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이게 뭔……!”
천이개가 당혹감을 터트렸다.
온 사방이 피처럼 새빨간 것으로도 모자라 혈향이 지독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설마 이건?’
혈향이 진동하는 새빨간 풍경.
순간 그의 머리에 과거 천하를 혼란스럽게 했었던 하나의 교와 그들이 당시 중원의 고수들을 한데 모아서 죽였던 사이한 진법이 떠올랐다.
‘아, 아닐 거야. 혈교는 오래 전에 멸문했고, 그들의 유지는 끊긴 지 오래야! 그걸 복원했을 리가…….’
천이개가 황급히 내공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런 염병할!”
나오라는 내공은 안 나오고, 대신 욕지기만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그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내공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생각한 진법이 맞다는 뜻이었다.
‘……혈교의 혈영미혹진(血永迷惑陣)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완전히 농락당했어!”
온통 새빨간 주변을 보던 천이개는 이를 갈며 발을 굴렀다.
간신히 꼬리를 잡았다 생각했다.
그래서 혹시나 정보가 새지 않도록 일부러 태극군자나 종남검성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 행동했다.
그와 더불어 화산파의 장문인에게 부탁해 천휘를 일부러 끌어들였다.
그들의 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서를 위협하는 혈룡문을 노린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검성이 인정한 천휘의 실력이라면, 만약의 일에도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들 중에 세작이 있어!’
세작뿐인가, 그들의 마수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럴 것이 신필유사가 그들의 조직에 속해 있었으니.
다시 생각하니 화가 넘실댔다.
그 또한 신필유사의 의협심을 높게 사 대협으로 인정하고, 자주 의견을 나누던 자였다.
정파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지금의 강호를 지킬지에 대해.
그런데 그게 모두 거짓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열불이 나는데,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혈영미혹진을 펼쳐 가두었으니, 어찌 화가 안 나리!
“개새끼! 똥물에 튀겨 죽일 놈! 접시에 코가 깨져서 콱 뒈져 버려라!”
신필유사를 향해서 천이개는 있는 욕, 없는 욕을 계속해서 쏟아 냈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가슴속의 열불은 더욱더 들끓었고, 머리는 뜨거워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주변을 훑던 천휘가 물었다.
“쟤들은 누구죠?”
“……뭐?”
천이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태연한 천휘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이냐?”
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천이개는 가슴을 두드렸다.
“이 지독한 혈향과 사방에서 압박해 오는 기운은 과거 당대의 소림방장과 무당파 장문인의 목숨을 앗아 간 혈교의 혈영…….”
“혈영미혹진이잖아요.”
천이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아는 거냐?”
“아니까 물어보는 거죠.”
천휘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혈교는 천하의 그 어떠한 곳들보다도 폐쇄적인 곳이었다.
혈교의 무공이라면 어찌 저찌 이해라도 하겠지만, 혈영미혹진은 혈교의 비전 중의 비전이지 않은가.
대놓고 중원에서 펼칠 리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궁금하잖아요. 혈교도도 아니면서 이 절진을 펼친 놈들이 누군지.”
천이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쟤들이 혈교도일지도 모르잖냐.”
“혈교 특유의 혈기는 감춘다고 감출 수 없거든요. 바로 들키죠.”
“그것까지 알면서 태연한 거냐.”
“뭐, 그럼 같이 날뛸까요?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텐데.”
천이개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차분하게 말하는 천휘를 보니 흥분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괜히 죽을까 봐 걱정하고 날뛰어 봐야 뭐가 변하겠냐.”
천이개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괜히 난리를 쳐 봐야 무얼 하겠나.
차라리 그처럼 그냥 마음 놓고 있는 것이 좋을지도 몰랐다.
“네 말대로 혈교는 아니다.”
천이개는 이미 살아남는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나직이 중얼거렸다.
“혈교가 모습을 드러냈다면 대뢰음사가 나설 테니. 그들이 움직였다는 말은 내 귀에 들려온 적이 없었다.”
천휘가 살짝 놀란 눈으로 봤다.
‘오, 그래도 개방이라는 건가.’
태상장로라고는 했지만, 그를 높게 평가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었다.
실력은 물론이고, 뭐 하나 보여 준 것이 전혀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좀 개방의 태상장로같아 보였다. 혈교가 움직이면 대뢰음사가 움직인다는 것은 새외 쪽만 아는 정보인데, 원래부터 알았다는 것처럼 덤덤하게 말하니.
‘정보력은 의심할 필요 없겠는걸.’
천휘도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누군데요?”
천이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모른다. 문파인지, 개인인지 아니면 힘을 합친 회인지. 저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
천이개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저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면, 그들의 목적 하나뿐이다.”
“그게 뭔데요?”
“강호 정복.”
천이개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은 구주삼패세를 붕괴시킨 뒤 강호를 발아래에 둘 생각이다.”
‘목표 한번 야무지네.’
천휘는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중간한 것보다 차라리 저렇게 야망을 품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흠, 그래서 위유심공이 그랬던 거였나.”
“……위유심공이 무슨 상관이냐?”
“선천진기를 갉아먹은 뒤 내공으로 화하는 심공이잖아요. 거기에 음공에 조종당하는 것 같고. 뒤에서 조종하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죠.”
“그걸 그렇게 짧은 시간에 알아낸 거냐?”
천이개가 헛웃음을 흘렸다.
위유심공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서 몇 년을 고군분투했었던가.
‘태극군자와 종남검성조차도 이 위유심공을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걸렸거늘…….’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당장 눈앞의 욕심 때문에 큰 것을 놓쳐 버렸다. 이 녀석은 여기서 죽을 재목이 아닌데.’
