 영감의 발에 밀려 이자닌 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칼자루에 새겨진 문장이 보이지? 그 문장은 왕실의 물품에 새겨지는 거다.”
가르 영감의 말에 상자를 흘깃거린 재스퍼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어느 왕국에서 저딴 문장을 쓴다는 거야.”
이자닌이 가만히 상자를 내려다보는 채로 이 말에 보태듯이 말한다.
“지금은 없는 왕국에서 썼었지. 칠왕국 이전에…… 페브라 왕국의 이전에…… 저 문장이 새겨진 물품은 모두 페브라 왕실 창고에 처박혔다고 했었지.”
재스퍼가 흠칫하며 다시 고개를 빼서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헝겊을 깔고 그 위에 귀중품처럼 놓인 단검, 핏자국이 닦이지도 않은 채로 변색되어 들러붙은 칼날과 칼자루를 잇듯이 새겨진 문장은 복잡해서 뭘 그린 것인가 알 수가 없었다.
가르 영감이 어리둥절해하는 모두를 위해 설명하듯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섀터드 세븐 이전에도, 다른 곳에서 브로큰 킹덤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고대왕국의 뒤를 잇는 여러 나라가 있었다. 한 나라가 망해도 다시 새로운 나라가 생겨나기를 몇 번 되풀이했는지는 상아탑의 마법사나 세고 있을 일이지만…… 저 실타래 같은 문장을 쓰는 나라는 페브라 왕국 바로 전에 이곳에 있었다. 그 나라가 망하고, 페브라 왕국이 건립되면서 그 왕가의 재물은 새로운 왕실, 페브라 왕실로 귀속되었지. 그러니까 이제 와서 저런 문장이 새겨진 물건을 누가 꺼내놓는다면, 그건 왕실 창고에 들락일 수 있는 왕족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야. 특히나 독액을 내장시켜서 사람을 죽이는 저런 단검은 왕족이라도 어지간해서는 손댈 리가 없는 흉기고 말이야. 자, 그러니 내가 어쩌겠냐? 날 죽이려 한 녀석들이 최소한 이 나라의 왕족과 결탁했다는 증거가 떡하니 몸에 박힌 채였다. 그 규모도, 정확하게 누군지도 모를 녀석들이지만 이미 도적 길드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덤벼든 셈이었지. 그 상황에서 내가 싸우겠다고 날 따르는 녀석들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대항한다? 아무리 도적이 만든 도적을 위한 길드라지만, 내분으로 망한다는 거는 너무 꼴사납잖아! 그걸 어떤 놈인지 모를 왕족이 구경한다고 생각해봐, 차라리 죽은 척하고 숨어 있는 것이 낫잖아!”
재스퍼가 침묵했고, 그 동료들도 침묵했다.
믿을까 말까를 망설이는 표정이 가득한 침묵이었다.
이자닌이 잠깐 가르 영감이 입술을 핥으며 반론을 기다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꼴을 보고는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를 토해내는데…….
“죽은 척이 아니라 중상을 입고 회복되지 않은 척을 했지. 영감이 그랬다는 거는 마지막까지 교섭할 단서를 쥐고 있다는 거고…… 교섭할 여지가 있는데 계속 이렇게 숨어 있었다는 거는 일이 꼬였다는 얘기지? 그렇다면…… 누군지 아는 거네? 도적 길드를 노리고 있는 왕족이 누구기에 계속 숨어 있었어?”
차분히 하나씩 짚을 때마다 가르 영감의 표정이 움찔거리며 굳어지고 있었다.
투란은 가면 속에서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고, 입술 사이로 ‘와!’ 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자닌은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재스퍼들이 전혀 짐작도 못 하는, 투란은 뭘 추측할 여지도 없는 이야기만으로 어떻게 저렇게 가르 영감이 숨기려는 부분을 턱턱 짚는 것인가?
잠깐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재스퍼가 얼빠진 목소리로 묻는다.
“맞아? 영감, 이자닌 하는 말이 맞아?”
