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01
#300화
흑마법사의 검은 숲. 아니, 이제는 스켈레톤 워로드의 검은 숲이라고 불러야 맞겠구나.
여하간 이 음침하기 짝이 없는 숲은 더럽게 넓고 복잡했다. 게이트 내부를 손바닥 보듯이 내려다보는 워로드가 없었다면 도중에 길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 간악한 줄만 알았더니, 멍청하기까지 한 인간이로군. 이 몸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그래,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간다고?”
– 백 걸음 앞에서 우회전.
“……이 새끼가 우회전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아는 거지?”
잘 잡은 워로드 하나, 열 네비게이션 안 부럽다.
쐐애애액!
나는 워로드의 방향 안내를 따라 눈부신 속도로 쏘아졌다.
최 팀장을 진기도인 하는 과정에서 얻은 반 갑자의 공력 덕분인지,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쳤음에도 공력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구쳤다.
‘역시 다다익선이지.’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점점 사람들의 인기척과 대화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이 향상된 시력은 족히 수백 미터는 떨어진 수풀 너머로 익숙한 얼굴들을 포착해 냈다.
‘최 팀장과 김 집사. 꺽정 아저씨에 송송이까지?’
거기에 한 시간 전쯤인가 내보냈던 신입 길드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니, 쟤들은 그렇다 치고 쎄 빠지게 운기조식 하고 있어야 할 인간들이 왜 여기 있어?
그러나 의문은 잠깐, 이내 잊고 있던 사실들이 뇌리를 스쳤다.
‘아, 깜빡했다.’
밖이 어느 정도 난리가 날 거라는 사실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그래서 워로드와 스켈레톤 부대를 처치하고 즉시 나가려고 했었는데…… 뜻밖의 경험치 공장의 발견에 흥분한 나머지 현장을 이탈한 것이 실수였다.
‘그동안 바깥은 한바탕 난리가 났겠지.’
물론 난리가 난 것치고는 한참 늦게 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신입 길드원들을 게이트 밖으로 내보낸 지 한 시간은 족히 흘렀으니까.
‘사정 설명하면 되겠지, 뭐.’
막 풀숲을 벗어나 다가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해골 문양! 네, 네임드 몬스터가 입고 있던 갑옷입니다!”
“여기 단검도 있습니다! 스켈레톤이 쓰는 장비가 아니에요!”
“진태경 선배님이 쓰시던 단검입니다!”
연이어 울려 퍼진 외침에 임꺽정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끅, 끄흐흑!”
“……?”
– ……?
“태경이가. 태경이가…… 크흐흑!”
아니, 이거 설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거냐.
입을 딱 벌리고 있는데, 워로드가 녹색 안광을 또르륵 굴려 나를 쳐다보았다.
– 저 인간들은 네가 죽은 줄 아는 모양이군.
“어, 응. 엄청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 그럼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나가야 하지 않나?
하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송송이와 김 집사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니, 길드원들마저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숙인다.
오솔길은 비탄과 추모의 감정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
안 돼. 도저히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야.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짠! 죽었을 줄 알았는데요, 살아 있었습니다!’ 하고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쌍욕 처먹는 거지.’
뒷수습을 생각하니 저절로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그래도 분위기가 더 악화되기 전에 오해는 풀어야 했다.
물론 그 전에 잠시 처리해야 할 놈이 있지.
“너, 잠깐 들어가 있어라.”
– 응? 그게 무슨 말이지?
“될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놀랄지도 모르니까 일단 들어가 있어.”
– 그러니까 어디에?
의아한 듯 되묻는 워로드를 무시하고 곧장 마음속으로 명령어를 중얼거렸다.
‘인벤토리 오픈. 수납.’
팟.
명령어와 동시에 손에 들려 있던 워로드의 두개골이 사라졌다.
인벤토리는 살아 있는 생물(生物)의 출입이 불가능한 공간. 그러나 스켈레톤 워로드는 이미 오래전 생기를 잃은 언데드 몬스터이기에 가능한 모양이었다.
“오, 됐다.”
– 으헉! 여긴 어디냐!
“뭐야, 이거. 안에서 말도 하네?”
인벤토리와 내가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가?
애초에 살아 있는 걸 집어넣은 적이 없으니 이런 경우도 처음이다.
