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205)
#205
번천회주 (2)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길 만큼 매혹적인 절경이었으나, 정작 한스는 그것을 느긋하게 즐길 수 없었는데.
콰드드득!
그야 그 노을빛이 시시각각 그의 숨통을 조여 오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거 참, 아찔하군.’
그는 가볍게 턱뼈를 움직여 막 재생된 부분이 잘 맞물렸는지 확인하고 목 관절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불사의 심장」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언데드라도 이미 한참 전에 소멸하고도 남았겠어.’
신성력을 이용한 공격에 턱 위쪽이 통째로 날아가면서 가면도 박살 나 버렸다.
그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해골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기운과 어우러져 이루 말할 수 없는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른 언데드는 끝까지 숨길 셈인가. 아직도 여유가 있나 보지? 아니면 뭔가 제한이라도 있나?”
[크크큭,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네놈이야말로 뭐라도 더 꺼내보는 게 어떠냐?]허세를 부리기엔 상당히 낭패한 몰골이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한스는 처음처럼 당당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심장만 무사하다면 불사인 몸.
까짓 전신이 뜯겨나가든 박살 나든, 조금 상하는 정도야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푸흐, 자신만만하군.”
그 반응에 빛이 반짝이는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 떠 있던 회주가 어이없다는 듯 헛숨을 내뱉었다.
새하얗고 커다란 날개 한 쌍과 머리 뒤에서 비치는 찬란한 빛의 고리.
거기에 더해 어둠을 꿰뚫어 보듯 타오르는 안광과 전신을 타고 흐르는 신성한 아우라는, 누가 보더라도 악을 멸하는 정의로운 심판자가 강림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바로 앞에 온몸으로 사악한 기운을 흩뿌리는 해골 괴인, 한스가 대치까지 하고 있었으니···.
‘음··· 역시,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이 나쁜 놈인 것 같은데.’
실상은 정반대이건만!
그로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으나, 지금 이 구도는 스스로 봐도 변호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명확한 선과 악의 대립이었다.
그래도 지구에선 나름 다크 히어로 취급을 받는 몸이거늘.
“빨리 끝내려 했는데 계속 회복하니 영 번거롭구나. 좀 더 페이스를 높여 볼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회주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신성력이 거세게 피어오르고.
동시에 구겨진 공간이 해일처럼 사방에서 밀려들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한스는 여태 해왔던 대로 침착하게 공간을 다지고 활로를 모색했다.
이젠 공간 침식에도 신성력이 뒤섞여 대응하기 까다로웠지만, 그의 마법 수준도 낮은 게 아닌 만큼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시간이 제법 소요되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그가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불그스름한 신성력으로 빚어진 수백 개의 검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군.’
거기다 쉴 틈 없이 다시 재개된 공간 침식까지.
이런 상황이었으니 꾸준히 피해가 누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불사왕이 되고서 이렇게까지 엉망이 된 건 처음인데.’
단순히 몸이 부서진 것이야 크게 상관없었으나, 반복해서 고농도의 신성력에 노출되어 기운 운용에 부담이 가중된 건 큰 문제였다.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심장을 지키는 데에도 한계가 찾아올 터.
‘이만하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은 충분히 한 것 같네. 정말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 빠지도록 할까.’
아무래도 놈과 어울리는 건 적당히 하고 이제 슬슬 물러날 타이밍인 모양이었다.
***
쿠르르릉—
연신 굉음이 울려 퍼지는 공간의 한구석.
“흐음, 흐음! 과연, 이거 참 흥미롭군요!”
후줄근한 차림의 중년인, 닥터는 회주가 만들어 준 안전 공간 안에서 「진리의 눈」으로 열심히 한스를 관찰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크햐~ 하지만 아쉽습니다, 아쉬워! 좀 더 자세히 보려면 해부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사로잡기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 게 문제군요!”
다만 모든 기술과 신비의 구조를 파헤칠 수 있는 「진리의 눈」에도 한계는 있었다.
애초에 그는 이 능력을 연구에 특화된 방향으로만 발전시켰던지라, 이렇게 떨어진 거리에서 거친 에너지의 유동에 감싸인 상대로는 썩 만족스러운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
즉, 그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위해선 상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그것이 자발적이든, 다소 강압적이든.
“역시 율령자, 당신의 도움이 있어야겠습니다!”
“···제가 말입니까?”
