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 Practice Disciple RAW novel - Chapter 87
87화 : [제28장] 신선호리병 3
차미려와 헤어진 백리사초는 곧장 낙양객잔에 가서 특실을 예약했다.
그런 후 바람도 쐬일겸 객잔 주위 저잣거리를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저잣거리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사람들도 많아 길도 비좁았다.
백리사초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온갖 잡다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보폭은 일정했다.
뭔가 마음을 다스릴 일이 있는 것일까.
무심해 보였지만 그의 눈빛이 몇 번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내 수양이 부족하구나. 이만한 일로 마음이 흔들리다니. 아직도 멀었다.’
백리사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그는 지금 악소소와 초웅 두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불회곡에 있으면서 가장 그리웠던 사람을 뽑으라면 가족을 제외하고 당연히 그들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그의 첫사랑이라 할 수 있었고, 한 명은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지기(知己)라 할 수 있었다.
한데 두 사람이 연인 사이가 되었다니.
아직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긴 하나,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소의 영악한 머리를 생각해보면 만능공자의 구애를 막기 위해 초웅을 가짜 애인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실제 두 사람이 좋아하고 있을 가능성 또한 배제 못 한다. 오 년이란 시간은 그 어떤 것도 가능한 세월이니까. 만약 정말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나는 마음이 쓰리지만 축하해주는 것이 좋겠군. 그 모든 게 인연일 테니까.’
백리사초가 그제야 마음을 다스린 듯 미소를 지었다.
지난 오 년간 부득이하게 속세의 정을 끊는 연습을 해온 그였다.
하지만 실제 정을 끊은 것은 아니고 모든 일에 초연하려는 마음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서약의 돌이 실제 거의 무력화가 된 지금 무림은 폭풍전야와 비슷하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일 시간이 없다. 모든 것을 인연에 맡기고 당분간은 대국만 생각하자. 그러려면 백화선자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백리사초가 저잣거리 인근 한적한 공터 바위에 앉아 신선옥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마음이 허전할 때 피리를 불게 되면 다소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기야 악소소와 초웅 두 사람에 관해 마음을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당장 초웅을 만나 가족의 행방에 관해 물어보려던 계획부터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차미려와 연결이 되어 그녀를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낼 생각이었다.
‘말은 조금 험하게 하지만 그래도 심성은 고운 아가씨였다. 오늘 저녁 모임 때 잘하면 후기지수들을 여럿 볼 수도 있겠군.’
삘리리리.
피리를 불면서 지난 인연들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악소소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도 생각해냈다. 한데 한 번이라도 만났던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들만 남궁지약, 제갈수련, 초화영, 임설, 묘약란 정도였다.
하나같이 절세미인들이었다. 지금은 그 미모를 활짝 꽃피우고 있을 게 분명했다.
거기에다가 백화선자와 오늘 만난 차미려까지.
백리사초가 만난 여자 중에 미인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차미려를 제외한 여자들에게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녀들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한때의 추억과도 같았다.
‘사부님 말씀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최대한 내 신분을 숨기고 활동해야 한다. 내가 백리사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놈들이 내 가족부터 노릴 가능성이 크니까. 최소한 전면전이 발발할 때까지만이라도 철저히 다른 신분으로 활동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백리사초가 눈을 빛내며 신선옥피리를 계속 불었다.
역시 그 효과는 매우 좋았다.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백리사초는 이제 애써 번뇌를 지우려 하지 않았다.
애써 지우려 할수록 더 괴롭히는 것이 바로 이 번뇌망상이었다.
무명노승의 가르침대로 백리사초는 번뇌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그제야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파괴된 것을 다시 세우고, 잃었던 터전을 다시 찾고,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을 지키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그럴만한 거대한 힘이 있다. 나를 믿자.’
백리사초가 신선옥피리를 들고 낙양객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 해가 지려 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차미려가 일찍 올 수도 있어 그 역시 먼저 가 있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어린아이들이 뭔가를 둘러싸고 웅성대는 모습이 보였다.
백리사초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보니 한 거지 여인이 앉아 있고 그녀를 아이들이 둘러싸고 놀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거지 여인의 몰골은 처참했다.
거지들을 곳곳에 흔히 볼 수 있는 게 현실이긴 했다. 그래도 거지들은 잘 씻지 않아 얼굴이 더러울 뿐이지, 지금 눈앞의 여인처럼 얼굴이 화상으로 망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왼팔이 없었다.
외팔이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빛마저 흐리멍덩한 것이 백치인 것 같았다.
이 상태로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하지만 팔다리 하나 없는 거지 또한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고, 다들 자기 살기도 바빠 이런 거지 여인을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거지 여인 앞에는 바가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바가지에는 식은 밥 같은 것이 조금 담겨 있었다.
근처에 있던 식당 아주머니가 팔다 남은 밥을 주고 간 것이었다.
주먹밥 같은 것이었는데 거지 여인은 그것을 조금씩 먹고 있었다.
