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66
267화 영약에 물타기
아스가르드의 초월자들 중에서도 유독 전투광으로 소문난 티르다.
토르와 함께 심심하면 요툰헤임으로 쳐들어가서 거인들을 도륙 내는 2인방.
하지만 그러한 둘에게도 거인왕 바로 아래에 있는 흐룽그니르와 수퉁은 쉽사리 죽이기 힘든 거인들이었다.
말 그대로 거인왕의 자리가 비어 버릴 경우 그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가장 높기로는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들.
헌데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그 둘을 죽인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이라는 거였다.
[이것들. 인간이라고 무시하다가 죽은 거 아니야?] [방심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야. 그것도 하나가 죽은 게 아니라 둘. 아니, 거인왕까지 죽인 걸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우연이라고 볼 수도 없겠지.] [뭐, 아우둠라가 함께했다면 이상하지도 않을 일이긴 해. 천하긴 해도 힘은 확실히 강하잖아?]주신 격 초월자들 중에서도 오딘보다 일찍 탄생한 태초의 암소, 아우둠라.
천박한 짐승의 모습이긴 해도, 티르나 토르 또한 단신으론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무력을 갖추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일 터.
허나 그들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거인왕을 제외한 나머지 거인들은 아우둠라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인간 혼자서 처리했다는 사실을?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이미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다 죽어 버린 데다가 그나마 진술 가능한 대지모신이나 펜리르, 정령왕들의 경우에는 이미 진우의 편이었으니 굳이 말해 줄 이유가 없다.
[후우. 대지모신도 정말, 그런 괴물을 만들어 낼 거면 적어도 아스가르드에서 고르든가. 왜 하필이면 인간 따위를 선택한 거냐고.] [누가 아니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발두르?] [……그, 그렇긴 하지.]두 전투광의 물음에 대답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발두르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자존심 때문에라도 안 받을 것 같지만 말이지.’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며 적지 않은 힘을 축적한 초월자.
그것도 위에 군림하는 주신 격 초월자의 자존심은 상당히 높다.
자존심 빼면 시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막상 대지모신이 축복을 준다고 해도 거절할 가능성이 농후할 터.
[나는 먼저 실례하지.] [또 미물들이 운영하는 상점에 가려고? 어차피 가 봤자 다 뻔한 것들이라니까. 그러지 말고 이따 히드라 잡으러 가는 길에 같이 가는 건 어때?] [냅둬. 미물들이 죽는 것도 슬프게 생각하는 녀석한테 뭘.]빛의 신, 발두르.
대부분이 전투에 살고 전투에 죽는 아스가르드 땅에서는 로키와 함께 양대 산맥을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괴짜다.
로키와 달리 약간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이유 없는 살생은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
뭐,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었지만 원래 다수결이라는 게 그렇다.
전투광이 가득한 아스가르드에서는 평화주의자가 비정상이 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살생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초월자로 탄생한 것이 바로 자신이다.
[빛의 신의 특성, 빛의 축복이 활성화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신용도과 신격을 획득합니다.]주신 격 초월자로 탄생할 때부터 발두르에게 주어진 축복.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생명들이 활동하면 쭉쭉 올라가는 경험치와 재화.
다만 한 가지 단점이라면 직접 생명을 앗아 갈 경우에는 역으로 경험치를 얻는 게 아니라 잃게 된다.
사실상 살생을 자제하게 만드는 힘.
물론 평화를 따르는 입장인 만큼, 이러한 점을 딱히 증오하진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딱 알맞은 특성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뿐.
그렇기에 아스가르드 내에서 발두르의 유일한 삶의 낙이라고 한다면, 다름 아닌 작물을 가꾸는 일이다.
빛의 신답게 광합성에는 자신 있어서, 심기만 하면 종류를 불문하고 알아서 쑥쑥 자라는 작물들.
뭐, 아예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 만큼 꼬여 든 해충들로 인해 작물 대부분이 벌레의 밥으로 전락한다는 게 한 가지 흠이라면 흠일 거다.
[해충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긴 할 테지만, 그래도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편이 좋겠어.]특별한 작물의 종자나 작물과 해충 모두에게 무해한 농약 등을 구하기 위해서, 모습을 바꾼 채 차원 상인들을 만나거나 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지만 어째서였을까?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대부분이 비싼 값을 자랑하는 탓에, 작물이나 농약과는 지극히도 거리가 먼 신들의 상점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 발두르는 보게 되었다.
[……이게 어떻게 여기에?] [순도 높은 미미르의 샘물(초월)]*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효과 : 온전하게 섭취할 시 24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80만큼 증가하며, 이후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30만큼 상승합니다.(0 / 1, 1회 한정)
※ 미미르의 지식 : 섭취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지식을 선사해 줍니다. 단, 짧은 주기마다 섭취할 시 목숨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 지혜를 품고 있는 현자의 우물인 미미르의 샘에서 퍼 올린 샘물입니다. 마시는 것만으로도 머리를 맑게 해 줍니다. 특별한 순환 과정을 거친 결과 순도가 높게 유지 중인 상태이며, 약탈이 아닌 순수한 의지로 수확해 낸 결실입니다.
그동안 아스가르드나 신들의 상점에 유통된 미미르의 샘물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거인들 중에서도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나름 교류 중인 녀석들도 있거니와, 전투를 통한 전리품으로 토르나 티르가 얻어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맹세하건대 그때 보았던 미미르의 샘물의 효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약탈’이 아닌 ‘수확’이라고 적혀 있는 표시.
