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193
〈 빌어먹을 환생 194화 〉 빛의 샘
ㅡ촤악! 세르지오의 손이 둘로 갈라졌다. 피는 흐르지 않았고, 갈라진 손이 즉시 달라붙었다.
고통은 없었다. 하지만 세르지오는 가슴이 대못으로 후벼 파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방금 크리스티나가 내뱉던 말. 세르지오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네가…… 네가 감히!”
세르지오의 두 눈이 지독한 살의로 빛났다.
그는 용사가 타락했다는 것보다, 크리스티나가 성녀를 부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을 부정하는 일이다. 사람이,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꼴이란 말이다.
“비켜라!”
세르지오는 유진을 노려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당연히 유진은 비켜설 생각이 없었다. 등 뒤의 크리스티나가 움찔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물러서지 않고, 가쁜 호흡을 골라가며 신성마법을 쓰려고 했다.
유진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성검을 들어 올렸다. 툭. 그는 가볍게 손을 뒤로 밀었고, 자그마한 힘이 크리스티나의 몸을 뒤로 떠밀었다.
“네 몸이나 지키고 있어.”
“하지만…… 하지만 유진 님……!”
크리스티나는 당황하며 유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든 유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건 학습 된 두려움의 일환이었다. 유진에게 상관없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크리스티나는 성녀가 아니게 된 자신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되어버린 자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직면하기 괴로웠다.
그래서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자신이 무가치하지 않고, 지금 유진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지 마.”
“……아…….”
“거기서 보기나 해.”
크리스티나는 아릿한 가슴을 움켜쥐며 유진의 등을 보았다. 그 등은 세르지오가 일으키는 빛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았다. 그러나 저 거대하고 찬란한 빛은 유진을 넘어서지 못했다. 역광에 크게 번지는 그림자를 보며 크리스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유진이 일으킨 불꽃이 빛을 침식했다. ㅡ꽈아앙! 걷어찬 지면이 박살 나고, 유진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머지않은 거리에 서 있던 세르지오는 괴성을 지르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전진을 가로막을 생각이었지만 실패했다. 굉음과 함께 세르지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세르지오는 부릅뜬 눈으로 유진을 노려보며 왼손을 뻗었다. 충돌에 박살 났던 몸은 이미 재생 중이었다. 촤라락! 뼈가 분쇄되어 흐느적거리는 왼팔에서 붉은 천이 풀려나갔다. 그렇게 쏘아진 천이 성검을 휘감았다.
“빛이여!”
세르지오가 고함을 질렀다. 그와 함께 비행하던 천사들이 바람에 호응하며 양손을 뻗었다. 찬란한 빛이 천과 연결되고, 성검에 두른 불꽃이 천에 억눌려갔다.
[유진 님! 워, 월광검을 꺼내세요!]망토 안의 메르가 기겁하며 유진에게 외쳤다. 그녀는 저 천이 드높은 봉마력을 가진 아티펙트이며, 지금 세르지오가 펼친 신성마법이 강력한 봉인계열의 신성마법임을 알았다.
세르지오의 봉인이 아무리 강력한들, 월광검이라면 봉인 통째로 부숴버릴 수 있다. 유진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알면서 쓰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무식하다 욕을 먹을 것이 뻔했지만, 유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 싸움에서는 성검만 쓴다.
그렇게 결심했다. 머나먼 뒤편에서 지켜보던 크리스티나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토록 강렬하던 불꽃은 칭칭 감긴 천을 넘어서지 못했다. 세르지오는 불꽃이 봉(封)해졌음을 확인하고 유진에게 뛰어들었다.
오른팔의 성흔은 이미 피에 흠뻑 젖었다. 배어 나오는 피는 이제는 방울 져 떨어지는 수준을 넘어 줄줄 흐르고 있다. 세르지오는 피범벅의 손을 움켜쥐었다.
화악! 그의 손에서 터져 나온 빛이 수백 개의 검이 되어 유진을 에워쌌다.
[유진 님!]메르가 비명을 질렀다. 유진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빠져나갈 틈은 없었다. 성검은 천에 휘감겼고, 불꽃은 봉인되었다.
하지만 유진은 불꽃이 꺼지지 않았음을 느꼈다. 환염식이 만들어낸 검강은 사그라지지 않고 천의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다. 유진은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집중’했다.
수백 개의 성검이 유진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세르지오는 섣불리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다. 천사들이 입을 열어 찬송가를 불렀다. 지면과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손이 나타났다. 그렇게 나타난 4개의 손이 쇄도하는 검을 따르며 유진을 감싸 쥐었다.
빠직.
그 소리는 아주 작았다. 하지만 세르지오는 그 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들려서는 안 될 소리. 뒤따르는 강렬한 예감. 전신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불길한 공포. 예기치 않게 도달한 사선(死線)이 세르지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이대로 나아가면 죽는다.’
