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몬스터 웨이브에 맞서는 농부와 딸
엘프나 드워프같이 이성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몇몇 아인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몬스터는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편이 많다.
그렇기에 헌터는 주저 없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
실제 진우 또한 짐꾼 시절 숱한 몬스터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또 자신도 사냥을 했지 않았던가?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생각이 변했다.
“말이 통하면 짐승이라 해도 싸우지 않고 대화로 끝내는 쪽이 더 좋지.”
계기는 별것 없다.
‘야생을 받아들여라’로 이루어진 소통.
세계수의 숲을 노니는 드루이드인 만큼 굳이 살생을 하지 않고 작물을 수확하거나 가공하는 것만으로도 레벨과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어디까지나 ‘소통’ 가능한 상태와 환경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어어어어-!”
“끼이익! 끼에에엑!”
“……척 봐도 말로 설득할 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이미 제대로 된 소통이 아예 불가능해 보이는 몬스터 무리들.
그리고 설령 설득이 된다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진우가 사양이다.
딸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휴일을 망친 놈들을 그냥 웃어넘길 정도로 진우의 성격이 그렇게까지 유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덧붙여서,
“일단은 나도 인간이니까.”
게이트에 들어가는 헌터들이야 몬스터를 사냥하는 입장이다 보니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놀이동산에 놀러 와서 학살당한 민간인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자연재해에 재수 없게 휩쓸려서 죽는 건 너무나도 억울하지 않을까?
만약 진우 또한 힘을 각성하지 못한 시절이었다면 제대로 된 반항도 못 하고 죽었을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피해자들의 기분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니까 좀 맞자. 죽을 때까지.”
“쿠어어어어!”
콰직!
이미 죽은 이들을 살릴 수는 없더라도 길동무로 보내는 복수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터.
고맙게도 다가온 오우거의 머리를 천둥석 건틀렛으로 박살 내는 것을 시작으로, 진우는 놈의 거대한 시체를 디딤돌 삼아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상황이 심각하긴 하네.”
사방팔방으로 달아나는 사람들의 인파와 그들을 쫒는 몬스터들.
가뜩이나 몬스터에 비해 속도가 느린데 설상가상으로 환경의 동화로 인해 일반인들의 속도는 더욱 지체된다.
제아무리 진우라 해도 몸이 1개인 이상 처리하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살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살리고 봐야지.”
나 보다도 남을 생각할 정도의 인류애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그리고 적어도 힘이 있다면 살리는 게 맞지 않겠는가? 명예는 알아서 따라올 터.
일단 결단을 내린 이상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는 일이다.
“자라나라.”
뿌득- 뿌드드득-
사아아아-!!!
몸이 1개인 게 문제라면 더 늘리면 그만인 법.
녹음의 힘과 함께 땅에서 빠르게 솟아나기 시작한 거대한 크기의 아름드리나무들.
이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다 진우의 힘이요, 군세였으니,
“나무의 정령들이여, 일어나라!”
뿌드드드득-!
질 좋은 나무와 녹음의 힘을 받아 나무의 정령들은 한층 강화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흩어져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해라.”
끄덕-
진우의 명령에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끝으로 나무의 정령들은 일사불란하게 뿔뿔이 흩어져 인명 구조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간에 농부, S등급 각성자를 넘어서 이제는 소환사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 진우였다.
* * *
즐거움에는 나이에 상관없다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놀이동산이지만, 가장 많은 고객층은 아이와 같이 찾아온 가족 단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자 함께 찾아온 공간.
“대체, 대체 왜 이런 일이……!”
허나 추억은 한순간에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몬스터과 소름 끼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지금 당장에라도 벗어나고 싶지만, 공포로 인해서 다리가 굳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한 사내는 공포에 마냥 잠식될 수만은 없었다.
“으아아앙, 아빠! 무, 무서워!”
자신의 품에 안긴 채 울고 있는 딸.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제대로 피지도 못한, 꽃다운 나이다.
먼저 간 아내를 위해서라도 꿋꿋이 지금까지 키워 낸 딸이었는데.
자신마저 없으면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으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몬스터의 식량이 되어 먹히는 운명보다는 살아남는 것이 나으리라는 것을.
그러한 결과를 알기에 그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채린아. 울지 말고 아빠 말 잘 들어라. 아빠가 저쪽으로 먼저 뛰기 시작하면 채린이는 뒤로 뛰어가렴. 아까 들어왔던 입구 기억하지? 그곳까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야 한다.”
“싫어! 아빠도 같이 가!”
“걱정하지 마렴. 아빠도 금방 따라갈 거야.”
“지, 진짜?”
“그럼! 아빠가 거짓말하는 거 채린이는 본 적 있어?”
