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ucky Encounter From the Game Turned Into Reality RAW novel - Chapter 187
게임 속 기연이 현실로 187화
44. 사건의 중심(3)
악마숭배자는 어째서 생기는가.
여신이 싫어서?
이 세상이 싫어서?
아니다.
흔히 악마숭배자라 하면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만, 정확하겐 마족과 계약을 나눈 사람들을 통틀어 악마숭배자라 칭하는 것이다.
사람이 마족과 계약을 나누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강해지고 싶어. 부디 내게 힘이 있다면…….’
‘나는 왜 시궁창 쥐처럼 살아야 하는 거지? 대체 왜!?’
‘죽이고 싶다. 그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치리.’
‘세피아시여! 어째서 그녀를 데려가신 겁니까!? 그녀가 무얼 잘못했기에!!!’
힘을 원하거나, 부를 원하거나, 복수를 원하거나, 누군가의 소생을 원하거나…….
각자의 사정에 따른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세상에 대한 ‘원망’과 ‘간절함’이다.
이 두 개의 감정이 더해져 강력한 마이너스 기운을 만들어내고, 그 기운에 이끌린 마족이 말을 걸어온다.
‘힘을 원하는가?’
바로 이런 식으로.
그렇게 마족의 꼬임에 넘어가게 되면 마족 계약자, 혹은 악마숭배자라 불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교단에선 이 과정을 ‘타락’이라 칭하는데, 인간이 마족과 계약을 맺게 되는 순간 흑마력이 신체에 깃들게 되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마족의 강림을 돕게 된다.
힘을 원한 자는 마족이 자신의 힘을 거둬갈까 두려워 따르게 되고.
처음 마족이 내려준 힘으로 당장 이룰 수 없는 소원을 가진 자는 마족의 강림을 통해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한다.
당연히 마족의 강림은 지상의 파괴와 혼란을 뜻하는 것과 같으니, 세피아 교단에서 눈에 불을 켜고 색출에 나서고 각 국가가 이에 협력하는 것이다.
“마족은 일반마족, 고위마족, 마왕까지 3개의 등급이 존재하는데, 인간과 계약을 나누게 되는 것은 고위마족과 마왕이야. 마왕이 아닌, 고위마족 계약자라 해도, 결국 그 고위마족에겐 자신이 모시는 왕이 있기 마련이니, 마족을 따르게 되면 결국 최종목표는 마왕 강림이 되고 말지.”
지금 나는 아르시아와 나란히 않아 마리냥 선생님의 ‘악마숭배자 등장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중이다.
교단의 요청으로 엘리시아 연합국 탐색을 담당하게 된 나는 아예 공국을 벗어나 연합국에 조사 사무실을 꾸렸는데, 지금 우리가 위치한 곳이 바로 그 사무실이었다.
아니, 정확하겐 사무실이라고 하기 뭐하려나?
왜냐하면 우리가 사무실이라며 눌러앉은 장소가 아이리스 마리냥 최고 장로의 자택이었으니 말이다.
“선생님, 마족은 얼마나 강한가요?”
내 물음에 마리냥은 그간의 설움을 잊었는지, 잘난 척 ‘에헴’ 소리를 내며 설명을 이어갔다.
“마법사 기준으로 따지면, 일반 마족은 보통 7서클 수준이고, 고위마족은 8서클에서 9서클 수준. 마왕은 그 이상이라 하지.”
마왕의 무력이 9서클급도 아닌, 그 이상?
즉, 규격 이상의 존재, 신급이란 뜻인가?
그런 녀석이 강림하면 드래곤이라 해도 감당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당연히 나와 아르시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에 마리냥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마족은 론델에 강림하게 되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더군. 이건 마족뿐만 아니라, 천족도 마찬가지라고 해.”
“그거 다행이네요.”
“아무래도 론델에 천족과 마족이 공존하던 신화시대 당시, 두 종족에 의해 론델이 붕괴할 뻔하면서 여신에 의해 그런 제약이 걸린 게 아닐까 싶어.”
론델에서 보이는 밤하늘의 별자리는 달을 제외하고 모두 여신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 허상 너머엔 진짜 우주가 숨겨져 있는데, 그 우주의 형태는 지구와 거의 일치한다.
