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49
#748화
“진태경이 일본의 지원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후긴의 보고를 들은 미카엘 실베르트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아레스와 평화 길드에서 선별한 정예들로 다섯 개 팀을 꾸렸으며, 한국 정부에서 공군을 동원하여 도쿄로 향하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 그들에 대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후긴이 건넨 태블릿 PC에는 이번 지원군에 포함된 헌터들의 신상 명세가 자세히 적혀 있었고, 그것을 힐끗 바라본 미카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잘했네. 한국 외의 지원은?”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만약 중국이 합세한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아크 리치와의 전쟁으로 핵심 전력을 잃었고 일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아크 리치와 열흘 전 베이징에서 있었던 테러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중국이다.
홀로 재해(災害)를 일으킬 수 있는 최상위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엄청난 숫자의 헌터를 보유한 중국이라 해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지원 요청을 한 국가가 최악의 외교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일본이라면 더더욱.
“중국은 신경 쓸 필요 없네. 늙은 주석이 진태경을 돕고 싶어 해도, 국내의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후긴은 아직 자신이 전달받지 못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한번 중국을 치실 생각이십니까?”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군. 테러라는 건 벌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불행한 사건인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는 미카엘의 시선에, 후긴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말실수를.”
“신경 쓰지 말게.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아마도 상하이가 새로운 표적이 되지 않을까 싶군.”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지만, 후긴은 그 말에 담긴 짙은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상하이는 중국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대도시.
열흘 전 테러의 대상이 되었던 베이징에 이어 엄청난 희생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진태경의 편에 선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군.’
따지고 보면 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차별 테러라 생각하는 이 일련의 사건 속에는, 진태경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국가와 길드를 향한 징벌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둘 중 하나겠지.’
내심 중얼거린 후긴은 자신의 상관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야심을 지닌 채, 원대한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정복자가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느낌이 좋지 않아.’
분명 상황은 완벽하다.
레비아탄은 아크 리치와 비견될 만큼 강대한 몬스터.
그리고 자그마치 여섯 명의 S급 헌터가 참여했던 아크 리치 토벌과는 달리, 지금의 진태경은 일본을 포함한 자체 전력 외에는 외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진태경. 그놈이 이것마저도 이겨 낸다면.’
불길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만큼은 자신의 상관이 틀린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 함정이 도리어 수렁에 빠져 있던 진태경을 건져 줄 튼튼한 동아줄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러나 이와 같은 후긴의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진동에 의해 파묻혔다.
드드득.
– 현장 진입 완료. 10초 후 하강 준비.
떨리는 기체(機體)와 동시에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파일럿의 보고. 뒤이어 상관의 나직한 목소리가 후긴의 귓가에 닿았다.
“시작됐군.”
어느새 눈부신 은빛 갑주를 찬 미카엘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몬스터의 괴성과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 대도시.
미카엘 실베르트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각인시킬 전장(戰場)이 그곳에 있었다.
“준비하게, 후긴.”
왕관이 아로새겨진 투구를 눌러쓰며, 옛 신과도 같은 모습을 한 그가 자신의 까마귀에게 말을 이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가 될 준비를.”
기다림은 길었고, 고통은 깊었다.
이제 형형색색으로 물든 이 세상에 자신을 덧칠하고 싶었다. 천태민도, 진태경도 아닌 바로 미카엘 실베르트의 이름을.
* * *
다섯 개의 대양과 여섯 개의 대륙을 지배한 인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생명체에 자신들이 정한 이름을 붙였다.
토끼. 개. 고양이. 말. 공룡…….
그러나 예외는 분명히 존재했다.
아득한 옛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어떤 존재들은 인류가 가늠할 수 없는 형태와 강대한 힘을 지녔고, 그것을 다른 무언가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을 재앙으로 몰아가는 한 존재처럼.
고오오옹.
낮은 울음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수많은 잔해와 핏물이 뒤섞인 깊은 수면 아래, 거대하기 짝이 없는 신화 속 괴수는 파도와 함께 나아가며 막아서는 모든 것을 부수고 휩쓸었다.
콰드드득!
누군가는 그를 두고 악어라 했고, 다른 누군가는 고래로 표현했다.
그러나 인류는 결국 그 무엇으로도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한낱 생물체로 취급하기에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했으며,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녔으니까.
그렇기에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괴물이라 불렸고, 긴 세월 끝에 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을 뜻하는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저 멀리, 인간들이 내지르는 비명 속에 섞인 그 이름을.
“레, 레비아탄(Leviathan)!”
“명령이다! B급 헌터 이하는 당장 전장에서 이탈……!”
콰아아아아!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외침과 비명이 사라진다.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바스러트렸다.
인간도, 건물도. 하찮기 그지없는 방어 마법도 함께.
– 그르릉.
수십여 미터에 달하는 파도를 일으켜 사방을 휩쓴 레비아탄은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흘렸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지긋지긋한 잠에서 깨어난 것도, 지금처럼 마음껏 날뛰어 보는 것도.
‘그래, 그때가 마지막이었지.’
레비아탄은 자신의 주인을 떠올렸다.
마왕 아스모데우스.
혼란스럽던 마계를 통합하고 모든 몬스터를 굴복시킨 절대자.
그러나 그토록 강대하던 아스모데우스는 결국 인간의 손에 쓰러졌고, 레비아탄은 깊은 심해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주인이 사라진 이 세상에서는 전처럼 엄청난 양의 마력과 식량을 얻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 날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비축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달라졌다. 마왕께서 계시던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분명 달라졌어.’