그렇게 튀어나온 갑작스러운 결론에, 옆에서 조용히 하회탈을 노려보고 있던 율령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당신도 봐서 알겠지만, 저 스마일 마스크는 심장의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부활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심장을 부수면 귀한 샘플이 사라져 버리겠죠? 그건 세계적인 손실입니다! 용납할 수 없어요! 반드시 생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딱히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왜 없습니까? 여기 이렇게 적임자가 떡하니 있는데!”
닥터가 흐뭇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에 율령자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물론 정신 제압을 비롯한 금제가 그의 전공이긴 했으나, 이미 하회탈을 상대로는 한 번 실패한 전적이 있지 않던가?
그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최대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항변했다.
이 광인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면서도 단호하게.
“아실 거라 생각하지만, 지금 제가 이 꼴이 된 건 하회탈과 정신세계에서 싸웠다가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입은 영체의 손상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해 몸 상태도 최악이지요. 그건 제 몸을 진찰한 닥터가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그는 말을 이으면서 찌푸린 얼굴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실명한 눈엔 기계 의안을 달았고, 튼튼했던 두 다리는 앙상해져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데다, 내장 곳곳에도 결손이 생겨 지금도 간간이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몸 상태로 또다시 하회탈의 정신에 침입하라는 건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지 않나!
“음! 이해합니다! 이해하고말고요! 하지만 말입니다, 율령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당신이 나서야 하는 겁니다!”
다만 그 차분한 설명이 이 광인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그도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는데···.
“복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사내가, 악마와 같은 미소로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 파악한 걸로 대충 어떻게 하면 될지 감이 오거든요? 사실 미리 준비해둔 것도 있고 말이죠! 우햐햐햐!”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을 들은 율령자는 다시 한번 하회탈을 자세히 살펴보고—.
닥터가 건넨 물건을 받으며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한창 싸움이 이어지던 와중.
“호오, 뭔가 수가 있는 건가?”
갑작스러운 회주의 혼잣말에 한스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눈치를 보아하니 자신에게 한 말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것도 괜찮겠지. 어디 한번 원하는 대로 해 봐라, 율령자.”
하지만 상대는 그런 반응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스는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가 누구에게 말을 했던 건지 알 수 있었는데.
스스슥—
아까 중년의 서양인이 끼어들었을 때처럼 전조도 없이 허공에서 한 삼십 대의 사내가 튀어나왔던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지 휠체어를 탄 채로.
역시 회주가 공간에 뭔가 수작을 부린 듯, 이번에도 상대의 등장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건 덤이었다.
‘···답답하군. 평소의 예민하던 감각이 막히니 장님이라도 된 것 같아. 그런데 율령자라?’
확실히 정보를 수집하며 이미 들어봤던 호칭이었다.
동아시아 전체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자라고 했었지.
‘저자가 율령자? 특이한 눈이군. 기술 문명이 발달한 차원에서 온 귀환자인가? ···아니 가만, 이건 뭔가 익숙한 기척인···.’
그렇게 한스가 새로 등장한 인물을 보며 경계심을 끌어올리던 찰나.
그의 텅 빈 눈구멍과 새로 등장한 이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고—.
화아악—!
어느새 그는 어둠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이전에 한 번 만났던 존재를 다시 대면하게 되었다.
-오랜만이군, 하회탈. 그간 어지간히도 잘 지낸 것 같구나. 이쪽은 그날 이후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는데 말이지.
거칠게 뜯겨나가 흔적만 남은 다리와 몸 곳곳에 난 상처로 너덜너덜한, 녹색으로 빛나는 인간의 형체.
‘누군가 했더니, 그때 그 변태였군.’
혈맹 강경파를 칠 때 번천회 끄나풀의 머릿속에 숨어서 이쪽을 훔쳐보던 놈이었다.
[크흐흣! 그래, 상당히 오랜만이구나. 그래도 어떻게 살아는 있었군?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어찌 보면 고마운 녀석이기도 했다.
저 녀석이 흘리고 간 영체의 파편을 수습한 덕분에 한스가 「마도의 길」을 얻고 한층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그 능력을 봤을 때 간부급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그때 그 녀석이 동아시아 지부장이었나.’
그때 ‘불사왕의 파편’에게서 간신히 도망치던 인상이 너무 강해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그때도 보통은 아니었다.
파편을 역으로 이용하기 전까진 상당히 위험했던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쉽게 정신세계에 침투해 온 지금도 예사롭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그의 정신 방벽을 뚫기 위해 상당히 과한 에너지를 쏟아부었는지, 바깥 시간은 거의 정지 수준으로 멈춘 데다 그나마도 오래 유지할 수 없어 보이긴 했지만.