론델이 속한 태양계에도 8개의 대표 행성이 있고, 론델이 지구라면, 금성엔 천족이 화성엔 마족이 살고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루카스 대공의 지식이다.
론델이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우주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과 마족과 천족이 론델에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행성 간 물리적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리냥의 말대로 신화시대 때 천족과 마족이 깽판을 쳐서 여신이 내린 극단의 조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왕이 론델에 강림하고자 한다면 온갖 똥꼬쇼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눈물의 똥꼬쇼를 해서도 온전하지 못한 형태로 강림하다니.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마족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나 싶다.
“선생님. 마족은 어째서 론델에 강림하려는 건가요?”
“창조주의 충실한 종인 천족과 달리, 창조주를 부정하는 마족은 천박한 땅을 물려받았다고 해. 그래서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고 들었어.”
역시 여신도 감정이 있다는 건가?
말을 잘 듣는 놈은 대우하고, 말을 안 듣는 놈은 괴롭히다니…….
“그럴 거면 그냥 마족을 이 세상에 없애는 게 낫지 않나요? 세피아 여신이라면 마족 따윈 간단하게 없앨 수 있을 텐데.”
지구에서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를 볼 때 항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여신이 용사를 소환하여 성검을 주고 마왕의 토벌을 명령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신이 마왕 죽이면 되는 거 아님?’
‘굳이 귀찮게 용사 소환하고 성검을 내려줘서 성장을 도와주느니, 직접 나서는 게 쉬울 텐데?’
라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귀찮은 녀석들이면 그냥 지워버리는 게 편하지 않을까?
“미우나 고우나 자식은 자식이란 거지.”
“그럼 여신께선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는 마인드를 가진 부모인 거네요? 집이 불타 없어질 정도만 아니라면 굳이 자식들 싸움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내 말에 마리냥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너무 비유가 찰떡이었나 보다.
“비슷하려나?”
마리냥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으나, 나는 그런 것보다 단지 여신의 성격이 인간만큼이나 변덕스러운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뭐, 정답은 여신 본인만이 알겠지.
“아무튼 마족이 론델에 강림하게 되면 능력치는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고 들었어. 마왕도 고룡급 드래곤 셋이 모이면 토벌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하지.”
“마왕이 강림해도 드래곤이 알아서 처리해 주니, 괜찮은 거 아닌가요?”
“하지만 뭐든 예외가 존재하는 법이거든. 마왕도 어중간한 마왕이 있으면 특출나게 강한 마왕도 있어. 지난번 진홍의 마왕이 그랬듯이. 진홍의 마왕은 드래곤 토벌대를 물리치고 수많은 나라를 불태웠지.”
나는 수긍했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우린 이후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족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수색에 대해.
“그런데 말이야.”
“네?”
“이걸 꼭 우리 집에서 해야 돼?”
마리냥의 집은 매우 훌륭했다.
인간의 귀족처럼 웅장한 느낌의 저택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커서 사람 열댓 명 자는 건 일도 아니었고, 동족을 하인으로 부리지 않는다는 엘리시아 연합국의 모토 때문인지 귀찮게 눈치를 볼 시종도 없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시설을 관리해 주거나 청소를 해주는 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서 건물도 아주 말끔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 불러주니, 우쭐대며 잘난 척 설명을 하던 마리냥은 자신의 침대에 칠칠치 못한 모습으로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버그를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항의했다.
“모처럼의 귀환인데, 너희 때문에 공국에 있는 느낌이잖아!”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좋은 거점이 있는데, 굳이 귀찮게 새로 구할 필요가 있나요?”
“으으!”
론델 최초의 대륙이라 칭해지는 엘리시아 연합국의 프로타 대륙엔 한가지 신비한 현상이 있다.
그건 군데군데 반중력의 힘이 깃들어 있는 땅이 존재한단 것이다.
그로 인해 엘리시아 연합국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연적인 천공의 섬이 존재한다.
마리냥은 그런 하늘섬을 보유한 지주였고, 제법 큰 그녀의 하늘섬엔 2층짜리 주택과 작은 텃밭 하나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세상이니, 하늘섬에 산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것도 없어 보였다.
“듣기론 하늘섬은 돈이 있다고 해도 살 수 없는 땅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단하시네요.”
“뭐, 마리냥은 수인국에서도 유서 깊은 가문이니까.”