세르지오는 그 예감을 묵살하지 않았다. 급히 걸음을 물렸을 때.
번개가 사방으로 폭사했다. 그 사이사이에 불씨가 나부꼈다. 세르지오는 크게 뜬 눈으로 빛과 불꽃의 저편을 보았다.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봉인력을 가진 천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에 억눌려 있던 불꽃의 색채는 아까보다 훨씬 짙고 불길했다.
유진에게 쇄도하는 수백 개의 검들이 불꽃에 포착되었다. 불꽃이 빛을 집어삼켰다. 뒤따르던 4개의 손. 활짝 펼쳐 유진이 서 있는 공간을 통째로 붙잡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불꽃이 터지고 손이 흩어졌다.
꽉 다문 입에서 핏줄기가 흘렀다. 불꽃을 억누르던 봉인을 역으로 이용해 검강을 구성하는 마나를 응축했다. 그 위에 검강을 한 번 더 중첩했다.
3중첩의 공검. 더욱 늘어난 흑점이 점점 번지고 있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강한 출력에 성검을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유진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쥐며 성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아……!”
크리스티나는 멍한 눈으로 성검을 보았다.
불꽃을 정면에서 보고 있던 세르지오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성검을…… 성검을 어디까지 모욕할 셈인가……!”
저 불꽃을 보라. 빛의 화신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불길한 빛이다. 세르지오가 보기에 저 불꽃은 끔찍하고 추악했다. 빛과 성검이 가져야 할 따스함과 찬란함이 모조리 결여되어 있지 않은가.
세르지오는 덜덜 몸을 떨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날개를 펼친 천사들이 세르지오의 뒤에 섰다.
ㅡ화아악! 피범벅의 오른팔에서 빛줄기가 엮이더니, 거대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광이 찬란한 화살을 만들었다. 신성마법 중에서도 최상위의 위력을 자랑하는 빛의 활. 저 활에서 쏘아내는 빛은 마법결계와 오러실드를 무시하고 존재를 관통해 버린다.
성검을 들고 선 유진과, 뒤편의 크리스티나를 보았다. 이대로 화살을 쏴버리면 크리스티나까지 휘말릴 것이다. ㅡ도망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세르지오는 번쩍이는 눈으로 크리스티나를 노려보며 외쳤다.
“정화되어라!”
콰르르르!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빛이 일점에 모였다.
크리스티나는 그 거대한 힘을 느꼈다. 세르지오는 크리스티나가 겁에 질려 도망칠 것을 예상했지만, 크리스티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기겁하며 유진에게 달려 나갔다. 저 포악한 공격에서 유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본 순간, 세르지오는 미칠 것만 같은 분노를 느끼며 화살을 쏘았다.
뒤편에서 크리스티나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기는 늦었다. 사실 꼭 말로 전할 필요는 없었다.
쇄도하는 화살. 두 눈을 불태우는 것만 같은 빛. 유진은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머리 위에 든 성검을 내리찍었다.
3중첩의 공검. 점점 번져가던 흑점이 일제히 폭발했다. 그 순간 검강을 구성하던 불꽃이 완전하게 검은색에 침식되었다.
화살이 분쇄되었다. 빛은 파편을 남기지 못하고 소멸당했다. 역광이 세르지오를 덮쳤다. 천사들이 날개를 뻗어 세르지오를 감쌌다. 그 날개마저 불탔다. 3명의 천사들이 차례대로 소멸했다.
새카만 선이 공간을 그었다.
크리스티나는 더 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순간……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빛이 이쪽을 덮쳐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밤이 되었다.
그 한복판에 유진이 서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지금 벌어진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꿀꺽 침을 삼켰다.
이해하지 못한 것은 세르지오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에…… 휩쓸렸다. 몸의 절반이 소멸했다. 간신히 상반신만이 남았다. 그조차도 성흔의 기적이었다. 성흔이 내뿜는 빛이 세르지오의 오른팔과 몸의 반절을 가호하고 있었다.
“……크륵…….”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고 숨을 쉬니 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르지오는 가까스로 고개만 들어 앞을 보았다.
상처 하나 없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홀린 눈동자는 유진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르지오는 이를 악물었다.
저 얼굴.
신실한 아니스 님과 똑같은 얼굴로, 감히.
빛에 휘감긴 오른팔을 보았다.
성흔이 발하는 빛은 저 어둠을 밝히기에는 너무나도 작았다…….
빛을 내지 않는 성검을 보았다.
그 모든 것에 절망을 느꼈다.
동시에 강렬한 사명감을 느꼈다.