“……없어.”
“자, 착하지. 다리가 떨리겠지만 지금 바로 할게?”
변종 게이트.
특히나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상태에서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생존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이는 헌터는 물론 민간인도 다 아는 상식일 정도.
계속해서 쏟아지는 몬스터에게 발각되어 잡아먹히거나, 동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병들어 죽거나. 어쨌든 시간을 끌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된다.
그렇다면 유일한 생존 방법은 도주뿐이지 않겠는가?
‘거짓말해서 아빠가 미안해.’
둘 다 같은 방향으로 도주한다면 필시 몬스터에게 따라잡힌다.
한쪽이라도 살리기 위해선 누군가가 미끼가 되어 줘야만 할 일.
어디까지나 몬스터가 하나만 있다는 가정에만 가능한 도박이지만 100% 죽게 되는 것과 99%로 죽는 것이라면, 후자라도 택해서 딸이라도 살리는 게 모든 아버지의 마음일 터.
그렇기에,
“크아아아아!”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소리를 질렀다.
주변의 몬스터가 오로지 자신만 볼 수 있게끔 목청껏 부르짖는다.
아마 이로써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의 죽음이 확정되었겠지만, 딸만 살릴 수만 있다면야 이까짓 목숨쯤 몇 번이고 못 내놓을까?
하지만 한 가지.
사내가 모르는 사실이 존재했다.
“구어어어? 그흐흐흐!”
몬스터를 마주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민간인들로서는 알 수 없는 몬스터들의 습성.
그것은 그들이 상상 이상으로 잔머리를 잘 굴린다는 점이다.
F등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고블린만 해도 함정을 파거나 숨어서 기습을 하는 등.
다양한 공격 방식을 구사하는데 S등급의 몬스터라면 어떻겠는가?
특히나 그중에서도 대식가로 정평이 나 있는 오우거는 후각과 시각.
모든 부분에서 인간의 우위에 있다.
한 명을 잡아먹는 것보다 두 명을 잡아먹는 것이 더욱 배부를 수 있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히, 히이익!”
“아, 안 돼!”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사냥감보다는 도망치는 사냥감부터 잡고 보는 것이 더욱 이득이라고 판단한 오우거가 손을 뻗던 그 순간이었다.
타다다다닷-!
콰악- 콰학-!
“구어?”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속도와 함께 오우거의 팔을 낚아챈 두 마리의 거대한 그림자.
묵직한 감촉에 의아한 소리를 내는 오우거였으나 놈의 사고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먹어 치워! 스우! 하리!”
와그작-!
우그그극-!
촤하아아악-!
“크어어어어어어-!!!”
잠시 묵직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제 몸은 완전히 가벼워졌다.
오우거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두께의 양팔이 어깻죽지 째로 뜯겨 나간 채 두 늑대의 맛난 식량으로 제공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구, 구어어어!”
트롤처럼 엄청난 재생력을 가지지 못한 오우거로서는 두 팔을 잃은 이상 사실상 이길 수 없는 상황.
포식자의 위치에서 피식자가 된 오우거는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났으나 머지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푸슉- 푸슈슉-
쿠우웅-
– 제대로 도망칠 거면 머리는 가져가야지. 이미 내가 먹어 버렸지만.
– 이제야 좀 끓어오르는군.
허전해진 어깨와 마찬가지로 목도 허전해진 오우거의 시체가 그 자리에 볼품없이 쓰러졌다.
“괴, 괴물? 아니면 헌터들이 찾아온 건가?”
두 마리의 거대 늑대, 그리고 그중 한 마리의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소녀.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찾아온 헌터라고 보기에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에다, 사이즈도 맞지 않은 옷을 입었기에 다소 애매한 모습이다.
허나 더욱 놀라운 것은 지원을 온 이들이 더 있었다는 점이다,
기긱- 기기긱-
“힉! 뭐, 뭐야!?”
“거기 그쪽분. 놀라시는 건 이해해요. 저도 똑같았으니까. 아무튼 딸이랑 같이 빨리 이쪽으로 와요!”
“그렇지만 뭘 믿고…….”
“오우거의 살점을 뜯어먹는 늑대보다는 얘들이 낫다고요. 믿는 건…… 그래도 오우거한테 죽을 뻔했던 걸 살려줬으니 나쁜 놈들은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몬스터들을 하나둘 정리해 나가며 생존자를 챙기는 나무 인형.
확실히 딸을 맡길 거라면 입가에 피를 묻히고 있는 거대 늑대보다야 나무 인형 쪽이 백배는 나을 터다.
뭐, 사람인 헌터가 가장 좋겠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기도 하지 않던가?
– 생존자는 모두 이쪽으로.
