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91
#790화
“선지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한 마디에 최 팀장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흐릿해진다.
어떻게 되었느냐, 가 아닌 어디에 있느냐.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이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차이를 즉각 깨달았고, 나는 이 짧은 침묵이 뜻하는 바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이군요.”
굳은 얼굴로 나를 응시하던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위치도 드러나지 않은 겁니까?”
최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고, 무언(無言)은 곧 긍정이다.
‘빌어먹을.’
나는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삼키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같은 곳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나와 최 팀장이 각기 다른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퀘스트
[격변]어느덧 새로운 시대는 눈앞까지 다가왔고, 이 길고도 치열한 이야기의 마지막 단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희망. 혹은 절망.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펜을 쥔 유일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무운(武運)을 빕니다.
등급 : 메인 퀘스트
제한 : 진태경
임무 : ???
보상 : ???
실패 : ???
나는 물음표로 점철된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뇌까렸다.
‘아직도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건…….’
바로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한다.
퀘스트 창에 적힌 저 물음표가 뜻하는 존재는, 처음부터 미카엘 실베르트가 아니었다는 것.
‘도대체, 도대체 어째서?’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미카엘 실베르트를 제거하는 것만이 이 퀘스트를, 새로운 격변(激變)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틀렸다. 완전히 잘못 짚었다.
‘선지자(先知者).’
스스로를 신의 사자이자 예언가라 칭하는 그 미친 광신도가, 미카엘 실베르트의 명령을 따르는 하수인으로 생각했던 테러리스트가 이번 메인 퀘스트의 진짜 열쇠였다.
혹은…….
곧 다가올 격변의 시작점이거나.
띠링.
– 메인 퀘스트, [격변]의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 당신의 자각에 따라 임무가 변경됩니다.
– 임무 : 제한 시간 내에 [선지자] 처치 (미완료).
갑작스러운 알림과 함께 시야를 채운 새로운 홀로그램 창들.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곧 세상을 뒤흔들, 격변이라는 폭탄의 시계 초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 * *
지구촌이라는 말도 구식이 되어 버린 현재.
세상에는 단 하루에도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이슈가 발생한다.
그러나 TV와 인터넷을 통해 온갖 뉴스를 접하고, 이내 잊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도 일주일 전의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마치 지뢰가 터지듯, 헌터들에 의해 전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무력 진압과 체포.
그중에는 대통령을 필두로 한 고위 정치인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호들과 헌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가 특정 지방과 국가를 넘어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안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물들.
역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세계 헌터 연맹의 발족식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그 혼란은 이내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 이 안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임시 대변인의 자격으로 카메라 앞에 선 최민우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손톱보다 작은 마이크로 칩(Micro chip)이었다.
그것은 역사의 한순간을 담기 위해 국회의사당 곳곳에 설치되었던 많은 카메라 중, 엄청났던 전투의 여파를 이겨 내고 살아남은 유일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차마 마주할 수 없는 진실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이기도 했다.
불과 세 시간 남짓한 영상.
하지만 모두가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온 그 영상은 전 세계를 침묵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
최민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안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 어떤 편집도, 거짓도 없었다.
다만 명백한 사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수십억의 인류는 믿을 수 없는 진실과 마주했고, 갑작스럽게 열린 이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아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건 희망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해. 난 저들에게 내 가족들의 목숨까지 맡길 수 있어.
└ 동의한다.
└ 진정한 영웅들이지. 진정한 헌터고.
└ 맞아. 그중에서도 Jin은 영웅 중의 영웅이야.
└ 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얼간이가 저 젊은 구세주를 욕한 거야?
└ 미안하지만 얼마 전까지의 내가 그랬어. 하지만 얼간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군. 병신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어.
└ 이 병신 같은 대머리 새끼.
└ 대머리는 빼. 네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기 전에.
└ 알겠다, 이 병신아.
└ God bless you.
결심했어. 곧 태어날 내 아이의 이름을 Sibal이라고 지을 거야. 진태경의 별명을 딴 아주 훌륭한 이름이지.
└ 지나가던 한국인으로서 충고하자면, 그건 썩 좋은 선택이 아니야.
잠깐. 지금 나만 저 fucking 몬스터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야? 왜 다들 아무 말도 없지?
└ 스톤 킹 얘기를 하는 거라면, 물 흐리지 말고 꺼져.
└ 미쳤군. 그는 몬스터라고.
└ Oh. 그래서?
└ 잘 들어. 내 사촌은 흑인에게 총격당해서 죽었지만, 나는 내 흑인 친구들을 살인범 취급하지 않아.
└ 미카엘 실베르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스톤 킹은 그들을 위해 싸웠어. 자, 이제 누가 영웅이고 몬스터지?
└ Shit. 너희 같은 머저리들 때문에 세상이 망할 거다.
└ 좋아. 다 지껄였으면 꺼져.
└ 잘 가. 멍청이.
난 프랑스인인데, 처음에는 테러라도 벌어진 줄 알았어. SNS를 보고 있었는데 엘리제 궁 창문에서 대통령이 떨어지는 영상이 올라와 있더라고.
└ 임마누엘? 그 새낀 죽어도 싸. 미카엘 실베르트랑 붙어먹다니.