미미르는 지키기만 할 뿐이었으니 다른 이가 퍼 올렸다는 소리일 터.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는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대지모신의 축복을 받고 있는 인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거인왕을 죽이고, 뒤이어 흐룽그니르와 수퉁까지 처리함으로써 요툰헤임의 지배자가 된 인간.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몇 번이고 저지르는 모습에 기가 찰 수 없는 것도 잠시.
요툰헤임을 넘어 이제는 아스가르드에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원래라면 당장 오딘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정석일 터.
허나.
[아니, 아버지는 모르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어.]대부분이 전투광인 아스가르드.
당연히 그 중심인 오딘도 뼛속까지 전투광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무래도 내가 직접 만나 보는 편이 좋겠군.]찰나의 고민 속에 나온 발두르의 선택.
이것이 아스가르드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 * *
꿀꺽- 꿀꺽-
목으로 시원하게 넘어가는 미미르의 샘물.
역시 영약은 참았다가 먹었을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처음 획득했을 때 먹지 않고 순도 높은 상태로 섭취한 보람은 톡톡히 누렸으니.
[순도 높은 미미르의 샘물(초월)을 온전히 섭취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지식이 축적됩니다.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30씩 상승합니다.]무려 모든 능력치 30에 달하는 능력치의 영구적인 상승.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미미르의 지식이 적용됩니다.]※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택됩니다.
현자의 샘, 지혜의 샘으로도 불리는 미미르의 샘이란 이름값에 걸맞게 섭취 후 진우에게 주입되듯이 들어오는 정보.
새삼 처음 느껴 보는, 물만 마셔서 지식이 늘어나는 신묘한 기분도 잠깐일 뿐.
중요한 것은 어떠한 지식이 추가되었느냐다.
“음…… 이런 문자를 아는 게 중요한가?”
지식이 늘어나긴 늘어났다.
단지 문제라면, 알게 된 지식이라는 게 어린아이의 낙서마냥 죽죽 그어져 있는, 문자라고도 말하기 애매한 암호 같은 거란 점이었다.
기왕 알려 줄 거라면 농작물이나 약초 쪽으로 알려 줄 것이지, 이런 해괴한 언어를 알아서 어디다 써먹으라는 건가?
“동식물의 말도 알아듣는 마당에 말이지.”
심지어 ‘야생을 받아들여라’로 인해 진우는 웬만한 언어는 다 해석되어서 들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아, 그래. 무슨 일이든 쉬우면 좋을 게 없으니까.”
어디서나 적용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주입된 지식이 이따위긴 해도, 아예 모르던 때보다는 나을 터.
어찌 되었든 얻게 된 지식이 밍숭맹숭한 덕분이랄까?
김이 팍 새기는 했어도 얻은 것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즉시 느껴지는 게 최고긴 해.”
총합 120의 능력치 상승이 가져다주는 느낌.
그간 네자릿수의 능력치를 기본으로 달고 있던 괴물 같은 놈들만 봐서 그렇지.
이 상승량도 결코 적다고는 볼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지구 내.
아니, 차원 전체를 뒤져 봐도 이만한 영약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신들의 상점에 등록한 걸 빼면, 여분으로 남는 건 3개뿐이네.”
미미르.
솔직한 말로 이 녀석은 이명부터가 틀려먹었다.
하는 짓만 보면 지혜의 거인이 아니라 구두쇠의 거인이라고 표현해야 옳았다.
기껏 고여 있던 미미르의 샘에 활기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양은 늘려 준 것은 물론이요, 순도까지 끌어올려 줬더니만 수확을 허락해 준 것은 고작 10개밖에 안 된다.
과도한 지식의 탐닉은 파멸을 재촉한다나 뭐라나?
누가 봐도 얼토당토않은 핑곗거리였지만 진우는 그 정도 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어차피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일 테니까.”
이미 요툰헤임의 지배자가 된 데다가 미미르의 샘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진우다.
게다가 샘의 순환을 적절하게 해 주는 것도 진우와 정령왕들의 도움 없이 미미르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
무엇보다 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고이고 있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이게 샘에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언젠가는 진우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렇게 되면 갑을 관계가 명확해지니 사실상 게임 오버였다.
“게다가, 양이 적은 게 무조건적으로 안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지.”
원래 프리미엄이란 적을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법.
다만 신들의 상점 때와 달리 이걸 통짜로 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곳의 대상 고객이 주신 격 초월자들이라면, 이 3개를 판매할 곳은 지구와 차원에 존재하는 수십, 수백억에 달하는 이들이 고객이라 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엘라인. 가능하시죠?”
– 이미 한번 해 보았던 일. 두 번째는 어려울 것도 없지.
물의 정령왕 엘라인의 조율 아래에 통제되는 3개의 미미르의 샘물.
본래 사람의 갈증만을 딱 해결해 주는 정도의 양만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깝게도. 기껏 완벽한 영약에 물을 타는 존재는 선지자뿐일 거다.]“그거 칭찬인 거 맞죠?”
[……아마도?]준비해 두었던 특대 오크통 300개에 딱 알맞도록 가득 채워진 순도 높은 미미르의 샘물.
아니, 이제는 물을 탄 영향으로 순도가 한껏 낮아진 미미르의 샘물.
질과 양.
선택의 기로에 있어 효율만큼은 놓치지 않고 챙기는 진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