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ucky Encounter From the Game Turned Into Reality RAW novel - Chapter 111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111화
28. 새로운 바람(3)
라인하츠 왕국의 칼리츠 국왕에게는 4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있다.
그중 다이애나 공주는 현 국왕의 4번째 자식이자, 첫 번째 딸로 제2위의 왕위 계승서열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원래는 왕위 계승서열 3위였으나, 2왕자가 아르시아에게 뚝배기를 따이는 바람에 아무 노력 없이 2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하지만 라인하츠 왕국의 차기 국왕은 사실상 왕태자로 내정된 상태.
때문에 그녀가 가진 왕위 계승서열은 몸값을 높이기 위한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강대국인 라인하츠 왕국의 왕위 계승서열 2위의 아름다운 공주.’
친선 용도로 타국에 팔아먹기 아주 멋진 칭호 아닌가.
론델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한들 봉건제 국가에서 왕족들에게 연애결혼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핏줄보다 강력한 동맹은 없는 법, 때문에 정치 상황에 따른 배우자 선택이 당연했다.
왕태자도 동맹국인 조르디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고, 유부남 주제에 뻔뻔하게 아르시아에게 찝쩍댔던 루크 2왕자도 어머니의 가문인 애너하임 공작가의 사촌과 결혼했다.
그나마 현 국왕이 자식들을 사랑해서 다행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전 국왕은 왕자를 동맹국 여왕의 남첩으로 보내 버린 적도 있었다.
고로 결혼 적령기인 다이애나 공주의 미래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만나기 꺼려지는데…….”
그런 인물이 연도 없는 내 영주성에 찾아왔으니 찜찜할 수밖에 없다.
얼굴 몇 번 마주한 게 전부인 공주와 엮여봤자 이상한 소문만 날 뿐이니까.
“상대가 그 다이애나 공주 전하인데요?”
이런 내 행동에 이브릴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이 나라에서 아름다운 다이애나 공주를 상대로 만나기 꺼려진다고 표현할 인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녀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공주님을 문전 박대할 수도 없으니, 만나보긴 해야겠네요. 이브릴 양이 이해해 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저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아르시아가 휴게실에서 영화 보고 있던데. 흥미 있으시면 찾아가 보세요.”
“그럼 그래야겠네요. 헤헤.”
뜻하지 않은 방문에 이브릴과의 시간이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그녀가 물러가고, 응접실이 한차례 정리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옅은 백금발에 코발트블루의 눈동자를 가진 다이애나 공주가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응접실에 들어섰다.
“라인하츠 왕국의 보석 다이애나 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예고 없는 방문에도 이렇게 환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로렌스 후작님.”
툭 건드리면 어디 하나 부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여도 터프하면서 당당한 게 특징인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내게 보이는 모습은 소문으로 듣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극히 저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앤 라인하츠 공주 / 고위 행정관]종족: 인간
나이: 20
소속: 라인하츠 왕국 왕실 제1 공주
재능: 행정력(상), 정치력(중), 학습력(중), 지휘력(하), 신성력(하)
특성: 정의로움, 자애
관계: 희망 / 중립
상태: 관찰 / 긴장
만경으로 표기되는 그녀의 정보.
능력치는 준수하지만 왕족치고 특별하다고 볼 수 없었고, 현재 나를 향한 감정도 굉장히 복잡했다.
하지만 그녀의 특성에서 정의로움과 자애란 항목을 보니, 다이애나 공주가 제대로 된 인품을 가진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공주에게 자리를 안내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지키고 있는 호위기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브릴 바넷 양이 성지에서 선물로 사 온 찻잎입니다. 어떠하신지요?”
“향이 특이하네요. 상쾌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마음에 듭니다.”
“성직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차랍니다. 비싼 건 아니지만, 저도 마음에 들더군요.”
“이브릴 양과 사이가 좋으시군요?”
