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alter ego is becoming a tycoon RAW novel - Chapter (294)
솜씨 좋은 정원사가 관리한 듯 깔끔하게 정리된 화단.
그 안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작은 생명체들이 꼬물거리며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였다.
개미부터 시작해서 나비와 무당벌레, 지렁이 등의 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의 생태계—.
어찌 보면 그저 하잘것없는 미물들로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그 작은 세계의 구성원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어떤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귀여워.”
그리고 그런 광경에 유독 강렬한 감명을 받아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쪼그려 앉은 채 물끄러미 화단을 내려다보던 은발의 여인, 주신교단의 성녀 리에스타 세인트 하티아누스였다.
“흐음~ 흠~♪”
그녀는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것들 하나하나에 축복을 걸어주었다.
벌써 이러고 있었던 지도 몇 시간이 지났으나 그녀의 모습에선 지루한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흥미로운 놀잇거리를 관찰하는 것처럼 한 쌍의 금안을 초롱초롱 빛내며 정원의 생명체들을 내려다볼 뿐.
‘기특하기도 해라.’
이 얼마나 작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이란 말인가?
간만에 생긴 여유 시간을 모조리 자신의 취미 생활에 투자한 리에스타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요즘 여러모로 바빴는데···.’
주신교단은 전 교황 하티아누스 2세의 서거 이후로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대륙의 안정화에 앞장서야 했고, 내부적으로는 이젠 공석이 되어버린 교황의 자리를 채우는 것에 신경 써야 했던 것이다.
‘조만간 확실하게 결정 나겠죠.’
지금 로셀리아 대신전에서는 교단 전체로 따져도 고작 여섯밖에 되지 않는 추기경들이 한데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심층 회의인 콘클라베(Conclave)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성자와 성녀가 신이 직접 선택한 대리인이라면, 교황은 신을 따르는 신도들 사이에서 선출된 대표에 가까웠기에 이는 꼭 필요한 절차였다.
‘그게 누가 되든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요. 안 그래도 지금 정세에 추기경분들까지 자리를 오래 비워두면, 어떤 사고가 터졌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리에스타가 자신의 작은 쉼터에서 차분하게 흐르는 공기를 만끽하던 도중.
그녀는 돌연 어떤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고.
곧 이성과는 상관없이 본능과 직감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불길함이 사고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윽, 이건, 설마···?’
이미 경험이 있었던 만큼 그녀는 곧바로 그 원인이 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주신으로부터 내려온 계시.
그것은 불시에 찾아온 어떤 깨달음이나 자각(自覺)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그에 그녀가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고 있을 때, 마침 정원 안으로 외부에서 불청객 하나가 날아들었다.
푸드득—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화단 이곳저곳을 오가며 기웃거리는 검은 깃털의 까마귀 한 마리.
녀석은 주변을 잠시 탐색하는가 싶더니, 이내 성녀의 축복까지 받은 덕분에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벌레들을 찾아 하나둘 빠르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진미라도 맛보는 것처럼 연신 새소리로 감탄사를 토해내면서.
“후우···.”
그에 막 계시를 수습하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리에스타가 까마귀를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다시 표정을 풀었다.
사실 저렇게 외부의 조류나 곤충 등이 찾아오는 게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관리의 용이성과 미관을 위해서라면 정원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키는 게 좋겠지만, 그래서야 그저 조금 규모가 큰 모형 정원이 될 뿐이었으니까.
약육강식 또한 주신께서 안배하신 자연의 섭리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이내 깊게 심호흡하며 제 컨디션을 되찾은 그녀가 천천히 그 작은 침입자에게로 다가갔다.
까악— 깍!
푸드드득—
인간이 자기에게 접근하자 움찔하고는 연신 날개를 퍼덕여 달아나려는 까마귀.
하지만 녀석은 그저 몇 차례 날갯짓만 반복할 뿐, 끝내 그녀가 바로 옆에 닿을 때까지 날아오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자, 착하지.”
그에 그녀는 곧 얌전해진 까마귀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는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리 리에스타가 비전투계라 한들 그 격을 한낱 미물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의지만으로 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인이었으니.
‘바깥이라···.’
까마귀를 몇 차례 쓰다듬다가 멈칫한 그녀가 다시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이 녀석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잡은 것도 그저 머릿속이 복잡해졌기에 벌인 변덕일 뿐.
‘외부 차원에서의 침략자···.’
