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생각보다 심각하군.”
산산조각이 난 산문을 바라보는 협위대주 추계광(皺計光)의 미간에 한 줄기 길고 얇은 주름이 잡혔다.
문이라 함은 문파의 얼굴이었다.
하물며 구파일방의 한 곳인 화산파의 산문이라면, 그 의미가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산문이 부서져 있으니.
“쉽지 않겠어.”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하필이면 이런 임무를 맡아서는.’
추계광은 깊은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오려는 것을 참아 냈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부서진 산문의 건너편, 그곳에서 두 명의 도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뒤에 있는 거한의 도사는 아주 낯이 익은 인물이었다.
화산신검 현도진인.
현 무림맹에서 화산을 대표하며 굵직한 일을 처리해 온 절세의 고수였다.
그리고 선두에 있는 노도인은 그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자였다.
그러나 추계광은 그가 누군지 단번에 파악했다.
부드럽지만 묵직한 기도.
거기에다 은연중에 현도진인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는 상황.
눈치가 있다면, 알 수밖에 없었다.
‘이분이 화산의 장문인인 현상진인이로구나…….’
추계광은 바로 포권을 취했다.
“화산의 장문인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소인은 추계광이라 합니다.”
순간 산문의 근처에서 새로운 방문객들을 지켜보던 자들이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추계광?”
“설마 그…….”
강호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근 자라면 알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소요검(逍遙劍) 추계광.
무림맹의 사대(四隊) 중 하나인 협위대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자이니.
그때 현상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반갑네.”
순간 추계광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최악의 반응이었다.
‘차라리 화를 냈다면 좋았을 것을.’
반겨 주는 상황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역정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어느 때보다 화났음을 뜻했다.
추계광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늦게 도착해서 죄송합니다.”
‘서둘렀으나 너무 거리가 멀어 시간이 걸렸다’라는 등 괜한 말을 덧붙이지 않은 담백한 사과였다.
“…….”
현상은 고개를 숙인 추계광의 정수리를 지그시 내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하아. 되었네.”
현상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자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정보를 파악 못 한 것은 무림맹과 개방의 과오인 것을.”
그 말에 상황을 몰래 엿보던 개방도들이 황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추계광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럴 필요는 없네.”
현상은 다시금 싸늘하게 말했다.
“내 봐주는 것은 자네뿐이지,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맹에 물을 것이니.”
추계광이 고소를 지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면…….’
추계광이 조심스럽게 품을 뒤지더니, 이내 하나의 두루마리를 꺼냈다.
한눈에 봐도 고풍스러운 종이.
그리고 그걸 묶고 있는 금색의 비단은 마치 하나의 예술품과 같았다.
현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게 뭔가?”
“오늘 새벽에 지급(至急)으로 받은 전서로…… 맹주님과 군사님이 장문인께 직접 보낸 것입니다.”
“지급의 전서……?”
현상이 미간을 좁혔다.
무림맹에서 지급으로 보낼 정도라면 가벼운 내용이 아닐 터였다.
“내용을 알고 있나?”
“제가 전하기보단, 직접 읽어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 말에 현상은 두루마리를 받아서 펼쳤다.
안에 쓰인 내용을 읽는 그의 눈이 점차 커졌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글귀를 읽어 가던 현상이 마지막 글자까지 확인한 뒤 두루마리를 다시 말았다.
“……여기에 적힌 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현상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겠구먼.”
그 말과 함께 그는 곧장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나.”
추계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뒤를 봤다.
그는 바짝 긴장한 채 도열해 있는 수하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모두 여기서 기다리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중앙에 있던 남자가 대답하자, 추계광은 현상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잠시 뒤 둘은 자하각에 도착했다.
현상은 자리에 앉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다가 펼치며,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렸다.
“사흑련과 전쟁을 한다는 건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추계광이 진중하게 대답했다.
“이번에 무림 대회의를 열어 구파일방과 그 외 다른 문파들의 의견을 듣고 차차 결정될 겁니다.”
“사흑련을 상대로 맹이 전면적으로 나서다니…… 본 파가 습격당한 것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말이 맞습니다.”
“허허, 그렇군.”
현상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길 잠시, 이내 표정을 싹 굳히며 입을 달싹였다.
“한데 그렇게 한다고 본 도가 반길 것이라 생각하나?”