└ 스위스 내무부 장관이 체포당하는 영상 봤어? 매직 존슨이 그가 가진 크고 아름다운 스태프로 놈을 두들겨 패던데.
└ OMG…….
└ 친구.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괜히 이상한 상상하지 마.
└ 매우 신속하면서도 훌륭한 작전이었지. 세계 헌터 연맹은 불과 한 시간 만에 편제를 끝마치고 전 세계 곳곳에 심어진 배신자 놈들을 뿌리 뽑았어. 도망치거나 반항할 틈도 없었다고.
└ 작전 시작 전까지의 기밀 유지도 완벽했어. 아마 멕시코나 브라질이었으면 갱단을 통해 정보가 넘어갔을걸.
우리는 당신들을 지지하고 사랑합니다. 부디 여러분께 신의 가호가 있기를.
└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 다들 광신도 테러리스트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니지?
└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세계 헌터 연맹이 우리를 지켜 줄 거야.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부르는 그 미친놈도 바짝 엎드려서 눈치만 살피는 중이고.
└ 이미 테러가 멈춘 지 2주 째야. 선지자도 곧 빈 라덴처럼 죽을 테고,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겠지.
└ Jin. 어서 깨어나세요. 우리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전 세계가 느낀 충격을 상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지만, 인류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세계 헌터 연맹을 향한 믿음과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으로.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이미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혹은, 세상을 집어삼킬 불길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중동에 집중시키십시오. 지금 당장.”
진태경의 한 마디는 최민우를 통해 곧장 세계 헌터 연맹의 수뇌부로 전달되었고,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이건 부탁이 아닌 명령이다.
자신들이 추대한 맹주(盟主)가 내리는 첫 명령.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Yes, boss.”
세계 헌터 연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린다.
발치 아래에 엎드린 사내를 말없이 굽어보던 선지자가 입을 열었다.
“예상 전력은?”
“그, 그것이…….”
“답하라.”
망설이던 사내가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적어도 10만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
“……!”
10만.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에, 그렇지 않아도 서늘하던 동굴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안다. 저 10만이라는 숫자가, 단순한 보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계 헌터 연맹.’
헌터는 등급을 떠나 그 존재 자체로 희귀하다.
천 명 중 한 사람만이 각성의 기회를 얻고, 특정한 훈련을 거쳐야 헌터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상대는 세계 헌터 연맹이었다.
그 명칭처럼 전 세계의 모든 헌터가 소속된 거대 단체. 수십억에 달하는 인류 중, 0.1%의 확률을 뚫고 신의 선택을 받은 수백 만의 헌터가 사막을 향해 짓쳐 들고 있다.
아니, 전 세계가.
“사막 전체가 감시받고 있습니다.”
“펜타곤에 심어 두었던 정보원들에게서 소식이 끊겼습니다.”
“인근 마을과 소도시의 주민들이 대피 중이라고 합니다.”
“미국이 항공모함을 움직였다는 정보가…….”
증폭된 불안감이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그들은 한참 동안 자신들이 얻어낸 정보를 쏟아냈다. 그만큼 이미 상황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으니까.
일주일 전, 생각지도 못했던 미카엘 실베르트의 죽음이 몰락의 시작이었다.
새롭게 탄생한 세계 헌터 연맹은 실로 파격적이고, 거침없이 움직였다. 발족식을 피로 물들인 것을 시작으로 미카엘 실베르트가 뿌려 둔 씨앗을 거두어들였고, 모든 진실을 한 치의 가감 없이 밝히며 전 세계의 지지를 얻었다.
순수한 정의(情意).
세계 헌터 연맹이 내리친 그 철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국의 대통령도, 세계 증권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거대기업의 총수도, 모두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이후 미국의 영공 통과를 거부했던 파키스탄과 중동 국가들조차 감히 이번 조치에 반항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 헌터 연맹을,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미친 짓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랬다간 무수한 포화(砲火)와 함께 수많은 헌터들의 방문을 받게 될 테니까.
그러나 타협을 택할 수 있는 그들과는 달리, 이 동굴 안에 모인 이들에게는 일말의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선지자시여!”
“부디, 부디 저희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십시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애타는 부르짖음.
광신(狂信)으로 무장한 그들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코앞까지 몰려온 적들이 두렵긴 했으나, 동시에 굳게 믿었다.
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그분께서 내리신 예언자를 따라 걸었던 지난날들을.
선지자가 자신들에게 보여 준 그 놀라운 이적(異蹟)들을.
“이 길 잃은 종들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저 이교도들을 무찔러, 온 세상에 신의 뜻을 알리시옵소서!”
화륵, 화르륵.
동굴 안을 밝히던 횃불이 바람에 흔들린다. 깊이 눌러쓴 로브 사이로, 성별도 나이도 짐작할 수 없는 선지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희의 바람대로, 나는 신의 뜻을 받들어 저들을 벌할지어다. 인샬라.”
“오, 오오……!”
“신은 위대하시다!”
“인샬라. 인샬라!”
터질 것만 같던 불안감이 환호로 뒤바뀐다. 그리고 신의 위대함을 부르짖으며 연신 엎드려 절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선지자는 생각했다.
자신의 긴 기다림이, 곧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