내가 신기해하는 사이 워로드의 발광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 이 몸에게 무슨 짓을! 당장 내보내지 못할까!
“응. 내보내지 못해.”
– 네놈이 감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무병장수, 별래무양, 불로불사 할 것 같은데.”
– 답답하다! 숨 막혀서 미칠 것 같단 말이다!
“숨이 왜 막혀. 너 원래 숨 안 쉬잖아.”
– 이노옴!
“아, 시끄럽네. 확 그냥 소멸시켜 버릴까.”
워로드가 확 밝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 생각 이상으로 안락한 공간이로군.
“그래. 편히 쉬고 있어. 나오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입 벙긋하지 말고.”
– 알겠다. 그런데…….
“그런데. 뭐?”
– 간악한 인간 주제에 친구가 제법 많은 모양이로구나. 상당한 숫자의 침입자들이 또 들어왔다.
잠시 후, 구름처럼 몰려오는 수백 명의 헌터를 발견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워로드의 말은 반쪽짜리 정답이었다. 상당한 숫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친구는 아니다.
특히 선두에서 개선장군처럼 달려오는 저놈은 더더욱 그랬다.
‘석고준?’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와?
게다가 영혼의 단짝처럼 붙어있는 장년인은 TV와 신문에서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서울 협회장까지 나섰다고?’
아레스 길드에 서울 협회까지 등장하다니.
이거 일이 생각보다 훨씬 커진 것 같다. 이러면 나가기가 더 힘들어지는데.
초조한 마음으로 나갈 타이밍을 재던 나는, 곧이어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것들 봐라.”
대화 내용은 단편적이었지만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나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자 석고준을 보낸 이정룡, 그리고 이정룡이라는 막강한 연줄을 잡고 싶은 협회장.
이것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
사람 하나 제대로 죽여 보겠다고 구조 작전을 지연시키려는 놈이나,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는 놈이나. 모두 같은 똥통 속의 똥들이다.
손이 더럽혀지더라도 이 똥은 직접 치워야 한다. 이런 똥들이 길가에 뿌려져 있으면 맘 놓고 걷기 힘들 테니까.
“후회해 봤자 늦었어. 죽은 사람은 안 돌아오거든.”
피식 웃으며 최 팀장을 조롱하는 석고준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망설임 없이 풀숲을 헤치며 걸어 나갔다.
“뭐라는 거야. 이 개썅노무새끼가.”
적어도 한 놈은 손봐 줘야겠다.
* * *
“……!”
경악, 충격, 당혹스러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눈빛들이 날아와 얼굴에 꽂혔다.
내 등장과 함께 얼어붙은 최 팀장과 길드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쳤다.
인사는 나중의 일이다. 똥 덩어리가 더 악취를 풍기기 전에 치워야 했다.
저벅, 저벅. 탁.
마지막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살아…… 있었나?”
“지, 진태경 헌터?”
석고준과 서울 협회장. 흔들리는 두 쌍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석고준을 향해 입술을 뗐다.
“왜. 살아 있어서 섭섭하냐?”
“……그럴 리가.”
“이상하네. 대답이 반 박자 늦은 것 같은데.”
“착각이야.”
석고준은 한결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두 함께 널 찾고 있었다. 어디 있었지?”
“아, 근처에서 오줌 좀 싸고 오느라. 근데 다녀왔더니 거의 뭐, 발인 끝나고 49재까지 지냈더라.”
“소변?”
“게이트 들어오기 전에 물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볼일을 길게도 보는군.”
“정력의 상징이거든. 관심 있으면 오줌으로 무지개 만드는 거 보여 줄까? 그거 되게 예쁜데.”
“……헛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니 멀쩡한 모양이야.”
“나야 늘 멀쩡하지. 그런데…….”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넌 어디 아프냐? 사람 주둥이에서 개소리만 줄줄 쏟아지는 걸 보니까 광견병 같기도 하고.”
“……!”
“가만히 듣다 보니까 재밌더라. 감사패를 주니 마니, 아주 뭐 지랄 염병을 떨고 계시던데.”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석고준뿐만이 아니었다.
말없이 침만 삼키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울 협회장이 붉어진 얼굴로 끼어들었다.
“거, 젊은 친구가 입이 험하군.”
“예. 제가 입이 좀 험합니다. 그런데 누구세요?”
