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60
59회
제 앞에 펼쳐지고 있는 기적을 천진난만하게 감상하던 윤설이 그제야 제 귀에 닿은 온기를 느꼈다.
두근…..두근….두근…..
윤설은 스스로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안면이 있다고는 해도 그는 여전히 낯선 사내임이 분명했다.
아니, 그녀의 입장에선 정혼을 하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고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된 마당이라면 서둘러 물러서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윤설은 생각을 재빨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그 가운데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준의 배려가 참으로 따뜻하다는 것만은 또렷하게 다가왔다.
윤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떨구자 그제야 준이 서둘러 제 손을 뗐다.
“아, 죄송합니다. 불편하셨죠?”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도움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자 기분이 좋아진 준이 싱긋 웃었다.
“저도 처음입니다.”
“네에?”
“아, 제트 스키 보는 거요. 물론 타본 적도 없고요. 좀 촌스럽나요? 뭐, 촌스러운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윤설 씨랑 같다면 저는 다 좋으니까요. 소리는 저렇게 요란하지만 그리 무섭진 않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저랑 한 번 도전해보실래요?”
“예에?”
윤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준이 또다시 싱긋 웃었다.
‘언젠가…… 정말로 그런 날이 오면 좋겠군요. 윤설 씨……’
반나절의 소풍이 금세 끝나버린 후, 모두가 현실로 돌아간 시간……
해인은 윤설에게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연애 담을 풀어놓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윤설은 저도 모르게 준을 떠올렸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새삼스레 피어났다.
어색한 상황에서 대화를 이어가던 일…..
차를 마시며 풍경을 감상하던 일….
그러나 곧 자신의 귀를 가만히 막아주던 그의 손길을 떠올리자 윤설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찌 이러는 걸까? 어찌…. 낯선 이를 생각하는 것일까…. 또 왜 이리 두근거리는 걸까? 설마…. 중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니겠지? 아니 된다. 난 돌아갈 곳이 있거늘….조선으로 돌아가야만 하거늘……’
잊으려 할수록 더욱 생각나는 이치를 도저히 알 수 없던 윤설은 스스로를 꾸짖기에 바빴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준을 향한 그리움이 저절로 솟아나자 기어이 실성을 한 것이라 여겨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말 못할 고민은 유일한 벗인 해인에게조차 발설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그 어떤 것도 드러내지 못한 채 혼자서 속앓이를 하던 이에게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종방연이라고 했다.
해인은 님도 보고 맛있는 저녁도 먹는 시간이라며 한껏 들뜬 얼굴이었다.
행여 윤설이 가길 꺼려할까 봐 감독 얘길 몇 번이나 꺼내기도 했다.
물론 그가 진짜로 전화를 하긴 했었다.
드라마를 만든 모두가 참여하는 자리이긴 했지만 중요한 일을 맡았던 윤설과 해인에겐 꼭 와달라는 말을 전했었다.
그는 어쩌면 서예까지 완벽하게 해낸 윤설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한 건지도 몰랐다.
해인의 부추김을 못 이긴 윤설이 외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씻고 나오자 해인이 자연스레 제 화장품 꾸러미를 내밀었다.
촬영장에 갈 때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후대의 문물이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할 것 같아 일부러 멀리 하곤 했던 윤설이 오늘만은 애써 피하지 않았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입술연지를 바르는 그녀의 두 뺨이 발그레 지고 있었다.
“캬아, 그것 봐. 역시 머리하길 잘했다니까? 빛이 확 나잖냐.”
윤 매니저가 헤어숍에서 나온 준의 어깨를 툭 치자 그가 피식 웃었다.
“형은 또 언제 하셨어요? 제법 빠르신데요? 흐음…. 외모에 신경 쓰는 건 낯간지럽다고 하신 분이 누구셨더라?”
“뭐야? 어쭈, 너 형 놀리면 알지? 응? 네가 요즘 좀 살만한가 보다?”
윤 매니저가 준의 옆구리를 간지럽히자 그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알았어요. 항복, 항복입니다.”
“짜식, 진작 그럴 것이지. 얌마, 보나마나 지금 식당 앞에 기자들 줄섰다. 명색이 남주가 돼서 말이지 지질하게 보여서 되겠냐? 이건 어디까지나 이미지 관리 차원이라고. 유노우? 뭐, 그러면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거지 뭘…..형 연애 사업 좀 도우면 어디 덧나냐?”
“넵, 그럼요. 형, 연애 사업 번창하셔야죠.”
금세 해인을 떠올린 윤 매니저가 배시시 웃는 낯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윤설 씨, 곧 만나요……’
윤 매니저의 예상대로 식당 앞이 기자들로 북적였다.