백리사초는 그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적선하고 싶었으나 백치 상태라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먹을 것을 지닌 것도 아니었고, 거처도 따로 없는 그가 그녀를 데려가 보살필 형편도 아니었다.
그저 측은하다는 생각뿐 지금 당장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은 그녀의 잘린 왼팔이었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입어 잘린 단면이 비교적 자세히 보였다. 일반적인 상처와 달리 푸르스름한 기운이 잘린 팔의 표면에 서려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깨 바로 밑 팔뚝 위치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곰팡이가 핀 것 같았으나 백리사초는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급속 냉동이 되었다. 팔이 잘린 후 스스로 잘린 면을 얼린 것 같구나. 아니면 누군가 팔을 얼렸던지. 다시 팔을 붙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일까. 상처가 최소한 오 년은 되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평범한 여인은 아닌 것 같구나.’
백리사초가 옆에 서 있는 한 아이에게 물었다.
“여기 거지는 항상 여기에 있느냐?”
“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기 있어요. 아저씨들 말로는 오 년 정도나 되었다고 해요. 다른 아이들이 놀려도 아무 대답도 없고 아무래도 바보 같아요.”
“그렇구나.”
백리사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사부님께 배운 생사금침대법(生死金針大法)을 이용하면 이 여인의 얼굴과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 잘린 팔도 어딘가에 냉동이 된 채 보존되어 있다면 다시 붙일 가능성도 있지만, 잘린 팔이 지금까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군. 일단 시간이 나면 와서 조용한 곳에 데려가 치료를 해보는 것도 좋겠군. 이런 상태라면 천하에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나하고 사부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이도 아직 내 또래밖에 되지 않았고 이대로 두면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것 같은데 사연이 있을 것 같구나.’
백리사초는 왠지 거지 여인에게 마음이 가는 것을 느꼈으나, 차미려와의 약속 시각이 다 되어 더는 지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신형을 돌려 객잔으로 가려 할 바로 그때였다.
거지 여인이 백리사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들고 있던 신선옥피리를 향해서였다.
거지 여인이 이런 적극적인 행동을 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놀라워했다.
이 거지 여인은 저잣거리의 명물이라 할 수 있기에 어느새 아이들을 물론이고 어른들도 모여 있었다.
백리사초가 흠칫한 것은 물론이었다.
신선옥피리를 아무에게나 쥐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피리를 향해 계속 손을 뻗는 거지 여인을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
옆에 있던 장한이 말했다.
“이 미친 거지가 피리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소. 한 소절 불어주시구려. 혹시 아오? 피리 소리에 맞춰 이년이 일어나서 춤을 출지.”
“하하하!”
“하하하!”
군중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듣기에 따라서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었다. 거지 여인은 아예 그런 생각이 없는지 신선옥피리를 향해 손만 뻗을 뿐이었다.
“알겠소.”
백리사초가 신선옥피리를 입에 댔다.
거지 여인에게 피리를 주는 것보다는 피리를 불어주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한데 힘을 주어 불었음에도 피리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아닌가.
지난 오 년간 처음 있는 일이라 백리사초가 적잖이 당황했다.
피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바로 백화선자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백리사초가 안색을 굳혔다.
백화선자의 안위가 걱정되자 그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속세를 벗어난 경국지색의 미모.
특히 그 맑은 눈빛은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백리사초와 거지 여인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거지 여인의 눈빛은 매우 탁했다.
하지만 백리사초는 뭔가를 깨닫고 가슴이 철렁했다.
비록 기혈이 불안정해 눈빛이 탁해졌지만, 그 원천 눈빛은 누군가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가 그토록 찾았던 백화선자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당한 상처 역시 오 년 전 백리사초가 구천마녀에게 당한 벼락을 떠올리게 했다.
‘백화선자다.’
백리사초는 너무나 큰 충격에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뻔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여인을 이대로 둘 수는 없겠구나.’
백리사초가 떨리는 손으로 거지 여인의 어깨를 잡았다.
군중들이 술렁인 것은 물론이었다.
이런 거지의 몸에 손을 대면 병균이 옮는다고 해서 누구나 꺼리는 행동을 백리사초가 했기 때문이었다.
백리사초는 주위의 이목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지 여인의 몸에 매화공력을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탁한 눈빛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백리사초가 확인을 위해 그녀의 눈에 집중적으로 공력을 넣어준 결과였다.
얼마 후 거지 여인의 눈이 거짓말처럼 깨끗해졌다.
비록 초점은 없었지만 백리사초가 그녀의 눈빛을 보고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백화선자가 틀림없구나.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아무래도 나처럼 구천마녀에게 당한 것 같군. 일단 자리를 옮겨야겠다.’
백리사초가 양손을 거지 여인의 어깨에 댔다.
바로 그때 실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바로 눈앞에 있던 백리사초와 거지 여인 두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앗!”
“아!”
놀란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귀신이다!”
그의 말에 군중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