“그럼요. 제 계획에 자신의 인생을 배팅한 소녀 아닙니까? 그녀가 성녀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끝까지 챙겨줄 생각입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지만 보겉으론 보이지 않는 탐색전이 나와 그녀 사이에서 오갔다.
하지만 급한 건 내가 아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공주의 신분으로 내 성에 직접 찾아온 그녀지.
“실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뜸 부탁부터 거론하는 다이애나 공주.
나는 무작정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저와 혼인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푸웁!”
그런데 부탁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요구에 나는 입안에 있던 차를 뿜어야 했다.
“켁! 켁켁!”
사례가 걸린 나는 한참이나 기침을 해야 했고, 한참 뒤에야 진정한 나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거 예상치 못한 부탁이군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미하엘 오라버니께서 저를 크로이센 제국의 황태자에게 보내려 합니다.”
뜬금없이 청혼이라니.
너무 황당해서 순간적으로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했다.
크로이센 제국은 라인하츠 왕국에게 있어서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적대 국가였으니 말이다.
그런 뒤숭숭한 곳으로 여동생을 보내려 한다니.
왕태자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꽤나 냉정하지 않은가.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까?”
“아뇨, 이제 제한 서한을 보내려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오라버니는 진심이세요.”
크로이센 제국이 적대국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은 좋게 보려야 좋게 볼 수가 없는 족속들이다.
나는 자신 있게 이 세상에서 가장 권위의식이 높은 민족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크로이센 제국을 꼽을 것이다.
아무리 봉건제 국가여도 어느 정도 평민들에게 자유를 보장하는 성향이 주류를 이루는 세계적인 분위기와 달리, 크로이센 제국의 평민은 그저 귀족을 위해 존재하는 장기말 겸 일벌레에 불과했다.
심지어 많은 국가들이 폐지한 노예제도가 아직도 합법인 나라이며, 여성은 황위, 작위를 가질 수 없고, 행정관도 기사도 될 수 없다.
심지어 지역에 따라 초야권도 존재한다고 하니, 그녀가 왕태자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왕태자 전하께서 갑자기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아무래도 크로이센 제국과 친선을 도모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를 위한 징표로 저를 선물하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의도는 납득이 되지만, 친선을 위해서라고 해도, 오랜 적대국이었던 나라에 그녀가 보내지면 어떤 취급을 알 텐데?
“더구나 우리 왕국은 직계 승계의 원칙이 있으니, 오라버니가 왕이 된다면 제 왕위 계승서열은 사라져 버리죠. 제 몸값은 지금이 가장 비싸거든요.”
“음…….”
“그리고 후작님께서 오라버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원래 형제들에겐 냉정한 분이세요.”
확실히 생각해보니까, 루크 2왕자를 사전에 억누를 수 있었음에도 피아 구분을 위해 세력 확장을 묵인했던 시점에서 왕태자의 형제애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으려나?
현 왕후의 직계자식은 왕태자뿐으로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모계 혈통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크로이센 제국으로 보내지는 것을 피하고자 저에게 청혼한 겁니까?”
“네, 크로이센 황태자란 카드에 버금가거나 그에 준하는 이익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생각을 접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가 나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크로이센의 황태자를 대신할 카드가 나란 뜻이었으니.
“오라버니는 후작님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계세요. 후작님이 배우자가 된다면 오라버니도 인정해주실 겁니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나는 루카스 대공의 후계자이니, 이 세상에서 최고의 신랑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귀족사회에서 나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이자, 물리면 죽을 수도 있는 광견이었다.
“사랑은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첩이어도 상관없고요. 그저 명분만 있어도 됩니다. 저와 결혼하신다면 후작님의 권위는 더욱 커질 테죠.”
항상 당당했던 공주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하지만, 공주님을 위해 결혼을 해드릴 순 없습니다.”
안 되긴 했지만,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부인을 들인다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나는 결혼을 그렇게 남발할 생각이 없다.
물론, 함께 살다 보면 정이 들고 사랑이 싹틀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만약의 경우가 아닌가.