성녀후보의 의식은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았다. 애당초 ‘저것’은 더 이상 후보라고 할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저만한 적성과 일체감과 완성도를 가진 성녀후보를 또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성품에 크나큰 결함이 있지 않은가?
기적과 같은…… 존재.
크리스티나가 처음 탄생했을 때, 세르지오는 빛이 기적을 내리셨노라 확신했다. 섣부른 확신이었다. 용사가 스스로 타락했듯, 성녀후보도 스스로 타락해 버렸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할 수밖에. 타락한 용사를 죽이고, 성검을 회수한다. 타락한 성녀후보를 폐기한다. 그를 이루면, 빛은 반드시 다시 기적을 내려주시리라.
‘……정화해야 한다.’
저 악마들을 죽이지 못하고 세상에 풀어놓는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세르지오는 그 확신에 일말의 의심을 갖지 않았다.
‘……성령이여…….’
세르지오는 삐걱거리는 오른팔을 움직여 제 가슴에 얹었다.
‘제 영(靈)과 육(肉)에 깃드소서.’
피범벅의 손가락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꿈틀대는 성흔이 손가락을 타고서 세르지오의 가슴으로 옮겨갔다. 이건, 최후의 기적이다. 성흔으로도 대가를 대신할 수가 없다. 오히려 존재의 모든 것을 성흔에게 바치어야만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다.
그 결과 자아 없이 빛을 밝히는 횃불이 되겠지만, 세르지오는 기쁜 마음으로 이 순교를 받아들였다.
ㅡ어둠 속에서 빛이 피어났다.
자그마한 빛이 점점 크기를 키웠다. 세르지오의 몸 전체에 성흔이 번져갔다. 성흔이 전신을 뒤덮었을 때. 육체가 빛으로 화했다. 그 모습은 마치 빛의 화신처럼 보였다.
빛줄기가 어둠을 관통했다.
유진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고통을 느꼈다. 직전에 몸을 틀었다고 생각했는데, 빛에 휩쓸린 왼팔이 너덜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가로트의 반지가 가호하지 않았다면 왼팔이 통째로 뜯겨나가거나 소멸당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유진은 혀를 차며 흑암의 망토를 몸에 둘렀다. 왼팔을 휩쓸었던 빛. 세르지오는 인간의 형태를 한 발광체가 되어, 하늘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그 존재만으로 하늘은 밤이 아닌 것처럼 밝았다.
“……보아라.”
세르지오는 지상에 선 유진과 크리스티나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전능한 빛이다. 모든 세상을 밝히는 신의 힘이다. 너희 타락한 악마들은, 절대로 이 빛을 더럽힐 수 없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유진은 세르지오가 내뿜는 빛을 가늠해보았다.
3중첩.
일검에 소멸시킬 수 있나? 성흔의 가호를 관통하기 충분한가?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저 썩을 기적은 이치를 벗어나도 너무 벗어나 있었다.
똑같이 이치를 벗어난 월광검을 꺼낸다면.
‘하멜.’
……월광검을 써버리면 의미가 없다.
마법을 쓰지 않고, 다른 무기를 쓰지 않고, 성검만을 고집하는 것은.
진혼(鎭魂)이었다.
‘당신은 고집이 너무 셉니다. 왜 굳이 그렇게 싸우는 겁니까?’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너랑 달리 구분은 해.”
유진은 피식 웃으며 너덜거리는 왼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지금은 이렇게 해야 돼.”
세르지오의 손이 그랬던 것처럼, 피범벅의 손가락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유진은 신앙이나 빛에 기도하고 의존하며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바쳐 불꽃을 일으켰다.
ㅡ두근.
이그니션이 코어를 폭주시켰다. 유진은 날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마나를 통제했다.
미쳐 날뛰던 마나가 유진의 조율을 떠나 6번째의 별을 만들었다. 유진은 전신이 오싹거리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백염식의 6성. 그로 인한 변화를 느긋이 관조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급격하게 불어난 마나가 유진의 의지에 따라 성검에 집중되었다.
‘뭐지?’
공기의 무게가 달라진 것만 같았다. 지금 세르지오는 빛 그 자체가 되어 하늘을 밝히고 있었으나,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착각이다. 그럴 리가 없다. 세르지오는 제 몸에 깃든 성령의 전능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빛이 아래로 떨어졌다. 눈부신 하늘이 통째로 주저앉는 것만 같았다. 유진은 그 경이적인 광경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빛이 저만큼이나 환한데, 유진의 눈은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보았다. 눈으로 쫒을 수 없을 만큼 빠르던 저 빛이 지금은 아주 잘 보였다.
오히려 조금 느리게 보였다.
백염식의 6성 단계에서 펼친 이그니션은 유진에게 아득한 시야를 비추었다.
“……하.”
유진은 마른 웃음을 토하며 오른팔을 들었다.
“반갑네.”