한숨부터 쉬고서 가르 영감이 이자닌을 보며 대답한다.
“십여 년 만이다만…… 여전히 나를 잘 알고 있구나, 이자닌. 그래, 일이 꼬일 대로 꼬여서 나로서는 이렇게 의식이 없는 척하고 물러나서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자닌, 내가 단지 왕족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여기지는 마라. 이 일에는…….”
“알아, 상아탑의 마법사도 꼬여 있지?”
이자닌이 시원하게 가르 영감의 말을 자르면서 확신하는 표정과 태도로, 묻는다기보다는 그저 절차상의 확인뿐이란 듯이 말하고 있었다.
가르 영감은 눈을 끔벅거렸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다음에 되묻는다.
“어떻게 알았냐?”
“나랑 파쿠란을 덮친 것들이 상아탑의 허가를 받은 물건을 썼으니까. 영감을 찌른 단검이랑 우리 상황을 교차시켜서 생각하면 당연한 결론이야. 그러니까 더 이상 말 돌리지 말고 말해, 그 왕족 누구야?”
다시 재촉하는 이자닌에게 가르 영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망설이는 표정이 가득한 그 모습에 이자닌이 미간을 좁히면서 재촉한다.
“나 여기 십 년이나 떠나 있었어. 딴 녀석들에게 믿기지 않는 누군가라 해도 나한테는 그냥 검토해볼 일이잖아. 말한다고 아니 그럴 리가 어쩌구 할 리가 없다고. 그러니 더 시간 끌지 말고 말해, 나 바뻐!”
“그렇군. 그 말대로구나. 너라면 뭘 해도 하겠어. 그래, 말해주마. 도적 길드의 일에 끼어들어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왕족은 삼 왕자다. 지금 페브라 국왕 폐하의 셋째 아들, 왕위 계승권 삼 순위의 왕자.”
가르 영감이 포기했다는 듯한 말투로 길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여기에 이자닌이 뭐라 하기 전에 재스퍼가 버럭 소리친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잖아!”
투란은 재스퍼에게 동의한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가르 영감을 이 은신처에서 지켜주던 이들이었지만, 방금 이자닌이 말한 그대로…… 가르 영감의 말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왜?’
―삼 왕자가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이잖아. 즉, 저 가르 영감이 뭐라 하든 간에 이들에게는 삼 왕자란 도적 길드랑 관계할 리가 없는 인물이라 여겨진다는 뜻 아니겠나?
‘그러니까 왜 관계없을 거라고…… 저렇게 놀라면서 못 믿지?’
―그건…… 나도 모르겠군. 상황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살짝 물러서듯이 말했다.
이자닌은 한 걸음 더 나아가듯이 의문을 드러내는 재스퍼 등을 둘러보며 가르 영감의 말에 왜 저러느냐고 대놓고 묻는 말을 꺼낸다.
“삼 왕자라면 무도회에서 약혼녀가 못생겼다고 구박하고 다른 귀족 영애에게 들이대던 막 나가는 변태 아니었나? 그 성격이랑 딱 맞는 일 아니야?”
“뭐? 어…… 아니, 그건 십 년 전에 십 대 반항기 이야기잖아!”
재스퍼가 흠칫하다가 이자닌에게 불평하듯 대꾸했다.
이자닌이 가만히 그런 재스퍼를 바라봤고, 가르 영감이 헛기침 소리를 내며 말한다.
“이자닌, 네가 떠날 무렵의 삼 왕자는 그런 좋지 못한 소문이 가득했었지. 하지만 그 뒤로 이십 대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이 왕도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훌륭한 왕자님이 되었지. 과격하고 오만하다는 첫째 왕자, 신경질적이고 계산만 밝다는 둘째 왕자랑 비교되는…… 공민들에게 사랑받는 훌륭한 왕자님, 그게 지금 셋째 왕자의 평판이야.”
투란이 갸웃하는 사이에 이자닌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코웃음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