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87
86회
영은이 돌아간 후, 촬영이 재개되었다.
귀여운 강아지들과 함께 사랑스런 커플의 모습을 담아내는 콘셉트였다.
최상의 장면을 담아내려는 제작진의 아이디어를 인정했고 이미 동의했지만 현장으로 들어서는 이지는 미간을 찡그리고 말았다.
태주가 강아지들을 쓰다듬다가 이지를 발견했다.
“어서 와. 이 녀석들 정말 귀엽지 않아?”
“뭐….글쎄…..”
감독의 외침에 소란했던 주변이 일순간 조용해지더니 수십 개의 시선들이 오직 두 사람에게만 집중되었다.
이지의 남편으로 변신한 태주는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그녀를 리드했고 그의 아내가 된 이지는 웃으며 그를 따랐다.
강아지들을 발견한 두 사람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태주가 강아지들을 쓰다듬더니 곧 그녀의 품에 한 마리를 안겼다.
손사래를 치다가 하는 수 없이 받아든 이지가 몸서리를 쳤다.
그런 모습을 보고 태주가 웃었고 둘의 알콩달콩한 모습들은 신혼부부로서 더없이 완벽했다.
“컷! 아주 좋습니다. 수고들 하셨어요!”
촬영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이지가 제 품의 강아지를 재빨리 태주에게 넘겼다.
그가 싱긋 웃었다.
“정말 무서웠던 거야?”
“당연하지. 연기로 알았어?”
“응.”
태주가 호탕하게 웃자 이지가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놀리지 마.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
“예쁘다.”
“뭐?”
“무서워하는 네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단 뜻이야. 하면서 의외의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네? 하하…”
머쓱해진 이지가 입을 열었다.
“…발은… 좀 괜찮아?”
“내 걱정을 다 해주고 황송한데? 그 덕분인지 다 나았어. 아깝다. 아프다고 엄살 부리면서 데이트 좀 하고 싶었는데……훗…..”
“농담이라 여길게. 그 이상은 부담이니까.”
할 말을 마친 이지가 일어서려고 하자 태주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녀의 뺨으로 그의 손이 천천히 다가왔다.
다정한 온기가 잠시 스쳐가는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강아지 털이 묻었네? 어? 여기에도……”
뺨에서 털을 떼어낸 태주의 손이 이번엔 이지의 블라우스 칼라에 닿았다.
그녀가 순식간에 움찔하고 말았다.
“고, 고마워.”
이지는 서둘러 일어서더니 담담히 촬영장을 빠져나갔고 태주는 그녀의 뒷모습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밴으로 돌아가는 이지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느낌은 뭐지?’
이상했다.
이미 드라마에서 태주와 키스신이 있었기에 초 근접 거리에서 마주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심지어 포옹 신도 제법 많았었다.
하지만 이지는 제 뺨을 향해 그리고 옷깃을 향해 뻗어오는 그의 손길에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그래, 민준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뿐이야. 그저 그에게 화가 나서 주문처럼 외쳐본 거라고. 난…. 아직 준이 씨를 잊지 못해. 미워한다는 건 좋아한다는 증거잖아? 그래, 일시적인 것뿐이야.’
“넵, 대표님, 그럼요. 준이 자는 거 보고 나오는 길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드라마 준비는 잘 진행 중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넵, 들어가십시오.”
두 손으로 공손히 핸드폰을 든 윤 매니저가 굽실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이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후, 그가 긴 한숨을 내쉬자 준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형,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저로선 너무 고맙지만….. 이래도 되는지……”
“짜식, 원주 가기 전 마지막 날인데 윤설 씨 얼굴은 보고 가야지. 하아…. 너랑 같은 운명인 나는 또 어쩔…. 암튼 이래저래 멍석 함 깔았으니 너나 나나 조심해서 데이트 좀 하자. 콜?”
준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태운 승용차가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가자 담벼락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량 한 대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의료 로맨스 촬영을 위해 장소 제공을 발 벗고 나선 병원이 있었다.
강원도 원주의 한 종합병원이었다.
지방 의료원을 홍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였으나 작가가 구상한 병원의 모습과도 닮아있어 성사될 수 있었다.
스태프의 입장에서도 서울의 종합병원을 섭외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측면이 많았다.
단지 사람도 장비도 모두 옮겨가야 하는 건 약간의 부담이었다.
연인을 두고 떠나야 하는 이에게 안타까움이 없다면 거짓이었다.
준은 윤설과 더욱 행복하기로 약속했고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역시나 쉽지만은 않았다.
우선 대낮에 밖에서의 만남은 꿈도 못 꿨다.
