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84
#183화
미노타우로스를 연상시키는 덩치가 퉁방울만 한 눈을 부라렸다.
“거기 형장, 무슨 용무라도 있소?”
못 본 척하고 지나가라는 소리다.
영화 속 삼류 건달들의 대사와 별 다를 바가 없었지만, [기감]으로 파악한 바에 의하면 저 덩치 큰 놈은 삼류 건달도, 어설픈 낭인도 아니었다.
[Lv.95 철우]‘생긴 것만큼이나 한가락 하는 놈일세.’
무림으로 따지면 절정 고수, 현대로 치자면 최소 A급 헌터.
만약 저런 놈이 건달이라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의 오함마가 와도 안 된다.
‘저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지?’
순간 방금 전 들었던 화산일학과 매화삼절이라는 별호가 뇌리를 스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학이나 매화보다는 마장동 칼잡이, 서초동 쌍도끼. 뭐, 그런 별명이 더 적절해 보였으니까.
내가 별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덩치, 철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거, 내 말 못 들었소? 혹시 귀머거리신가? 아니면 벙어리?”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혁무진이 치고 나왔다.
“이런 어이없는 작자를 보았나. 우리 공자님께 이 무슨 무례한 언행이오?”
“사람 말 못 들은 척하는 건 예의 바른 행동이고?”
“어허!”
“어허는 무슨. 얼마나 귀한 몸이길래 사람이 물어도 대답을 안 해?”
“이자가!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나는 검갑을 향해 손을 가져가는 혁무진을 제지했다.
“그만해라.”
“말리지 마십시오. 저런 놈은 호되게 혼을 내야 합니다!”
“너보다 고수야.”
“아,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
“…….”
철우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 수하요?”
“……일단은.”
“고생 많겠군.”
“하루하루가 인내심과의 싸움이죠.”
우리 일행을 위아래로 훑은 그가 혀를 찼다.
“보아하니 무림인들 같은데, 그냥 갈 길 가는 게 좋을 거요. 이 인간이 나한테 아주 큰 실수를 했거든.”
철우가 ‘이 인간’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힘이 어찌나 좋은지 뚱뚱한 체격의 중년인이 위로 쑥 솟구친다.
“히이익! 도, 도와주시오!”
잔뜩 겁에 질린 중년인의 머리 위에는 앞서 기감으로 파악한 레벨 창이 둥둥 떠 있었다.
[Lv.60 우황태]해장국이 먹고 싶어지는 이름이다.
어딘지 모르게 귀에 익은 이름이기도 했다.
‘우황태, 우황태…… 어디서 들어 봤더라.’
잠깐 생각하는 사이 철우가 우황태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었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애꿎은 사람들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깔끔하게 몇 대 맞지.”
“대, 대협. 이러지 말고 대화로 풉시다. 대화로.”
“대화?”
“예, 예! 대화!”
“대화 좋지. 그럼 일단 사람들 없는 곳에서 긴밀한 대화를 나눠 보자고.”
몸의 대화를 나눌 생각인 게 분명하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질질 끌려가던 우황태가 비명처럼 외쳤다.
“나, 나는 태원진가의 초청을 받고 왔소! 진 소가주와 독대하기로 되어 있단 말이오!”
“초청받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난 원체 단순무식인 놈이라 태원진가의 소가주건 가주건 별로 신경 안 써.”
“히이이익!”
안 되겠다. 이름 기억해 내기 전에 사람 하나 죽게 생겼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지만,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에는 이래저래 마음에 걸린다.
‘듣자 하니 꽤 중요한 손님 같은데.’
진위경과 독대한다는 말도 그렇고, 은근히 태원진가를 깔아뭉개는 철우의 말도 거슬렸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나섰다.
“저기.”
“살만 피둥피둥 쪄서 사람 피곤하게…… 지금 나 불렀소?”
“네.”
“무슨 일로?”
“뭐, 별건 아니고요.”
멈칫한 철우를 향해 말을 이었다.
“좋은 날인데 대화로 푸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거죠.”
“이쯤 해라?”
“괜한 오지랖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 아무래도 이런 날에 손님들끼리 싸우면 태원진가 입장에선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이, 소협.”
철우가 귀찮다는 얼굴로 목을 문질렀다. 동시에 방금 전까지 반 존대에 가깝던 말투도 반 토막이 났다.
“이건 개인적인 일이야. 괜히 끼어 봤자 그쪽만 피곤해져.”
“벌써 피곤하긴 한데. 뭐 별수 있나.”
“말이 짧다?”
“응. 이하 동문이고.”
“네놈, 몇 살이냐?”
“약관.”
“스무 살? 허, 파릇파릇하다. 파릇파릇해.”