낯설지 않았다.
검푸른 불꽃에 휘감긴 성검이 하늘을 베었다.
가공할 힘이 세르지오의 의식을 흔들었다. 몸은 박살 나지 않았다. 뒤로 날아가지도 않았다. 이만큼이나 거대한 힘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참격은 오직 ‘빛’만을 지워버렸다.
그렇게 세르지오의 몸만이 하늘에 덩그러니 남았다. 그는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유진이 땅을 박차는 것은 보았다. 빠르게 다가오는 안광이 세르지오에게 거대한 공포를 전해주었다. 그는 뒤늦게 입을 벌려 비명을 지르고, 유진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격렬한 불꽃이 세르지오의 뒤를 가로막고 있었다. 세르지오가 등진 하늘에는 더 이상 태양도 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유진이 일으킨 불꽃뿐이었다.
유진은 무덤덤한 얼굴로 성검을 들었다.
칼날에 불꽃은 없었다. 지금 유진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름답고,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예식용 검이었다. 그뿐이었다.
유진은 빛나지 않는 ‘검’으로 세르지오의 가슴을 꿰뚫었다.
푸욱.
심장이 관통당했다. 세르지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입을 쩍 벌리고서 가슴을 꿰뚫은 성검을 내려다보았다.
관통당한 심장이 박동하고 있다.
세르지오는 그를 깨닫고서 얼굴 한복판에 미소를 지었다. 죽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다가온 것이 역으로 기회가 되었다.
세르지오는 활짝 벌린 양팔을 유진에게 뻗었다. 그렇게 다시금 빛을 일으켜, 유진을 통째로 정화하려고 했다.
자그마한 빛이 일어났다.
ㅡ쩌적.
그 빛은 세르지오가 일으킨 빛이 아니었다. 심장을 꿰뚫고 있는 검이 발하는 빛이었다.
“아……!”
세르지오의 급히 성흔을 의식했지만, 성흔은 이전과 같은 빛을 일으켜주지 않았다.
성검의 빛이 점점 강해졌다. 그럴수록 세르지오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럴 리가 없었다. 왜 성흔이? 왜, 성검이, 저 악마의 손에서…… 저토록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한단 말인가?
“비, 빛이…….”
더듬거리며 이어지는 말. 들어주지 않았다. 유진은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 성검을 비틀며 뽑았다. 세르지오는 비틀비틀 물러서며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유진을 보다가,
아래를 보았다.
주저앉은 크리스티나가 크게 뜬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럴…….”
뻔한 말.
휘두른 검이 세르지오의 목을 베었다. 그 머리가, 빛에 삼켜졌다. 번져나간 빛이 세르지오의 몸까지 삼켰다.
ㅡ퍼어엉!
마치 축제의 불꽃놀이처럼.
세르지오의 몸이 무수한 불씨를 그리며 폭발했다. 유진은 흩어지며 쏟아지는 불씨를 등지고서 아래로 떨어졌다.
유진은 흩어지는 빛을 뒤로하고 천천히 크리스티나의 곁으로 떨어졌다.
다시 밤이 되었다.
크리스티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것들이ㅡ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크리스티나에게는 하나의 꿈처럼 느껴졌다.
결코 악몽은 아니다.
“말했지?”
유진은 가슴에 얹었던 손을 떼며 크리스티나에게 다가왔다.
크리스티나는 밤하늘에서 눈을 떼어 유진을 돌아보았다.
“구하러 왔다고.”
유진은 보란 듯이 히죽 웃어주었다. 몸이 멀쩡하지는 않았다. 왼팔은 너덜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심장도 아프다.
그래도 몸은 움직였다.
“……아…….”
크리스티나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하늘은 어둡다. 밤이니까, 어두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지금 하늘이 참 밝다고 느꼈다.
“……아아…….”
크리스티나는 흐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마주 웃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우는 얼굴 외에 다른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항상 써왔던 가면들이 지금은 하나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크리스티나는 그냥 울었다. 감추지 않고, 솟구치는 감정대로 눈물을 쏟았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부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어릴 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울었다.
울어도 너무 울길래 유진은 슬며시 크리스티나에게 손을 뻗었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난감한 일이라 대충 눈물이라도 닦아주려 했던 것이지만, 앙앙거리며 울던 크리스티나가 대뜸 유진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쏟았다.
“……음…….”
몸이 아프다…….
아무리 짧게 끝냈다지만 이그니션의 반동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크리스티나가 울면서 얼굴을 가슴에 비빌 때마다, 유진은 근육이 찢어지고 늑골이 부서지고 심장이 쑤시는 것만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렇게나 서럽게 우는 것을 밀쳐낼 수는 없지 않은가.
“……뿌득…….”
유진은 신음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크리스티나의 눈물을 받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