조금 전, 무려 주신께서 직접 경고까지 하신 존재는 이 새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주신은 지금까지 이세계인이 여기 몇이나 왔다 갔어도 따로 언질 하나 주지 않으셨던 분이지 않나.
‘···설마 이번에도 불사왕과 관련이 있는 걸까?’
합리적인 추론이긴 하나 역시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 계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깍— 까악!
푸드득—
리에스타는 자신의 두 손 위에서 퍼덕이는 새를 다시 하늘 높이 날려주고는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일단 지금의 계시에 대해 바로 상담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내.
성자 하인리히와 먼저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서.
***
조금씩, 그러나 멈추지 않고 꾸준히.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여러 개의 몸을 동시에 운용했기 때문인지 체감 시간이 남들보다 더 길었던 그 기간 동안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다.
“라일리 카르테 아제리온 황태녀 전하 만세!”
“허허허! 축하드립니다, 전하. 이제 제대로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군요.”
“어머, 어쩜!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우시옵니다, 전하. 내로라하는 제국의 꽃들조차 전하 앞에서는 생기를 잃어버리는군요.”
가장 먼저, 아제리온 제국의 수도 제론에서 드디어 라일리가 정식으로 황태녀의 직위에 올랐다.
이젠 거의 잊히다시피 한 사이먼 황태자를 확실하게 끌어내리고 정식으로 제국의 후계자로 공인받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 황제의 건강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으니, 아마 몇 년 내로 양위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단순히 5황녀로서 커다란 파벌을 이끌던 때와 황태녀가 된 지금, 라일리가 가지게 된 권한의 크기는 그 차원이 달라졌다.
명실상부 현 이인자이자 차기 일인자로서 좀 더 직접적으로 제국과 황실을 움직여 그 힘을 동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여 년 전, 이세아를 만난 후부터 시작된 그녀의 기나긴 대장정도 슬슬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또한 그런 대륙 정세의 변화는 제국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륙의 동남쪽에 위치한 용병들의 땅, 자유도시 드라칼에서는···.
콰앙—!
“여기 할리라는 양반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 피안개의 스탈론, 한 수 배우러 왔수다! 어디 제대로 한 번 겨뤄 보···.”
“어엉? 뭐야, 또냐?”
“···어?”
“킁! 거, 피안개인지 피조개인지는 모르겠고. 덤빌 거면 빨리 덤벼 보든가.”
이 도시에 단 1초라도 자신이 상남자라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죽는 전염병이라도 퍼진 건지, 할리의 명성에 처음부터 기기는커녕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우며 찾아오는 이들이 끊이질 않았다.
아무리 용병이란 이들이 기본적으로 과격한 데다 강함을 어필하지 못하면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라고 해도 이건 조금 심하다고 느껴질 지경.
‘물론 이 몸과 직접 대면해서까지 그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놈은 아직 본 적이 없지만.’
용병 길드의 최고위층이자 극의의 강자들마저 마주하는 순간 꼬리를 내렸던 게 지금 보이는 할리의 패기였다.
그런데 경지에 오르지도 못한 어중이떠중이가 그걸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자신만만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덩치의 눈이 갈피를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자, 어슬렁어슬렁 다가간 할리가 그 옆에 서서 어깨 위에 척하니 팔뚝을 올렸다.
상대도 결코 작은 덩치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그와 나란히 서자 무서운 형에게 삥 뜯기는 중학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잘 다진 고기가 될 때까지 처맞을래, 아니면 네가 잘 다진 고기를 살래?”
“···제, 제가 사겠습니다.”
“좋은 선택이군! 그럼 네가 생각하는 가장 괜찮은 가게로 안내해라!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허리를 접어버릴 테니 잘 골라야 할 거야? 으하핫!”
사실 진짜 삥 뜯기는 게 맞긴 했지만.
할리는 사내의 등을 퍽퍽 두들기며 그를 앞장세웠다.
물론 개중엔 공포에 돌아버렸는지 눈이 회까닥해서 무작정 덤벼드는 놈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놈들은 사랑을 담은 약간의 물리 치료를 받고 곧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문명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물론 마음씨 착하고 너그러운 할리는 그런 녀석들까지 살뜰히 챙겨서 같이 식사하며 서로 가진 오해를 푸는 자리도 만들어 주었다.
“음! 역시 이 동네 고기도 육질이 썩 훌륭한데! 이거 상당히 의외야?”