지금 내게 그녀는 단지 예쁜 공주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아…….”
내 대답에 그녀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막무가내긴 해도 이렇게 나를 믿고 찾아온 여인을 매몰차게 내쫓을 순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그녀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신 크로이센 제국으로 팔려가지 않게끔 막아보겠습니다.”
애초에 이 결혼은 무리수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잠깐.’
그렇게 바로 왕태자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그 인간 다이애나 공주의 이 행동을 노린 거 아냐?’
문뜩 이 상황을 그가 유도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적에겐 가차 없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겐 의외로 무르단 것쯤은 그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 맞네. 이 인간 보소?’
대충 퍼즐이 맞춰지자 나는 혀를 찼다.
역시 실눈 캐릭터는 능구렁인 걸까?
“아무리 후작님이라 해도 그 오라버니가 청을 들어주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나는 자포자기한 것 같은 다이애나 공주를 앞에 두고 왕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로렌스 예비 공작께서 먼저 연락을 주시다니, 의외입니다.]그러자 왕태자가 예비 공작이란 호칭까지 써가며 능글맞게 나를 맞이했다.
“하나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내 대답에 왕태자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예상하고 있는데 모른 척하고 있는 거 다 보인다.
그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다이애나 공주님 말입니다. 크로이센 제국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해서요.”
필터링 없는 이런 내 발언에 다이애나 공주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왕태자의 대답이었다.
[네, 알겠어요. 그러도록 하죠.]너무도 손쉬운 목적 달성에 나는 물론, 반쯤 죽어가던 다이애나 공주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모름지기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대신 다이애나 공주는 후작에게 맡기도록 하죠.]“맡긴다는 게 결혼하란 말은 아니겠죠?”
[다이애나 공주와 결혼해주신다면 베스트지만, 후작이 내 뜻대로만 움직여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행정 능력은 제법 준수한 편이니, 옆에 두고 가신으로 써도 좋고, 사회활동에 이미지 메이킹용으로 쓰셔도 됩니다.]마치 물건 떠넘기는 것 같은 말투.
새삼 그에게 형제들의 가치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든 저에게 붙여 놓고 싶으신가 보네요.”
[후작은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인물이니까요. 어떻게든 후작과의 연결고리를 갖고 싶거든요.]다이애나 공주의 지위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조치다.
하지만 왕태자는 진심이었다.
고개를 돌려 다이애나 공주를 바라보니, 그녀는 애원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왕태자가 내린 크로이센 제국행 조치로 더는 그녀에게 공주로서의 권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그래요.]그걸로 다이애나 공주의 신변 이야기는 끝이었다.
[참, 이번에 왕실 파티에서 내 아이들을 소개해드리죠. 특히 큰아들이 후작을 심하게 동경하고 있습니다.]이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오히려 실없는 대화들이 다이애나 공주의 이야기보다 길었다.
하지만 다이애나 공주는 왕태자의 너무한 대우에도 화를 내긴커녕 안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파티 날 뵙도록 하죠.]전화를 끊은 내게 다이애나 공주가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그 오라버니와 동등한 대화라니.”
“그래서 이번 일로 크게 놀랐습니다. 저는 왕태자 전하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분인 줄 알았으니까요.”
“그건 후작님이 정치적 가치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인정을 받아서 그런 거예요. 오라버니는 후작님의 말씀처럼 마냥 상냥하지 않아요.”
나를 높게 평가해서 그렇다고 해도, 이번 일로 인해 왕태자의 인상이 크게 바뀐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게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왕으로서 실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다이애나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거 뜻하지 않게 왕실 최고의 미녀를 얻고 말았다.
뭐,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잘만 활용하면 좋은 패인 건 분명한 인물이었다.
다만 그 패를 어떻게 써먹을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이벤트성으로 아르시아, 이브릴, 다이애나 공주를 엮어서 K-pop 느낌으로 아이돌이나 만들어봐?’
이미지 메이킹 용으론 좋을 것 같지만, 현실성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