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28)
128 그 결투 받는다
“저 사람이 예의 그…?”
“그런 것 같아요.”
“맙소사.”
“저 얼굴 좀 봐요.”
“내가 헬가의 얼굴을 아는데 똑 닮았어요.”
“공작도 참 대단한 결정을 했죠. 저런 사람을 받아들이다니.”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연회장 안을 퍼져 간다.
모두의 시선은 공작의 손자 라파에게 쏠려 있었다.
그가 단연 이번 연회의 화젯거리다.
공주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왕세자가 요즘 공무를 줄이고 있다든가, 마수의 피해가 나오는 지역 등 화젯거리는 풍부하지만 공작가 소식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모두 헬가와 라파의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남녀가 서로 갈라져 대화하던 중, 볼크 백작부인은 아무도 모르게 뒤로 손을 내밀었다.
남편의 몸을 살짝 찌른다.
이제 슬슬 대화를 끝내고 라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는 표시다.
등을 돌리고 있던 남편이 알았다는 듯 큼, 작게 헛기침했다.
마그리트가 공작 부부의 대녀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이후, 어떻게든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연회 직전에는 참가하는 귀족 대부분이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에 방문은커녕 편지 보내는 것도 폐가 된다.
당연히 볼크 백작가도 정신없었다.
공작가는 당연히 더 바쁠 것이다.
결국 연회장에 올 때까지 아무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후작가에서도 방법이 없어 오늘을 노릴 거다.
그전에 라파를 만나 확인하고 싶었다.
‘마그리트의 이야기를 들으면 거짓은 아닌 것 같지만.’
하지만 라파가 아니라 공작 부부의 대녀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저 말만의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그 자리를 모면하게끔 꾀를 가르쳐 준 느낌으로.
‘정말로 대녀가 된 거면 좋을 텐데.’
마그리트가 공작 부부의 대녀라면 엄청난 후원자가 생긴 셈이다.
슈테인 후작가도 역사가 긴 가문이고 나름 명문에 들어가지만 발테르 공작가와는 격이 다르다.
후작가에서도 손댈 수 없다.
볼크 백작부인은 눈시울이 시큰해져 고개를 약간 숙였다.
‘마그리트… 내 귀여운 딸.’
자식을 여섯이나 낳았지만 살아남은 것은 둘뿐이었다.
첫아들 이후 계속 잃기만 하던 자식, 그 마지막이 마그리트다.
그런 아이를 변태 후작 놈에게 보내다니, 차라리 수도원에 보내면 보냈지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토할 것처럼 속이 뒤집어졌다.
‘아니 근데 이 양반은 왜 이렇게 질질 끌어.’
도무지 이 자리를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볼크 백작부인은 다시 한번 부채로 남편을 쿡 찔렀다.
알았다는 듯 남편이 슬그머니 손을 뒤로 해 그녀의 손가락을 잡는다.
아픈 모양이다.
얼핏 들어보면 남자들의 대화도 여성과 비슷하다.
공작가에서 왜 야만인 자식을 받아들인 건지 의문이라든가, 그러면 헬가와 클라우스 님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과연 공작은 멀쩡한 다른 자식을 모두 놔두고 저 야만인 손자를 차세대 후계자로 삼을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야만인 곁에 있는 아름다운 여성에 대해 소란스러웠다.
남자들이란 미녀만 봤다 하면 다들 똑같다.
‘늙으나 젊으나 그저.’
볼크 백작부인은 마지막으로 남편의 손등을 꽉 꼬집어준 뒤 여자들의 대화에 신경을 돌렸다.
마침 여자들의 대화도 리아나 공주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니 깜짝 놀랐지 뭐예요.”
“클라우스 님이 생각나는군요. 그분과 나란히 서면 어울릴 것 같은데, 저 두 사람은….”
“공주가 너무 불쌍해요. 저런 남자와.”
“보나 마나 공작가에서 공국에 압력을 넣은 거겠죠. 공작도 너무 했어요. 손자 얼굴이며 출신이 그런데.”
“이렇게 보니 마치 미녀와 마수 같네요.”
누군가가 작게 한숨 쉬었다.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사라문즈 공국의 공주가 발테르 공작가로 시집온 사실은 거의 퍼지지 않았다.
아는 사람만 안다.
대부분의 사람은 연회장에 오고 나서야, 혹은 왕도에 도착하고 난 뒤에 알았을 것이다.
돌을 조각해 놓은 듯한 저 거대한 남자와, 손대면 꺾어질 것 같은 미녀가 실제로 다정한 부부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볼크 백작부인도 왕도로 오는 길에 라파 부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몰랐다.