“나무 인형이 사람 말을 한다고?”
“저도 처음에는 그래서 많이 놀랐다니까요.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이쪽에 기대해 보는 게 낫죠.”
“…….”
사람을 잡아먹는 오우거와 그런 오우거를 씹어먹는 늑대.
그리고 사람 말을 할줄아는 나무 인형.
생존자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 * *
각성자 헌터는 전투에 특화된 직업들이 많지만, 지원형이나 유틸성 부분으로도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이들 역시 적지 않다.
“이걸로 다 모인 건가?”
“예. 이제 더 이상 작동하기에는 힘들 것 같지만요.”
“괜찮네. 고생했어.”
그 예시로 협회 소속의 2급 공무원이 보유한 스킬, ‘전이 마법’이라는 게 있다.
거리와 이동하는 대상의 숫자에 따라서 상당한 양의 마나를 소모하는 데다가 전투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으나,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기성을 입증받은 능력.
그 덕분에 해외로 나가 있다는 사실이나 교통체증에 걸리는 시간 등이라는 걸 무시하고 언제나 한국의 S등급 헌터들을 빠르게 회의장에 집합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집합을 빠르게 했을 뿐.
현재 진행형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변종 게이트의 몬스터 웨이브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에라도 지원을 가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자자, 다들 모였으면 지금 바로 가자고. 얼른 가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 아니야?”
“말은 참 편하게 하네.”
“까놓고 말해서 거기는 너희 월영 길드가 담당하는 구역이었잖아. 전부 막으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초기 대처는 할 수 있던 거 아니야?”
“아니, S등급 게이트라고. 일반 몬스터들만 있는 거라면 모를까. 네임드 몬스터라도 있는 날에는 우리도 끝장이야.”
결국 헌터들도 사람이고, 길드로서 집단을 이루면 이익을 따지기 마련인 법.
S등급 헌터도 죽을 수 있는 변종 게이트에 선뜻 발을 먼저 들이미는 이가 있을 턱이 있겠는가?
‘후우…….’
S등급의 헌터라고 거들먹거리며 세상을 주무를 듯이 말하던 이들이 정작 위험한 상황 속에서는 발을 뒤로 내빼는 한심한 모습이다. 협회장인 신승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죽어 나가고 있을 민간인들인데.
아니, 어쩌면 이미 전부 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상황을 전달받고 집합을 했다 한들 상대는 S등급 게이트.
어떤 변수가 있을지는 베테랑인 그로서도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서로 미루기만 할 뿐인 것들을 꾸짖고 자신이 나서고 싶지만, 신승혁의 목숨은 본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의 밑에 딸린 수많은 협회의 식구들.
그저 그뿐이라면 뒤를 맡길 테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죽고 나면 협회장의 자리를 차지할 ‘놈’이었다.
적어도 뒤가 구린 놈에게 협회장의 자리를 넘길 수는 없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모두 사양하는 것 같으니 선봉으로 저희 수호 길드가 나서도록 하죠.”
“아영 대장. 아무리 그래도 우리 구역도 아닌데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변종 게이트가 발생한 곳은 놀이동산이다. 민간인. 특히 어린아이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지. 단, 이번 공략에서 나오는 전리품에 대한 우선권은 저희 측이 가져가도 문제없겠죠?”
“음, 물론일세. 다른 길드. 월영 길드는 딱히 불만 없겠지?”
“우리 구역인데 그래도 전리품은 저희가 더 많이 챙겨야 하지 않습니까?”
“그럼 월영이 선봉에 서면 되겠군?”
“…….”
“결정은 끝난 것 같으니 바로 가지.”
그나마 수호 길드 덕분에 빠르게 정리가 된 상황.
허나 진풍 놀이동산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은 채 내딛기도 전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 진풍 놀이동산에서 헌터가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뭐? 대체 누가?”
“그게…… 김진우의 채널입니다!”
“김진우라면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인물을 말하는 건가?”
“그, 그렇습니다.”
“생산직인 농부가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간 거야?”
“그래도 일단은 S등급 헌터이기도 하고, 전부는 아니어도 생존자를 많이 구출한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 사실인가?”
때아닌 몬스터 웨이브 발생지에서의 생방송.
– 진우 님이 따로 말씀하신 건 없으셨지만…….
고용주가 던져 주는 일거리만 처리하는 것은 삼류에 불과할 뿐.
진정한 일류 편집자라면 일일이 지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 영상각을 뽑아내기 마련인 법.
그렇게 몰리의 판단하에 찍기 시작된 방송은 어느덧 한국의 헌터 협회는 물론이요,
뜻밖의 상황에 따른 유입까지.
그야말로 역대급 시청자 숫자를 진우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서 갱신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