현상이 내뱉은 목소리가 마치 폭풍 한설처럼 추계광의 몸을 차갑게 휩쓸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이제야 싸우겠다 나서다니. 만약 본 파가 녹림의 습격을 막지 못하고, 멸문지화를 당했다면 어물쩍 넘어갔을 것으로 보이네만.”
현상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
추계광은 침묵했다.
지금 현상이 한 말은 사실 그가 지급의 전서를 받고 내용을 들었을 때, 느끼던 바와 똑같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장문인을 설득하고 무림 대회의에 화산파가 참석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날이 선 반응을 보이는데, 어찌 가능하겠는가.
추계광이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설득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 얘기했다가는 자칫 역효과가 날 수 있었다.
“이번 일은 무림맹을 대신해서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들어 올린 그는 현상과 눈을 맞추며,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하나만 알아주십시오. 무림맹에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을 했습니다. 하나 부족하였던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한 그가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걱정하며 몸을 돌리려던 찰나.
“……하나만 물어도 되겠나?”
추계광이 멈칫하며, 대답했다.
“물어보십시오.”
“무림맹에서 현재 본 파가 어느 정도의 위치라 생각하나?”
“장문인께서는 이번 무림 대회의를 왜 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문현답이었다.
화산파를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사흑련과 전쟁을 치를 필요도 없었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한데 지금은 진지하게 사흑련과의 전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무림 대회의까지 열겠다고 한다.
즉 정·사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화산파를 무림맹의 중요 세력으로 생각한다는 뜻이었으니.
현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좋네. 이번 한 번은 넘어가겠네.”
포기하고 있던 추계광의 표정이 환해졌다.
“감사합니…….”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게.”
현상이 그의 감사 인사를 끊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림맹에서도 정보 취합을 제대로 해 줬으면 좋겠군.”
추계광이 고개를 주억였다.
“……맹에 전달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긴장감이 팽팽했던 방 안의 분위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그럼 언제 출발할 텐가?”
추계광이 창밖을 바라봤다.
해는 어느새 기울어서 곧 산 뒤로 모습을 감출 것만 같았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이라…… 조금 빠르군.”
흘리듯 말을 하던 현상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는 무림 대회의에 참석할 한 명만 무림맹에 보내도 되겠나? 보다시피 본 파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제자들을 여럿 보내기는 힘드네.”
“상관없습니다. 하나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아무나 보내는 것은…….”
“그건 걱정 말게나. 무림 대회의에 참석할 자는 현도이니.”
추계광이 고개를 주억였다.
화산신검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인사와 함께 나가려던 추계광이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잠시 깜빡 잊은 것이 있습니다.”
추계광이 다급하게 말을 더했다.
“맹주님과 군사님이 매화신협 천휘 소도장과의 만남을 청했습니다.”
순간 현상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가?”
예상치 못한 날 선 반응에 추계광은 내심 놀랐으나, 얼른 감정을 감추었다.
“그동안 쌓아 올린 협행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신다 했습니다.”
“보답……?”
현상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무림맹주의 보답이라면 필시 평범한 것은 아닐 터였다.
“천휘에게는 전해 두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추계광이 떠나자, 현상은 현도와 천휘를 자하각으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불렀어요?”
“일단 부른 이유부터 말해 주마. 이번에 무림맹에서…….”
시간이 촉박했던 현상은 운을 떼며 방금 전에 있던 일들을 빠르게 설명했다.
이윽고 설명이 끝나자, 현도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무림 대회의는 제가 잘 이끌어 나갈 테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부탁하마.”
현상은 자신감이 넘치는 현도를 보다가 천휘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는 어찌할 게냐?”
“저는 상관없는데…….”
잠시 말을 끊은 천휘가 현상을 지그시 바라봤다.
“괜찮겠어요?”
많은 것이 담긴 질문이었다.
현상이 웃음을 내비쳤다.
“허허허, 걱정하지 말거라.”
답을 들었으면서도 천휘는 못 미덥다는 듯 현상을 바라봤다.
녹림의 습격 때만 해도 자신이 없었다면 멸문지화를 당할 위기였지 않은가.
그런데 걱정하지 말라니.
당최 신뢰할 수 없는 말이었다.
현상은 천휘의 표정에서 그 생각을 읽었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이런 습격이 또 일어나겠느냐.”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죠.”