새로운 곳들에 데려가고 싶고 신기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설 뿐, 현실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이 마주할 수 있는 건, 해가 진 이후였고 장소도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을 윤 매니저가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그 역시 준과 같이 움직이는 처지였기에 답답함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 윤 매니저가 제안한 것은 바로 심야 영화였다.
평일의 늦은 시각을 공략하면 괜찮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준은 야심한 밤에 윤설을 불러내는 것이 미안했지만 한편으론 그녀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어? 해인이 전화다. 여보세요? 어, 도착했어? 그래, 맞아. 7관. 응, 그 앞에 딱 있어. 후딱 올라갈게. 참, 해인아, 사람 별로 없지? 오케이.”
통화를 마친 윤 매니저가 비장한 표정으로 준을 응시했다.
“드디어 행동 개시다. 어디 보자. 음…. 변장 이상 무. 케케…”
차 안에서 기다리던 남자 둘이 문을 열고는 주변을 살폈다.
평일 야간의 극장 주차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똑같은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똑같은 안경을 쓴 것도 모자라 똑같은 마스크에 점퍼를 입은 남자 둘이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윤 매니저가 타인의 이목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변장술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들여다보던 그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헐, 우리 좀 이상해 보인다? 아 놔, 이상하게 보는 건 아니겠지? 에라, 모르겠다. 그게 더 나은 건가?”
준이 웃음을 참지 못하자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따라 웃었다.
상영관 앞, 각자의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던 윤설과 해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윤 매니저가 손을 흔들자 해인이 비로소 그를 알아보았다.
이번엔 준이 윤설을 향해 손짓하자 어리둥절해 하던 그녀가 싱긋 웃었다.
“손님, 표 확인하겠습니다.”
모바일 표를 내민 윤 매니저가 직원에게 말했다.
“네 명이요. 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두근….두근….두근…..
“네, 세분 먼저 들어가세요. 연인 석은 뒤쪽입니다.”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직원은 준을 알아보지 못했고 세 사람은 무사히 극장 안으로 입장했다.
해인에게 자리를 안내한 준이 윤설의 손을 꼬옥 잡고는 제 곁에 조심히 앉혔다.
고마움을 느낀 그녀가 미소 짓자 준 역시 싱긋 웃었다.
윤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인을 통해 미리 이야길 들었지만 그녀가 온 곳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장소보다도 훨씬 낯설었다.
제 앞에 우뚝 서있는 커다랗고 네모난 것은 압도적이었고 촘촘히 깔려있는 의자들의 배열은 특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님과 함께 나란히 앉은 자리는 참으로 요상했다.
붉은 비단으로 둘러진 의자는 매우 진귀해 보였고 아름다웠다.
높다란 등받이도 양 옆을 가린 것도 모두 처음 보아 신기했다.
분명 해인이 옆에 앉았건만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준의 시선에 이리저리 둘러보는 윤설이 담겼다.
이유를 아는 이가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준이 사랑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윤설이 미소 띤 얼굴로 응시하자 그가 속삭였다.
“여긴 극장이라고 하는 곳이에요. 저 앞의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죠. 아, 우리 드라마 생각나죠? 비슷해요. 굉장히 커다란 화면으로 본다는 걸 빼면요.”
어느덧 안으로 들어온 윤 매니저가 두 사람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준이 그것을 받아들며 싱긋 웃었다.
낯선 것들은 호기심어린 윤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제 단단한 통에 든 투명한 것은 마실 거란 걸 알았다.
하지만 콩같이 작으면서 울퉁불퉁한 것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준이 자그마한 것을 하나 집어 윤설의 입가로 가져갔다.
“드셔보세요.”
윤설이 동그래진 눈으로 그것을 집으려고 하자 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먹여드리고 싶은데……”
“예에?”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입을 벌렸다.
팝콘을 먹여주는 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져갔다.
그리고 곧 새로운 것을 맛본 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설렘을 느낀 연인들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윤설은 광고가 흘러나올 때부터 화면과 소리에 움찔했지만 서서히 적응해갔다.
귀를 막고 있던 손이 어느 순간 스르륵 내려오자 그녀를 살피던 준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윤설의 시선은 커다란 스크린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면 장면을 집중해서 보던 그녀는 액션 신에서 몸을 떨었고 감동적인 장면에선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제대로 빠져든 그녀와 달리 준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를 고른 건 바로 그였다.
평소 보고 싶던 것이었고 윤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이유였다.
특히 명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이기에 배우로서 공부가 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열심히 볼 명분은 분명했지만 스크린을 벗어난 시선은 자꾸만 제 곁의 연인에게로 닿기에 바빴다.
‘너무나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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