[설마 그렇게 도망가 놓고 또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전에 당한 걸로는 부족했나?]마침 그냥 내빼기에도 찝찝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도시락이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추가 성장도 하고 번천회의 고위 간부도 처리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에, 한스는 정신력을 한데 끌어모아 영체를 부풀리며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그땐 내면에 악마라도 봉인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런데 ‘세계의 죽음’이라···. 하긴, 크게 다를 것도 없겠군. 심지어 그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지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 율령자가 심연을 뭉쳐놓은 듯한 거구의 한스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조용히 감탄을 내뱉었다.
위험한 상황인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의 태도에서 위기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한스도 그에게 접근하던 것을 멈추고 서서히 내면에 깃든 죽음을 끌어올렸다.
전보다 훨씬 강해진 지금와선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지 않나.
물론 정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소환 해제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겨우 말 몇 마디 나눴다고 벌써 한계가 오는군. 아무리 강제 개입이 힘들다곤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정말 어지간히도 괴물이구나, 하회탈.
그렇다고 저렇게 입만 나불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기도 뭐한 일.
한스는 곧바로 날카롭게 벼린 정신력에 죽음을 담아 놈의 영체를 공격했다.
-정면으로 싸워봤자 난 너를 이길 수 없겠지.
그러나 상대도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으니.
아무리 그가 온전치 못한 상태인데다 공격엔 죽음까지 실렸다고 하나, 굳건히 세워진 정신 방어막을 고작 몇 번 만에 부수기엔 무리였고···.
-확실히 닥터는 대단하단 말이야. 설마 정신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런 기물까지 만들어뒀을 줄은.
놈은 자신의 몸속에서 꺼낸 구슬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나직이 읊조렸다.
-어디, 넌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볼까?
직후, 율령자의 손에 들린 구슬에서 찬연한 녹광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파아아—
‘한스’의 정신세계 깊은 곳, 가장 밑바닥까지 빼놓지 않고.
언젠가 정신세계에서의 싸움을 전쟁에 비유한 적이 있던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후 벌어진 상황을 비유하자면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다.
적군이 내부의 테러로 반란군 수용소의 문을 부쉈고.
내부에서 뛰쳐나온 그들에게 온갖 군수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
“···큭,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야?”
한스 쪽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황급히 「마인드 허브」를 굳건히 세우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미약한 두통에 가볍게 관자놀이를 주무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상황을 살폈다.
마치 폭탄 테러라도 하는 것처럼 급격히 폭증한 정보량에 순간 당황하긴 했으나, 어마어마한 카르마를 쏟아부은 내 고유스킬과 정신 능력치는 이 정도로 무너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간 쏟아부은 카르마가 얼만데!’
하지만 당장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상태로 번천회의 회주와 마주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어쩌면 놈들이 노린 게 그것일지도.
“쯧, 여기까지만 할까. 뭔가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에 난 미련 없이 한스의 소환을 해제하고 다시 관자놀이를 지압했다.
일단 한스의 정신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건 면했다지만, 한차례 큰 폭풍이 지나간 만큼 당분간은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한동안 아우테리카에 보내 불사성에서 정양을 좀 할 필요가 있을 터.
‘그래도 일을 벌인 녀석도 온전치는 못할 테니까. 다음에 또 같은 짓을 벌이진 못하겠지.’
한스의 정신세계에 침입해 수작을 부린 율령자.
아마 테러를 시도하고 혼란이 인 순간에 빠져나가려 했던 것 같지만···.
그 테러는 반쪽짜리 성공이었던 만큼 당연히 놈도 온전히 빠져나가지 못했다.
질기게도 기어코 도망가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이번엔 구슬을 들고 있던 오른팔을 통째로 내려놓고 가야 했던 것이다.
아마 놈에게도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으리라.
‘그 구슬, 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이긴 했는데. 아우테리카에 가서 천천히 확인해 볼까?’
잠깐 일본에 남은 번천회 놈들에게 생각이 미치긴 했지만, 어차피 놈들을 상대하는 건 장기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겐 아직 시간이 많았으니 이번에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수단을 강구하면 되겠지.
그렇게 한스는 자양분이 될 율령자의 영체의 일부는 물론, 그가 남겨두고 간 수수께끼의 선물까지 가지고 이세계의 불사성으로 훌쩍 떠나갔다.
정작 그 번천회 간부진이 보일 황당한 반응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