“크흠. 그것도 그렇다만.”
헛기침을 내뱉던 현상은 천휘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많이 변했구나.’
예전의 천휘라면 화산파 걱정은커녕, 말을 들은 즉시 바로 훌쩍 떠났을 터였다.
웃던 현상이 입을 열었다.
“맹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흠…… 그래요?”
천휘는 그 역시 믿음직스럽지는 않다는 얼굴로 현상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괜찮다면야.”
천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에 간다고 했죠?”
“그렇다고 하더구나.”
“알았어요. 그럼 먼저 가 볼게요.”
그대로 자하각을 빠져나온 천휘는 낙안봉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던 중 눈앞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에 고갤 들었다.
길목에 노을을 등진 자가 있었다.
“거기서 뭐 해요?”
“사제와 이야기 좀 하려고.”
노을을 등지고 있던 천유가 도복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술병을 두 개 꺼냈다.
“오랜만에 한 잔 어때?”
잠시 뒤 둘은 화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털썩 앉았다.
“이건 사제 꺼.”
천유는 어디에 또 챙겨 뒀던 건지, 술잔을 천휘의 앞에 놓으며 술을 따랐다.
쪼르르―
술병에서 술잔으로 이어지는 물줄기에 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이윽고 천유가 술병을 거뒀다.
“자, 마셔.”
천휘가 그 술잔을 쥐며 말했다.
“그걸 여기까지 용케 가져왔네요. 이거 들켰다가는 된통 혼날 텐데.”
“고생 좀 했지. 사숙님의 눈을 속이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했거든.”
어깨를 한차례 으쓱인 천유는 이번엔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입을 뗐다.
“무림맹에 간다며?”
“뭐 선물을 준다는데, 받으러 가야죠. 아깝게 안 받기도 그렇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 천휘가 술잔을 기울였다.
으음, 오랜만인걸.
최근 녹림이니, 뭐니 그런 것들 때문에 마시지 못한 술은 맛이 좋았다.
화끈하니 좋네.
탁주의 화기를 음미하고 있을 무렵.
“크.”
가득 찬 술잔의 술을 단번에 입안에 털어 넣은 천유가 천휘를 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화산은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사제지간이라고 똑같은 말을 하네.
천휘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천유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더했다.
“만약 무슨 일 생길 것 같으면 모두 후다닥 도망치게 할 테니까.”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비웃을 말이었다.
화산파의 대제자란 자가 위험에 처하면 도망칠 것이라고 선언하다니.
그러나 천휘는 만족스러웠다.
괜히 싸우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죽느니, 차라리 저게 훨씬 나았다.
일단 사는 것이 중요한 법이니.
“그거 좋네요.”
“맞지? 좋은 방법이지? 하하핫!”
천유가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휘 사제와는 마음이 잘 통한다니까. 내가 이런 말 하면 사부님이나 사숙님은 어디서 그런 말이냐고 난리를 치시는데 말이야.”
“일단 살아남아야 훗날이 있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유가 웃음 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길 잠시 슬쩍 술잔을 내려놓으면서, 천휘의 귀에 입을 바짝 갖다 댄 그가 아주 조용하게 속닥였다.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철환을 벗기는 방법 좀 알려 줄 수 없을까?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풀어야 하지 않겠어?”
기다렸다는 듯 틈을 타서 훅 들어온 물음에 천휘가 씩 웃었다.
“방법이 따로 있을 것 같아요?”
천유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에라이, 됐어. 기대도 안 했어. 결국 이것은 사제만 풀 수 있단 거잖아?”
“경지에 오르면 누구나 가능한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천유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대꾸했다.
“그럼 사제가 나중에 풀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을게.”
이내 술을 다시 한 번 들이켠 천유가 조금 취한 얼굴로 입을 뗐다.
“그러니까 이것을 풀어 주기 위해서라도 몸조심이 돌아와야 해.”
담담하지만 짙은 진심이 담긴 말에 순간 묘하게 낯간지러워진 천휘는 천유를 보던 시선을 거두면서, 노을빛에 잠겨 있는 술을 홀짝였다.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네.’
그것으로 둘의 대화는 끊기고…….
대신 술을 홀짝이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화산에 어둠이 드리워질 때까지.
아주 깊은 주향을 어둠에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