“드, 드라칼이 척박한 땅이라 농사를 짓기에 힘들긴 해도 다른 면에선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무역의 중심지라는 게 큰 데다, 이 지역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절벽 염소의 육질이 또 일품이지요. ···가격이 조금 쎄긴 합니다만.”
“그 말대로입니다, 형님! ···그런데 또 고기가 떨어졌군요? 이, 일단 그럼 10인분을 추가로··· 아니, 20··· 죄송합니다, 30인분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 하하···.”
“쯧, 거 흐름 끊기게. 고기가 떨어진다 싶으면 알아서 재깍재깍 시킬 것이지. 눈치가 영 없구만, 저 친구.”
방문과 동시에 도시 전체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
거기에 그 말로만 듣던 유명인 할리의 목격담과 소문 등이 드라칼 사회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가며, 그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용병은 무력을 파는 이들. 복잡한 정치보단 압도적인 힘이 최우선이지. 이런 면에선 또 남부랑 비슷하군.’
결국 이곳 드라칼도 존재 자체가 폭력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할리에게 딱 맞는 곳이라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이곳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흘러가는 정세도 처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이쪽에 굉장히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남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바이포 출신을 주축으로 한 동부 거점 확장도 순조로워. 또 서부의 탈리아 왕국은 주변 왕국들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고 영향력을 넓히는 단계에 들어갔으니···.’
서부에서 시작된 영향력 확대 작업에, 툴크 왕국을 넘어 서부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한 휴버트 상회가 깊이 개입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 휴버트 상회의 시장 잠식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게 바로 북부에서 무한정 전해지는 희귀 금속이었는데, 각국은 불사의 군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력 증강에 도움이 될 만한 그런 소재들을 경쟁적으로 사들이는 우수 고객이었다.
‘사실 그 물건들을 공급하는 주체가 바로 불사의 군대인데 말이야.’
적아를 가리지 않고 오직 이익만을 위해 양 진영 간에 군수품을 거래하는 상황.
이런 걸 소위 ‘어둠의 상인’이라고 하던가.
어쩌다 보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렇게 모든 게 순조로운 상황에서 초 치는 소식이 하나 들려왔으니.
‘주신이 경고할 정도의 이차원 침입자?’
바로 성녀 리에스타에게 전해 들은 주신의 계시였다.
‘···역시, 생각나는 건 한 놈밖에 없는데.’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세계의 근원을 먹어 치우는 괴물.
번천회주.
‘기어코 여기에도 온 건가.’
아마 리에스타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 정보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대비할 시간은커녕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다가 무너져 버렸을지도.
그나마 성녀 정도 되니 계시를 이렇게까지 해석할 수 있었겠지.
놈이 차원을 넘는 메커니즘을 알 수 없으니 대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처럼 출신지 대상의 기억을 읽고 「이계전송진 소환」으로 넘어가는 방식은 아닐 터.
일본에서 부딪쳤을 때 놈의 능력을 생각해 보자면, 공간을 다루는 고유스킬을 극한까지 갈고 닦아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래, 지금 와서 ‘어떻게’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 괴물이 목표로 삼고 난입하려는 곳이 하필 내가 공들여 세팅해 놓은 무대라는 것이었다.
‘이 땅··· 아우테리카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역시,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깥에는 불사왕의 군대와 인류가 서로 전쟁 중이라 알려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 양측 모두 내 수족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남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게 이 세상의 흐름을 조종하는 건 누구보다 쉬운 일이었다.
이 아우테리카를 지배하는 이들 대부분에게 내 입김이 들어가 있으니까.
불사왕과 그 휘하의 불사의 군대, 흡혈왕을 위시한 뱀파이어 연합, 하인리히를 성자로 신봉하는 주신교단, 투왕이자 용병왕인 할리와 수많은 전사들, 하이 엘프 해리스와 엘븐 킹덤, 라일리를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제국의 정예병, 휴버트를 대표로 하는 상인 카르텔 등···.
이미 이 세상 대부분이 내 손아귀에 있었다.
‘아우테리카는—.’
이곳은.
나의 땅이다.
나의 영지다.
‘내 것이다.’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세상이며, 내 꿈을 마음껏 펼칠 무대이며, 소중한 것들을 모아놓은 보물 상자였다.
그럼에도 기어코 이곳에 기어들어 오려 한다면.
‘너는, 이 세상 전체와 싸워야 할 것이다.’
전쟁을 준비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