볼크 백작가는 백작가 중에서도 끝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로 가난하고, 가문의 격도 그리 높지 않다.
먼 친척을 더듬어 가다 보면 제법 괜찮은 가문으로 연결되겠지만, 번번한 교류는 없다.
그 때문에 얻어듣는 정보도 고만고만했다.
고위 가문의 일은 소문이 돌기 전까지는 모른다.
볼크 백작부인이 포함된 이 그룹의 가문도 대부분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모습만 보였다.
겉으로는 라파와 그 부인이 다정한 것처럼 보여도 그저 겉모습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교계에서 겉으로만 다정하게 살아가는 부부는 그야말로 길가의 돌멩이만큼 흔하니까.
문득 왕도로 올라올 때의 리아나 공주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새와 중얼중얼 이야기하고 만드라고라를 안고 다니거나 약초를 조합해 병사들을 치료하는, 왠지 공주답지 않은 공주였다.
“….”
어쩌면 뭔가 남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울렸어.’
지금 이 자리에서는 다들 수상한 눈으로 보고 있지만, 저 두 사람이 몇 번 사교계에 출입하노라면 모두 알게 될 것이다.
저 둘이 의외로 어울리는 부부라는 걸.
볼크 백작부인은 깃털 달린 부채를 파르르 떨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상당히 사이가 좋아요. 이제 막 사랑에 빠진 남녀 같더라구요.”
“어머, 그건 무슨….?”
“아까부터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더니, 부인은 혹시 뭔가 아시나요?”
여자들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린다.
기왕이면 저 부부에게 좋은 방향으로 소문이 흘렀으면 하는 생각에, 볼크 백작부인은 자신이 겪은 부부의 이야기를 조금 과장되게 포장해 들려주었다.
리아나 공주가 얼마나 달콤한 눈으로 남편을 보는지, 저 거구의 남자가 얼마나 섬세하게 아내를 다루는지.
여자들이 작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반짝인다.
잠시 여자들과 라파 부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데, 남편의 팔이 보였다.
빈 잔을 지나가는 시종의 쟁반에 놓는다.
남편이 몸을 돌리며 부인들을 향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아름다운 부인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마침 인사드릴 분이 보여서….”
“어머, 이제야 막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어갈 참이었는데요.”
부인들이 아쉬운 소리를 하며 웃는다.
그룹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부인이 부채를 흔들며 미소 지었다.
“후후, 어쩔 수 없지요. 지금은 보내드릴 테니, 잠시 뒤에 다시 와 주세요. 그 뒷이야기, 꼭 듣고 싶네요, 백작부인.”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여성의 얼굴을 보며, 볼크 백작부인도 마주 웃었다.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부인.”
적당히 인사를 나누며 무리를 빠져나온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며 볼크 백작부인이 살짝 눈을 흘기자, 남편이 남들 눈을 신경 쓰며 말했다.
“막 자리를 떠나려는데 슈테인 후작 이야기를 들었어. 그 사람, 연회가 시작할 때부터 술을 마셨다더군.”
겉으로는 미소 지으면서 남편이 심각한 눈으로 그녀를 살짝 보았다.
“당신도 그 후작 소문은 들었겠지. 술만 먹으면 그….”
“개가 된다는 거요.”
“그래.”
볼크 백작부인은 남편이 에스코트하는 대로 걸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후작은 어디에 있대요?”
“모르겠어. 조금 아까까지는 보였다던데 어느 순간 없어졌다더군.”
“….”
“일단 라파 씨에게 경고해 둡시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이런 자리에서 난동이라도 벌이면.”
“라파 씨 평판이 나빠지겠죠. 야만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그래.”
남편은 여유 있는 척 주위를 보고 웃으며 걸었다.
하지만 마음은 급할 것이다.
슈테인 후작의 평판이 최악이기는 하지만 라파는 더하다.
야만인의 피라는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헬가의 아들이다 보니 원한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공작의 위세 때문에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물어뜯을 기회만 보고 있다.
볼크 백작부인의 마음도 조금 급해졌다.
그에게는 도움받은 일이 한둘이 아니다.
마그리트 일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가족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소중한 남편과 후계자인 아들, 마그리트, 모두가 그에게 구원받았다.
“서두릅시다.”
볼크 백작부인은 그렇게 말하며 호수를 미끄러지는 백조처럼 몸을 움직였다.