신필유사가 웃은 이유를 알았다.
자기 손으로 그놈들의 강대한 적이 될지도 모르는 싹을 자르는 것을 도운 형국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아주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가 눈을 질끈 감을 때.
툭.
둘 사이로 피가 떨어졌다.
‘벌써 시간이 됐네.’
천휘는 고개를 들었다.
새빨간 천장이 갑자기 쭉 늘어나더니 이내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
천이개는 죽음에 초탈한 듯이 가만히 앉아 있는 천휘를 바라봤다.
“안 무섭냐?”
“어떤 게요?”
“이제 곧 저 피가 우리를 삼키고 죽일 텐데……. 넌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거냐?”
말과 함께 천이개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거대해진 피 웅덩이는 천휘와 천이개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웃차.”
천휘가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정 무서우면 나가죠.”
천이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나간다고? 어떻게…….”
“어떻게긴요.”
천휘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부숴서 나가는 거죠.”
“…….”
천이개는 말을 잃었다.
혈영미혹진을 부순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왠지 믿음이 갔다.
‘저놈이라면 가능할지도…….’
희망을 품은 천이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 가능한 거겠지?”
“제가 거짓말을 왜 해요?”
피식 웃으며 말한 천휘는 주변을 살피기를 잠시, 눈을 번뜩였다.
“아! 저기네.”
천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작은 균열이 보였다.
‘이 정도야 쉽지.’
혈영미혹진에 갇혀도 여유로웠던 이유는 단순했다.
천하의 그 누구보다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혈교에 의해 겪었던 적이 있었으며 영생불멸군림대법을 펼친다고 샅샅이 파헤쳐 봤었으니.
‘거기에다가 미완성이고 말야.’
혈영미혹진은 피가 아닌, 혈기(血氣)로 완성해야 되는 절진!
그 작은 차이는 큰 결과를 불렀다.
이렇게 바로 균열이 보일 정도로.
스윽―
천휘가 검을 위로 들었다.
그 와중에도 내려온 피 웅덩이는 질퍽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윽고 천휘와 천이개의 정수리에 닿았다.
“윽! 그러면 그렇지!”
정수리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천이개가 화들짝 놀라며 천휘를 봤다.
자신만만한 태도에 속아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금방 희망이 부서지니, 더한 좌절감이 그를 휩쓸었다.
“기대하게 하지나 말 것이지!”
그가 뾰족한 목소리를 내뱉을 때.
번쩍!
날카로운 검광이 번뜩였다.
동시에 붉은 세상이 갈라지고, 새로운 풍경이 그 사이로 나타났다.
* * *
혈영미혹진을 부수고 나온 천휘는 어깨를 가볍게 움직이며 입을 뗐다.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혈영미혹진의 흐름 속 있던 균열.
천휘는 바로 그곳을 향해서 정확하게 찌르고 갈라서 진법을 파훼했다.
일견,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상당히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었다.
혈영미혹진에 대해 잘 알고 흐름을 읽어야 됐으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검을 휘두를 실력이 필요하니.
“…….”
한편 그 옆에 있던 천이개는 입을 벌린 채 망연하게 서 있었다.
‘뭐야, 방금 그 검은……. 그어진다 싶더니 세상이 갈라졌어.’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커헉!”
“크헉!”
피릍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담벼락에서 혈영미혹진을 펼치던 이들이 경련하며 하나둘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진이 깨지며 발생한 크나큰 타격을 직접 받았기 때문이었다.
“핫!”
그제야 천이개가 정신을 차렸다.
“지, 진짜로 혈영미혹진을…….”
그가 복잡한 눈빛으로 천휘를 볼 즈음, 신필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믿을 수 없군.”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혈영미혹진을 파훼할 줄이야. 개방은 파훼법을 알고 있었던 건가?”
그는 천휘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고 천이개를 보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혈영미혹진을 아는 자는 중원은 물론이고 새외에서도 아주 드물었다.
개방 정도의 정보력을 가진 곳이 아니라면, 아는 것조차 불가능할 터.
그러니 그는 천이개를 의심했다.
“눈이 단단히 삐었군.”
천이개가 이죽거렸다.
방금 전까지 그는 신필유사에게 농락당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혈영미혹진은 파훼했고, 옆에는 그 진법을 부숴 버린……!
종남검성조차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 천휘가 있지 않은가.
그의 콧대가 절로 높아졌다.
“진법을 파훼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 애…….”
그가 당당하게 말하는 순간.
신필유사의 소매가 크게 펄럭거리더니 날카로운 무언가가 쏘아졌다.
쐐액!
“피해라!”
천이개가 천휘를 보며 소리쳤다.
휙―
천휘는 고개를 살짝 돌려 피한 뒤, 두 손가락으로 낚아챘다.
그건 자그마한 비도였다.
“예의 없게 뒤통수를 노리네.”
천휘는 손가락 사이에 낀 비도를 가볍게 털어 내듯 흔들었다.
그 순간.
쐐액!
방금 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로 비도가 신필유사에게 쏘아졌다.
“흡!”
신필유사가 황급히 몸을 젖혔다.
하나 비도는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 한 줄기의 혈흔을 새겼다.
“이, 이런 날카로운 비도술이…….”
그가 경악을 삼킬 무렵.
“어디 보자. 처리할 놈들이…….”
천휘가 검을 어깨에 걸쳤다.
이어서 주변을 훑어봤으나, 혈영미혹진이 파훼된 여파 때문인지 보이는 것은 피를 쏟은 시체들뿐이었다.
“너 하나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