내 퉁명스러운 대꾸에 협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날 몰라?”
“혹시 대통령입니까?”
“아닐세.”
“그럼 소개를 해 줘야 알죠.”
“허, 참. 살다 보니 별…….”
혀를 찬 협회장이 권위가 묻어 나오는 오만한 얼굴로 가슴을 쭉 내밀었다.
굳이 게이트까지 차려입고 온 양복 상의에는 살찐 가슴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나, 이우중일세.”
“아, 이우중.”
나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턱을 긁적였다.
“그럼 혹시 김정희라고 아세요?”
“김정희? 혹시 협회 원로이신 그분?”
“아뇨. 저희 어머니신데요.”
“……응?”
“김정희 여사. 제 어머니요.”
잠깐 할 말을 잃었던 협회장이 어이없다는 투로 물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그걸 여쭤보고 싶어서요. 어디의 누군지, 직책과 이름을 말하는 게 기본인데 앞뒤 다 자르고 이우중이라고 하면 뭐 어쩌라는 겁니까. 차라리 여유증이라고 하시든가.”
“뭐라!”
“그래서 이우중 씨는 어디의 누구신데요?”
“나 이우중이라고! 서울 중앙지부 헌터 협회장!”
“아하, 반갑습니다.”
“이, 이……!”
“는 사. 이 삼은 육. 이 구는 시벌.”
“이런 무례한!”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협회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서울 중앙 협회장이 요직 중의 요직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비웃음을 숨기지 않는 이유는, 그가 경멸받아 마땅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헌터의 안전과 권익을 책임져야 할 헌터 협회장이라는 작자가 이따위 일을 벌이다니.’
이 게이트에 남아 있던 것이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였다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협회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한 시간이나 시간을 끌었다. 단순히 아레스 길드, 아니 이정룡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진태경 당신,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나는 삿대질과 함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협회장을 서늘한 눈동자로 노려봤다.
“뭐 하는 인간이긴요. 혼자 네임드 몬스터를 둘이나 잡은 인간이죠. 한 시간 동안이나 구조대를 기다리면서.”
“그, 그건…….”
내 기세에 움찔한 협회장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가 물러난 만큼 내가 나아갔으니까.
저벅.
한 걸음.
“이우중 협회장님.”
“무, 물러서게.”
저벅.
또다시 한 걸음.
“협회장이면 헌터 협회를 위해 일하십시오. 길드를 위해 일하지 마시고.”
“나, 난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알게 해 드릴까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벅. 턱.
마지막 세 번째 걸음과 동시에 단단한 손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그쯤 해 두지.”
나는 앞을 막아선 석고준을 향해 씩 웃었다.
“손 치워. 똥 냄새 난다.”
“일을 키우는 취미가 있나?”
“왜, 겁나냐?”
“겁이 나?”
석고준이 마른 웃음과 함께 귓가에 속삭였다.
“겁먹어야 하는 건 네놈들이야. 지금 내 뒤에 있는 건 우리 아레스 길드와 협회 소속 헌터들뿐이거든. 살아서 나가고 싶으면 입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오, 여차하면 여기에 싹 다 묻고 가시겠다? 사이즈가 너무 큰데, 감당할 수 있냐?”
“그래서 참고 있는 거다. 운 좋은 줄 알라고.”
“그거 무섭네. 그런데 지난번에 나한테 처맞은 건 괜찮냐? 포션 좋은 거 마셨어?”
석고준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유치한 도발이군.”
“거울 봐 봐. 네 표정 보면 되게 잘 먹힌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말한다. 이쯤에서 물러나.”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손 떼.”
후욱.
놈의 입가에서 악취가 섞인 뜨거운 숨결이 토해졌다.
침잠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던 석고준이 몇 걸음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스승님의 특별 지시가 아니었다면…… 넌 여기서 죽었어.”
“스승님? 아, 정룡이?”
“……!”
“정룡이 잘 지내냐? 슬슬 실버타운에 집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그 말이 결정타였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던 석고준이 눈을 부릅떴다. 전에 병원에서 상대했던 것과는 다른, 번쩍이는 안광이 솟구쳤다.
“그때와 같을 거라 생각한다면……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후회?”
나는 환히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혓바닥이 길다. 꼴값 그만 떨고 들어와.”
후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