치마가 바닥을 휩쓸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사람보다 훨씬 키가 큰 라파가 이제 몇 걸음 앞에 있었다.
라파는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자리에 서 있었다.
문득 남편이 혀를 찼다.
“늦었어. 슈테인 후작이야.”
“….”
뒤늦게 볼크 백작부인도 슈테인 후작의 모습을 발견했다.
몇 명의 사람 사이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슈테인 후작은 막 라파의 앞에 와 선 참이었다.
남편이 그녀의 손을 놓고 혼자서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후작이 말 걸기 전에 어떻게든 라파를 데리고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전에 후작이 라파 바로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
눈이 마주치자 슈테인 후작은 곧바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술을 먹었는지 얼굴이 붉다.
왕의 연회인데 설마 시작부터 퍼먹었을까 싶지만, 그레고르의 보고에 의하면 후작은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니 가능성은 있을, 아니, 확실히 술이구나.
바로 앞까지 걸어온 슈테인 후작에게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후작의 눈이 번들거리며 옆에 있는 타티아나를 향한다.
놈의 눈동자에 질투와 선망이 섞였다.
슈테인 후작의 입술이 비뚤어진다.
“야만인 주제에 감히…. 공작가 피가 들어갔다고 더러운 야만족 놈이 우리나라 사람이 되는 건 아닌데 말이야.”
목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는 들리는 정도다.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을 공중에서 도발해 먼저 덤비게 할까 열심히 고민했는데 걱정할 필요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 걸어와서 낚싯바늘을 물어주네.
하늘의 도우심이다.
이 정도 모욕받았으면 죽여버려도 될까 싶었지만 아직 모자란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게는 걸려 있는 것이 다르니까.
적어도 할아버지와 공작가에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더 확실하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히죽 웃으며 몸을 조금 굽혔다.
놈에게만 들리게 약간 목소리를 줄여 속삭인다.
“호오, 요새 멧돼지는 사람 말도 할 줄 아나 보네. 대단한걸, 짐승 새끼가.”
“뭣!”
“머리는 큰데 뇌는 코딱지만 해서 뭣, 뭣, 그딴 소리밖에 안 나오냐.”
내가 부들부들 입술 떠는 놈의 흉내를 내며 말하자, 슈테인 후작의 얼굴이 더 시뻘게졌다.
반격당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이 나라 말을 할 거라는 생각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언어가 서툴러서 저런 말은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할아버지와 내가 각자 떨어져 행동하는 걸 보고 사이가 나쁘다고 착각했으려나.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부탁한 거다.
‘네놈 접근하기 쉬우라고.’
어쨌든 이 남자는 내가 공작가에 완전히 받아들여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 그랬다면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이렇게 대놓고 나를 모욕할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타티아나를 보고 눈이 뒤집히는 바람에 참지 못한 것도 있었겠지.
내가 말하기는 뭐 하지만 저런 절세 미녀를 얻은 남자가 나처럼 못생긴 거구의 야만인이라는 게 죽을 만큼 못마땅했을 것이다.
나도 반대 입장이었다면 그랬을지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랬다.
나 같아도 화나지.
나는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슈테인 후작의 다리 사이를 힐끔 보았다.
피식 웃는다.
“훗, 새끼손가락?”
그레고르의 보고에 그런 말이 있었다.
슈테인 후작은 거시기가 작단다.
그게 최대 콤플렉스라고 들었다.
후작이 가문에서 축출되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한 명이 그걸 사교계의 웃음거리로 삼았다고 한다.
그 남자는 후작과의 결투로 죽었다.
귀족 간의 결투에는 대리인이 허용되는데, 후작은 상당한 솜씨의 검객을 내세웠다.
결투 자체의 승부는 후작 쪽의 패배였다고 한다.
상대가 워낙 실력이 좋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결투 상대는 며칠 뒤에 죽었다.
결투하면서 작은 상처를 입었는데 그게 악화되었다.
승패에 관계없이 죽이기 위해 검에 독을 묻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놈의 거시기가 뭔지, 후작은 그쪽에 관한 원한은 절대로 잊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걸 찌르는 수밖에 없겠지.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거시기가 내 새끼손가락보다도 작네. 그거 달고 남자 구실은 할 수 있냐?”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후작이 한쪽 손의 장갑을 벗어 내 얼굴에 던졌다.
“야만인 따위가 감히! 결투를 신청한다.”
기다리고 있었다, 후작.
나는 씨익 웃었다.
“그 결투 받는다.”
말과 동시에, 나는 손을 쑥 내밀어 놈의 얼굴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