조연급들의 등장을 꼼꼼히 캐치하던 무리가 남자 주인공이자 현재의 대세를 놓칠 리 없었다.
민준은 늘 하던 대로 기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손을 흔들어 포즈를 취해주었다.
거대한 무리와 거기에서 빚어지는 플래시 세례로 인해 주변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고 여긴 윤 매니저가 적당한 선에서 튀어나와 상황을 마무리시켰다.
준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웹 사이트엔 금세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의 예의바른 모습이 부각되는 한편, 종방연 패션까지 분석되자 조회 수가 급속히 늘어가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남주 님 등장이오!”
누군가가 크게 외치자 식당 안이 금세 환호성과 박수로 일렁였다.
준이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스태프들이 그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던 그가 자연스레 한 사람만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식당의 구석에서 해인과 함께 있던 그녀를 발견해냈다.
준의 시선이 윤설에게 닿자마자 그가 미소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잘 웃는 그에게 미소가 유별난 건 아니었기에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길 이는 없었다.
소란한 분위기 속에서 설레는 시선들이 서로에게 닿았다.
그리고 윤설이 옅은 미소를 그에게 보내주고 있었다.
‘유…윤설 씨……드디어 제 마음을 받아주시는 건가요….?’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 희미하게나마 예스로 다가오는 순간, 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상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윤설로부터 확답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 느낌이라면 좋은 예감일 것 같았다.
그의 마음처럼 즐거운 종방연이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몇 몇은 스케줄을 핑계로 일어섰고 남은 이들은 오랜만에 회포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준의 시선이 구석진 곳에 있던 윤설과 해인에게로 향했다.
이미 음식 팀과 안면을 텄던 윤 매니저는 그들의 테이블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해인의 곁에 앉은 건 물론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준이 탄식을 내뱉었다.
‘형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네.’
준의 마음 역시 이미 윤설의 곁에 있었다.
오늘따라 별다른 스케줄이 없다는 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제 서서히 마무리하고 일어선다면 남은 이들에게도 덜 미안할 뿐 아니라 윤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이 흐뭇한 얼굴로 다시금 윤설을 바라보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난감한 표정 사이로 누군가가 서둘러 다가왔다.
윤 매니저였다.
그가 준의 귓가에 무언가를 알렸다.
“해인이 알바 때문에 지금 가야 한대. 윤설 씨도…”
준이 서둘러 일어서자 윤 매니저가 스태프들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늦은 시간에 스케줄이 있다는 핑계였다.
대세가 바쁜 건 상식이어서 모두가 흔쾌히 그를 보내주었다.
윤설과 해인은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상황을 인지한 준의 마음이 다급했다.
윤 매니저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던 그가 먼발치에서 윤설을 발견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가 저절로 흘러나온 찰나, 낯선 여자의 음성이 그를 붙잡았다.
“민준….씨…….?”
준의 시선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곳으로 향했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지만 상대를 발견한 그의 얼굴 위로 당황의 기색이 역력했다.
곁에 있던 윤 매니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를 부른 사람은 뜻밖에도 심이지였다.
“아, 안녕하세요?”
누구나에게 그렇듯 준이 인사한 후에 지나치려했다.
그녀와 마주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안면이 있기에 이 정도만 해도 양호했다.
하지만 이지는 갈 길을 가려는 준을 놓아주지 않았다.
“여기 맛있다고 하던데…. 다녀가시는 길인가 봐요?”
“종방연이 있었습니다. 그럼, 이만.”
이지의 시선이 준이 바라보는 곳을 향했다.
먼발치에 길게 머리를 땋은 여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서로를 바라보는 이 느낌은…..?’
이지가 주먹을 꼬옥 쥐더니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준이 씨, 바쁘지 않다면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이제껏 없던 대담함에 준은 물론 윤 매니저가 당황하고 말았다.
그가 어색한 상황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이지 씨, 준이는 지금 스케줄이 바빠서 가야합니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말했는데…. 서로 엮이면 좋을 리 없다는 거 말이죠. 아직도 기자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과감한 건가요? 무모한 건가요?”
“죄송합니다만, 저는… 매니저님께는 볼일이 없습니다.”
“뭐, 뭐요?”
평소와 조금은 다른 이지의 모습에 준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다음에 시간을 만들어보죠. 지금은 곤란합니다.”
이지를 향해 목례한 준이 막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5년 전, 에서 당신에게 도움 받았던 여고생을 기억하시나요? 바로 저에요.”
조금 전까지 윤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시선이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스르륵 이지에게 닿았다.
금세 달려가려던 발걸음은 더 이상 움직일 힘을 잃은 것만 같았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이의 존재는 특별하게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배우 심이지라면 그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준은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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