잠에서 깨어난 직후, 대양을 가로질러 올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레비아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가까워질수록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물과 땅. 공기에 스며든 풍부한 마력이.
그리고 도대체 어떤 것이 자신을 잠에서 깨웠는지.
‘……!’
어느 순간 레비아탄의 거대한 눈동자가 번뜩였다.
바다의 일부가 되어 버린 깊은 수면 속, 무수한 건물의 잔해와 인간들의 사체 사이로 강렬한 기운이 전해지고 있었다.
‘저건.’
틀림없다. 이것은 몬스터가 가진 힘의 원천. 마정(魔定)이 풍기는 먹음직스러운 냄새였다.
그것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본래의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한 순수한 마력의 덩어리.
그간 소모된 힘을 보충하고도 남는 훌륭한 식량이 인간의 터전에서 레비아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래, 그래서였군.’
레비아탄은 어떻게 자신이 깨어날 수 있었는지 자각했다.
지금 이 세상에 스며든 마력과 저 정도의 기운을 품은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레비아탄은 바다의 재앙이자 지배자. 오랜 시간 이어진 수면으로 굶주린 괴수의 몸뚱어리가 바닷물을 타고 전해지는 힘의 파동에 반응한 것이다.
‘저 마력을 내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레비아탄의 눈이 탐욕에 젖었다. 눈앞에 차려진 만찬이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촤아아악.
레비아탄은 힘차게 나아갔다.
먹이를 삼키기 위해 나아갈수록 얕아진 수심(水深)과 함께 등의 일부가 드러났지만, 괴수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미 파악은 끝났다. 앞을 가로막은 인간들은 나약했고, 사방에는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바닷물이 넘실거렸으니까.
“노, 놈이 온다!”
“전격 마법사들, 준비!”
“원거리 부대. 발사!”
쉬쉬쉬슁! 치지직!
무수히 많은 화살과 전격 마법이 공간을 가로질러 내리꽂혔다. 급하게 결집한 헌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쏟아부은 일제 사격.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할 만큼 미미했다.
퍼버버벙!
한 차례의 폭발음에 이어 드러난 광경을 확인한 헌터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약간의 그을림과 수십여 개의 상처. 아니, 생채기.
그것이 그들이 눈앞의 괴수에게 끼친 피해의 전부였고, 곧이어 돌아온 대가는 혹독했다.
후우우웅, 파앙!
돌연 모습으로 드러낸 거대한 꼬리가 수면을 후려쳤다.
굉음과 함께 솟구치는 파도를 본 전방의 탱커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반쯤 물에 잠긴 두 다리에 무게를 싣고 타워 실드(Tower Shield)를 겹겹이 쌓아 벽을 세웠다.
처처처척!
힘차고 번개 같은 움직임.
비록 백여 명도 되지 않는 숫자였으나 이 자리에 남은 이들은 최소 B급 이상의 헌터들. 숙련된 전사인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알고 있었다.
“포메이셔언-!”
“물러서지 마라! 버텨!”
“적으로부터 보호하라, 그레이트 쉴드(Great Shield)!”
그리고 악에 받친 탱커들의 고함과 마법사들의 주문 영창이 뒤섞인 그 순간.
– 꺼져라.
그 자리의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던 마계어(魔界語)와 함께, 레비아탄을 중심으로 솟구친 거대한 파도가 나아감과 동시에 갈라졌다.
촤악!
하나의 파도가 수십으로, 수십이 수백의 물줄기로 화한다. 강대한 마력을 머금은 그것은 창의 형태로 변하여 헌터들을 덮쳤다.
꽈아아앙!
굉음과 함께 찾아온 충격파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물과 마력으로 이루어진 수백 자루의 창은 중첩된 방어 마법을 찢고, 철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던 타워 실드를 으스러트렸다.
콰직! 푸푸푸푹!
“크……헉!”
비명마저 집어삼킨 물의 창이 갑옷을 부수고 뼈와 살을 가른다.
한껏 피를 머금어 붉게 물든 물줄기와 함께,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헌터들의 머리 위로 거센 바람이 불었다.
투타타타타!
거칠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폭풍을 뚫고 도착한 수십여 대의 무인 전투기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체에 탑재된 총기과 미사일을 쏟아부었다.
레비아탄의 격멸?
꿈도 꾸지 않는다.
놈을 상대할 수 있는 본대가 도착하기 전, 아주 잠깐이라도 저 괴물을 지체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으니까.
그러나 작전 통제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레비아탄이 지닌 힘과 권능은 너무나도 강대한 것이었다.
고오오옹.
해일과 폭풍을 다루는 태고의 괴수가 울부짖는다. 이미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벼락이 무인 전투기들을 휩쓸었다.
드드득, 콰앙!
추락과 폭발. 혹은 침몰.
그 재앙의 중심에 선 레비아탄은 거대한 몸뚱어리를 이끌고 나아갔다.
오랜 잠에 이어 적지 않은 마력을 소모한 탓에 약간의 피로가 느껴졌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가까워지는 저 마력의 덩어리.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저것만 있다면, 본래의 힘을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이 땅을 해일로 뒤덮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아아아.
마침내 먹잇감을 앞에 둔 레비아탄은 아가리를 쩍 벌렸다.
마치 악어를 닮은 그것은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던 시체와 잔해. 그리고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마력의 덩어리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아니, 집어삼키려 했다.
다음 순간.
일렁이는 수면 위로 떨어져 내린 한 줄기의 섬광이 아니었다면.
화아아아악! 콰드득!
초고온의 열기를 머금은 청백색의 광염(光焰)이, 파도를 살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