“넌 몇 살인데?”
“스물다섯이다. 이 어린노무 새끼야.”
세상에, 두 번 놀랐다.
스물다섯의 꼰대 기질에 한 번, 그리고 저 얼굴이 이십 대 중반이라는 것에 또 한 번.
어릴 때 모유 대신 단백질 보충제를 먹어도 저렇게는 안 될 거다. 나는 상당한 놀라움을 담아 물었다.
“스물다섯? 너 혹시 이름이 벤자민이니? 혼자서 인생 거꾸로 사네.”
벤자민 철우가 눈을 부라렸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개소리가 아니라 사실이야. 노안이라 힘들었겠다.”
“노안이라니, 닥쳐라! 주위에서 나를 얼마나 어리게 보는데!”
“주위 누구? 일 번 어머니. 이 번 아버지, 삼 번 할머니. 셋 중에서 하나 골라봐. 아, 사 번은 막내 이모로 하자.”
“이 턱수염도 안 난 어린놈이…….”
“바지 내려. 고추에 털 났는지 보게.”
“이런 개……!”
“왈, 왈왈! 왈왈왈!”
철우가 우황태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땅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부들부들 떨던 녀석이 크게 심호흡했다.
“너, 후우. 후우우.”
“화났니, 벤자민?”
“그 주둥이 닥쳐라!”
아무래도 제대로 꼭지가 돌아 버린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나하나 받아치다 보니까 이 상황이다.
광분한 미노타우로스처럼 콧김을 뿜어 대던 철우가 힘겹게, 아주 힘겹게 입을 뗐다.
“너, 너 뭐 하는 새끼야.”
“어떤 새끼 같은데?”
“죽고 싶어서 환장한 새끼.”
뿌드득. 삽자루만 한 주먹에서 뼈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철우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봤다.
“무림에서 사사로운 은원에 끼어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것이냐?”
“그래서 괜한 오지랖 부려 미안하다고 했잖아. 근데 손님들끼리 주먹다짐하면 초대한 쪽은 뭐가 되겠어. 본가 입장도 좀 생각해 줘야지.”
“본가?”
“어, 본가.”
“혹시 태원진가의 식솔이냐?”
“식충이는 아닐걸.”
“말장난 한 번만 더 해 봐라. 삼 년은 앓아눕게 해 주지.”
“말 예쁘게 해라. 삼년상 치르기 전에.”
철우가 씩 웃었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때 저절로 지어지는 웃음이었다.
“사형께서 신신당부했는데…… 네놈은 안 되겠다. 몇 대 맞자.”
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굉음이 들리며 지면이 박살 났다.
마치 포탄처럼 쏘아진 2m의 거구가 내 코앞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아플 거다.”
쐐애액!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바람이 흩어졌다. 아니, 뭉개졌다.
어떤 초식과 묘리도 가미되지 않은 단순한 일권(一拳). 주먹에 담긴 힘은 천근 거석도 박살 낼 만큼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안 맞으면 그만이지.’
펑! 퍼버벙!
나는 눕듯이 허리를 젖혔다. 한 뼘 위, 허공을 때린 주먹의 끝에서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갔다. 일 장 밖의 나무가 태풍에 휘말린 것처럼 날아간다.
‘와, 이놈 이거 진심이었네.’
그 어마 무시한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한 일류 고수가 맞았다면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일격. 한 번 눈깔이 뒤집히니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다.
“야야, 살살 해라. 살살.”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쉭! 쉬이익!
일 격, 이 격, 삼 격. 연이어 쏘아진 놈의 주먹을 어렵지 않게 피해낼 때마다 짐작이 확신으로 변해 간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천근 거석도 맞춰야 박살 나는 법.
아무리 강한 공격이어도 안 맞으면 그만이다.
하물며 녀석은 권기(拳氣)도 뿜어내지 못하는 절정 초입의 경지.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 비슷하다면 내가 월등히 유리하다.
오직 나만이 가진 특수한 힘이 있으니까.
‘스탯.’
쐐애애액! 펑!
몇 번째인지 모를 헛방에 철우가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개 같은!”
“너무 흥분해서 그래. 심호흡하고 몸에 힘 빼. 그래야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지.”
반면 나는 완전히 여유를 되찾았다. 혁무진과 청풍은 강 건너 불구경 중이고, 우황태는 입을 떡 벌린 채 우리의 공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우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네놈, 정체가 뭐냐?”
“태원진가 식솔.”
“이런 촌구석에 너 같은 놈이 있을 리가…… 잠깐.”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철우가 문득 미간을 좁혔다.
“혹시 네가 진천검이냐?”
“그 인간하고 약간 관계가 있긴 하지. 내가 알기로는 같은 배에서 나왔을걸.”