이곳이라면 긴급 상황 때 성지의 지원군을 몰래 불러들이기도 편해 보였다.
나는 창문 너머 하늘을 올려 보며 말했다.
그곳엔 천공요새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크기는 훨씬 작은 직경 20미터 크기의 은색 구체가 떠 있었다.
“저게 그 유명한 정령의 탑이군요.”
“응, 정령이 깃들어 있는 엘리시아 연합국 고유의 방어시스템이지.”
엘리시아 연합국에도 대량의 천공요새가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처럼 도시를 방어한다고 항상 하늘 위에 띄워 놓지 않는데, 그 이유가 정령의 탑이라는 가성비 좋고 조망을 해치지 않는 방어시스템이 존재해서이다.
정령의 탑은 고대부터 엘프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마을 중심에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세월이 흘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탑의 형태를 버리게 되었고, 지금은 하늘을 나는 금속 공이 되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정령의 탑은 오로지 방어목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가성비가 좋다고 해도 대당 가격이 1조가 넘기 때문에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즉, 우리 사이에서 인형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역시 그녀는 세계 2위 강대국의 최고위 요인이란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거점이네요.”
“쯧…….”
내가 그녀의 자택을 더 없이 마음에 들어 하자, 그녀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바쁘신 양반들이 여기에 눌러앉아서 정보단체의 소식만 기다리게?”
마리냥의 물음에 나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이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보려고요.”
“엥? 어떻게.”
언제 뒤통수를 쳐올지 모르는 적에게 시간을 주는 건 좋지 않다.
되도록 거슬리는 적은 빨리 치워야 안심할 수 있지 않은가.
“미끼는 던져 놨으니, 물면 움직일 생각입니다.”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닫았다.
“으, 으으. 마리냥 안 돼. 거긴.”
“뭐래, 이 미친놈.”
그에 불만인 듯 볼을 부풀리던 마리냥은 버그의 영문 모를 잠꼬대에 짜증 난단 표정으로 다가가 녀석을 침대 밖으로 굴려 버렸다.
* * *
“흐음?”
쌍안경처럼 생긴 아티팩트를 눈에 가져다 대며 하늘을 올려 본 흑기사 셀린 비올라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감탄했다.
“그럴싸한데?”
그녀가 올려 본 하늘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눈에 가져다 댄 아티팩트에는 유선형의 멋들어진 비공선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은신 기능에 소리와 기운마저 감추는 비공선이라. 탐색 아티팩트가 없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겠어.”
셀린은 현재 망망대해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열 명의 사람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마치 왕을 모시는 신하와도 같은 모양새.
그러나 그런 상황이 익숙한지, 셀린은 히죽 웃을 뿐이었고…….
“가자.”
이내 그녀가 쌍안경을 눈에서 떼며 명령하자.
이들이 딛고선 바다 한가운데의 땅이 하늘 위로 치솟기 시작했다.
접시 형태의 그건 일종의 호버보드였다.
대형 호버보드.
주변에 붙잡을 것 하나 없음에도 셀린과 일행은 발에 접착제라도 붙였는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우선 은신부터 해제해야지.”
그리고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미소를 띤 얼굴로 로브 자락을 펄럭였고, 망토처럼 틈이 벌어진 로브 사이로 주렁주렁 매달린 중단검이 일제히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랜드마스터가 운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어검의 숫자는 최대 4개.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그녀의 명령과 함께 솟구친 단검은 수는 어림잡아도 10기가 넘어 보였다.
-콰아앙! 콰앙! 콰아앙!
다크블레이드를 머금은 어검은 하늘 위에 크고 작은 폭발을 만들어냈고, 이내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색이 입혀지듯 순백의 비공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가 200미터는 될법한 거대 비공선이었다.
“느려터졌네. 승선하면 너흰 아티팩트를 찾아. 나는 사냥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네? 주, 주군!”
“그럼 먼저 간다.”
셀린은 무도회에서 쓸법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나비 가면을 꺼내 썼다.
이어서 호버보드가 비공선에 닿기 전에 몸을 날렸고, 한 자루의 중단검이 스케이트보드처럼 그녀를 싣고 매섭게 솟구쳤다.
“안녕?”
순식간에 비공선에 도달한 그녀는 당황한 표정의 성기사와 신관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