“그럼…… 산서잠룡?”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빙고.”
빙고의 뜻은 몰라도 긍정의 의미를 읽어 낸 녀석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어쩐지, 한가락 한다 싶었지.”
“한 대라도 때려 보고 그런 말을 해라. 아플 거라더니 시원하기만 하네.”
“인정하마. 용까진 아니어도 이무기 정도는 될 법해.”
“애미야, 평가가 짜다.”
“주둥아리는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이게 다 심리전이지. 스스로를 되돌아봐. 흰자위만 허옇게 떠서 헛방질만 계속하잖아.”
“착각하지 마라. 너 같은 무명 소졸에게 사문의 무공을 발휘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사문이 어딘데. 도동파?”
“알 것 없어.”
가래를 탁 뱉은 녀석이 중얼거렸다.
“젠장, 산서잠룡이라니. 김새는군.”
피차 마찬가지다.
척 봐도 나름 이름 있는 문파의 제자 같은데, 누구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웠다가는 저놈이나 나나 역풍을 맞게 된다.
“큰형 때문에 참는다.”
“대사형 때문에 봐준다.”
동시에 비슷한 말을 내뱉은 우리는 서로를 노려봤다.
“어? 이 새끼 봐라.”
“새끼? 이 어린놈이 어른한테!”
“어른 같은 소리하네, 내 나이가 몇인 줄 알고 어른 운운해?”
“고작 스물밖에 안 된 놈이 어린 게 아니고 뭐냐!”
“그게 아니라……!”
무림과 현대. 양쪽 나이를 합치면 내일모레 오십이나 다름없지만 말귀가 통할 리 없다.
나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꿀꺽 삼켰다.
“됐다. 내가 너 같은 놈한테 무슨 말을 하냐. 아무튼 무림에서는 강한 놈이 어른이야.”
“뭣이! 그럼 내가 너보다 약하다는 말이냐?”
“당연하지. 방금 못 느꼈냐? 너와 나의 차이를?”
“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
“쳐 봐, 칠 수 있으면.”
“못 할 것 같으냐!”
철우가 씨근덕거리며 주먹을 치켜든 그 순간이었다.
“두 분 다 그쯤 하는 게 좋을 거요.”
불쑥 끼어든 누군가의 목소리. 표홀한 신법으로 내려앉은 위팽이 서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쓸어 봤다.
청풍과 혁무진, 그리고 질질 끌려오느라 꼴이 엉망이 된 우황태를 지나친 시선이 이윽고 나와 철우에게 화살처럼 꽂혔다.
“패화권, 그리고 삼 공자.”
“아니, 위 대협. 그게 아니라 사정이…….”
“맞소. 나는 그저…….”
북풍한설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질 말들을 얼려 버렸다.
“둘 다 사문을 개망신시키고 싶어서 작정했소?”
나와 철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 *
“패화권이 간 지 얼마나 됐지?”
“몰러, 한 식경은 넘은 것 같은데.”
“왜 안 와?”
“막혔나 보지.”
“화산파 도사가?”
“그게 무슨 상관이여. 화산파 도사면 똥도 잘 나와야 되나?”
“그건 그려.”
철우의 변비 설이 거의 확실시되었을 때쯤, 언덕을 내려오는 한 무리의 인마(人馬)를 발견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산서성의 무인이라면 결코 모를 수 없는 얼굴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산서잠룡이다!”
“산서잠룡! 산서잠룡이 패화권과 함께 오고 있다!”
“우와아아아!”
젊고 뛰어난 두 청년의 등장에 장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든 사람이 향후 무림의 주역으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두 후기지수는 나란히 걸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마다 사방에서 환호와 옷깃이라도 만져 보려는 손길이 빗발쳤다.
“산서잠룡!”
“패화권!”
“아따, 사이 좋아 보이네. 혹시 둘이 아는 사이였나?”
“그게 중요하겠나? 원래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 짧은 시간에도 두터운 교분(交分)을 쌓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듣고 보니 그렇구먼. 둘이 참 보기 좋아.”
모두가 흐뭇하게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벙긋벙긋 웃던 진태경과 철우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까 봐줬다. 알지? 너 나 건드리지도 못했어.”
“헛소리. 내 힘의 절반도 쓰지 않았다.”
“난 삼 분의 일도 안 썼어.”
“말실수를 했군. 십 분지 일도 쓰지 않았다.”
“나도 실수. 사실 백 분지 일도 안 썼어.”
“생각해 보니 나도 마찬가지다.”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 아냐.”
“누가 할 소리!”
엄청난 환호 속, 절정 고수들만이 들을 수 있는 치열한 공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